PR산업수준 '걸음마'단계

PR산업이 급격히 발전하고 있다는 얘기는 몇 년전부터 계속돼온 얘기다. 그러나 PR시장의 규모가 어느 정도고 매년 몇 %씩 성장하고있는지, 국내에는 몇 개의 전문 PR대행사가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아직까지 PR가 국내에서 독자적인 산업으로자리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국내 기업의 홍보실 운영비를 제외한 광고대행사의 PR팀과 PR대행사의 매출액을 모두 합한 것이 국내 PR시장의 규모일텐데 PR업무를대행하는 회사치고 자사의 일년 매출액을 제대로 밝히는 회사는 없다. 표면적으로는 각 회사마다 수수료 산정 방법이 달라 매출액이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몇몇 큰 회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PR대행사의 경우 고객수가 기껏 2~3곳에 지나지 않고 매출액도 밝힐만한 액수가 못 되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것이다. 메리트커뮤니케이션즈 버슨-마스텔라 커뮤니케이션즈코리아등 국내의 빅3라 불리는 3개의 PR대행사를 제외한 나머지 PR대행사의 일년 매출액은 2억~5억원 사이에 불과하다.◆ PR대행사, 한정된 외국고객 ‘나눠먹기’ 상태국내의 PR 전문회사는 대략 10여개. 광고대행사나 법률사무소 등다른 주업무에 곁들여 PR업무를 수행하는 회사까지 따지면 30여개정도로 알려져 있다. PR회사의 대략적인 일년 매출액과 회사 숫자를 합산해 추적해 들어가면 국내 PR시장 규모는 대략 5백억∼6백억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지난해 시장 규모가 이런 정도지 매년 어느 정도 성장하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단지 수원대의 최윤희교수(신문방송학과 PR학박사)는 『PR산업은 90년대 들어 매년30~40%씩 성장하고 있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이 성장률이 곧PR대행사의 매출액증가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PR대행사의 매출액은 90년 들어서 정체되고 있다. 국내 PR시장은 일종의제로섬 시장이기 때문이다.PR회사에 PR업무를 맡기는 고객은 외국 회사로 한정돼 있다. 매년새로운 고객이 창출되는 것이 아니라 PR대행사끼리 한정된 고객을서로 나눠먹고 있는 상태다. 국내에 진출할 만한 외국 기업은 이미들어올대로 다 들어온 90년대 들어서 PR시장이 정체상태에 빠진 것도 이 때문이다.메리트커뮤니케이션즈가 90년 이후 매년 20억원 정도의 수익을 올리다가 지난해 40억원을 기록, 선전한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PR회사의 실적은 91년이나 지난해나 매한가지다. 버슨-마스텔라가 90년대 이후 매년 15억원 내외를 기록하고 있고 커뮤니케이션즈코리아가 13억원, KPR가 4억원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PR대행사들의 규모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데 대해 제일기획 PR팀의 김주호차장은 『국내 기업을 새로운 고객으로 창출하지 못한채 한정된 외국 업체만을 대상으로 경쟁하다 보니 PR대행사끼리 땅따먹기를 하는 꼴이 됐다』고 지적한다.그렇다면 PR업계와 학계는 어떤 근거에서 PR시장이 매년 성장하고있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국내 PR업계는 크게 전문 PR대행사와 광고대행사의 PR팀으로 나눠진다. 이중 PR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장본인은 광고대행사다. 제일기획 PR팀의 91년 매출액은 55억원. 지난해에는 2백44억원으로 증가했다. 5년간 5배 성장한 것이다. 오리콤의 PR팀도 마찬가지다. 91년 5억원의 매출액이 지난해에는 22억원으로 뛰었다. LG애드도 91년 15억원에서 지난해 35억원으로 증가했다. 94년에 PR팀을 신설하고 PR사업을 시작한 금강기획 PR팀은 지난해 40억원의 매출액을 올렸다.광고대행사 PR팀의 급성장 이유는 간단하다. PR대행사와는 주고객이 다르다. PR대행사는 외국 업체가 주고객인데 비해 광고대행사PR팀의 고객은 국내 기업들이다. 특히 광고대행사는 대부분 대기업의 계열사인 탓에 모그룹의 PR업무를 자동적으로 담당하게 된다.광고대행사의 PR팀은 90년 들어 급성장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는데이는 PR에 대한 대기업들의 인식변화가 90년대 들어와 이뤄졌기 때문이다. 90년대 이후부터 차츰 보도자료 배포 등 언론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퍼블리시티는 자체 홍보실에서 해결하고 해외 PR나 특수한 PR전략이 필요한 부분은 계열 광고대행사에 맡기는 식으로 PR업무를 분화하고 있다.삼성그룹의 탁아사업 PR를 예로 들어보자. 탁아소를 어느 지역에세웠다는 내용의 대언론 보도자료는 그룹 홍보실에서 배포하고 전체적인 PR대행은 제일기획 PR팀에서 담당, PR업무를 분담했다. 제일기획은 국내 탁아실태를 조사하고 탁아원장 인터뷰를 주선했으며탁아운동에 앞장서는 단체와 만남을 갖는 등 탁아사업이 삼성그룹의 장기적인 이미지에 도움이 되도록 다양한 사업을 기획, 수행했다.◆ PR산업, 인맥만 있으면 맨 손으로도 창업 가능광고대행사의 PR팀은 모그룹의 PR뿐만이 아니라 다른 광고주도PR고객으로 흡수하고 있다. LG애드 PR팀이 LG애드의 광고주인 쌍용자동차의 PR를 대행하고 있는게 대표적인 예다. 광고대행사는 한마디로 기존 광고주를 발판으로 성장의 기틀을 마련해가고 있는 것이다. 광고대행사 PR팀의 매출액이 늘어나는 것은 「광고는 전문회사에맡기지만 PR는 자체 홍보실에서 해결한다」는 기업의 기존 인식에변화가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PR도 광고와 마찬가지로 전문회사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신규 PR고객은 대부분 광고대행사로 흘러들어간다. PR대행사는 좀처럼 외국업체의 길잡이 노릇에서 벗어날 기회를 잡지 못한다. 고객이 외국업체로 제한되다 보니PR대행사는 영세성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경영상태가 영세하다 보니 인원 이동도 많아 PR에 대한 전문성 축적도 어려워진다. PR대행사에 근무하는 사람에게 일년후에 다시 전화하면 십중팔구 퇴사했다는 대답을 듣기 쉽다. 인원 이동이 그만큼 심하다.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의 김경해사장은 『PR회사에서 어느 정도 경력을 쌓은 뒤 독립하고 싶어 나가는 사람이 많다』고 말한다. PR산업은 탄탄한 인맥만 있으면 맨 손으로도 창업할 수 있는 사업인데다 아직 국내 PR시장은 잠재력이 크고 PR회사의 숫자도 시장 규모에 비해 많지 않은 편이라 창업이 쉽다. 실제로 국내 PR대행사 사장의 대부분은 다른 PR대행사에서 경력을 쌓은 뒤 창업한 케이스다. 메리트커뮤니케이션즈의 빌 라일런스사장은 영국의 버슨-마스텔라에 근무했고 퍼블릭코리아(현재 에델만코리아)의 이태하사장은미국의 버슨 - 마스텔라와 국내 메리트커뮤니케이션즈를 거쳤다.코콤PR의 김장열사장과 올 3월 창업을 계획중인 비즈니스타임 서비스 PR부의 신성인이사는 커뮤니케이션즈코리아 출신이다. 따로PR회사를 차려 독립하지 않더라도 다른 PR대행사나 기업의 홍보실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도 많다.PR대행사간에 합종연횡을 계속하는 가운데 올해는 PR업계에 또다른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우선 에델만이 국내에 진출함으로써 외국 PR대행사가 두 개로 늘어났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버슨-마스텔라가 국내 유일의 외국업체였으나 올 1월에 세계적인 PR대행사인에델만이 국내의 퍼블릭코리아의 주식을 1백% 인수, 두 번째의 외국 PR대행사가 된 것이다. 에델만코리아의 사장은 기존 퍼블릭코리아의 설립자이자 사장이었던 이태하씨가 계속 맡고 있으나 경영인사장일 뿐이다. 이태하사장이 퍼블릭코리아를 매각한데 대해 여러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으나 업계의 대체적인 반응은 이태하사장과에델만의 손익계산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세계적인 PR대행사는 전세계에 지점망을 구축하기 위해 현지 PR대행사를인수하는 방법을 많이 이용하는데 에델만의 퍼블릭코리아 인수도그런 맥락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에델만은 매출액 순으로세계 5위의 PR대행사로 46개국에 79개의 지점망을 보유하고 있으며94년 매출액은 7천4백90만 달러였다.◆ 외국PR대행사 증가로 PR업계 지각변동 예고커뮤니케이션즈코리아 출신의 신성인이사가 올 3월 설립할 계획인신규 PR대행사도 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94년에 설립된 액세스와 코콤PR도 본격적인 시장 공략을 선언하고있어 올해는 업체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국내 PR산업이 발전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국내 PR산업의 수준은 걸음마 단계다. 최윤희교수는 국내 PR시장이『싱가포르나 대만보다도 훨씬 낙후돼 있다』고 말한다. 세계 곳곳에 자사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세계적인 PR대행사의 지점이 국내에는 2개밖에 없다는 사실이 사실상 국내 PR시장이 얼마나 먹을것이 없는 동네인가를 보여준다. 이번에 국내에 진출한 에델만의경우 북경 상해 동경 홍콩 싱가포르 콸라룸푸르 등 아시아 각 지역에 자사 지점을 개설해 놓고 있다. 한국 지사는 아시아에서 8번째로 개설된 네트워크인 것이다.그러나 초보수준인 만큼 PR시장의 성장잠재력은 무한하다. PR전문가들은 80년대 중반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이 PR산업 도입기였다면앞으로 5년간은 비약적인 발전기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PR산업이 경제발전과 민주화, 사회개방화 속도와 맞물려 발전한다는 점에 비춰볼 때 국내 PR시장은 아직 개척할 여지가 무한한 황금어장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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