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사회 이슈, PR가 좌우

코닥은 후지필름과 함께 전세계 필름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양대산맥의 하나다. 미국회사인 코닥필름은 간발의 차이로 일본회사인 후지를 따돌리며 세계 필름시장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지만 코닥이 유난히 힘을 못 쓰는 시장이 있다. 일본이다. 일본에서만은 유독10%대의 시장점유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 시장의 70%를장악하고 있는 후지필름에 밀려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할인 정책을 쓰고 신제품을 선보이며 대대적인 판촉활동도 벌여봤지만 일본에서의 시장점유율은 좀처럼 올라갈 줄을 몰랐다. 코닥은지난해초 드디어 일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미국 정부의 힘을빌릴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미국 무역대표부에 후지필름과 일본 정부가 불공정 행위를 조장하고 있다고 제소하고슈퍼301조를 발동할 것을 강력히 주장한 것이다.코닥의 갑작스런 제소에 후지필름은 의외로 의연하게 대처한다. 우선 워싱턴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코닥의 주장에 대한 반박문과 후지필름 사장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후지필름이 자국시장인 일본에서70%의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코닥도 자국시장인미국에서는 필름시장의 70%를 점하고 있다는 자료를 들어 코닥의주장이 터무니없음을 주장했다.코닥이 후지를 제소한 초기에는 여론이 후지측에 불리한 쪽으로 흘러갔으나 후지의 적극적인 대처로 차츰 중립적이 돼 갔다. 미국 언론을 대상으로 펼친 일본 회사의 PR활동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셈이다. 후지필름의 성공적인 PR 뒤에는 에델만이라는 PR대행사가있었다. 후지필름의 사례에서 보듯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각종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이슈 뒤에는 거의 예외없이 그 이슈를 조정하는 PR대행사가 있다. 그만큼 PR가 보편화돼 있다. 특히 미국은 PR의 본고장이라 할 만큼 PR활동도 활발하고 PR회사도 많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PR회사는 대략 2천여개. 조사대행, 보도자료 배포, 영상물 제작, 홍보책자 출판 등 분야별 PR 실무작업만 전문적으로 하는 업체까지 따지면 6천개가 넘는다. PR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만 16만2천여명(90년 기준). 미국의 PR협회(PRSA)는 PR단체로는 세계에서가장 큰 규모로 1백여개 지역 분과에 1만6천여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다.◆ 미국·유럽, 세계 PR산업 주도규모뿐만이 아니라 PR에 대한 인식에서도 미국은 우리나라와 많은차이가 있다. 미국에서는 기업이나 정부기관 각종 사회단체들이 광고대행사와는 별도로 PR회사를 고용, 활용하고 있다. PR대행사를이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PR를 통해 여론을 자사에 유리하게 유도하기 위해서다. 눈 앞에 보이는 이익은 없을지 몰라도 PR를 통해장기적인 동조자를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PR의 목표를 사회 각층과의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장기적인신뢰 형성에 두고 있는 셈이다. PR에 대한 이런 인식 때문에 미국기업은 자사 관련 뉴스가 언론에 몇 번 취급됐는가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다. PR 대상도 언론에만 국한시키지 않는다. 정부, 지역사회 주민, 사내 직원 심지어는 경쟁사까지도 PR 대상자로 보고 있다.최근에는 가시적인 판촉성과를 바라보고 PR활동을 수행하는 마케팅적인 PR도 늘고 있다. 미국 철도가 비행기와 자동차에 빼앗긴 승객들을 다시 유치해 오기 위해 벌이는 PR활동이나 설탕협회가 설탕은건강의 적이라는 소비자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전개하는 PR캠페인등이 마케팅적인 PR의 대표적인 예다.세계 PR산업은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버슨 - 마스텔라와 힐 앤 놀튼은 몇십년간 세계 PR산업을 좌우해온 PR의 거장들이다. 올림픽 엑스포 국제회의 대통령선거등 각종 국제적인 이슈 뒤에는 거의 대부분 이 두 회사가 그림자처럼 따라 다닌다. 웬만한 다국적 기업치고 버슨-마스텔라나 힐 앤놀튼을 통해 PR활동을 해보지 않은 기업이 없을 정도다. 심지어는전쟁의 이면에서도 활약해 왔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당시 힐앤놀튼이 쿠웨이트 망명정부의 PR를 전담, 미국의 이라크전참전을 유도했던 사실은 유명하다.버슨 - 마스텔라는 매출액 순으로 세계 1위의 PR대행사. 94년 매출액이 1억9천만 달러다. 원가가 포함되는 제조업체의 매출액과 달리PR를 대행해주고 받은 수수료(Fee)만 계산된 매출액인 만큼 그 규모는 제조업체의 몇 배에 달한다. 버슨 - 마스텔라는 세계적인 광고그룹인 영앤드루비컴 계열사로 세계 32개국에 63개의 지사를 두고 있다. 94년 매출액 기준으로 PR업계 15위를 차지한 콘앤월프도영앤드루비컴그룹의 일원이다. 버슨 - 마스텔라는 84년 LA올림픽부터 서울올림픽 바르셀로나올림픽 등 3회 연속으로 올림픽 PR를 대행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힐 앤 놀튼은 세계적인 광고그룹인 WPP그룹의 계열사로 미국에14개, 해외에 38개의 지사를 거느리고 있다. 80년대 초까지만 해도버슨 - 마스텔라와 업계 1, 2위를 다퉜으나 최근에는 3위로 뒤처졌다. 힐 앤 놀튼을 무너뜨린 장본인은 영국 회사인 샌드위크. 이 회사는 버슨 - 마스텔라나 힐 앤 놀튼에 비해 역사도 짧고 세계적인광고그룹의 일원도 아니다.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세계적인 PR업계에는 명함도 못 내밀던 영국의 작은 PR업체였다. 샌드위크가80년대 중반부터 급성장할 수 있었던 원인은 세계 각지의 우수한PR회사를 적극적으로 인수, 단기간에 덩치 불리기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샌드위크는 현재 대륙별 지역 본사 5개, 영국 13개, 북미17개, 유럽 8개, 아시아 9개 등 전세계에 총 52개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80년대 가파른 성장의 비탈을 올라왔던 대형 PR회사들은 90년대 들어와서는 외형면에서 조금씩 주춤하고 있다. 세계의 PR산업을 주도하는 미국과 유럽의 PR시장이 어느정도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대형 PR회사들이 현재 눈독을 들이는 시장은 호주와 일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중국 등 동남아시아 시장이다. 이 지역은 아직까지 PR에 대한 개념이 정립돼 있지 않은 상태지만 성장 잠재력이무한하다. 다국적 기업의 아시아 진출이 활발해짐에 따라 다국적기업을 아시아 지역에 알리기 위한 PR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따라 버슨 - 마스텔라와 힐 앤 놀튼은 홍콩을, 에델만은호주와 말레이시아를 아시아의 거점으로 삼고 중국과 베트남 등으로 영향력을 확대해 가고 있다.PR영역이 전문화 세분화돼 가는 것도 최근 세계 PR산업의 두드러진특징이다. 미국의 PR회사 연감에 등장하는 PR 전문분야만 해도 농업 패션 문화 환경 금융 첨단기술 의약품 스포츠 여행 등 11개에이른다. 이 연감에 의하면 버슨 - 마스텔라는 환경 금융 식품 의약품, 샌드위크는 오락 첨단기술 가구 여행, 롤랜드는 화장품, 콘앤월프는 스포츠마케팅 분야에서 각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아시아지역, 다국적 기업의 PR 수요 급증미국과 유럽에 비해 일본의 PR시장은 규모도 작고 PR활동도 제한적이다. PR가 광고의 보조적인 수단이라는 인식이 아직까지도 뿌리깊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광고대행사와 PR대행사가 개별적으로 분리돼 있지만 일본은 혼재돼 있다. 덴츠와 하쿠호도 등 광고대행사가 PR업무를 함께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일본 광고대행사의 80% 가량이 PR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문제는 광고를 주업무로 하는 광고대행사에서 PR업무의 상당부분을 수행하다 보니PR가 항상 광고의 수단으로만 인식돼 왔다는 점이다.PR에 대한 이런 인식 때문에 일본의 PR산업은 경제적인 위상과 세계 2위의 광고대국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상당히 뒤처져 있다. 일본의 「95년 광고관련 회사명람」에 올라있는 PR회사는 52개.8백8개가 올라있는 광고회사의 7% 수준에 불과하다. 서구에 비해PR산업의 구조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수치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최근 들어 PR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는 추세다. 소비자와시민단체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기업과 소비자간의 상호 이해 증진이라는 PR의 역할이 새롭게 강조되고 있다.또 공장을 해외에 이전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그 나라 지역 주민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지역사회 PR와 세계에 일본 기업의긍정적인 이미지를 심기위한 해외PR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일본의 PR산업도 겨울잠에서 깰 채비를 갖추고 꿈틀거리기 시작한것이다.★ 인터뷰 / 구로미즈 일본 덴츠PR센터 상담역덴츠PR센터는 일본에서 가장 큰 PR전문회사다. 정식 직원만2백50명. 도쿄 본사를 중심으로 오사카 나고야 등에 영업소를 둔일본 제일의 PR회사다. 지난해 매출액은 대략 1백20억엔. 어마어마한 금액이긴 하지만 덴츠PR센터의 모기업이자 일본 최대의 광고회사인 덴츠의 매출액에 비하면 1%에 불과한 액수다. 아직까지 일본의 PR시장이 광고시장에 종속돼 있음을 보여주는 실례다. 그러나일본의 PR산업은 지금 한창 성장하고 있는 잠재된 시장이다.일본PR협회 이사장이자 덴츠PR센터 상담역을 지내고 있는 구로미즈쓰네오씨(64)를 만나 일본의 PR산업 현황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일본의 PR시장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정확한 수치는 나와있지 않지만 대략 1천2백억~1천5백억엔 사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일본 광고시장(5조7천억엔)의 2.1∼2.5% 수준이다. PR시장이 광고시장보다 규모는 작지만 중요성에서는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중요하다. 세계가 국경없는 글로벌리즘을 지향할수록 PR에 대한 수요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PR와 광고는 어떻게 다른가.PR의 범위는 광고보다 훨씬 넓다. 광고는 그 물건을 사용하는 소비자만을 대상으로 하지만 PR의 대상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예를들어 화장품 회사인 시세이도를 보자. 시세이도의 광고는 소비자를 목표로 한다. 그러나 시세이도의 PR대상자는 거래은행, 후생성, 주주사, 다른 화장품 회사, 시세이도 직원과 가족 등 무한하다. 광고와 PR는 목적도 다르다. 광고의 목표는 「Buy me(나를 구입하라)」지만 PR는 「Love me(나를 사랑해 달라)」「Understandme(나를 이해해 달라)」를 추구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언제부터 PR의 중요성이 부각됐나.일본의 PR 역사는 55년 PR전문회사가 생기면서 시작됐다. 그러나PR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한 시기는 일본 경제가 한창 발전하던60~75년 사이다. 최근에는 일본 PR산업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더 이상 해외에서 「내 물건만 사달라」고 말하는 마케팅은 먹히질 않는다. 해외 현지 소비자를 이해하고 일본 기업을 이해시키는 PR의 필요성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해진 것이다.▶ PR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무엇인가.PR는 한마디로 합의 형성을 위한 공학이다. 상대방에게 자기 입장을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얘기를 들으며 의견을 교류하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다. PR의 핵심이 서로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이기 때문에 PR전략을 수립하기 전에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공청이 대단히 중요하다. PR를 잘 하려면 먼저 남의 의견을 잘 들으라고 말하고 싶다.▶ 일본 기업의 해외 진출이 상당히 활발하다. 해외PR는 어떻게 하고있나.일본에서는 PR대행사를 따로 고용하지 않는 기업들도 해외에 나갈때는 꼭 PR컨설팅을 받는다. 일본 기업이 로비나 해외 현지에서의공익사업 등을 제외하고 사용하는 해외PR비는 전체 광고예산의1~2% 정도다. 소니나 마쓰시타의 경우 광고비의 3~4%정도를 해외PR예산으로 쓰고 있다. 미국기업의 해외PR 예산은 일본기업의 2~3배가 넘는다. 일본 기업이 좀더 해외PR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일본 기업의 이미지가 나쁘면 제품의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판매할수가 없다. 현대 소비자는 상품을 사면서 기업의 이미지를 함께 구입하고 있다.▶ 한국의 PR산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일본보다 조금 뒤져 있다고 생각한다. 약 15년 정도. 그러나 한국의 경제력이 해외로 크게 뻗어나가면서 PR산업도 크게 발전할 것으로 본다. 문제는 한국 나름의 PR방법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PR는 자사 제품을 해외에 판매하는 전초병이다. 우선 PR에 대한 기업 경영층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구로미즈씨는 56년 교토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덴츠사에 입사, 영업부장과 홍보실장을 거쳐 87년부터 7년간 덴츠PR센터 사장을 지냈다. 31년에 한국에서 출생, 15년간 한국에서 자랐다. 취미가 한국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라고 말할만큼 소문난 한국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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