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터카 기사의 화려한 변신

지난 94년11월23일. 1백50개 대기업 임원으로 만들어진 인사관리협회에서 대기업 임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있었다. 강사는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한 정신문씨(53). 10여년의 렌터카 기사에서 산업강사로 화려하게 변신하는 날이었다. 정씨는 그때를 『떨리기도 했고 긴가 민가도 했지만 기분은 매우 좋았다』며 미소짓는다. 산업강사. 기업의 신입사원이나 간부사원 및 임원 등을 대상으로교육훈련을 담당하는 사람들이다. 주로 박사학위를 가진 대학교수나 연구소장, 또는 고위관료나 대기업체 임원들이 차지하고 있다.그만큼 학력의 벽이 높은 곳이라는 얘기다. 『우리사회에서 학력없이 평등할 수 있습니까』라는 정씨의 말은 쌓이고 쌓인 「한」을드러내는 듯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변신을 도와준 선배 산업강사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는데 인색하지는 않다. 산업강사로의길로 안내하고 강의기법등을 가르쳐준 이상헌 한국심리교육협회장과 렌터카로 모셨던 1천여명의 산업강사들이 그들이다.◆ 비오는 날 창밖에서 우산받치고 강의 들어정씨는 아직 산업강사 초년생이다. 경력이 2년도 안되고 출강도 한달에 20여회에 불과하다. 강의가 없는 날은 렌터카 기사일도 함께한다. 「이중직업인」인 셈이다. 그럼에도 그는 잘나가는 산업강사중의 한 사람이다. 지난해 10월 아시아나항공이 여승무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강사평가에서 제일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한 번 강의를나간 곳에서는 두 번 세 번의 출강제의가 이루어지는 것도 정씨의「인기」를 반영하고 있다. 초등학교 4년중퇴와 6개직업이라는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는 정씨가 인기를 모으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열쇠는 성실하고 긍정적인사고방식이다. 렌터카 기사시절 그는 1천여명의 산업강사를 「모시면서」 5천여회에 달하는 강의를 빼놓지 않고 열심히 들었다. 1백명이 넘는 다른 기사들이 「편하게」 차에서 잠을 자는 동안 그는교육담당자들로부터 쫓겨나는 설움을 받으면서 강의를 듣고 메모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비오는 날 창밖에서 우산을 받치고 들었던 기억도 생생하다.독특한 기사생활을 하고 있는 그에게 변신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은 이상헌 회장을 모시게 된 때부터. 이회장을 모시고 강의장으로가는 도중 그는 「편지」얘기를 했다. 정씨가 매일매일 들은 강의내용을 아이들에게 편지형식으로 전달한다는 것이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아침을 먹는 짬을 이용해 「부정자정(父情子情)」을 주고받은 것이 아이들이 구김살없이 대학까지 진학하는 밑거름이 됐다는게 골자였다.정씨는 그당시 일화 하나를 꺼낸다. 2년전 일을 끝내고 새벽 3시에귀가한 뒤 다음날 새벽 6시에 나오려고 하는데 딸이 누룽지를 끓여주는데 눈시울이 뜨거웠다. 그때 『궁핍도 선생이다. 가난할 때이길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일이라도 이뤄낼 수 있다. 시집가서10년을 참으면 다 이길 수 있다. 가난도 원망하지 말고 꾸준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해준 적이 있다는 것이다.그는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고 성공에 이를 수 있는 「3관리론」을 제시한다. 첫째 사고관리로 부정적 생각은 부정적 결과를 가져오고 플러스적 생각은 긍정적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둘째로는 표정관리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밝은 표정을 짓는게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언어관리로 같은 말이라도부드러운 말을 쓰는게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앞서간다는 것이다.정씨는 『스타는 생일이 두 번』이라는 말도 한다. 일반인으로서배우나 특이한 사람으로 변신하는 것은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듯이자신도 생일이 두 번이라고 한다. 평범한 렌터카 기사에서 산업강사로 다시 태어났다는 뜻에서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 달라진게별로 없다며 겸손해 한다. 『강의에 불려가는게 특이하달뿐 자격증받은 것도 아니고 부르는 사람이 없으면 못가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그러나 그 자신도 화려한 변신이 대견스러울 때가 많은 모양이다.오대산에서 금성사 임직원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때 한친구가 자신을 오대산까지 데려다 주고 문밖에서 강의를 들었는데 모임때 『주위에 이런사람 있었는지 몰랐다』고 광고를 해줬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데리고 사는 미인 없고 가까이 하는 영웅 없다』는 말처럼가까이 하니까 주위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자신이 많이 변한 것은사실인 듯하다고 겸연쩍어한다.화려한 변신에 성공한 만큼 높은 벽으로 다가오는 「학력장애」를극복할 계획은 없느냐고 묻자 그는 의외의 답을 한다. 『강사되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지금도 된 것 같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목표를 세우고 피땀어린 노력을 하나 나의 경우는 달랐다. 주제넘은생각이기는 하나 인생을 연구하는 일에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다』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초혼때 학력 등의 이유로 이혼당할 위기에 처했던 일을 털어놓았다. 그때 집사람을 납치하다시피해 갓난애들을 싣고 남해안에서 동해안을 거쳐 보름가까이 걸쳐 여행하면서 인생 계획 등을 얘기해 설득시켰단다.그러면서 『자식에게 존경받고 부인에게 인정받겠다』는 두가지 결심을 했다. 지금까지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취미생활도 하지 않으면서 노력한 결과 두가지를 다 이루었다고 한다. 학력이 활동하는데 불편하고 차별대우를 받는 측면이 많기는 하나 여기에 구애받지않고 보다 차원 높은 일을 하겠다는 뜻인 듯하다.◆ 평생 ‘참진리’ 찾는데 주력그의 이런 태도는 「진리탐구」라는 그의 좌우명에서도 나타난다.『육신의 주인은 정신이다. 같은 진리라도 거짓 진리가 아닌 참 진리를 찾는데 노력할 것이다. 길은 길따라 가고 이치는 이치따라 간다』는 말이다.정씨는 요즈음 불안한 생각도 적지 않다고 털어놓는다. 좋은 일이있으면 나쁜 일도 있고 시위를 떠난 화살은 올라가다가 정점을 지나면 떨어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정씨는 그래서 올해초 대학에들어간 두딸에게 『자녀없는 부모님을 모시라』고 했다고 한다. 맛있는 것을 먹고나면 맛있는게 없듯이 고생한 것을 잊을까봐서다. 『렌터카 기사는 아플래도 아플 권리가 없다』는 정씨. 렌터카 기사이전 철공소에 근무할 때 아침에 하루 먹을 밥을 한 뒤 세 개로나누어 3분의 1만 먹어야 하는데 『어차피 배고플 것 한끼만은 배부르자』는 생각에 한꺼번에 다 먹은 때도 있었다고 한다. 쌀가게에 취직했을 때는 야적장에서 자고나면 눈이 많이 왔는데도 양말과내의를 안 입고 살았는데 감기도 안 걸렸단다.정씨는 요즈음 강의 나가는 것외에 책만드는 일에도 바쁘다. 그동안 강의를 들으면서 메모한 것을 정리해 오는 4월께 책을 내기로했다. 그가 들고 다니는 전자수첩에는 4백90개에 달하는 강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달중에는 장안동에 개인 사무실도 낼 계획이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