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LG그룹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창업자와 2대의 몫이었다면 이 그룹의미래는 3대에 달려 있다. 지금까지를 놓고보면 일단은 3대에 걸쳐착실한 「경영바통」 릴레이를 펼쳐왔다.창업주가 뿌리를 내리고 타계한 지난 70년의 LG그룹의 매출액은2백60억원. 2대 회장인 구자경 회장이 줄기를 뻗던 80년엔2조9천7백9억원, 90년엔 16조2천억원으로 늘어나고 3대 회장에게경영권을 물려준 지난해엔 50조원으로 확대됐다.창업주인 연암 구인회. 연암이 경남 진주에 「구인회상점」이란 포목점을 연 것은 그가 24세 되던 1931년. 자본금은 3천8백원(圓).이어 40년에는 상호를 「주식회사 구인상회」로 바꾸었고 8.15해방과 함께 45년엔 「조선흥업사」를 설립해 미군정청으로부터 무역업허가를 1호로 따내 무역업에 손대기도 했다. 무역업에 이은 운수업도 여의치 않자 그는 「크림」사업에 눈을 돌려 상표에 「럭키」란이름을 붙였다. 크림사업을 위해 갖고 있던 땅도 팔고 구인상회도매각해 전재산을 털어넣었다.장안에 첫선을 보인 럭키크림은 한마디로 불티나게 팔려나가 대성공을 거뒀다. 덕분에 그는 47년에 「락희화학공업사」를 설립, 근대적인 제조업체로의 면모를 갖췄다. 오늘날 LG그룹의 초석을 다진셈이다. 당시 원료를 녹여 크림제품을 만들던 가마솥 「검화조」는지금도 그룹연수원인 인화원에 모형이 소중히 보존되고 있을 정도다.연암은 크림사업에 만족하지 않고 52년엔 치약과 플라스틱사업에진출했다. 크림으로 번 돈 3억원(圓)을 몽땅 투자해 부산 범일동에플라스틱 공장을 세웠다. 플라스틱이란 말조차 생소했던 이 땅에합성수지시대를 연 것이다.이어 53년2월 연암은 LG상사(옛 럭키금성상사)의 전신인 락희산업주식회사를 세우고 5년뒤인 58년엔 금성사(현 LG전자)를 설립했다.59년엔 국내 처음으로 라디오를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전자및 화학업종을 주력으로 하는 LG그룹의 요람을 완성했다.60년대 후반에 설립된 호남정유가 탄생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경제기획원에서 전남 여천에 일산 6만배럴 규모의 제2정유공장건설 및 경영희망자 공모를 낸 것은 66년5월. 민간주도의 제2정유공장 건설이 수면위로 떠오른 것이다. 지난 64년부터 가동을 시작한 유공(당시 대한석유공사)의 한해 순이익이 30억원에 달함에 따라 사업자 모집경쟁은 그야말로 불꽃을 튀겼다. 「순익 30억원의금방석」이라고까지 불린 이 사업의 허가를 받으면 재계의 판도가바뀔 것이 뻔했다. 럭키 롯데 한화등 6개사가 신청을 했고 결국 럭키쪽으로 결정됐다. 럭키와 칼텍스가 50%씩을 출자한 자본금5백50만달러의 호남정유가 제2공장사업자로 선정된 것은 같은해11월. 이듬해인 67년에 호남정유 여천공장이 기공됐고 69년3월에완공됐다. 출범당시 6만배럴이던 하루 정제능력이 지금은 38만배럴로 늘어난 상태. 현재 여천에 4공장 신축이 진행중이어서 오는10월께는 60만배럴체제에 돌입하게 된다.50년부터 락희화학 이사로 시작해 경영수업을 받던 창업주의 장남구자경씨는 지난 70년 창업주가 돌연 타계함에 따라 2대 회장으로취임했다. 당시 그룹은 럭키 금성사 호남정유등 8개사에 매출액이2백60억원이었다.국내 재계가 모두 그러하듯 70년대엔 본격적인 외형 및 계열사 늘리기에 치중한 시대였다. 70년대초 희성산업(현 LG유통)을 설립하고 범한화재와 국제증권 등을 인수한 LG그룹은 반도상사의 종합상사 지정을 겨냥해 매진했다.「수출을 통해 조국 근대화를 이룬다. 무역업체를 정부가 지원해대형 수출전문업체로 육성해 점차 종합상사로 키우되 정부주도보다는 대기업 중심의 상사를 만든다. 종합상사와 금융기관과의 연계를강화하고 세계적 네트워크를 갖춘 대형 무역상사를 최종목표로 삼는다.」 지난 75년초 상공부가 수출 1백억달러 목표를 조기달성하기 위해 박정희 대통령에게 건의한 종합상사 설립계획서의 주요내용이다. 이는 72년 당시 이낙선 상공부장관이 일본 이토추상사의세지마류조 부사장에게 요청, 일본의 「총합상사」를 모델로 만든이른바 「세지마계획서」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결국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아래 75년5월의 삼성물산을 필두로 잇달아 종합상사가지정됐고 76년엔 LG그룹의 반도상사가 종합상사가 됐다. 이들 종합상사는 정부의 후원을 등에 업고 수출확대와 함께 부실기업 인수와계열사 신설 등을 통한 영토확장에 앞장서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만큼 종합상사들은 70년대 후반에 그룹의 자금줄 역할과 기업확장의 창구로 자리잡아 그룹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덕분에 지난 77년의 경우 LG그룹은 치약 비누 전화기 절연전선 연괴등 무려 46개 품목에서 국내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할 정도였다.반도체분야도 빼놓을 수 없는 주력부문의 하나이다. 지난 79년 대한반도체를 인수하면서 금성반도체를 설립했지만 영업이 부진했다.이후 89년에 금성일렉트론(현 LG반도체)이 설립되면서 지금은 계열사중 최대의 순익을 올리는 알짜배기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 이 회사의 94년 당기순이익은 3천7백21억원(매출액 1조4천1백45억원)에달했고 작년엔 상반기만 해도 3천2백73억원(매출액1조6백72억원)의 순이익을 냈다.이로써 지난 87년 설립된 금성산전(현 LG산전)과 함께 전기전자분야의 전문계열화체제를 완성시켰다. 그리고선 90년초에 「고객을위한 가치창조」와 「인간존중의 경영」을 모토로 하는 경영이념을선포하게 된 것이다.이어 90년대에는 계열사 통폐합과 계열분리등 사업구조 재편작업에몰두했다. 지난 93년7월 LG그룹은 54개의 계열사를 41개로 축소한다는 내용의 21세기 경영혁신방안을 발표한 것이다. 이 계획에 따라 94년에 금성통신을 금성사(LG전자)에 합병시킨데 이어 지난해금성계전과 금성기전을 금성산전에 흡수합병시킨 것이 대표적이다.주요 계열사의 95년도 매출액을 보면 LG상사가 10조4천4백78억원에달했고 LG전자(6조5천9백17억원) LG화학(3조3천1백57억원)등이었고비상장사인 호남정유도 작년 상반기중 2조1천6백58억원의 매출액을올렸다.지난해 럭키금성그룹에서 LG그룹으로 새로 태어나면서 제3대 경영권을 맡은 구본무 회장. 그는 이제 매출액 50조원에 달하는 47개계열사로 이뤄진 선단을 이끌고 10년후엔 3백조원의 거대한 「항공모함」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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