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옛날이여', 나홀로족 전성시대

『하숙생들이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지면서 하숙생들간에 공동체의식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아울러 하숙집분위기도 조금씩 각박해지는 느낌도 듭니다.』고려대 재학때부터 지금까지 만 10년간 줄곧 안암동로터리근처의한 하숙집에서 생활을 하고있는 회사원 홍모씨(32, 한국3M)의 말이다. 예전에 느꼈던 독특한 하숙집문화는 『아! 옛날이여』라는 말이다.『같은 집에서 살면서 인사조차 나누지 않고 식사도 말 한마디 없이 먹는 살벌한 분위기가 요즘 하숙집분위기』라는 것은 신촌에서5년째 하숙을 하는 회사원 엄모씨의 말이다. 「한 지붕 아래서 살며 한솥 밥을 먹는다」는 점에서 형성되던 끈끈한 유대감이 사라지고 대학가 하숙촌이 「썰렁」해지고 있는 것이다.이런 하숙촌문화의 변화를 느끼는 것은 비단 홍씨나 엄씨같은 「고참하숙생」들만이 아니다. 서울대 약대 대학원생인 한희용씨(25)는『예전에는 20명이나 되는 하숙생끼리도 잘 어울렸으나 지금은 하숙생 수가 줄었어도 거의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숙생들의각개약진에 하숙촌의 「어깨동무」가 깨지고 있는 것이다.게다가 「입방식」마저 잘 치러지지 않고 있는 것이 요즘의 하숙집이다. 입방식은 새로 들어간 하숙집에서 하숙생들간에 서로 상견례를 하는 자리로 하숙생활의 「전공필수」쯤으로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였다. 대개 술자리로 이어지는 입방식 자리에서 선후배는 물론 대학생활 전반에 관한 조언과 하숙생 개개인의 성향을알게 되면서 작지만 하나의 공동체에 익숙해지는 방법을 깨닫게 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런 입방식마저 치러지지 않고 하숙생들간에도 서먹한 분위기로 한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것이 요즘 하숙집의 분위기다.◆ 독방하숙 65만원…‘아르바이트라도 하겠다’행당동에서 하숙을 하는 이주홍군(한양대 ·22)은 『2년전만해도하숙집이 가족적인 분위기였으나 새로 입주한 하숙집은 입방식도없어 하숙집 고유의 분위기나 정감이 없어졌다』고 말했다.하숙생들의 잦은 이사도 요즘 하숙촌의 새로운 풍속도다. 일단 하숙집을 정하면 하숙생끼리 또는 하숙집과 큰 트러블이 없는 한 군입대나 졸업 등과 같은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 하숙집에 「붙박이」로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대학생들은6개월만 돼도 하숙집을 바꾸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신림동 B중개업소 박모씨의 말이다. 박씨는 또 『새로운 하숙집을 찾는하숙생들의 대개가 단순히 변화를 원한다며 하숙집을 옮기고 있다』고 덧붙였다.개인주의 경향이 강한 신세대 대학생들이 늘어나면서 「나홀로 족」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대학가 하숙촌의 새로운 추세다. 「나홀로 족」은 나 혼자만의 공간으로 독방만을 원하는 일부 하숙생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시골 부모님들로부터 학비와 하숙비 용돈 등일체를 「죄스런 마음」으로 받아쓰던 과거의 하숙생들은 감히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다. 그러나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독방에서살고싶다」는 것이 신세대들이 바라는 하숙생활이다.기숙사를 지원했으나 떨어져 하숙집을 구하던 연세대 도시공학부1년 김선영양(19)은 『부모님이나 친구방문시에도 편리한데다 혼자만의 공간을 원해 독방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김양이 예상하고있는 독방하숙비는 50만원. 물론 용돈걱정은 없다. 『아르바이트를하면 된다』는 것이 김양의 이유다.신촌에서 하숙을 하는 연세대 경영학과 대학원생인 김모씨(30)는『「나홀로족」들의 방안은 흡사 가정집을 방불케할 만큼 각종 가전집기나 시설들이 잘 갖춰져 있으며 다른 하숙생들과 잘 어울리지않고 철저히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고 말했다. 이러한 「나홀로족」들 때문에 방안에 개인욕실까지 달린 한달에 60여만원씩하는고가의 하숙방도 빌 틈이 없다. 신촌역 맞은 편 언덕빼기에 위치한개나리하숙집의 경우 『65만원짜리 독방도 금방 사람이 찼다』는것이 같은 집에 하숙을 하는 김모양(22)의 말이다.하숙문제가 학생복지차원의 문제로 인식돼면서 각 대학 총학생회에서도 하숙집 알선등 각종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생활정보지발행으로 한양대의 「행담샘터」 세종대의 「저자거리」성균관대의 「새물결 새바람」등이다.수년전부터 학생수첩에 하숙집소개란을 두고 하숙집의 전화번호 시설 인원 하숙비 등을 실어 지방유학생들의 서울정착에 가이드역할을 해온 국민대 총학생회의 이정선(22)선전국장은 『지방학생들로부터 호응도 높고 문의전화도 많이 온다』고 말했다. 일부 하숙집들의 가격담합인상에 대해 총학생회에서 저지하는 것도 요즘의 일이다. 이양은 『지난해 일부 업소들과 하숙집들이 담합해 가격인상을 시도해 총학생회차원에서 실력저지했다』며 『매년 총학생회차원에서 하숙집의 가격인상에 대한 실사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게다가 알음알음을 통해 하숙집을 구하던 과거와 달리 생활정보지또는 PC통신 등을 통한 하숙집알선·거래도 증가하고 있어 부동산업자들의 푸념은 높아만 가고 있다. 신촌에 있는 오행사부동산중개소의 한 관계자는 『학생들이 약아져 생활정보지 등을 통해 하숙집과 직거래해 중개업소들의 일감이 그만큼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인상되는 하숙비, 떨어지는 서비스(?)하숙촌의 문화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 매년 대학가는 하숙비인상으로 한차례 소란을 떤다. 『아마도 하숙생을 둔 부모들은 매년 뛰어오르는 하숙비에 「등골이 휠 지경」일 것』이라는 이대앞 O부동산의 이선규씨(64)의 말처럼 하숙비는 매년 오르고 있는 추세다.고려대 이공대 후문쪽에서 하숙을 하는 임모군은 『매년 1~2만원정도씩 오르지만 반찬이나 서비스가 나아지지 않고있다』며 『그런것들이 대부분의 하숙생들이 갖고있는 하숙비인상에 대한 불만』이라고 말했다.하숙비인상의 경우 예전에는 대개 겨울철 난방비 명목으로 5천~1만원정도 올리는 것이 관례였다.메뛰는 물가에 나는 하숙비?라는 것이 대학가 하숙생들의 말이다.치솟는 하숙비에 허리가 휘는 것은 지방에서 돈부치는 학부모들.연세대에 입학한 아들의 입학식에 맞춰 울산에서 올라와 하숙집을구한 김상연씨(50)는 『솔직히 (아들의)하숙비 26만원이 부담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하숙비 용돈 등을 합쳐 매달 50만원정도가 필요하겠지만 아르바이트를 해야되지 않겠나하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지방유학생들의 「둥지」이자 「집떠난 집」이던 하숙촌. 한 식구처럼 애환을 함께 나누던 하숙촌의 정겨움은 이제 찾아볼 수 없는「그때 그 시절을 아십니까」의 한 장면이 돼가고 있다.◆ 대학생 하숙비 얼마나 될까지방농민들이 자녀를 서울지역 대학에 유학시키는 비용은 1인당 쌀80kg들이 60가마나 5백kg짜리 황소 3마리 또는 15kg들이 사과 5백상자에 해당되는 연간 8백~9백만원선이라는 농협 강원지부 통계가있다. 이는 농가소득이 연 2천만원정도로 각종 자재비와 비용을 감안하면 농가소득액의 대부분이 유학비용으로 쓰인다는 말이다.교육개발원의 「95년 교육투자실태와 수익률분석」에 따르면 대졸자 4년간의 교육비는 평균 2천4백11만원으로 이 가운데 하숙비는평균 1천2백만원가량으로 추정되고 있다.흥국생명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서울소재 대학으로 유학온 지방학생의 경우 대졸까지의 평균비용 1천3백~3천4백만원보다 평균1천80만원정도를 하숙비 및 생활비로 추가지출해야 한다는 통계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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