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에 불붙듯 광고전 '활활'

「새 차입니까? 엔크린입니다」 「엔진이 깨끗합니다. 테크론」 「저공해 청정에너지 슈퍼크린」 「이맥스로 채웠다. 깨끗하니까」.요즘 신문이나 TV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휘발유 광고들이다. 차를몰지 않는 소비자라 도 엔크린이니 테크론이니 하는 휘발유에는 익숙할만큼 휘발유 광고는 흔해졌다.현재 유공 호남정유 쌍용정유 한화에너지 현대정유 등 5개 정유사중 휘발유 광고를 하지 않는 회사는 현대정유밖에 없다. 휘발유에브랜드가 없는 회사도 현대정유뿐이다. 그러나 불과 2년전만 해도휘발유에 브랜드를 붙여 광고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휘발유는 전형적인 생산자 위주의 제품이다. 누구도 무슨 휘발유를차에 넣는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가까운 주유소에 가 주유원이 넣어 주는대로 받을 뿐이다. 전형적인 생산자중심 제품인 휘발유에처음으로 브랜드를 도입한 장본인은 호남정유다. 호남정유는 94년12월 「테크론」을 선보이고 인기 탤런트 이승연을 기용, 대대적인광고전을 시작했다.호남정유가 내세운 테크론의 광고 컨셉은 「엔진세정능력」 -엔진을 깨끗하게 해준다는 내용이었다. 테크론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기대이상이었다. 휘발유에는 별다른 품질 차이가 없다고 여기던소비자들이 브랜드 도입으로 품질 차별화를 선언한 테크론에 지지를 보낸 것이다. 호남정유 관계자는 『테크론의 인기로 휘발유 시장에서 호남정유의 시장점유율이 2%정도 올라갔다』고 밝혔다. 휘발유 시장에서 1%는 1천억원대의 매출 규모를 움직일 정도의 양이다.호남정유의 브랜드 도입 시도를 휘발유의 특징을 무시한 마케팅 전략이라고 여기고 별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경쟁사들도 테크론의 시장공략을 좌시할 수만은 없었다. 지난해 10월에 유공이 엔크린을, 쌍용정유가 슈퍼크린을 선보인데 이어 11월에는 한화에너지가 이맥스를 내놓으면서 휘발유는 본격적인 브랜드 시대에 접어들었다.정유업체들이 휘발유에 이름을 붙이면서 정유업계의 광고물량은94년부터 큰 폭으로 늘어났다. 94년 5개 정유회사의 광고비는2백11억원. 93년보다 74.9% 증가한 액수이다.특히 호유와 쌍용은 광고비를 1백% 이상 늘리며 시장공략에 적극성을 띠었다. 지난해에도 광고업계는 정유업계 광고물량으로 호황을누렸다. 지난해 정유업계 광고물량은 3백94억여원으로 전년보다86.5% 증가했다. 광고업계에서는 『94년 맥주광고전이 95년엔 정유업으로 넘어갔다』(LG애드 이재헌 부국장)고 평가할 정도다. 올해도 정유업계 광고물량은 계속 성장일로를 걸을 것으로 보인다.올해는 유공의 대대적인 엔크린 광고를 선두로 한화에너지가 이맥스 광고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쌍용정유도 슈퍼크린 TV광고를 준비하고 있다. 유공과 쌍용정유는 심기일전의 자세로 광고전에 대비하기 위해 올초 광고대행사도 바꿨다. 유공은 기존의 동방기획에서제일기획으로, 쌍용은 대홍기획에서 오리콤으로 대행사를 변경한것.테크론은 최초의 휘발유 브랜드라는 것외에도 휘발유경쟁의 국면을전환시킨 주인공이다. LG애드 김주진차장은 『테크론은 휘발유 논쟁을 옥탄가에서 청정성으로 변화시켰다』며 『엔진을 깨끗하게 한다는 광고가 올 휘발유광고의 주흐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실제 엔크린은 「찌꺼기가 남지 않는다」, 이맥스는 「고청정 고세척 환경보호」, 쌍용은 「청정휘발유」를 내세우면서 깨끗해서 엔진을 보호한다는데 광고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엔진보호가 휘발유의 가장 중요한 선택기준으로 떠오른 것이다. 테크론의 「엔진이깨끗하다」는 광고컨셉이 성공하면서 청정성이 정유업계 전체에 확대된 셈.◆ 경쟁의 핵은 1, 2위…비교광고로 신경전도휘발유 광고전에는 현대정유를 제외한 모든 업체가 뛰어들었지만경쟁의 핵은 정유업계 1, 2위인 유공과 호남정유로 집약될 것으로보인다. 유공은 호남정유를 따돌리고 1위 자리를 확고부동하게 유지하기 위해·호남정유는 유공과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입장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유공과 호남정유는 광고모델도 각각 인기 정상의 빅모델을 기용,자웅을 겨루고 있다. 유공은 인기 영화배우인 박중훈을 1억4천만원, 이경영을 1억9천만원을 주고 모델로 끌어들였고 호남정유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승연을 내세울 계획이다. 이승연의 전속모델료는 2억원선.현재 유공과 호남정유는 비교광고로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문제의 시작은 새로 나온 엔크린 광고. 엔크린 광고는 주유소의 주유원인 박중훈이 이경영에게 새 차니까 엔크린을 넣으라고 권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경영이 큰 소리로 「근데 왜 엔크린이죠?」라고 묻자 박중훈은 당황하면서 「쉿」하며 목소리를 낮추라고 한다.일반 시청자들은 이 광고를 보고 박중훈이 왜 「쉿」하며 목소리를낮추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정유업계나 광고업계 사람들은박중훈이 은밀하게 엔크린을 넣으라고 얘기하는 것은 박중훈이 유공 주유소의 주유원이 아니라 경쟁사 주유원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한 눈에 파악한다.실제로 광고를 잘 보면 배경 주유소에 「스타 주유소」라는 간판이보인다. 스타주유소는 호남정유가 관할 주유소중 우수한 주유소를선정, 붙여주는 명칭. 박중훈이 쓴 모자도 의미심장하다. 모자에새겨진 별모양은 호남정유의 합작 투자선인 칼텍스의 상징이다. 박중훈이 입은 빨강색과 회색의 옷색깔도 단순하지 않다. 빨간색 원모양 바탕에 LG라는 회색 글자가 새겨진 LG그룹(호남정유 모그룹)로고를 상징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결국 유공의 새 광고는 호유 주유소의 주유원이 손님에게 유공의엔크린을 넣으라고 권유하는, 다분히 비방적 요소를 갖춘 광고다.물론 엔크린 광고를 제작한 제일기획은 호유를 염두에 뒀다는 사실자체를 부인한다. 『박중훈이 경쟁사의 주유원인 것은 사실이지만특별히 호남정유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스타주유소나 박중훈이쓰고 있는 모자의 별모양은 미국을 상징하는 것이다. 석유시장 개방으로 미국 정유회사들이 몰려올 것을 고려해 만든 광고일 뿐이다』(제일기획 이승목대리).요즘 TV에 방영되고 있는 테크론 광고도 정도는 약하지만 일종의비교광고다. 「테크론이 아니잖아」라는 대사가 경쟁 휘발유와의비교를 은근히 유도하는 것이다. 유공과 호남정유는 올해 광고비예산도 상대방을 의식해서 밝히기를 꺼리고 있다. 상대방이 광고하는만큼 광고하겠다는 속셈이다.유공과 호유는 올 중반쯤 기업명을 변경하면서 주유소 이름도 바꿀예정이어서 두 회사의 광고전은 주유소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유공과 호유는 각각 그룹사인 선경그룹 LG그룹과 이미지 통일이 이뤄지지 않아 오래전부터 기업명 변경을 고려해 오고 있었다.두 회사 모두 CI(기업이미지 통합)변경 사실을 부인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호남정유가 5월, 유공이 8월쯤으로 CI변경 시기를 잡고있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로 알려져 있다.일부에선 정유회사 광고전이 과당경쟁을 부추긴다며 우려의 시선을보내고 있다. 휘발유는 충성도가 높은 제품이다. 한번 넣은 휘발유는 쉽게 바꾸지 않고 계속 사용한다. 정유회사들이 휘발유 광고전에 열을 올리는 것도 당장 판매를 높이기 위해서라기보다 모두 광고를 하는데 안하면 뒤쳐진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정유회사의 제품 중 휘발유가 거의 유일한 소비자 접촉 상품이라는점도 휘발유 광고에 집중하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휘발유를 통해 기업 전체 이미지를 높일 수 있다는 계산인 셈이다. 소비자들은정유업계의 광고전이 휘발유 가격만 올리는 「돈 낭비」가 아니라진정한 품질 향상과 서비스 개선의 상징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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