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도지는 '서울대 신드롬'

올해도 어김없이 한 젊은이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홀어머니 밑에서 대구의 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생학비를 벌기위해본인은 막노동판에 뛰어들었다. 공부에 대한 미련을 못버려 주경야독한 끝에 4전5기로 서울법대에 합격했다.매년 연초가 되면 국내신문의 사회면에는 예외없이 가슴을 벅차게하는 한편의 성공드라마가 소개된다. 드라마의 구성요소로 주인공에겐 고난과 역경을 헤쳐온 나날이 있어야 하고 끝내는 「서울대합격」이란 결실이 있어야 한다. 때론 신물나는 신파조로 전개되는이 드라마는 간혹 학창시절의 담임선생을 보조출연시키면서 온국민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가슴조리며 지켜봐온 부모님은 인생에서 최대의 승리를 얻어낸 듯 기뻐하고 정작 본인에게 「어떻게 이 힘든일을 해냈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학교공부 충실히 하고잠 충분히 잤다」는 식이다. 누가 주인공이라도 해낼 수 있는 뻔한대사다.혹자는 꼬집는다. 매년 반복되는 기사니까 얼마나 쓰기 편하냐고.주인공만 바꾸고 배경만 고치면 되는 쓰기 편한 기사이다보니 해마다 나오는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다. 그러나 이 우스갯소리마저허탈감의 표출이다. 연례행사가 된 「드라마상영」에는 분명 「서울대=성공」이라 여기는 국민정서가 깔려있다. 일정시점까지는 무리없이 수긍할 수 있는 국민정서였으나 이제와서는 「집단정신병」이란 표현이 더 옳을 수도 있다.80년대 중반 전라북도 시골에서 서울대 ○○학과에 입학한 K씨. 『합격소식을 듣고 집으로 달려가 아버지께 말씀드렸죠. 아버지는 대뜸 「너 이제 경찰서장 할 수 있냐」고 묻더군요. 그분의 세계에서는 경찰서장이 최고 힘센자리였고 서울대에 합격했으니 이제 어깨힘주고 살 수 있겠느냐는 얘기였겠죠』. K씨는 현재 대학원에 진학해 유학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일화가 서울대가 곧 성공이라고 믿었던 국민정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인교육·인성교육 무시된다’그러나 서울대가 곧 성공이라는 등식은 모든 졸업생에게 성립되지는 않는다. 다만 서울대는 저렴한 학비등 각가지 혜택으로 더많은우수한 인재를 뽑아들였고 그러다보니 더많은 졸업생이 사회각분야의 요직에 포진할 수밖에 없었다. 오로지 수적인 차이일 뿐인 현상이 심화돼 「서울대졸업장은 다른 대학졸업장과 뭔가 다르다」는질적인 차이가 나는 것으로 국민들의 뇌리에 각인됐다. 그리고 어느순간 학생과 학부형은 한결같이 서울대라는 골인점을 향해 달려가게 됐다.한번 굳혀진 「서울대=성공」이란 믿음은 좀처럼 무너지지 않으면서 각가지 사회문제를 야기한다. 단적인 예로 이땅의 고등학교는서울대 몇 명 합격했느냐로 실력이 평가된다. 우수한 과학인재와외국어구사인력을 배출하는게 목적이었을 법한 과학고와 외국어고는 학교명칭이 무색하다. 서울과학고는 95년졸업생 1백47명중1백41명이 서울대에 지원했다. 한해전에는 재수생6명을 포함해 1백32명이 서울대를 지원하고 전원이 합격했다. 과학고가 서울대를 가기 위한 고등학교로 전락한 것이다. 이같은 현상으로 인해 무시되는 전인교육 인성교육의 피해는 감히 금전적인 피해와 비견될 바가아니다.서울대병으로 표현될 수 있는 현상의 피해자는 우리주변에 많다.80년대 「선시험 후지원」시절에 서울대 농공학과에 입학한 Y씨.『원래 공대를 지망했었습니다. 성적을 받고나니 서울공대는 좀 어렵겠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그러나 학교(출신고)에서는 막무가내였습니다. 농공학과도 결국은 공대중의 하나라는 것이었습니다.』Y씨는 수원농대에서 수업을 받는 동안 같은 학과생들의 절반이상이자신과 같이 학과를 선택했다는 것을 알았다. 서로가 찜찜한 마음으로 입학했으니 단결이 될리 없고 학과에 구심점이 없었다. 결국3분의1정도가 중도하차하고 학원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학교에 재미를 못붙인 Y씨는 「공부가 지겨워」 결단을 못내리다 공기업에취직해 다니고 있다.서울대지향성향은 대학지향성향이란 아류로 확대 발전됐다. 언제부턴가 서울대 나와도 시원찮은데 그나마 대학문턱에도 못가면 되는게 없다는 식으로 부풀려졌다.모 대학의 교육학자는 『나무에도 재질에 따라 여러 가지 용도가있을 수 있다. 집을 짓는데 쓰이기도 하고 부채살을 만드는데 들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의 동량들은 모두가 누각에 쓰이기만을희망하고 있다. 누각이 번듯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진누각은 말그대로 바로 무너져 내리는 사상누각이다』고 비유한다.고3수험생부모는 한해동안 모든 것을 포기하는게 당연시되고 공부에 질려버린 수험생들은 「성적이 안오른다」며 지레 겁먹고 생을마감하려든다. 수험생들은 1일고사를 비롯해 주말 월말 학기말 학년말 모의 실력 배치고사등 시험으로 시작해 시험으로 끝을 맺는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다.◆ 서울대 상아탑에 대한 맹신적 갈망1년에 기백만원씩 들어가는 과외비는 『국민소득1만달러면 뭐하냐』는 중년의 시름을 낳는다. 입시과외정도면 양반이고 유치원 유아원교육부터 온 집안가장의 허리가 서서히 휘어가고 있다. 서울에만3만개소의 관인학원이 성업중이고 무인가학원까지 합치면 12만개소에 달한다는 보고도 있다. 여기에 개별적인 과외선생까지 합세하게된다.교육제도는 입시제도와 같은 말이 됐고 수도 없이 변하는 입시제도지만 한 번도 속시원히 고쳐진 적이 없다. 본고사를 실시하든 폐지하든 과외는 줄지 않고 내신성적을 강화하면 촌지봉투만 휘날렸다.서울대를 정점으로 축조된 「상아탑에 대한 맹신적인 갈망」은 어떤 약으로도 치유될 수 없는 고질병으로 비쳐지고 있다.결국 사회일각에서 「서울대폐교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서울대를 없애든 더욱 발전시키든 입시병으로 발전된사회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서울대를 나오면 선배들이서로 달려와 모셔가고 탈없이 지내면 졸업장 하나만으로 승승장구하는 상황에서 서울대폐교론은 타당하다. 현실은 분명 그렇지 않다. 오히려 서울대가 자승자박 상태에 있다. 서울대교수는 연구할분위기가 아니라며 공개구직장을 띄우고 입시문제만을 풀어온 서울대생은 논리적인 사고가 부족하다고 질타당한다.지금은 다른 믿음을 깨야 한다. 「서울대 나와도 안되는데 그마나서울대 안나오면 기대할 수 없다. 대학 나와도 힘겨운 판에 그나마대학도 못나온 사람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그릇된 믿음이 정말로 그릇된 것임을 보여주면 된다.대략 한해 70만명씩 쏟아지는 고졸자중 약 25만명만이 4년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진학자에게만 사회의 시선이 맞춰져있다. 진학하지 못하는 고졸자에 대한 대책은 거의 전무한 상태다.그렇다고 대학에 진학해서 「지긋지긋한」 공부가 끝맺어지지 않는다. 외국어 컴퓨터학원으로 또다시 달음박질해야 한다.결국 교육제도는 입시제도를 한두번 바꾸고 대학문을 열고 닫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초등 중등 고등교육의 근본적인 틀을 고쳐야한다. 또 기업등 사회의 분위기도 바뀌어야만 한다는 게 교육계의공통된 견해다. 한국의 빌 게이츠로 불리는 이찬진의 출현은 하나의 희망이다. 고등학교만을 마치고도 다른 많은 이찬진이 나타날수 있을 때 구태여 대학을 고집하지 않을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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