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ㆍ관ㆍ재계 '한몸' 유치 총력전

「올림픽에선 졌지만 월드컵에선 지지 않는다」아틀랜타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결승에서 일본대표팀이 한국대표팀에 2대 1로 패한후 일본매스컴들은 앞다퉈 이같은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게임으로 복수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경기에서 진 빚을 2002년월드컵게임유치로 갚겠다는 뜻이다.일본은 한국과의 월드컵유치경쟁이 5대5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있다고 표면적으로는 밝히고 있으나 내심으로는 일본이 근소하나마우위에 있다고 자신하고 있는 듯하다.이같은 자신감은 「올림픽예선이 월드컵유치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예상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경기에서 패한 일본측이 별로 당황한모습을 보이지 않는 데서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이겼더라면 결정적인 요소가 됐을텐데 져서 아쉽다는 정도의 분위기다. 전체적으로볼때 일본이 결코 밀리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배경에 있음은 의심의여지가 없다.일본이 한국과의 월드컵유치전에서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여러가지가 있다.우선 일본은 한국보다는 많은 준비를 해왔다고 지적한다. 일본축구협회는 지난 89년 축구후진국으로 불리는 일본의 축구를 중흥시키기 위해 축구활성화위원회를 만들었는데 이위원회는 현재 대인기를얻고 있는 프로리그(J리그) 창설 및 월드컵대회유치를 목표로 내걸었다. 또 그해 11월에 FIFA에 월드컵대회개최의사를 표명했다.91년에는 이시하라 다카시 닛산자동차회장(당시)을 회장으로한 유치위원회를 발족시켜 본격적인 유치활동에 착수했다.◆ 경기서 진 빚, 월드컵 유치로 갚겠다일본이 내세우는 또다른 강점은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는 것으로평가되는 시설 및 기술면에서의 우위다. 이는 일본이 FIFA에 제출한 개최제안서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일본은 이 제안서에서 경기가개최되지 않는 경기장을 이용해 다른 경기장에서의 시합을 입체영상으로 생중계하는 「버추얼 스타디움」 구상을 제시하고 있다. 일본의 최대강점인 하이테크기술의 위력을 최대한 살려보자는 취지다.일본은 이외에 21세기의 축구발전을 위해 기금을 설립하겠다는 안도 내놓고 있다.일본이 최대약점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역시 월드컵출전실적이전무하다는 점이다. 일본은 한국이 월드컵 4회 출전실적을 내세우면서 「월드컵에 참가한 적이 없는 나라에서 대회가 개최된 적은없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가장 아파한다.그러나 일본은 이번에 일본대표팀이 올림픽출전권을 따냄으로써 이같은 약점이 많이 희석됐다고 생각하고 있다. 전반적인 축구수준이향상됐다는 점을 홍보하면 이를 상당부분 커버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같은 점으로 일본이 내세우는 것은 현재 국가별랭킹에서 일본이 한국보다 훨씬 위에 있고 올림픽이나 17세이하대회 20세이하대회등 월드컵을 제외한 전세계대회에서 일본이 본선에 진출해 있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또 현재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J리그를 통해 일본의 축구수준이 아시아최고수준으로 올라섰다고 자부하고 있으며 J리그에는 외국유명선수들도 많이 참여하고 있어 대외이미지차원에서도 일본이훨씬 앞선다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 남미지역국가들이 친일본으로흐르는 것도 지코를 비롯, 남미의 유명선수들을 J리그로 영입한 것이 큰 원군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일반적 판단이다.◆ 일, ‘중남미지역 우위·유럽선 열세’ 판단그러나 일본이 한국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고해서 월드컵유치를 확신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일본은 지난 94년까지만해도일본이 절대 우위의 상황에 있었지만 정몽준 한국축구협회회장이아시아축구연맹회장에 당선되면서 접전의 상황으로 바뀌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아시아축구연맹회장은 자동적으로 FIFA이사가 되기때문에 투표권을 가질뿐 아니라 FIFA내부의 정보를 얻는데도 유리한 위치에 있어 그동안의 불리를 크게 만회했다고 분석하고 있다.현재 일본에서는 유치경쟁판세와 관련해 지역별상황등 구체적인 분석을 내놓고 있지는 않다. 다만 친일파인 아벨랑제FIFA회장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중남미지역에서는 우위에 있고 반아벨랑제분위기인 유럽에서는 일본이 오히려 열세에 있다고 보고 있다. 결국 여타지역의 표를 얼마나 잡아내느냐가 승패의 관건이라고 보고 있는셈이다.이에따라 일본은 정·관·재계가 일체가 돼 필사적으로 월드컵유치에 나서고 있다. 유치작전에는 하시모토 류타로총리도 전면에 나서고 있다. 하시모토총리는 일본을 방문하는 FIFA 관계자들을 일일이접견하는 것은 물론 지난달 방콕에서 열린 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에서도 일본이 열세라 분석되고 있는 유럽지역지도자들에게 집중적으로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하시모토총리는 이와함께 FIFA이사국 21개국중 한국을 제외한 20개국이사들에게 협력요청의 친서도 전달할 계획이다. 특히 8표가 걸려있는 유럽지역에는 「월드컵일본유치국회의원연맹」회장인 미야자와 기이치 전총리를 파견해 고위급을 대상으로 한 로비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다.정부기관중에서는 외무성이 대사관등 범세계조직을 활용해 지원활동에 나서는 등 필사적이다. 외무성은 월드컵유치는 경기를 직접보러오는 사람들만 생각해도 1조엔규모의 국제교류사업을 실시하는것 이상의 효과가 있다는 계산을 내놓고 있다.외무성이 내놓고 있는 아이디어중 눈길을 끄는 것은 지난 3월중 외국인기자 50명을 초대해 시설관람및 리셉션을 개최한 것. FIFA이사국 기자들이 중심이 된 이 행사는 일본에 대해 호의적인 기사가 나가게끔 의도된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외무성의 또다른 이색 아이디어는 「물가 대작전」이란 이름의 고물가 우려에의 대응책. 외무성은 일본의 고물가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맥도널드햄버거에 특별협력을 요청해 성사시켰다. 월드컵대회가 유치되면 대회기간동안 햄버거가격을 인하한다는 것으로,맥도널드햄버거가 세계물가비교의 주요수단이 되고 있음을 의식한것이다.재계 역시 적극적이다. 한국도 김영삼대통령이 주요 그룹총수들을청와대로 초청해 월드컵유치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지만 일본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우선 유치위원회위원장인 이시하라다카시 닛산자동차상담역은 닛산자동차회장과 일본경영자협력회장등을 역임한 재계의 거물이다. 또 부위원장중 최고의 핵심인물로꼽히는 모로하시 신로쿠씨는 세계적 조직과 정보망을 갖고 있는 미쓰비시상사의 회장이다. 그가 그물망처럼 퍼져 있는 미쓰비시상사의 세부조직들을 풀로 활용하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또 다른부위원장인 히구치 히로타로씨와 고바야시 요타로씨도 각각 아사히맥주회장과 후지제록스회장직을 맡고 있는 인물들이다.캐논 후지필름 JVC등 FIFA에 보이지 않는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것도 일본의 강점이다. 반면 한국은 FIFA공식후원기업이 한군데도없다.총체적 국력싸움의 성격을 띠고 있는 양국의 대결은 「우수한 병사」와 「우수한 무기」의 싸움이라 할 수있다. 한국은 월드컵진출실적이, 일본은 우수한 시설이 각각 최대의 세일즈 포인트이기 때문이다.FIFA이사들이 결국 어느 나라의 손을 들어줄지는 오는 6월1일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아무도 단언키 어렵다. 「진인사 대천명」. 양국유치관계자들의 심정은 이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도쿄=이봉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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