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힘겨루기 '백중세'

한국이냐, 일본이냐, 아니면 한일 공동개최냐.2002년 월드컵 개최지 결정일이 45일 앞으로 다가왔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오는 6월1일 (현지시간) 스위스 취리히 사무국에서 집행위원회를 열고 개최지 결정을 위한 투표를 실시한다.경합을 벌이고 있는 한일 양국으로서는 그날이 바로 「역사적인 날」이 될수밖에 없다. 월드컵 유치를 위해 3~4년씩 노력해온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기도 하지만, 월드컵 개최지로 자국이 결정될 경우그 파급효과는 가히 짐작할 수 없을만큼 크기 때문이다.그렇다면 D데이를 45일 앞둔 현재 한일의 유치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한마디로 백중지세이다. 아니 양측 모두 자국의 유치가능성에대해 어느 정도 감은 잡고있으나 전략상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는편이 옳을 것이다.양국 유치위원회의 고위관계자들은 개최지결정 투표에 참가할 집행위원들의 성향에 대해 거의 알고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분에의해, 로비에 의해, 혹은 제3자를 통해 그 집행위원이 한국편이냐,일본편이냐를 대충은 짐작하고 있다.그러나 그 속내를 도무지 말하려하지 않는다. 「그 집행위원은 우리편이다」하고 미리 발표했다가 다된 밥에 재를 뿌리지 않을까 염려하기 때문이다.확실한 것은 FIFA 부회장인 정몽준대한축구협회장(45)은 한국편이고, FIFA회장인 주앙 아벨란제(80·브라질)는 일본편이라는 사실이다.개최지 결정을 위한 투표에 참가할 FIFA집행위원은 이 두사람을 포함해 모두 21명이다. 대륙별로 보면 유럽이 8명(스웨덴 스코틀랜드러시아 노르웨이 덴마크 벨기에 독일 이탈리아), 미주대륙이7명(브라질2 아르헨티나 멕시코 트리니다드토바고 코스타리카 에콰도르), 아프리카(카메룬 튀니지 모리셔스)와 아시아(한국 홍콩 사우디아 라비아)가 각 3명씩이다.투표는 집행위원 21명이 참가해 종다수로 결정하는데, 1차투표에서동수일 경우 아벨란제회장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도록 되어있다.그런데 여기서 아벨란제회장의 거취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월드컵 개최지 결정을 위한 역대 집행위원회에서 지금까지 회장은1차투표에 참가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일간의 경합이 워낙 치열하기 때문에 아벨란제가 투표에 참가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현 FIFA회장 친일로 11표 확보해야 유치그럴 경우 한국이 더욱 불리해질 것은 뻔하다. 그가 친일성향을 공공연히 드러내보이고 있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FIFA규정상의 불합리한 점 때문이다. 즉 현 규정상 회장은 투표에도 참가하고, 동시에한일이 동수일 경우 캐스팅보트까지 던질 수 있도록 돼있기 때문이다. 투표면 투표, 캐스팅보트면 캐스팅보트, 둘 중 하나만 행사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모호하게도 현규정은 회장으로 하여금 그 두가지 권한을 동시에 행사할 수 있도록 돼있는 것이다.한국으로서는 그러므로 한일동수가 나오면 그것은 곧 「유치실패」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불리한 상황이다. 무조건 11표를 확보해야안심할 수 있는 것이다.현 시점에서 21명의 집행위원들의 성향을 속속들이 분석하기란 「한국신문의 부수를 확인하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설령 한일 어느 한쪽 지지를 명백히 밝혔다해도 앞으로 45일동안 변수가개입하지 말라는 법도 없기 때문이다.단, 출처가 한일양국이든 제3국이든 우리가 참고로 삼을 수 있는분석자료는 몇몇 나와있다. 가장 최근에 나온 자료로 지난 3월초일본의 닛칸스포츠가 집행위원들의 성향을 분석 보도한 것이 있다.여기서 그것을 인용해본다.그 신문은 당시 한국이 유치경쟁에서 13-8로 일본에 앞서 있다고보도했다. 닛칸스포츠는 아프리카 3개국과 유럽 8개국, 그리고 한국 홍콩이 한국을 지지하는 군에 속하고, 미주대륙의 7표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일본을 지지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그러나 이 신문의 보도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수는 없는 일이다.한국지지군에 속한 유럽 8개국 표의 향방이 예상처럼 간단한 것은아니기 때문이다. 또 일단 한국이 유리하다고 보도함으로써 일본에반사이익을 가져다 줄 효과를 노리고 한 보도일수도 있는 까닭이다. 어디까지나 참고자료에 그칠 뿐이다.그러면 우리측 유치위관계자들의 분석은 어떠한가. 정몽준 축구협회장이나 구평회월드컵유치위원회위원장, 그리고 김영수문화체육부장관 등은 약속이나 한 듯 백중지세(10-10)로 분석한다. 물론 기자들앞에서 백중지세라고 표현하는 것은 상당히 보수적 분석이라고여겨진다. 기자는 세 사람이 말하는 행간에서 한국이 1~2표 정도앞서고 있지않나 하는 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남북대치관계, 유치 걸림돌 될까?한국은 지난달말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틀랜타올림픽 아시아지역최종예선 결승에서 일본을 2-1로 꺾고 1위를 거둔 점에 고무받고있다. 집행위원들에게 아직까지 한국축구가 일본보다 한수위라는점을 분명히 말할수 있기 때문이다. 올림픽과 월드컵에서 모두 3회연속 본선진출권을 획득했다는 사실은 한국유치의 당위성을 높여줌과 동시에 한국에 유리한 요소로 작용할 것은 틀림없다.한국은 그러나 최근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는 남북관계가 자칫 월드컵 유치에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지난 1월초북한이 「월드컵 남북공동개최」를 제안해왔을 때만 해도 한국은「세계 유일 분단국에서의 월드컵개최는 세계평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논리로써 원군을 얻는 듯 했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사태는 집행위원들에게 「2002년에 과연 한국에서월드컵을 개최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를 심어주기에 충분하다는분석이다.또 아벨란제회장이 노벨평화상에 눈독을 들이고 남북공동개최를 카드로 혹시 일본지지에서 한국지지로 선회할 수 있으리라는 한가닥기대가 있었으나 최근의 남북관계는 너무 긴장상태로 빠지고 있는것이다.일본은 아틀랜타올림픽 예선전에서 한국에 패해 내심 당황해하면서도 겉으로는 「월드컵 유치와는 무관한척」 태연함을 보이고 있다.일본은 7일 개막된 미국 메이저리그 프로축구대회에 전총리인 미야자와를 파견하는등 민·관·정이 총동원돼 막바지 표밭다지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들은 축구열기나 시설 재정 광고효과면에서 한국보다 낫다는 점을 세계 축구인들에게 선전하고 있다. 무엇보다아벨란제가 일본을 공식지지한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천군만마의 원군이 되고 있다.한일간 양보할 수 없는 경합속에 최근 아시아·유럽쪽에서 「한일공동개최론」을 들고나와 상당한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점도 유념할만한 대목이다. 레나르트 요한슨 유럽축구연맹회장은 지난 3월말 술판 아흐마드 샤 아시아축구연맹회장이 주장한 한일공동개최방안을 지지한다고 표명함으로써 공동개최론이 월드컵유치의 막판 변수로 등장한 것이다.공동개최론자들은 「한일중 한 나라는 유치경쟁에서 패할 것이고,그 충격은 아시아의 축구발전에 치명적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크다」는 논리를 편다. 또 2000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를 네덜란드와 벨기에가 공동유치해놓고 있다는 사실도 공동개최의 타당성을 높여주고 있다.유럽과 아시아축구연맹이 공동개최를 지지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음에 따라 집행위원 21명중 과반수인 11명의 수적 우위에 선 셈이 되고 있다. 정회장도 공동개최안에 대해 「한국 단독개최 입장에는변함이 없지만, FIFA의 최종의견을 따를 생각」이라고 밝혀 거부의사를 나타내지는 않고있다.한국이든 일본이든 공동개최든 어차피 45일 후에는 뚜껑이 열릴 것이다. 그러나 「월드컵 필사유치」라는 한가지 목표만을 위해 내달려온 우리로서는 한번쯤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만의 하나일본이 월드컵유치권을 따냈을 때 그 허탈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말이다. 결코 패배주의에서 우러나온 생각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3분의 1 확률이 아닌가 말이다.『한국이 유치권을 따내기 위해서는 앞으로 남은 기간이 중요하다.겉으로 화려한 유치작전을 펴기보다는 신중하고 냉철한 활동이 필요하다. 특히 그간의 과장보도로 한국의 유치가능성이 큰 것으로알고있는 국민들에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심리적 안정책을 도모해 주는 일도 중요하다.』 구위원장의 말이다.45일동안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겸허히 수용하는 길만이 우리에게남아있다. 진인사대천명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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