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장열자 '안방' 향해 밀물

「총체적 난국.」 한국 화장품업계의 현주소를 알려주는 간명한 말이다. 그 난국의 배후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당연히 수입화장품이다. 빗장열린 국내 화장품시장을 먼저 차지하기 위한 수입화장품업체들의 불꽃튀는 접전에 국내 화장품업체들은 안방을 내줘야 할지모른다는 위기감마저 팽배해지고 있다. 『올해 안에 업계 10위권에드는 국내화장품업체 가운데 하나쯤이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한국화장품 김기현과장의 걱정은 바로 화장품업계의 전반적인 분위기다.외국화장품수입이 전면적으로 허용된 것은 지난 88년 7월. 시장이개방되기 전만해도 남대문이나 수입상가등에서 큰 맘먹고 간간이사서 눈치보며 쓰던 것이 전부였다.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다. 이제는 누구나 수입화장품 하나쯤은 화장대에 두고 쓰는 것이 요즘의 상황이다. 브랜드도 해마다 50여개씩 증가, 올들어서만도 5백여개를 넘보고 있다. 연 2천억원 규모인 남성화장품시장과 향수 욕실용화장품은 아예 수입품이 「싹쓸이」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말도 나오고있다. 판매도 백화점 전문점 할인점 면세점 등 요소요소의 유통경로를 통해 화장품시장을 장악해 나가고 있다. 노도와 같이 밀려드는 수입화장품으로 국산 화장품은 갈수록 화장대에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수입화장품의 공세는 비단 서울지역만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서울·경기를 제외한 지방에서 수입화장품업체들의 지난해 매출실적은 모두 1백76억원. 전년도에 비해 수입화장품의 매출액이 무려2배가 넘게 늘어날 정도로 지방에서 팔리고 있다. 이제 수입화장품은 공히 「전국구」로 세를 불리고 있는 중인 것이다.◆ 남성·욕실 화장품 향수 수입품 위력현재 수입화장품과 국내화장품간의 가장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는곳은 백화점. 화장품업체들로서는 영업활동에 있어 베이스캠프에해당하는 곳이기도 하다. 가격질서를 유지하면서 고급화장품이란이미지를 유지하고 백화점이 가진 고객흡인력을 자연스레 활용할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백화점고객들이 구매력이 큰 소비자집단으로 단위매장당 매출규모가 크다는 점도 화장품업체들의 백화점입점을 자극하는 요인이다. 따라서 화장품업체들로서는 백화점입점에큰 비중을 두고있으며 백화점에 자리를 잡은 뒤에 본격적인 영업을나선다.그러나 화장품업체들의 1차 접전장인 백화점에서 국내 화장품의 설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심지어 일부 백화점에서는 영업실적이좋지않다는 이유로 내쫓기기까지 하는 실정이다. 화장품매장에 근무하는 판촉사원들도 외제화장품코너를 찾는 발길이 국내화장품을찾는 것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신세계백화점 캘빈클라인화장품의 신모씨(27)는 『개장한지 이제보름정도로 향수류의 하루 매출액이 1백만원정도』라며 『영업실적이 좋다는 것이 백화점측의 말』이라고 말했다. 『외제화장품의 성능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피부에 잘맞아 매출이 계속 느는 편』이라는 것은 샤넬화장품의 조모씨(27)의 말이다. 조씨는 또 『백화점에서 화장품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수입품을 사려는 사람들』이라고 덧붙였다.비단 판촉사원들의 말이 아니라도 수입품의 백화점공략은 이미「KO승」으로 대세가 판가름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내 주요백화점에 입점한 수입화장품업체가 국내화장품업체에 비해 2.7배정도 많다는 조사가 그를 뒷받침하고 있다.판매실적에 있어서도 지난 95년말 현재 업계의 백화점경로를 통한화장품시장규모는 약 1천4백50억원규모로 이 가운데 수입화장품이약 8백40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계되고 있다. 백화점을 통한화장품판매의 약 58%를 수입화장품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수입화장품의 매출액증가율도 73%대에 육박하고 있다. 반면 국내 화장품업체들은 입점-영업부진-매장내 장소이동-매장면적 축소-철수 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선상에 놓여 있다.비단 백화점만이 아니다. 국내화장품들은 곳곳에서 악전고투하고있다. 업계에서 화장품 유통시장의 70%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는 가장 대중적인 화장품판매점인 할인점도 수입품의 계속되는 영토확장에 국내업체들의 「파이」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곳이다. 화장품할인점의 수는 전국적으로 약 2만여개. 아직은 국산화장품업체들이 「폭탄」「왕창」「파괴」니 하는 자극적인 용어들을 사용하는 덤핑으로 수입화장품에 비해 절대적으로 많은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고 있지만 앞날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이미 몇몇 할인점들은 국산화장품만을 취급하다 수입화장품을 함께판매하는 추세로 돌아섰다. 수입화장품업체들이 보장해주는 제품에대한 판매마진이 좋기 때문이다. 할인점으로 공급되는 수입화장품은 향수류 등 백화점에 들어간 고급품과 같은 경우도 있지만 대개가 중저가화장품들이다.◆ 면세점도 수입화장품의 중요한 유통경로명동에서 화장품백화점이란 할인점을 운영하는 박정희씨(50)는 『할인점을 찾는 손님중 평균적으로 20%정도가 외국화장품을 찾는다』며 『수입화장품은 비록 정찰제로 팔아야 하지만 가능하다면 많이 갖다놓고 팔고싶다』고 밝혔다. 박씨가 이런 마음을 갖게 된 것은 마진 즉 이익배분때문이다. 『국산화장품의 할인판매로 돌아오는 마진은 10% 안팎이며 심지어 5%를 주는 것도 있다. 그러나 외제화장품은 기본적으로 20%를 보장해 준다』는 것이 박씨의 설명이다. 이러한 마진율의 차이는 결국 업주들로 하여금 외제를 갖다놓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이대화장품의 김남수(23)씨도 『국내 화장품업체들이 보장해주는 마진이 많아야 매출액의 25∼30%지만 수입화장품은 더 준다』며 『할인점에서도 수입품 취급을 많이늘려 나가는 추세』라고 말했다.올들어 화장품소매점의 개방으로 수입화장품의 전문점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고객은 주로 대학생 회사원등 젊은 층이다. 그만큼 화장품에 대한 나름대로의 선택기준을 갖고 있으면서 소비규모도 커화장품업체들의 판촉목표가 되는 집단이다.수입화장품업체들의 공세가 날로 거세지면서 일부 전문점들은 아예수입화장품점문점으로 간판을 바꿔달 정도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부진한 영업실적과 극심한 가격경쟁, 문란한 유통 구조, 할인점과의 치열한 경쟁등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으로 수입화장품전문점으로변신하는 것이다.이대앞 O화장품. 국내화장품의 전문업체였으나 아예 프랑스산 B화장품의 전문점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국내화장품의 경우 가격경쟁과 인근 화장품할인점들의 난립으로 경쟁이 심한데다 마진도낮아 수입화장품점으로 바꿨다』는 것이 주인 정영주(27)씨의 설명이다.수입화장품업체들도 전문점유통을 주요한 타깃으로 삼고 전문점진출을 급속히 늘리고 있다. 프랑스 랑콤화장품의 자브랜드인 「파스」를 수입판매하는 엘레강스월드는 올해안에 1백여곳의 전문점을통해 제품을 판매할 계획이며 일본의 노에비아화장품을 수입하는영진노에비아도 역시 전국에 5백60여개의 전문점을 통해 제품을 판매할 계획이다. 스위스 쥬베나화장품을 판매하는 일진화장품도 올해 안에 1백여곳의 전문점을 더 늘릴 계획이며 일본 가네보화장품을 판매하는 금비화장품도 전문점을 5백여곳으로 늘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면세점도 수입화장품의 중요한 유통경로에 속한다. 현재 외제화장품을 판매하는 곳으로는 롯데 신라 워커힐 동화등 시내면세점과 대한항공(KAL)의 한진면세점, 한국관광공사의 공항면세점등이 있다.이들 면세점에서 판매되는 수입화장품은 비록 면세점관할이 각각달라 정확히 집계가 되지않고 있으나 매출액이 엄청날 것이라는 것이 면세점관계자들의 말이다. 유명 외국화장품을 수입·공급하는S사의 한 관계자는 『올들어서만도 3개월동안 20억원어치의 수입화장품이 면세점에 공급됐다』고 말했다.특히 면세점을 통한 수입향수의 판매액이 높아 『각 면세점업계에서 향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30%이상』이라는 것이 면세점업계 한관계자의 말이다.게다가 외국의 유명유통회사들도 국내 화장품유통시장에 참여하면서 수입품의 판세를 키워나가는데 한몫을 하고 있다. 한국지사를통해 프랑스의 고급화장품인 까리타를 공급하면서 클라란스의 관리·회계부문을 담당하고 있는 부루벨그룹이 그 대표적인 예다. 또홍콩자본의 전문유통업체인 조이스도 국내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유통시장도 외국업체가 잡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마저생기고 있다. 이래저래 국내화장품업계는 풍전등화의 위기감이 감돌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야금야금 화장대를 점령해 나가는 수입화장품으로 연지곤지가 사라졌듯 신토불이 국산화장품이 자취를 감출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점차 현실로 다가서고 있기 때문이다.★ 설문조사 - 수입화장품 얼마나 쓰나우리나라 여성들은 열명당 여덟명이 수입화장품을 사용하고 있으며수입화장품 가운데 향수를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지난 4월 30일부터 5월 2일까지 3일간에 걸쳐 본지가 신촌 명동 소공동 강남 영등포 등 서울시내에서 1백명의 여성들을 상대로 직접설문조사한 에 따르면 전체응답자 가운데 수입화장품을 사용하는 사람은 79%인 79명으로 나타났다. 수입화장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수입화장품을 종류별로 보면 향수가56명으로 가장 많았다. 또 수입화장품을 사용하는 여성들은 립스틱파운데이션 아이섀도 파우더 등 색조화장품을 로션 영양크림 클린싱 스킨로션 등 기초화장품보다 더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산화장품의 가장 뒤떨어진 부분이 색채와 향이라는 일반적인 평가를 뒷받침하고 있다.특히 수입화장품을 사용하는 이유로 「색상 또는 향이 뛰어나다」를 꼽은 사람이 40명으로 가장 많은 것을 감안하면 색과 향이라는패션성이 화장품의 선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밖에 수입품을 사용하는 이유로 16명이 「용기의 디자인이좋다」라고 답해 화장품의 패션성에 소비자의 선택이 좌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순하다」라는 기능성 때문에 수입품을 쓰는 사람은 13명에 불과했다.특히 「가격차가 별로 없다」와 「제품의 선택 폭이 넓다」에 각각9명이 응답, 국내업체들의 과다한 가격인상과 제품개발에 대한 게으름이 수입화장품의 시장잠식을 부추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그러나 「외제라서」라고 응답한 사람은 한명도 없어 외제화장품에대한 무조건적인 선호가 아닌 자신의 판단에 따른 선택적 구입이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수입화장품을 구입하는 장소로는 백화점이 가장 많았다. 이는 수입화장품들이 국내 유명백화점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현실적인 결과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다음으로 할인점과 전문점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많아 전문점과 할인점을 통한 중저가 수입화장품들의 국내시장진출이 한층 빨라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화장품에 대한 정보를 얻는 곳으로 가장 많은 사람(46명)이 「친구나 동료」를 꼽아 수입화장품에 대한 선체험자의 정보가 큰 역할을하고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보취득과 관련해 TV나 신문 보다 여성지를 통해 얻는다는 응답자가 3배 이상이나 돼 TV 신문에 물량공세를 퍼붓는 국내업체들의 과다한 광고가 별 효과를 얻지 못하는반면에 여성지를 집중적으로 활용해온 수입품들이 마케팅면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기도 했다.한편 수입화장품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국산을 고집하는 이유로 든 대답은 「수입품이라서」가 9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값이비싸다」는 이유를 댄 사람이 6명으로 다음을 이었다.특히 「피부에 맞지 않아서」라고 답한 사람은 4명밖에 안돼 외제화장품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피부에 맞지 않는다는 국내업체들의주장이 허구임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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