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화장품 '안방' 넘본다

『팔면 팔수록 손해다』요즘 화장품업계의 분위기를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다. 화장품 생산액이나 매출액은 여전히 10%이상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만실질적으로 남는 이익은 거의 없다. 과장된 말이기는 해도 그야말로 팔면 팔수록 적자라는 말이 아예 거짓말은 아닌 셈이다.지난해 10대 화장품 회사는 1조8천9백93억원어치의 화장품을 생산했다. 전년에 비해 13.0% 증가한 수치이다. 10대 화장품 회사의 매출액은 지난해 1조6천5백55억원으로 94년보다 13.4% 성장했다. 생산액과 매출액만 보면 1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 그런대로 괜찮은장사를 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화장품업계는지금 심하게 앓고 있다.지난해 생산액이나 매출액이 모두 1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했다고하지만 가격할인이나 밀어내기식 영업 등에 의한 누적재고 등 거품(버블)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는 거의 성장이 없었다고 봐야 한다.게다가 지난해에는 10대 화장품회사중 2개사가 적자를 냈다. 한국화장품이 23억9천여만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라미화장품도 9천만원의 손해가 났다. 태평양과 나드리 피어리스도 순익이 전년에 비해크게 줄었다. 태평양과 피어리스의 경우 이익이 50%이상씩 감소했다. 10대 화장품회사중 에바스와 한불화장품을 제외하고는 순익이좀 늘어난 회사라 해도 내세울만한 수준이 못 된다. 과당 출혈경쟁에 따라 화장품회사의 수익구조가 날로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화장품업계를 안으로부터 곪게하는 가장 큰 병폐는 유통이다. 현재화장품은 화장품할인점 백화점 편의점 슈퍼마켓 약국 미용실 피부관리실 방문판매 신방문판매(직접판매) 등이다. 이 중 화장품의80%이상이 소비되는 장소가 화장품할인점(화장품회사들은 전문점이라고 한다)이다. 할인점은 화장품의 대부분이 유통되는 화장품 유통의 핵인 동시에 화장품업계의 최대 환부다. 화장품의 가격질서를문란하게 하는 주범이기 때문이다.화장품회사들은 현재 제품이나 이미지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으로 경쟁하고 있다. 손해를 보더라도 외형을 늘리기 위해 일단은 할인점에 화장품을 대량으로 쏟아붓는다. 할인점 주인은 더 많은 마진이 보장되는 화장품을 소비자에게 권하기 마련이고 이러다보니 화장품회사는 경쟁적으로 더 저렴한 가격으로 할인점에 물건을 떠넘긴다. 할인점끼리도 싸게 팔기가 경쟁이 돼 서로 10원이라도 더 저렴하게 팔려고 한다. 거리 곳곳에서 「화장품 가장 싸게파는 집」「유명 브랜드 50∼70% 할인」「폭탄세일」 등의 문구가난무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가격할인 누적재고 등에 ‘울상’큰 폭의 할인율은 두 가지 문제점을 파생한다. 첫째가 화장품업계의 수익구조 악화이고 둘째가 화장품회사의 이미지 훼손이다. 국내탑 브랜드의 화장품들도 할인점에서 50%씩 할인되는 것을 보고 소비자들은 「국산은 싸구려」라고 생각하게 됐다. 권장소비자가격을불신하며 국산화장품을 상설할인제품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틈을 수입화장품이 파고들어 입지를 넓혀가면서 국산화장품은 날로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국내 화장품업체들은 생산실적 성장률이 높다고 해서 낙관만 하고있을 수없는 현실에 직면하면서 나름대로의 살 길을 모색하고 있다. 국내 화장품업계가 화장품산업 정상화를 위해 최대 현안으로내세우고 있는 것은 「오픈프라이스제」도입이다. 오픈프라이스제도는 화장품 제조업체가 매기는 권장소비자가격을 없애고 화장품을판매하는 유통업체가 제품의 가격을 직접 결정하는 제도를 말한다.오픈프라이스제가 도입되면 화장품 코너마다 제품가격이 달라지고가격도 떨어지게 된다. 예를 들어 출고가격 1만원에 권장소비자가격이 2만5천원인 제품은 판매자가 손해를 보지 않는 한도내에서1만2천원 내외로까지 가격이 내려가게 된다. 차이점이라면 현행 제도 아래에서는 1만2천원에 팔면 50%할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오픈프라이스제에서는 몇 % 할인이라는 말이 없어지게 된다는 점이다.매장마다 할인율을 내세울 수 없게 되므로 화장품업계는 그간 회사의 이미지를 훼손해온 상설할인제품이라는 오명을 벗게 되는 것이다. 화장품업체들이 『오픈프라이스제 도입은 한국 화장품산업의사활이 걸린 문제』(유상옥 화장품공업협회 회장)라고 말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오픈프라이스제와 함께 화장품업체가 「난국타개」를 위해 시도하는 방법은 유통경로별 브랜드 다양화 전략이다. 백화점에서는 백화점 전용 브랜드만 팔고 할인점에서는 할인점 전용 제품만 판매하겠다는 것이다. 대신 백화점이나 슈퍼마켓 등 할인점 이외의 유통망에서 소화되는 제품의 경우 정확히 정가판매를 고수한다는 방침이다. 물론 백화점에서 비싸게 주고 물건을 구입한 소비자에게는 그만큼의 서비스를 보장해준다. 소비자를 직접 찾아 다니며 상담을해주고 화장품을 판매하는 신방문판매(직판제도)도 날로 성장하고있다.화장품회사들은 유통경로 다양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할인점에 대한의존율을 낮춘다는 방침이다.◆ 유통경로별 브랜드 다양화 전략 시도화장품업계에 올해는 하나의 전환기다. 오픈프라이스제 도입 문제가 걸려 있는데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도입한 유통경로 다양화정책의 성과도 드러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날로 시장을 잠식해 들어오는 외국화장품과의 경쟁도 올해를 기점으로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백화점에서만 판매되는 고급 수입화장품외에 국산화장품의 주근거지인 할인점을 파고드는 중저가 수입화장품의 공세가날로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의 화장품 유통업체의 상륙도올해부터 시작될 것으로 예측된다.이래저래 벼랑에 몰린 국내 화장품업계가 다시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얼마나 많이 팔았느냐」에서 「어떻게팔았느냐」로 경쟁의 개념을 전환하는 길밖에 없다. 화장품업계 스스로의 자정노력이 국내 화장품산업을 살리는 유일한 대안이라는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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