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잡는게 매' 수익 최우선

한국은행이 지급준비율 인하를 발표하기 하루전인 지난 4월17일.조흥은행은 오후 3시부터 9시까지 전임원과 부점장들이 참석해 마라톤 회의를 가졌다. 최근 변화된 금융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해나가기 위한 「업무대책전략회의」였다. 회의는 이날로 끝나지 않고 19일까지 3일연속 계속됐다.상호신용금고 업계는 24, 25일 설악산에서 전국 2백36개 신용금고의 대표자 회의를 열었다. 전문강사를 초빙해 금융리스크 관리기법등에 대해 강의를 듣고 최근 금리인하등 급변하는 금융환경이 금고업계에 미치는 파장에 대해 대응방안을 모색해보자는 취지였다.금융기관들의 발걸음이 바빠지고 있다. 지준율인하등 메가톤급 충격으로 과거에는 상상속에서나 그려보던 저금리시대가 코앞에 닥치고 신탁제도개선이라는 폭풍이 일면서 최선의 대응방안을 짜느라골몰하고 있다. 심하게 얘기하면 당황해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자금이 모자라 금리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돈만 끌어오면 목에 힘주고 두발 뻗고 지내던 시대와는 「하늘과 땅」이다. 그렇다고 「아,옛날이여!」만 부르고 있을수만은 없는 상황이다.이번 지준율 인하와 신탁제도개선은 규제와 특혜의 틈바구니에서「안주」해온 금융기관간 경쟁을 금리를 중심으로 한 시장경쟁체제로 바꾸기 위한 조치다. 각각의 처한 처지에 따라 경쟁력이 달라지고 생존여력도 달라지는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는 얘기다.우선 은행은 득실이 엇갈린다. 지준율 인하로 3천억원 정도의 수익이 생겨 대출금리를 0.25%포인트 내림으로써 대출시장에서 신용금고나 보험회사에 대한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게 됐다.그러나 신탁제도개선은 「은행죽이기」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신탁자금이 적게는 6조원(재경원), 많게는 20조원(금융계)이 이탈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보험사들도 걱정이 태산이다. 지난 1월부터 5년이상 유지된 계약에한해서만 비과세되던 것이 4월 25일 발표된 「소득세법시행령 개정안」에 따라 7년이상으로 강화된 탓이다. 이같은 보험차익과세강화는 그동안 상대적 우위를 점하던 보험상품의 상품성을 떨어뜨리게됐다. 때문에 보험업계는 신규고객을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는 문제로 잔뜩 긴장하고 있다.가장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곳이 서민금융기관인 신용금고다. 은행과 보험의 대출금리 인하로 금리차가 확대되면서 은행에서 대출받아 신용금고 여신을 갚는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지역밀착형 영업을 강화해도 금리민감도가 높아질수록 여건은 악화되고있다. 높은 금리를 주고 끌어들인 돈을 굴릴 데가 없어 예금을 「거절」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벌어지는 실정이다.저금리 경쟁시대에 금융기관들이 내놓는 비법은 그러나 생각보다복잡한 것이 아니다. 「거품에 지나지 않는 외형보다는 짭짤한 수익을 챙긴다」는 원론을 제시하는데 그치고 있다.우선 금리예측 능력을 높이는 것이다. 금리가 고정돼 있던 과거와달리 매일 변하는 상황에서 금리를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하느냐가관건이다. 「금리를 정확히 예측하면 떼돈을 번다」는 말이 과장이아닌 시대가 됐다.◆ ALM시스템을 조속히 구축하는 것도 과제금리예측과 함께 자산부채를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ALM시스템을 조속히 구축하는 것도 과제다. 현재 은행들은 자산민감형 갭구조를대출금리는 프라임레이트(우대금리)에 연동돼 기존대출금리도 곧내려야 하지만 수신은 기존금리가 유지된다. 마진이 줄어들고 심할경우 역금리도 가능하다는 얘기다.『대출은 길게, 예금은 짧게 해 만기구조를 일치시키는 게 중요하다』(윤석헌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대출금리를 가능한한 확정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우대금리가 변할 때마다 변동시키지 말고3개월이나 6개월마다 정기적으로 조정하는 것이다.부실여신을 최소화하는 것도 발등의 불이다. 우량 거래업체를 확보하는게 시급한 일로 떠오르고 있다. 대기업의 탈은행화로 개인 및중소업체를 얼마나 더 많이 확보하느냐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도래했다.조흥은행의 「평생고객7백만명 모시기」, 한일은행의 「1백만고객모시기」 등이 이를 반영한다. 상업은행은 중소기업 신규고객유치에 초점을 맞춰 올해중 2천개의 신규기업을 발굴할 계획이다.외환은행이 벌이고 있는 중소·중견업체를 대상으로 우량기업을 확대하는 운동도 눈여겨 볼만하다. 이는 신용도에 따른 금리 차등화를 시도해야 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주택은행이 신용이 좋은가계나 기업체에 대해 대출금리를 인하, 혜택이 많이 돌아가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일률적으로 같은 금리를 적용하는 시대는 끝난 것이다.다양한 수익원 개발도 이룰 수 없다. 저금리시대로 접어들면서 「예금금리는 높게, 대출금리는 낮게」라는 새로운 원칙이 적용되고전통적인 예대마진이 줄어들고 있다. 요구불예금이나 저축성예금등낮은 금리 상품의 비중은 떨어지고 신탁이나 CD등 고금리 수신상품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과거처럼 「금리따먹기」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렵게 됐다. 영종도신공항 시설공사와 동서고속철도사업 및 경인운하건설등 연간 10조원에 이르는 「프로젝트 파이낸스」시장을 잡기 위해 은행들이 앞다퉈 진출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포트폴리오(자산구성)의 다양화도 시급하다. 금리자유화와 저금리시대 도래로 금리민감도와 상관성이 높아졌다. 특정 상품에 편중되는 것은 그만큼 리스크가 많다는 얘기다. 달걀은 여러 바구니에 나눠 담아야 한꺼번에 깨어지는 위험을 방지할 수 있다.문제는 이같은 원론을 실제로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수익이 중요하다고 입버릇처럼 되뇌지만 그래도 외형에서 뒤져서는안된다는 뿌리깊은 생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이창영 동양투자금융 이사). 한국 금융시장은 냄비시장이기 때문에 언제 다시 금리가반등될지 모른다. 그때를 대비해 몸을 부풀려 놓는게 나쁘지 않다는 얘기다.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시중금리가 연11%대에서 안정세를보이고 설사 일시적으로 반등한다고 해도 연13%를 넘어서지는 않을것』(손완식 동원파이낸스 대표)이란 분석이 대세를 이룬다. 저금리가 정착되고 있는데 맞춰 금융기관행태도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저금리 시대는 금리격차가 축소돼 1, 2금융권간 차별이 없어지면서경쟁이 치열해짐을 뜻한다. 경쟁력 있는 기관만이 살아남는 정글의법칙이 적용되고 금융기관도 망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얘기다. 오는 6월부터 예금보험공사가 정식으로 출범하는 것도 금융기관 부실화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변화된 금융환경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을 조속히 마련해서 시행하는 것이 금융계 전체에 남겨진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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