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메세나 '백화제방' 시대

전경련은 지난 3일 과거 월요일에 주로 열렸던 기업들의 간부회의를 토요일로 옮기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그동안 「월요일 아침에는 자동차를 집에 세워두라」는 얘기가 오너드라이버들에게 상식으로 통해왔다. 월요일이면 서울의 교통체증이 유달리 심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왜 그럴까」하고 의아해하면서도 그 이유를 뚜렷히 알지 못했다. 급기야 서울시는 「월요일교통체증의 특성조사」 결과를 발표했고 사람들은 그제서야 월요일교통체증의 「주범」이 대기업들이었다는 심증을 갖게 됐다. 서울소재 전경련소속 2백40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9%인1백66개사가 매주 월요일 회의를 개최하고 있었으며 약4천2백명이승용차를 이용해 근무지와 다른 회의장소로 이동하고 있었다. 결국전경련은 서울시의 월요회의 자제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전경련의 결정은 비록 자그마한 것이지만 최근들어 재계가 보여주는 변화의 몸부림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시민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인식이 바닥에 깔린 결정이다.◆ 윤리규범 ‘합창’ 변신의지 표출대기업들은 과거 이익창출을 위해서는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곱지않은 시선을 받아왔던 게 사실이다. 물건팔기에 급급해 소비자들은 안중에도 없었고 장사가 된다싶으면 중소기업의 영역을집어삼켰다. 돈을 매개로 정권과 결탁했고 뒷전으로 각종 이권을챙겼다. 그러나 이같은 행적은 크게 보면 모두가 못살고 배고팠던시절에 몸에 밴 유습이다.시대가 변했고 대기업들도 변하고 있다. 그들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와 고객에 대한 책임을 저버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있다.대기업의 변신의지를 가장 강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은 잇따라 발표되고 있는 각그룹사들의 윤리규범들이다. 나아가 이러한 의지들은중소기업과의 협력관계구축 및 예술 문화 의료활동 등에 대한 포괄적인 지원, 소위 말하는 기업메세나활동을 통해서 구체화된다. 여기에 각종 봉사활동은 보다 소박하게 사회와 밀접해지려는 노력으로 비쳐진다.지난 몇 년사이 새롭게 제정됐거나 고쳐진 경영이념의 대표적인예는 94년에 제정된 LG그룹의 윤리규범이다. △고객에 대한 책임과의무 △공정한 경쟁 △공정한 거래 △임직원에 대한 책임 △국가와사회에 대한 책임등 총6장으로 구성된 이 윤리규범은 「자유롭고공정한 경쟁을 지향하는 자유시장경제 질서를 존중하고 상호신뢰와협력을 토대로 모든 이해관계자와 공동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세계적인 초우량기업으로 발전한다」는 정신을 담고 있다. 이같이 변신을 위해 이념적 토대를 마련하는 작업은 포항제철 현대그룹으로이어진다. 마침내 지난 2월초에는 전경련이 이사회차원에서 정경유착단절을 다짐하는 기업윤리헌장을 의결했다. 이후로도 기업들은윤리의식다지기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제일모직 기아그룹에 이어공기업인 한전도 윤리강령을 선포했다. 한결같이 깨끗한 경영 건전한 기업문화 정착의 굳은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중소기업과의 협력관계구축은 올들어 주요 그룹사들이 대대적으로펼치고 있는 노력중의 하나다. 한화그룹의 경우를 보면 금융지원을위해 현금결제비율을 40%선으로 확대하고 협력업체에 시설자금 및연구개발자금으로 2백억원을 책정했다. 기술지원차원에서는 기술세미나와 지도를 통해 공동개발을 해나가고 경영 마케팅과 관련해서는 중소기업이 자체적으로 구축하기 어려운 전산망을 공동으로 구성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쌍용그룹 역시 대금결제기간을 단축해주고 설비운영자금과 함께 연계지급보증을 통해서 협력업체의 자금난을 덜어주겠다는 생각이다. 또 1천건의 기술을 이전하고 기술정보센터를 통해 기술공유사업을 확대하며 해외동반진출을 추진하고있다.◆ 공익사업, 기업경영환경 개선위한 선행투자대기업들은 또 문화 예술에 대한 지원등 공익사업에 많은 정열을쏟아붓고 있다. 기업메세나로 표현되는 이같은 활동은 이미 세계적기업들에서 보편화된 일이다. 기업들의 공익사업확대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이 고조되는 상황과 맞물려 있는 것이다.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복지사업 봉사활동 등 공익사업은 기업경영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선행투자』라며 『미국 일본의 예에서도공익활동이 기업이미지를 높이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히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기업들이 순수하게 문화예술부문에 지원한 금액은 총 9백27억여원에 달한다. 이는 정부가 작년에 문예진흥기금을 통해 문화예술분야에 지원한 금액이 약 4백억원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할 때 기업의영향력을 느끼게 한다. 메세나협의회(회장 최원석 동아그룹회장)사무처의 한 직원은 『작년 한해동안 약1만건에 달하는 각종 문화행사가 기업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았다』며 『이부분에 대한 기업투자는 급격히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현대는 아산재단을 통해 지난 77년부터 6월말까지 서울중앙병원개원등 의료복지사업, 장애자 아동 청소년 등을 위한 단체와 기관에대한 기자재 및 연구비지원, 장학금사업 등을 지속하고 있다. 삼성은 삼성복지재단 삼성문화재단을 운영하면서 탁아소건립 등 보육사업, 장애인공장건립(수원 무궁화전자), 소년소녀가장돕기, 효행상수여, 결식노인급식활동 등을 전개하고 있다. 올해 계획된 예산은 약 3천억원. 공익활동에 적극적인 일본기업에도 뒤지지 않는 활동상을 보여주고 있다.또 선경은 서울대 선경경영관기증 한양공대 60억지원등 주로 대학및 고급인력양성측면에 역점을 두고 있으며 쌍용은 코리아심포니오케스트라 용평뮤직캠프 등 예술분야와 성곡컵 유도대회창설, 학술언론재단운용 등 다양한 활동상을 보이고 있다.지난달 발간된 삼성그룹의 조그만 책자는 또다른 차원에서 사회와밀접해지려는 노력을 엿보게 한다. 삼성은 지난해 10월 봉사활동주간에 임직원들이 실시한 봉사활동가운데 1백가지를 뽑아 「봉사활동1백선」이란 책자로 묶었다. 무의탁노인 자식되어주기, 지하철취객 안전귀가시키기, 초등학교 시설보수, 장애아돕기 등 1백가지의사례가 봉사활동 지침서로 이용되도록 6개분야로 나눠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대기업들은 분명 변하고 있다. 내부적인 자정과 성숙에 의해서든외부적으로 형성되는 준강압적 분위기에 의해서든 변신의 양태들이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다만 자신들에게 떨어지는 비난의 위기상황을 무마시키기 위해서거나 지나치게 홍보용으로 마련되어서는 안된다는 일부의 지적에도귀를 귀울여야 한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할 때』언젠가 그 선행이 더 큰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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