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식의 형식 '개성으로 튄다'

「패션광고에는 해답이 없다」.어떤 종류의 광고에서도 특별한 정형이나 해결책이 있을 수는 없지만 패션광고는 특히 더하다. 유행이 빠른데다 차별화된 장점을 내세우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식품광고의 경우 맛있다, 건강에 좋다, 무방부제다, 무설탕이다 등으로 품질을 제시할수 있지만 패션에서는 특징을 설명할 수가 없다. 패션은 설명하지않고 보여줄 뿐이다. 상품이 나타내는 이미지를 얼마나 빨리 소비자의 머리에 감각적으로 입력시키느냐에 패션광고의 성패가 달려있는 셈이다.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패션광고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천편일률적인 경향이 심하다. 한 광고가 튀면 너나없이 그 광고를 모방, 비슷비슷한 광고가 쏟아져 나온다. 확실한 이미지를 주장하기위한 광고 아이디어를 얻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얘기다. 그래서 비슷비슷한 패션 화면들 속에서 어떤 개성으로 소비자의 눈길을 잡느냐가 차별화의 관건이다. 최근 패션업계가 선호하는 광고 경향은크게 3가지다. 무형식의 형식을 주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광고속에 얘깃거리를 담는 에피소드형, 성적인 연상을 유발시키는 섹스어필형 등이다.최근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광고 형식은 단연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은 특별한 목적이나 내용 없이 현란한 이미지만을 보여주는게 특징이다. 패션광고라는 것조차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외국인들이 왔다갔다 하는 낯선 풍경 속에 브랜드 이름만 몇번 나올 뿐이다. 포스트모던 광고의 포문을 연 브랜드는 「시스템」.TV광고에 과감하게 외국모델을 기용, 별 줄거리없이 외국인의 강렬한 이미지로 광고 차별화에 승부를 걸었다. 요즘 젊은 여성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나이스크랍」도 포스트모던 광고의 덕을 톡톡히 봤다.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거리가 배경으로 깔린 화면 속에 키가 크고 좀 마른, 예쁘다기 보다는 개성있게 생긴평범한 여자가 팔짱을 끼고 서 있다. 배경음악으로는 젊은이의 인기를 독점하고 있는 홍콩 왕가위 감독의 대표작인 「중경삼림」의주제가 캘리포니아 드리밍이 흐른다. 정지화면 속에 반복적으로 음악이 흐르다가 갑자기 노래가 멈추면서 「나이스크랍」이라는 멘트가 나오고 서 있던 여자는 화면 밖으로 걸어나간다. 광고에는 전달하고자 하는 어떠한 메시지도 없다. 단지 음악과 화면뿐이다. 보는사람은 단지 감각적으로 즐기기만 하면 된다. 생각할 필요는 전혀없다.◆ ‘소비자 눈길 잡기’가 차별화 관건「마르조」는 소리가 있는 패션이라는 슬로건의 포스트모던 광고를내보내고 있다. 지난해 말에 방영됐던 1탄은 외출전에 옷을 갈아입는 여성의 움직임을 흑백화면으로 보여주면서 옷을 입을 때 나는소리만을 생생하게 들려줬다. 배경음악은 전혀 없다. 여자가 옷을다 입고 의자에 걸쳐있는 재킷을 들어 올릴 때 「소리가 있는 패션, 마르조」라는 카피가 화면에 나타난다. 브랜드는 화면에 새겨질 뿐 성우의 목소리로 말해지지는 않는다. 올 봄에 나왔던 2탄은가위소리를 이용했다. 미장원에서 일하는 두 여자의 실루엣이 흑백으로 흐르고 끊임없이 가위로 머리카락을 자르는 소리가 들린다.어둠 속에 갑자기 스프레이가 흩어지며 「봄은 가위소리에서 시작된다」는 카피가 보인다. 역시 성우의 멘트는 없다.포스트모던 광고는 현실과 허구를 뒤섞고 서술구조도 없애며 시간과 공간마저 혼합시킨다. 파편화된 이미지를 무질서하게 연결함으로써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감성을 창출한다. 보는 사람은 광고를통해 「상품과 소비자」가 아닌 「이미지와 관객」의 관계를 맺는다. 패션이라는 상품 자체가 감(感)이나 필링(Feeling)이라는 느낌을 중시하기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은 패션광고에 더할 나위없이적절한 형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경제적인 이유보다 문화적인이유로 물건을 구입하는 현대인의 구매욕구를 자극하는데도 포스트모더니즘이 내세우는 이미지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패션이미지는 그 사회와 시대의 정신에피소드형은 전통적으로 패션업계가 선호하는 광고 형식이다. 재치있는 얘깃거리를 짧은 광고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시청자에게 재미를 주는 동시에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라는 모방심리를 유도한다. 포스트모던 광고에는 외국모델이 많이 등장하는 반면 에피소드형에서는 국내 톱탤런트들이 기용된다. 에피소드형의 대표격은「씨씨클럽」.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여성을 겨냥하고 있는만큼 젊은이의 발랄함을 표현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모델은 대표적인 신세대 스타인 신은경. 신은경이 외국의 어느 거리를 걷다가 버스정류장에 멈춰선다. 신은경 앞에는 엄마 손을 잡고 버스를 기다리는 4살 정도된 어린아이가 솜사탕을 먹고 있다. 장난기가 발동한신은경은 솜사탕을 살짝 뜯어 한입 먹어보고는 입맛이 당긴김에 계속 조금씩 뺏어먹는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솜사탕을 왕창 뜯어내게되고 꼬마는 울음을 터뜨린다. 당황한 신은경은 솜사탕을 옆에 버리고는 시치미를 떼고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 엄마는 신은경 옆에서 껌을 씹고 있던 애꿎은 남자의 볼을 세게 때린다. 어이없어 하는 남자 뒤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신은경의 얼굴이 나타나면서씨씨클럽이라는 카피가 흐른다.「베스티벨리」는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는 내용을일관되게 고수하는 경우. 이승연이 나오는 「조이너스」나 이본의「꼼빠니아」등도 캐리어우먼의 당당한 모습을 주내용으로 하고 있다. 「페페」광고는 김희선을 기자로 변신시켰다. 김희선이 취재하는 사건현장의 모습은 흑백으로 처리되고 김희선의 모습은 컬러다.취재를 끝내고 자신만만하게 걸어나오는 김희선의 모습 뒤로 「한번쯤 세상을 흔들고 싶다」는 카피가 나타난다. 에피소드형 광고는톱탤런트의 이미지를 통해 한 번쯤은 일상에서 일탈하고 싶은 현대인의 심리와 캐리어우먼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고 싶은 여성들의욕망을 은근히 자극한다. 「이 옷을 입는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이라는게 에피소드형 광고가 내세우는 강점이다.섹스어필 광고는 주로 진의류에 이용된다. 진광고는 거의 대부분이섹스어필 광고다. 윗도리를 모두 벗은 남녀가 청바지만 걸친채 안고 있는 모습이라든가 역시 청바지만 입은 남녀가 옆으로 누운채마주보고 있는 뒷모습 등이 진의류 광고의 일반적인 장면이다. 캘빈클라인 게스 옵트 GV2 등이 섹스어필 광고를 주도하는 브랜드들.최근에는 진의류 전체가 섹스어필 광고로 일관하자 섹스어필을 벗어남으로써 차별화를 시도하려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예로 「닉스」는 청바지 광고에 음식을 내보내 일반적인 상식을 뒤엎고 있다. 닉스의 시도는 어떤 방법으로든 다른 의류광고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의도인 셈이다.패션광고에서 정작 아이러니컬한 현상은 신세대들이 선호하는 의류중에는 광고를 거의 하지 않는 브랜드가 많다는 점. 의류업체들은의외의 얘깃거리와 화려한 화면, 음악 등으로 끊임없이 소비자의눈과 귀를 잡으려고 하지만 신세대들은 광고에 쉽게 유혹당하지 않는다. 디자이너 강진형씨의 「오브제」 디자이너 박춘무씨의 「데무」 하라패션의 「윈」 등은 소위 「잘 나가는」 브랜드들이지만거의 광고를 하지 않는다. 간혹 여성지에 한 두 페이지씩 게재할뿐이다. 데코 이디엄 EnC 텔레그라프 등도 잡지광고만으로 브랜드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 『패션의 개성과 고객층이 분명한 경우무차별적인 대중을 상대로 하는 TV보다는 명확한 독자층을 가진 잡지가 효과면에서 더 낫다』는게 최영미 대하패션 홍보담당자의 설명이다. 광고하지 않는 브랜드가 인기를 얻는 또다른 이유는 남들이 잘 모르는 나만의 브랜드를 갖고 싶다는 신세대들의 개성때문이다. TV에 자주 나와 누구에게나 익숙한 브랜드보다는 특이한 「나만의 패션」을 갖겠다는 심리다.소비자들의 다양한 요구와 유행의 변화로 인해 의류업계 광고담당자들은 광고를 해도 고민, 안 해도 고민이다. 그래도 유행의 최첨단과 문화의 최신 경향을 알린다는 자부심은 있다. 패션 이미지는바로 그 사회와 시대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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