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 튀고 싶은 신세대 선호

길을 가다가 자신과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기분 나쁘다. 그 옷을 다시는 입고 싶지 않은 기분까지 생긴다. 사람들은모두 자기 자신이 「특별」하고 남과 「다른 존재」라고 생각한다.사회가 복잡해질수록 그런 경향은 심해진다. 신세대라 불리는 10∼20대에게서 개인주의 경향이 심한 것도 이 때문이다.남과 같은 옷을 입고 싶지 않고 나만의 개성을 찾고 싶은 현대인의심리를 겨냥해 만들어진 옷이 「캐릭터브랜드(Character Brand)」다. 캐릭터브랜드는 그 브랜드만의 특징과 개성과 동일성을 가지고있다. 여러 종류의 옷이 매장에 걸려 있어도 그 브랜드만의 냄새를맡을 수 있고 그 브랜드만의 강한 성격이 느껴진다.캐릭터브랜드는 90년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의류시장은 의류제조업체가 대량으로 생산하는 내셔널브랜드와 맞춤복 위주의 디자이너브랜드로 양분돼 있었다. 내셔널브랜드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매 시기마다 유행에 따라 대량으로 생산되는기성복이다. 디자이너브랜드는 디자이너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제작한 제품으로 소량 주문생산을 특징으로 한다. 당연히 내셔널브랜드의 가격은 디자이너브랜드에 비해 저렴하다. 디자이너브랜드는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싼 대신 자신만의 스타일을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섬 「시스템」은 캐릭터브랜드의 원조캐릭터브랜드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신세대가 부상하면서부터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나만의 스타일을 즐기고 싶다」는 신세대의 욕구를 만족시키기엔 내셔널브랜드는 너무 대중적이고 디자이너브랜드는 너무 비싸다. 캐릭터브랜드는 이 틈을 공략한다. 캐릭터브랜드가 내세우는 모토는 「가격은 내셔널브랜드, 질은 디자이너브랜드」다. 실제로는 가격과 질 모두 내셔널브랜드와 디자이너브랜드의 중간 정도다.캐릭터브랜드는 각 브랜드마다 제시하는 뚜렷한 성격이 있기 때문에 고객층이 확실하고 그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도도 분명하다.캐릭터브랜드의 주고객층인 신세대는 자연연령으로 구분된 개념이아니라 생활양식을 기준으로 하는 개념이다. 자유와 개성을 추구하고 남과 달리 튀고 싶고 적당히 멋낼 줄 아는 사람이 캐릭터브랜드의 소비자들이다. 캐릭터브랜드들도 자신만만하고 자기의 삶을 즐기는 전문직 종사자들을 주로 공략한다. 굳이 나이로 따지자면 캐릭터브랜드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까지의 젊은이들이 주로 입는다.캐릭터브랜드의 또다른 특징은 국산브랜드인지 수입브랜드인지 알수 없을 정도로 국제화된 감각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브랜드에서나광고, 매장 인테리어, 제품 카탈로그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서구도시형의 세련된 감각을 추구한다. 한마디로 외제같은 국산 브랜드다. 대표적인 예로 「닉스」와 「시스템」을 들 수 있다. 94년에처음 나온 진의류 닉스는 다리가 길어보이는 디자인과 독특한 판매전략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닉스는 수입 청바지보다 비싼10만∼12만원의 높은 값에도 불구하고 날개돋친 듯이 팔린다. 닉스한 브랜드가 지난해에 올린 매출액은 5백억원. 판매전략도 특이했다. 지난해 여름에는 사은품으로 콘돔과 향수를 나눠줬고 다른 청바지 의류가 섹스어필 광고로 일관할 때 광고에 평범한 사람들을등장시킴으로써 차별화를 시도했다.한섬의 「시스템」은 캐릭터브랜드의 원조격이다. 초록색이나 주황색 등의 원색이 의류에 잘 이용되지 않던 90년부터 깜찍한 스타일의 원색 의류를 선보여 선풍을 일으켰다. 한 벌로 사입기 보다 하나씩 따로 사서 맞춰입는 코디네이션 브랜드임을 강조하고 있다.지난해 매출액은 6백억원. 올해는 8백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캐릭터브랜드는 크게 여성과 남성용으로 나눠지고 여성 캐릭터브랜드는 다시 연령대와 스타일에 따라 캐릭터캐주얼(영캐주얼) 캐릭터커리어 영디자이너캐릭터 등으로 구분된다.캐릭터캐주얼은 10대후반∼20대초반의 여성을 겨냥한 캐주얼웨어다. 기존의 캐주얼의류보다 디자인을 강화해 고급스럽게 만들어 때에 따라서는 정장 대용으로도 입을 수 있는 옷이다. 디자인이 과감하고 입는 사람의 개성을 드러내기 때문에 젊은층뿐만이 아니라30대 이상의 연령층에서도 패션에 민감한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나이스크랍은 신속함이 매력캐릭터커리어는 20대 중반의 커리어우먼을 대상으로 한다. 직장에입고 가도 되지만 카페나 극장 볼링장 등 즐기는 장소에서도 전혀어색하지 않는 세미클래식이 특징이다. 디자이너캐릭터는 디자이너들이 기존 디자이너브랜드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을 넓히기 위한 목적으로 내놓은 브랜드들이다. 고가의 디자이너브랜드에 대별해 디자이너캐릭터를 브리지라인(Bridge Line)이라고도 한다. 디자이너브랜드와 내셔널브랜드를 연결하는 다리역할을 담당한다는 뜻이다.영캐릭터 중에서 올해 손꼽히는 히트브랜드는 대현의 나이스크랍이다. 나이스크랍은 일본의 라이선스브랜드로 일본내에서도 매출성장률 1위, 경상이익률 1위를 차지하는 인기브랜드다. 국내에서도 올봄에 시장에 나오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금세 히트브랜드의반열에 올라섰다.나이스크랍의 인기는 45일을 기본으로 하는 빠른 기획과 일일 판매분석에 따른 신속한 주문시스템 덕분이다. 기본적으로 스트리트패션(거리패션)을 추구하는만큼 젊은이들의 옷차림을 보고 유행이 감지되면 45일만에 기획, 재빨리 시장에 내놓는다. 신속함이 강점인셈이다.나이스크랍이 거리패션을 주테마로 하는데 비해 대하패션의「EnC」는 귀엽고 소녀다운 스타일을 유지한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주고객층으로 『공부를 잘 하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불량기가있다거나 말썽을 피우지고 않는 천진무구하고 평범한 소녀 이미지』(최영미 대하패션 판촉실)가 특징이다.브랜드의 차별화된 개성이 캐릭터브랜드의 생명인 만큼 각기 뚜렷한 컨셉을 내세우고 실제로 그 옷을 봐도 브랜드가 내세우는 특징이 느껴진다. 예를 들어 「머스」는 페미닌하고 로맨틱한 분위기가풍기며 「쿠기」는 포스트모던하다.캐릭터커리어는 직장 여성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캐릭터캐주얼만큼 「튀는 감각」은 강조하지 못한다. 「캐릭터」가 좀 약한 셈.대부분 단순하고 깨끗한 선에 베이직한 스타일을 선호하며 도시풍의 커리어우먼을 지향한다.디자이너캐릭터는 디자이너들이 대중화를 위해 선보인 브랜드. 한정된 소수의 고객만을 대상으로 몇몇 부띠크만을 운영하며 옷을 팔던 디자이너들이 의류제조업체들의 영업방식을 과감히 채용, 시장에 내놓은 상품들이다. 디자이너캐릭터의 붐을 조성한 것은 (주)보우무역의 「데무」다. 디자이너 박춘무씨가 부띠크로 운영하던 데무를 90년에 롯데백화점 본점에 입점시키며 본격적인 내셔널브랜드의 대량 판매방식을 도입했다. 개인 부띠크에서 회사 형태로 전환한 것이다.◆ 오브제는 월1억 매출 올려 최고 인기최근 2년간 디자이너브랜드 중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브랜드는 박진영씨의 「오브제」. 오브제는 15개의 매장에서 월평균 1억원의매출액을 거뜬히 올리고 있다. 오브제는 사랑스럽고 여성스러운 미를 추구한다. 올 봄에 유행했던 큰 리본이 달린 블라우스도 오브제에서 제안한 스타일이었다.디자이너 심상보씨의 「피리」는 디자이너와 의류제조업체의 만남으로 새로운 변신이 기대되는 브랜드다. 심상보씨는 디자인에만 전념하고 싶다는 소망에 따라 대하패션에 회사인 피리인터내셔널을넘겼다. 피리의 기획과 디자인은 심상보씨가, 판매와 영업은 대하패션이 담당하게 됨으로써 피리는 디자이너브랜드의 질과 내셔널브랜드의 유통력을 확보하게 됐다.캐릭터 남성복은 세미 정장스타일과 캐주얼의류를 포함하고 있으며자유직에 종사하는 30대 직장인이 주고객층이다. 디자이너 브랜드로는 보우무역의 남자용 「데무」와 디자이너 이신우씨의 「이신우옴므」가 경쟁하고 있다. 의류업체의 브랜드로는 제일모직의 「엠비오」, 신성통상의 「지오지아」, 보융의 「인터째즈」 등이 있다.캐릭터브랜드는 개성을 중시하면서 자기의 정확한 주장과 경향을반영, 소수지향적인 이미지를 강조한다. 상품의 고부가가치에 중점을 둔다는 점도 특징이다. 대량판매를 지양하고 한 품목당 미리 정해진 소량만을 생산, 소비자들이 차별화된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한 브랜드당 매출액이 5백억원이 넘어가면 캐릭터성을 잃어버린다고 하는 이유도 대량판매시 소비자가 캐릭터브랜드를 구입하면서원하는 「독특함」이 대중성으로 전락해 버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한 브랜드의 매출액이 5백억원이 넘을 경우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스타일 종류를 극대화함으로써 희소성과 캐릭터성을 유지해야한다.캐릭터브랜드의 등장은 국내 패션산업의 재편을 알리는 시발점이되고 있다. 내셔널브랜드의 고급화와 디자이너브랜드의 대중화가만나는 시점에서 탄생, 국내 패션시장의 새로운 지향점을 제시했기때문이다.캐릭터브랜드는 국내 패션시장이 선진국형으로 바뀌고 있음을 나타내는 표시이기도 하다. 캐릭터브랜드는 수입브랜드건 고유브랜드건관계없이 제시하는 개성만 분명하다면 빅히트작으로 떠오른다. 유명한 브랜드를 좋아하는 브랜드 선호도가 캐릭터브랜드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제품의 개성이 자신과 맞기 때문에 끌리는 것이다. 브랜드가 아니라 품질이나 디자인 기획 색상이 합리적인 소비자의 구매의욕을 끌어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물론 캐릭터브랜드는 고급스런 이미지를 끊임없이 창조하고 브랜드품위를 유지하는데 주력한다. 이는 캐릭터브랜드의 기본적인 속성이기 때문이다. 이미지 창조는 주로 카탈로그나 여성지를 통해 하고 TV광고는 피한다. 자칫 캐릭터없는 대중적인 브랜드란 인상을주기 때문이다. 잡지광고를 하더라도 남과 다르게 한다. 캐릭터브랜드의 국제적인 감각은 세계시장 진출에 대해서도 장미빛 청사진을 제시한다. 데코 데무 오브제 피리 등이 일본이나 중국 파리 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캐릭터브랜드의 약진은 국내 패션산업에 대해서도 희망을 갖게 한다. 우리의 패션업체와 디자이너가 개발한 브랜드도 개성과 품질만내세울만 하면 브랜드에 약한 국내 소비자의 마음을 살 수 있다는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앞으로 과제는 경쟁력 있는 캐릭터브랜드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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