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라! 다단계판매 시장

유통시장이 올해 전면적으로 개방됐다. 몇 년전부터 유통시장 개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많았다. 국내 유통업체들은 나름대로 개방의 파고를 넘기위한 대응책도 마련했다. 올해 몇몇 외국 유통업체들 예를 들어 카르푸나 마크로 등이 국내에 진출했거나 진출을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별다른 반향은 없다. 아직까지는 괜찮은가,외국 유통업체가 국내에 발판을 닦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하는 안도의 한숨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가랑비에 옷젖는 줄 모른다」는 말이 꼭 맞다. 무관심한 사이 우리의 유통시장은 외국업체에 먹히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다단계판매 시장이다.다단계판매에 대해 국내 업체들은 무지하다. 작년 7월 방문판매법이 개정돼 다단계판매가 합법화되기 전까지 피라미드판매라 해서워낙 말들이 많았기에 악덕 상법의 하나쯤으로만 여긴다. 물론 피라미드판매는 말썽이 많았다.우리나라에 다단계판매가 처음 도입된 것은 80년대 후반. 당시에는다단계판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없어 그저 회원을 모아 고가의상품을 안기는 식으로 운영돼 돈 잃고 친구 잃고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이 줄줄이 나왔다. 1백만원이 넘는 자석요를 몇 사람에게 판매하면 수당이 얼마 떨어지니 금방 거부가 되겠거니 하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이 잇달아 피라미드 조직에 들어가 피해를 입었다. 다단계판매로 인해 자살하는 사람까지 나오자 정부는 다단계판매를 전면 금지하려 하기까지 했다.그러다 전세계적으로 붐을 일으키고 있는 다단계판매를 전면 금지시킨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다해서 엄격한 규정을 만들어허용키로 한 것이다.◆ 회원은 판매원이자 소비자그러나 지난해 7월에 있었던 전면 허용조치는 너무 빠르거나 늦었다. 차라리 더 빨리 허용하고 관리 감독을 철저히 했더라면 국내업체들은 부정적 시각없이 다단계판매에 대한 노하우를 습득할 수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좀 더 늦게 허용했어야 했다. 국내 업체들이 다단계판매의 필요성을 인식할 때까지 기다렸어야 했다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지난해 허용조치는 외국의 거대 다단계판매회사의 날개만 달아주는 꼴이 됐다.세계 최대의 다단계판매회사 암웨이사가 지난해 8월부터 올 6월까지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인 돈은 3천억원. 7천억원으로 추정되는 전체 다단계 판매시장의 42.7%에 해당한다. 올4월 다단계 판매시장에뛰어든 풀무원생활의 김명철전무는 『전체 다단계 판매시장의 90∼95%를 외국계 다단계회사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말한다.속을 들여다보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하다. 올 6월초까지 서울 시청에 등록된 다단계판매업체는 80여개. 이중 외국업체는 8개에 불과하다. 8개의 다단계판매업체가 국내 시장의 90% 이상을 점하고 있다는 얘기다.유통시장을 뺏기는 것은 국내 유통업체의 몰락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국내 제조업체에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세제가 주 판매품목인 암웨이는 이미 국내 세제시장의 25%를 점하고 있고 뉴스킨은 영업 2개월만에 국내 화장품 시장의 5%를 차지했다. 『다단계판매의 주요 품목인 건강보조식품은 이미 외국계 회사들이 거의 평정했다』(김명철 풀무원생활 전무)는 말도 전혀 과장이 아니다. 다단계판매를 악덕상법의 하나쯤 혹은 사람을 통해 판매하는 대인판매의 하나쯤으로 여기고 무시하고 있는 사이 외국계 다단계회사들은 다단계시장을 발판으로 국내 유통업체와 제조업체들의 존립을위협하고 있다.다단계판매의 위력이 무서운 것은 회원판매인데다 판매한 만큼의수당이 보장된다는 점에 있다. 회원으로 가입한 이상은 왠만하면다른 회사 제품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사용하면 내 친척이나친구가 돈을 버는데 굳이 다른 제품을 살 이유가 없다. 제품의 질만 좋다면 전혀 사용 제품을 바꿀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단계 판매는 무점포 판매의 꽃회원은 그 회사의 판매원인 동시에 소비자다. 서로 끈끈하게 연결돼 있고 그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돈을 버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다단계 판매회사가 한 번 형성한 시장점유율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매출액도 증가하면 증가했지 좀처럼 후퇴하지는 않는다. 그 회사가 단기간에 한 목 잡고 도망치려는 피라미드회사가 아닌한 그렇다.다단계회사의 파워가 날이 갈수록 공고해지고 강력해지는 것도 그렇기 때문이다. 그만큼 「선점」이 중요하다. 빨리 시장에 뛰어들어 회원을 많이 확보할수록 유리하다. 뒤늦게 시장에 들어와 회원을 뺏어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한번 점령한 시장은 영원하다」는 말은 다단계 판매시장에 가장 적절한 말이다.풀무원 웅진 김정문알로에 세모 등 탄탄한 중견 건강보조식품회사들이 잇달아 다단계판매시장에 진출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그러나국내 업체의 전망은 어둡다. 제품(Products)의 질과 종류, 다단계판매 노하우와 계획(Plan) 전문가(People) 등 3P에서 모두 외국 업체에 뒤진다. 외국업체 제품 종류는 3백∼4백여종이다. 질도 우수하다. 몇십년간의 다단계판매 경험을 통해 쌓은 과학적인 판매기법을 갖추고 있고 전문가도 많다. 단기간의 회원확보가 가능하다는말이다. 국내 업체들은 기껏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다단계에관심을 돌리기 시작했을 뿐이다.국내 다단계판매업체 관계자는 다단계판매시장의 속성과 후발업체로서의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비유한다. 『커다란 호수가 있다고합시다. 남들이 먼저 와서 대부분의 고기를 잡아간 뒤에는 아무리좋고 큰 그물이 있으면 무엇합니까. 다단계시장이 꼭그렇습니다.』 미래 유통방식의 가장 큰 특징은 「무점포 판매」다. 컴퓨터 통신기기의 발달과 맞벌이 부부의 증가 등으로 컴퓨터나 TV 우편 카탈로그 또는 아는 사람을 통해 물건을 구입하는 방식이 일반화된다.이 중 다단계 판매는 무점포 판매의 꽃이다. 광고비 물류비 등에서절약한 수익을 소비자이자 판매원인 회원에게 돌린다는 「누이(기업) 좋고 매부(회원) 좋은」 유통방식이라는 매력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다단계기법에 대한 국내 기업의 관심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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