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용품시장 '외제가 외제 부른다'

지하철 2호선 동대문역에서 청계 6가 사거리에 이르는 거리. 바로스포츠에 관한 한 국내 제일의 재래시장인 동대문스포츠상가다. 지난 60년대에 자리잡은 동대문상가는 지금도 야구장과 축구장을 끼고 약 1백여개의 스포츠용품점이 터를 잡고있다. 일년 내내 치러지는 경기 때문에 선수들과 관중, 스포츠를 즐기는 동호인들은 물론 외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그러나 「재래상가」라는 말이 무색하게 진열해 놓은 물건들을 보면 외제일색이다. 물건구색만이 아니다. 소비자들도 외제만을 골라찾는 경향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 업자들의 말이다.◆ 나이키 아디다스 리복 ‘빅3’가 판친다테니스용구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한아름스포츠의 김해운과장(35)은외제스포츠용구의 시장잠식에 대해 『동대문상가에서 거래되는 전체 스포츠용품의 평균 60%정도를 외제가 차지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분석했다. 그나마 테니스 등과 같이 국산스포츠용구의 질이조금 나은 종목이 그 정도고 스키나 골프의 경우 약 80%이상을 외제가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김과장의 덧붙인 설명이다.「국기」라고 불리는 축구나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붐을 타고있는 농구, 매년 관중이 급증하고 있는 프로야구 등 인기스포츠도 용구에 있어서는 외제가 판을 치고 있다. 『월드컵유치로축구바람이 불었어도 국산 낫소축구화보다 2만원정도 비싼 독일제율스포트축구화나 아디다스 축구공이 잘 팔리고 있으며 농구붐을타고 팽창된 농구공시장도 국산 스타농구공에서 미국산 스팔딩으로주도권이 넘어갔다』는 게 (주)스포필즈 동대문전시관이종필씨(50)의 말이다.대중스포츠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배드민턴 볼링 등도 예외는 아니다. 볼링공의 경우 수모 오메가 콜럼비아 등 외국산이 주름을 잡고 있다. 국산은 볼링공을 포함한 세트가 8~10만원정도. 하지만 외국산은 볼링공 하나만도 11만~15만원정도로 고가다. 그래도 『파워나 회전 등에서 뛰어나 외국산을 찾는 사람들이 3~4배정도 더 많다』는 것이 청마스포츠 홍병기대리의 설명이다. 가장 많은 동호인을갖고있는 배드민턴도 라켓시장을 일제 요넥스가 장악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배드민턴선수인 박주봉선수와 계약을 맺고 생산해내는국산 「JB」브랜드의 배드민턴용구도 있지만 아직 찾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 홍대리의 덧붙인 말이다.재래상가만이 아니다. 백화점 스포츠용품매장도 외제가 판을 장악하고 있다. 『항상 인파로 붐비는 이른바 나이키 아디다스 리복등세계 스포츠용구업계의 「빅 3」가 포진한 매장에 비해 국내업체들의 매장은 고객이 없어 초라해 보일 때도 있다』는 것이 G백화점한 직원의 말이다. 제품구매력이 높은 청소년들이 『신발이나 공라켓 등의 경우 국산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비단 소비자 뿐만이 아니다. 어린 운동선수들도 국산을 외면하고있다. 『국산야구용품들은 글러브의 가죽이 해지거나 배트에 금이가는 등 이상이 금방 생겨 별로 사용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시합차 상경한 전북 군산 남중의 장영민(3년)군 등 선수단의 이구동성이다. 이들은 미래에도 야구용품을 구입할 가능성이 큰 고객이다.프로무대에서 뛸 선수도 나올 것이다. 경기장면은 TV로 중계될 것이고 시청자들은 그들이 사용하는 용품들을 보게될 것이다. 10대때부터 길들여진 외제스포츠용품이 하루아침에 바뀔 리는 없다. 그리고 방송에 자주 나오는 브랜드를 소비자가 선택할 확률은 더욱높다.◆ 마케팅 부족으로 ‘자승자박’ 상태이러한 외제 스포츠용품의 시장장악에 대해 업자나 소비자들의 배경설명은 간단하다. 품질이 다르다는 것이다. 국산과 비교해 외국산은 재질이 틀린데다 수명도 길다는 것이 업자들의 일치된 말이다. 게다가 같은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끼리는 대개 용구선택이비슷해지는 경향이 있어 먼저 사용해본 사람들의 품질에 대한 평이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제품선택에 중요한 몫을 한다는 것이 업자들의 설명이다.그러나 근본적인 문제인 품질개선은 제조업체의 기술개발을 통해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하지만 「보다 중요한 사항」에 있어 국내스포츠용구업체들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업자들 사이에 심각하게거론되고 있다. 바로 제품판촉을 위한 노력 즉 마케팅능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주)일인상사 스포츠사업부의신길남영업과장(33)은 『외국업체들에 비해 국내업체들의 마케팅이절대적으로 부족한데다 스포츠캐릭터를 이용한 마케팅도 성의가 없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신과장은 예로 지난 바르셀로나올림픽때 마라톤에서 우승한 황영조선수를 들었다. 국내 굴지의 종합스포츠용구업체인 코오롱소속이었지만 코오롱에서 만드는 액티브신발을위해 CF 한 편 찍어 방송에 내보낸 것이 전부였다. 마이클 조단과샤킬 오닐이라는 미국 프로농구(NBA)의 스타플레이어를 각각 스포츠캐릭터로 사용한 조단(나이키)이나 샤크(리복) 농구화의 경우 값이 9만3천원씩이나 하는 고가의 운동화다. 그래도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그러나 황영조를 캐릭터로 삼아 세계로 진출할 좋은 계기였음에도 코오롱은 스포츠마케팅을 제대로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내업체들이 살아남으려면 무분별한 외국산 수입이나 가격경쟁 등과 같은 「제살 깎아먹기」를 멈추고 마케팅이나 광고쪽에서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신과장은 강조했다.스포츠용구제작업체의 조모씨는 NBA의 방송중계나 박찬호의 메이저리그진출 등과 관련해 청소년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있는미국 4대 프로스포츠를 캐릭터로 이용해 국내시장에 쇄도한 스포츠용품을 예로 들면서 『단순히 소비자들이 외제를 선호한다는 생각을 벗어나 우리기업들도 스포츠캐릭터를 마케팅에 제대로 활용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미국 프로스포츠캐릭터를 활용한 것은 NBA를비롯해 NFL(미식축구) MLB(메이저리그야구) NHL(아이스하키) 등이다. NBA상표의 독점판매권을 확보한 (주)빅스포츠는 현재 15개의The NBA Shop이란 매장을 오픈했으며 MLB의 라이선스업체인 (주)캄파리도 전국에 15개의 매장을, NFL의 지사 격인 한국NFL은 10여 곳의 매장을 열었다. 여기에 미국의 생산업체로부터 상품을 직수입해판매하는 「NBA슈퍼스타」(마케팅코리아) 의 대리점까지 가세했다.이들 제품은 청소년들 사이에 관련 스포츠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한 점포에서 월매출 8천만원을 올릴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있다.한아름스포츠의 김과장은 『테니스라켓의 경우 가장 많이 팔리는윌슨 헤드 프린스 등 외국산은 TV에 방송되는 스포츠중계나 광고를보고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국산은 찾아보기 어렵지 않느냐』며 마케팅능력에 회의감을 표시했다. 국내업체들의 자승자박이라는뜻이다.한때 수출입국의 효자역할을 톡톡히 했던 스포츠화를 비롯한 국산스포츠용품업계. 품질과 마케팅에서의 빈약함으로 점차 국내시장에서 설자리를 뺏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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