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과외비 4조6000억원

서울 중곡동에 사는 주부 정모씨(40)는 요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뒤 서둘러 요리학원으로 간다. 그가 요리학원에 다니는 것은 가족들에게 맛있는 식단을 제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요리사 자격증을따 아이들의 과외비를 조금이라도 충당하기 위해서다.고1(남),중2(여) 두 자녀를 두고 있는 그가 과외비로 지출하는 비용은 60여만원. 여기에 학교납부금과 교재비 등을 합치면 한달 평균 1백여만원이 아이들 교육비로 들어간다. 그동안 그는 파출부로 일하며 아이들 과외비등 교육비를 마련해왔다.그러나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 2년 뒤 큰아이가 고3이 되고 둘째가고1이 될 때는 카센터를 운영하는 남편의 수입(월평균2백여만원)으로는 도저히 아이들 과외비를 댈수 없는 상황이 된다.그래서 그는 고민 끝에 요리사자격증을 따기로 결심하고 3개월째열심히 다니고 있다. 정씨는『요리사 자격증이 있으면 각종 연회에음식을 마련해주고 월 1백여만원의 수입은 올릴 수 있다』면서 아이들 과외비라도 벌기위해 자격증을 따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과외비, 중산층 가계지출 최우선순위 차지자녀들 과외비 마련을 위해 부업전선에 나서고 있는 경우는 비단정씨만이 아니다. 중산층이하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자녀과외비가가계지출의 최우선 순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로인한 경제적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학부모들의 허리를 휘게 하는 이같은 과외비등 교육비지출실태는 제일제당사보가 올 3월 전국 주부 1천명을대상으로 조사, 발표한 자료를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이 조사에따르면 75%의 학부모가 자녀들에게 과외를 시키고 있다. 학부모4명중 3명이 과외를 시키고 있는 셈이다.자녀 1인당 들어가는 과외비는 유치원을 다니는 경우 월평균10만5천원, 국민학교 1학년인 경우 9만5천원, 중학교 1학년인 경우14만1천원, 고등학교 1학년인 경우 18만5천원 등으로 나타났다. 한자녀당 평균과외비는 13만1천원으로 조사대상가정의월평균수입(1백65만원)의 7.9%를 차지했다. 한 가정당 평균 2자녀가 있을 경우 15.8%가 과외비로 들어가게 된다.전체 국민들이 1년에 지출하고 있는 과외비는 약 4조6천9백억원으로 추산되고있다.(대우경제연구소 조사추정치)이같은 과외비지출은 가계주름살을 깊이 파이게 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지난해 여론조사기관인 극동조사연구소가 실시한 조사에서74.7%가 과외비가 가계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응답했으며 25.3%는별로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몇가지 조사자료를 놓고 볼 때 지금 우리나라는 과외열병을 앓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과외열병이 가라앉기는 커녕앞으로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망국적 과열열병을 잡기 위한 교육개혁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단행됐으나 그때마다 신종과외는 어김없이 생겼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수 없는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높은 교육열이 이런 악순환을 되풀이하게 하고 있는 요인이다.제도적으로 흡수하지 못하고 겉도는 정부의 정책은 이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문민정부 들어서도 이런 현상은 이어지고 있다.본고사가 폐지되고논술시험에 대한 비중이 높아지자 이에 대비해 고액의 과외가 생겼으며 5세조기입학이 거론되면서 급기야 과외열기는 유아들에게까지미치고 있는 실정이다.문민정부가 단행한 교육개혁조치이후 가장 대표적인 과외는 고등학생을 대상으로한 고액논술과외. 서울대등 주요 명문대학들이 입시에서 본고사를 폐지하는 대신 논술비중을 높이면서 생겨난 과외로서울 강남일대에서 성행하고 있다. 논술과외에는 석박사과정의 대학강사, 작가, 현직교사들이 짭짤한 부수입을 노려 뛰어들고 있는데 한달 과외비는 대략 1백만원선이다. 전현직 교사가 하는 속칭족집게논술과외의 경우 그 액수는 더 커진다. 대략 2백만원선이라는 것이 학원가 주변의 이야기다. 이와함께 서울강남, 경기도분당등 신도시 주변에는 논술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소규모 학원도생겨 성업중인데 이들 학원들은 팩시밀리나 PC를 이용, 논술과외를하고 있다. 매주 한 주제를 선정, 팩시밀리 등을 통해 답안을 받은뒤 이를 교정해 보내주는 방법으로 학생 1인당 한달에 10만~15만원을 받고 있다.◆ 일부 부유층 영어 예체능과외 외국행!한과목당 최고 수강료가 50만원 정도인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입시과외는 이미 보편화돼 있다. 국·영·수 세과목을 중심으로 한이같은 입시과외는 대부분 속셈학원, 외국어학원 등에서 불법으로이뤄지고 있는데 수강료는 과목당 10만~20만원선으로 알려졌다. 이들 학원들은 10여명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1시까지 심야과외를 하는 것이 특색이다.이와함께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조기 영어과외붐도 문민정부 교육개혁조치이후 나타난 신풍속도이다.지난해부터 일부 초등학교에서 학교장의 재량으로 영어교육이 시범적으로실시되고 내년부터는 3~6학년에 영어가 정규교과목으로 채택되는것을 계기로 나타난 현상이다. 조기영어과외는 아파트밀집지역에서그룹단위로 이뤄지고 있는데 1인당 과외비는 10만원안팎으로 주로대학생들이 강사로 뛰고 있다. 서울 상계동에 거주하는 주부 김모씨(35)는 『올 1월부터 초등학교 2년인 아들에게 영어 그룹과외를시키고 있다』면서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지면 어쩌나하는 조바심에서 시키게됐다고 말했다.이같은 과외열병은 국내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지난 90년 이후 일부고소득층 학부모들은 아예 자녀들을 친인척이 거주하는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으로 내보내 현지에서 영어나 예체능과외를 시키고 있다.지난해말 뉴질랜드를 다녀온 회사원 강모씨(45)는『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현지 친척집에 머물며 영어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상당수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일부교포들은 엄청난 과외비부담을 못이겨 이민을 온 경우도 있었다고 실상을 전했다. 망국적인 과외열병은 이제 국내에서 해외로까지 번진 셈이다.현재 정부는 학부모들의 허리를 휘게하는 과외를 근절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해 발표한 교육개혁안에는 그런정부의지가 반영돼 있다. 올들어서는 당정일각에서 교내과외실시방안도 적극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당사자인 학부모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공교육이 올바로 자리매김되지 않고, 학력중시의 사회풍토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한 과외근절은 힘들기 때문이다. 교육개혁은 바로 공교육정상화를 통한 과외없는 세상만들기에서부터시작되기를 학부모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