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 이끄는 통상전문가 되겠다"

「전문지식과 노련한 협상, 두둑한 배짱과 끈질긴 승부욕, 국가와민족을 위하는 애국애족의식…」.장금영 사무관(28·통산부 다자협력과)이 제시하는 통상전문가가갖춰야 할 자질이다. 으레 따라붙을 것으로 예상되는외국어(영어)구사능력은 들어가 있지 않다. 『영어는 물론 중요하다. 통상협상이 모두 영어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어는 매일 읽고 쓰고 말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통상협상에 임하는 자세』라는 그의 설명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그의 이런 생각은 지난 6월 4일 제네바에서 열린정부조달위원회(WTO산하)에 참석하고 난 뒤 더욱 확고해졌다. 『난생 처음으로 국제회의에 참석했는데 영어가 안들려 황당했다. 그전에는 영어가 부족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더욱 놀란 것은 상대방들의 협상의제에 대한 실력이었다. 사전에충분히 준비했는데도 미국이나 EU(유럽연합) 국가들이 제시하는 새로운 이슈들에 대해서는 그때그때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웠다』고털어놓는다.◆ 전문성이 통상외교 좌우한다장 사무관은 아직 새내기 통상전문가다. 스스로는 전문가라는 말에쑥스러워할 정도다. 통상업무를 맡은지 3개월밖에 안됐기 때문이다. 장 사무관의 전직장은 국가보훈처. 지난 91년말 행정고시(35회)에 합격한 뒤 1년간의 교육을 거쳐 93년에 맡은 보직이다.통상외교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던 그가 변신하게 된 것은 여성 통상전문가를 양성한다는 통산부의 방침에 따른 것. 통산부는「여성들이 부드러운 이미지로 통상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며 지난해말부터 전부처를 대상으로 여성사무관을 「공채」했다.이에따라 유명희(35회, WTO담당관실) 서정원(36회, 지역협력과)사무관등 3명이 통상전문가로 인생항로를 바꿨다. 유사무관은 총무처에서, 서사무관은 정무제2장관실에서. 장 사무관은 그중의 한사람이다.『경제전쟁시대에 국가이익을 다루는 업무를 하고 싶었다. 경제에관심은 있었으나 경제부처에서 근무한다는 생각을 못했었는데 통산부의 제의를 받고 흔쾌히 결심을 내렸다.』 장 사무관은 마치 통상전문가로의 길을 걷기 위해 태어났다는 듯이 변신을 한마디로 정리한다. 전공이 경제는 아니지만 외교(연세대 정외과)인지라 이제서야 제길을 찾았다는 주위의 말을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틀에 박힌 일보다는 항상 변하는 업무를 적극적으로 하는게 성격에 맞는다』는 그는 『많은 기대를 갖고 출발하는 만큼 열심히 해서 개인은물론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다.그는 새로 발을 들여놓은 길을 제대로 걸어가기 위해 30년 가까이함께 지내던 부모님과 「생이별」하는 아픔까지 감수했다. 3시간이넘게 걸리는 출퇴근 시간을 아끼려고 최근 청사 옆에 있는 독신자아파트로 분가했다. 『업무가 매일 밤 10시가 넘어야 끝나는데다일이 있을 때는 새벽 1시까지 이어지는 야근에 긴 출퇴근은 견디기힘들었기 때문』이란다.국가보훈처에 있을 때 공보관실에 근무해서 야근에는 어느정도 익숙했으나 통산부의 일이 너무 많다는 것에 놀랐다는 말도 덧붙인다. 통산부로 옮기고 나서야 「과천청사에 불이 꺼지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됐다는 얘기도 털어놓는다.그의 이런 야무진 결심은 새내기에 어울리지 않는 확고한통상관(觀)을 갖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 『한국 통상외교의 가장큰 문제는 전문성이 부족하고 일원적 체계가 없는 것』이라고 진단할 정도다. 「순환보직」의 원칙에 따라 제너럴리스트만 양성하는현재의 행정풍토로는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통상업무는 업무자체가 어렵고 전문성이 요하는 생소한 분야다. 깊이 있는 지식을 많이 갖는게 필수적이다. 특정 상대국과만 협상하는 쌍무협상과여러나라가 함께 협상에 참여하는 다자간 협상도 성격이 다르다.다자간 협상에는 학자와 같은 연구하는 분위기가 요청된다.통상업무를 제대로 알려면 최소한 2~3년은 걸려야 하는데 뭔가 맛을 알정도가 되면 담당자가 바뀌어 버린다. 이런 전문성 부족이 미국이나 EU 등 선진국과의 통상협상에서 항상 당하는 직접적 원인이라는설명이다.또 통상업무가 재정경제원 외무부 통상산업부 농수산부등 관계부처에 분산돼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부처이기주의」라고도할 수 있는 부처간 싸움으로 인력과 정력낭비가 심하고 효율적인대응이 불가능하다는 것.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것 하나를 가지고도외무부와 티격태격하는 현실로는 밀려오는 통상파고를 견뎌내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의 무역대표부(USTR)처럼 한국무역대표부(KTR)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해본다. 『아직 잘 모른다』는전제를 달고서도 『주요 공격대상이 된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효율적인 업무처리로 얻을 수 있는 장점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는 자신이 누구와 비교되는 것을 거부한다. 국내외 통상전문가중「모델」로 삼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맡은 일을철저히 처리하는 선배들을 본받아 능력있고 열심히 하는 통상전문가가 되겠다』고 답한다. 『칼라 힐스나 낸시 애덤스 등 인구에 회자되는 사람들은 직접 대면하지 못해 뭐라고 말할 단계가 아니다』라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지만 자신이 누구에게 견주어진다는 것에대한 거부의 몸짓이기도 하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말이기도 한셈이다.◆ 출퇴근 시간 아끼려 부모와 생이별장 사무관은 지난 68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올해 29살(만으로는28)이다. 아직 미혼이다. 주위의 친구들이나 동료들은 거의 배필을찾았다. 그도 결혼을 하고 싶단다.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 너무 바빠 결혼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짬이 나면 그동안 못봤던 영화를 보고 한적한 시골길로 드라이브를 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만갖고 있을 뿐이다. 또 해외 유학이나 국제기구에서 근무해 보고 싶은 희망도 있다. 밖에 나가봐야 영어사용도 부드러워지고 국제적매너등도 배울수 있어 보다 매끄러운 통상업무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다.그가 대학에 들어간 것은 지난 87년. 5공화국 말기의 「어려운」때였다. 고시공부를 시작하자 「개인적 출세를 위해 안이한 곳으로도피한다」는 말을 듣고 갈등도 많이 했단다. 이런 갈등이 그를 통상전문가라는 가시밭길로 내몰고 있는 것일까. 『긍지와 자부심을갖고 사회와 모두에게 도움이 되도록 열심히 산다』는 인생관을 담담하게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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