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ㆍ일ㆍEU 등과 당당히 어깨 겨룬다

세계 조선산업은 단일 시장으로서 수출에 대한 장벽이 거의 없다.때문에 수출 드라이브 정책에 의존해왔던 한국에는 더 없이 적격인산업이다.한국의 조선업이 본격 시작된 것은 그다지 오래전이 아니다. 70년대초부터 본격궤도에 오른 것으로 간주하면 이제 겨우 2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지난 40여년간세계 조선업계를 주름잡고 있는 일본과 세계 시장에서 당당히 경쟁하고 있으며, 세계 조선시장의 안정적 성장과 질서유지를 위한 협상 모임인 OECD WP6 자리에 미국 일본 유럽연합과 어깨를 나란히하고 있을 정도로 급성장했다.조선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인력은 96년 현재 6만여명이나 관련산업의 고용유발 효과를 감안한다면 10만명을 훨씬 상회한다. 비단 외형적인 측면 뿐 아니라 기술력과 시설능력면에서도 한국의 조선업은 세계적 수준에 진입해 있다. 조선시장에서 가장 부가가치가 크며 높은 수준의 각종 기술들을 갖춰야 만들 수 있는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도 이미 국내 조선소에서 건조 운항되고있으며 그밖에 우리나라에서 필요한 선박은 전부 국내에서 제작되고 있다.국민경제 기여도면에서 볼 때 조선산업은 제조업 전체 고용인원2백96만5천명 가운데 2.2%(94년 기준)에 지나지않는 6만5천명에 불과하지만 수출은 49억5천만 달러로 5.2%를 차지하고 있으며 부가가치율은 32.9%에 이르고 있어 철강(25.6%) 자동차(22.1%) 등 보다훨씬 높다. 또 한국은 81년 건조량 기준으로 세계 2위에 오른 이래매년 급성장을 거듭, 지난해에는 26.3%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수주물량 부족·저선가 문제 풀어 나가야그동안 숨가쁘게 성장 가도를 달려온 조선 산업이지만 현재 세계조선 시장의 호황국면이 지연되고 있을 뿐 아니라 선가마저 바닥으로 내려가 있는 수준이어서 조선업계 일각에서는 우려를 나타내고있다. 최근 2년간 세계 수주량은 2천5백만 GT를 넘었으나 96년도6월까지는 약 1천만 GT 내외로 추정되며 현재의 추세라면 연간으로는 4년만에 2천만 GT 이하로 떨어질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상황이다. 선가도 5년전에 비해 80% 수준으로 하락해 근래 최악의 시황으로 평가되고 있다.이에 따라 엔고의 역경에서 경쟁력 확보 방법을 터득한 일본에 비해 경쟁력이 뒤지고 있는 한국의 조선산업은 현재 수주물량이 부족함은 물론 저선가로 인해 경영상 큰 애로가 예상되고 있다. 95년도수주량을 보면 엔고 상황이었던 전반기에는 일본이 2백97만 GT,한국은 3백88만 GT였으나 후반기 들어 일본 5백94만 GT, 한국3백88만 GT, 96년 1/4분기 들어서는 일본 2백24만 GT, 한국1백18만 GT로 그 어려움이 현실화되고 있다.하지만 이 불황의 터널만 지나면 상황은 곧 반전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세계전문기관에서 예측하는 향후 10년간의 신조선 건조 수요 전망은 연평균 2천2백~2천3백만 GT로 대체 수요를 중심으로 꾸준한 건조수요의 증가가 기대되고 있다.어떤 산업이든 가장 강한 경쟁력은 경기변동에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조선산업도 마찬가지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가지 숙명적인 과제를 조선산업은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먼저 일본과의 경쟁이다. 시설 규모 등 양적인 측면에서 세계 30%이상을 점하고 있는 수출 중심의 한국 조선 산업과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일본은 세계 시장에서 필연적으로 맞부딪칠 수밖에 없다.세계 조선 시장의 상시 규모는 연간 2천만톤 가량이다. 그러나 일정수준을 상회하는 발주량이 항상 있다면 2위나 3위의 경쟁력을 갖고 있어도 여분의 물량을 수주함으로써 산업은 유지할 수 있겠으나불행하게도 조선시장의 현실은 그렇질 못해 불황국면이 항상 있게마련인 것이다. 극심한 불황기에 처해있는 지금 2위권 이하의 경쟁력을 가진 조선소나 국가는 이 불황기를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는지의 여부가 생존의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이와 함께 외환 변동에 따른 경영 기반의 안정성 여부도 중요한 과제다. 수출선 비중이 높고 외화가득률이 높은 한국의 조선산업은대미 달러 환율에 민감하다. 원화가치가 높게 평가될수록 경영압박원인이 된다. 또한 일본과의 경쟁 관계로 인해 엔화 대비 원화 가치가 높게 평가되면 가격경쟁력 상실의 큰 원인이 되는 등 「외풍」에 커다란 영향을 받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 볼 때 대미 달러환율 8백50원, 엔화는 1백10엔이 한계점인 것 으로 판단되고 있다.지난 몇 년간 임금 상승률이 높아지면서 조선 산업에서의 원가 구성비가 30%선까지 도달한 것도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할 부분이다.원가 대비 인건비 비율 30%는 조선산업 국제경쟁력의 한계선으로통용되는 수준이다. 인건비가 10% 상승하면 선박 건조원가는 3% 상승해 가격경쟁력에 그대로 부담을 주게 되는 것이다. 95년말 현재한국 조선 산업의 연간 평균임금은 간접비 포함해 3천만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어 생산성 향상이 절실히 요망되고 있다.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술 개발이다. 생산성 향상의 열쇠도 기술개발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조선 CIMS(컴퓨터통합생산시스템), CALS, 초고속 대형화물선, 원자력선 등 우리 힘으로개발해 내야할 고기술·고부가가치 선박이 산적해 있으며 이를 해결할 연구기관이나 연구자금의 확보도 시급한 상황이다.◆ 초고속 고부가가치 선박 기술개발이 열쇠정부와 일반인의 조선산업 육성에 대한 인식도 달라져야한다. 가까운 예로 일본의 조선산업은 국가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우선 중앙정부의 운수성, 해상기술안전국이라는 국가 단위의 행정조직을 위시해 각 지방 행정조직 뿐 아니라 방위청까지도 연결돼 조선산업을지도, 지원하고 있다. 또 각종 산업정책 수립에 민간·산업계의 의견을 합리적으로 수렴, 반영하는 체계도 제도적으로 갖추고 있다.산업계의 각종 민간 협동 조직들도 체계적·조직적으로 운영되고있다. 가령 모터보트 경주대회의 수익금은 기술개발 지원 등의 형식을 통해 일본 조선산업에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으며상사 금융 등 조건이 우수한 산업금융과 연간 약 5백만t에 이르는내수선박 시장 역시 일본 조선산업의 믿음직한 기반이다. 그러나무엇보다 일본의 미래를 뒷받쳐주고 있는 것은 운수성, 선박기술연구소 등 수많은 공공연구기관과 각 조선소 연구소의 활발한 R&D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이에 반해 한국의 후방 지원체계는 실망스런 수준에 가깝다. 행정조직으로 통상산업부 조선과가 자동차조선과로 통합되어 없어졌고그 이전에 정부출연연구소로 있었던 해사기술연구소가 한국기계연구원으로 흡수되어 없어진 바 있다. 조선소들의 회비로 운영되고있는 사업자 단체인 한국조선공업협회와 조선공업협동조합, 기자재공업협동조합 등이 민간 조직 정도이며 빈약한 내수기반에 좋지못한 계획조선 제도, 연불수출금융제도 등이 한국조선산업의 후방지원체제의 현주소인 것이다.그럼에도 한국조선산업의 전망은 결코 어둡지 않다. 엄청나게 투자되어 있는 시설과 값진 경험, 그리고 세계 어디에도 없는 수많은인력이라는 큰 자산을 갖고 있으며 이는 한국의 조선산업을 지탱발전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조선산업은 바다가 있는 한 꾸준히 존재하는 산업으로서, 이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활용한다면 한국의 조선업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해양산업의 전초기지 역할을 할 것이 틀림없다.김정호·한국조선공업협회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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