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골퍼 뒤에 프로캐디 있다'

『1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고 장거리 이동때엔 일등석을 타고 다닌다. 기업체 광고에 출연하고 벌어들이는 수입은 연봉을 훨씬 상회한다.』국내 정상급 프로골퍼들의 얘기가 아니다. 세계 최정상급의 골퍼닉 프라이스와 7년간 호흡을 맞춰 온 캐디(경기보조원) 「제프 메들리」의 얘기다. 그는 지난해 캐나다의 골프전문잡지인지가 세계 최고의 캐디로 선정한 인물이기도 하다.닉 프라이스와 호흡을 맞춰 브리티시오픈 PGA선수권 등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을 일구기도 했다. 그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91년 PGA선수권에서 존 데일리를 우승으로 이끌어 내면서였다. 존 데일리는 당시 본선 진출에 실패했으나 닉 프라이스가 갑작스런 복통으로 진출하지 못하는 바람에 대타출전의 기회를 얻었고메들리는 데일리와 한 조를 이뤘던 것. 우승후 존 데일리의 말이걸작이었다. 『그가 지시하는 대로 쳤다.』 데일리는 자신의 캐디였던 제프 메들리에게 수훈을 돌려 그의 주가를 결정적으로 높여줬다.골프시합에서 캐디의 중요성과 역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하겠다. 불행하게도 국내에서 이를 기대하기는 시기상조다. 「스포츠맨십」보다는 골프를 친다는 「상징성」을 더 중시하는 우리 현실에서는 당분간 먼나라 얘기로만 부러워 할 수밖에 없다.6월말 현재 국내 골프장은 모두 83개.여기서 근무하는 캐디는1만2천여명이다. 캐디는 보통 캐디학원에서 3개월 정도 골프이론에대해서 배우고 간단한 면접시험을 거친후 각 골프장에 배치된다.◆ 내장객81% 캐디필요 노련한 캐디 절실서울 근교에 자리잡고 있는 N골프장. 올해로 개장 30주년을 맞은국내 정상급의 골프장이다. 이곳에는 정식으로 등록된 1백여명과주말과 일요일에만 근무하는 70여명 등 모두 1백70여명의 캐디가근무하고 있다.이들중 최고참이 18년 경력의 Y씨(36). 고 박정희대통령을 비롯해서 국내의 내로라 하는 정재계 인사들의 플레이를옆에서 지켜봤다. 2홀만 돌면 손님의 성격과 버릇까지 파악할 정도로 이력도 붙었다.하지만 경력만큼 특별히 수입이 많은 것은 아니다. 갓 들어온 후배들과 동일한 선상에서 일한다. 고정급여가 없고 골퍼를 따라 필드에 나가야만 수입을 있기 때문이다. 평균 5시간 걸리는 18홀을 돌고 받는 캐디피가 주된 수입원이다. 캐디피는 골프백을 하나(Onebag) 끌고 갈 경우 3만원, 두개(Two bag)일 경우 5만원으로 공시되어 왔으나 보통 1∼2만원씩 더 받는다. 봄 가을 한창 내장객이 많을 경우 한달에 1백20만원까지 수입을 올린다. 반면 장마시즌이나한겨울일 때는 30만원대까지 떨어진다. 매일 7km가 넘는 거리를30kg 나가는 골프가방을 끌고 가는 일에 비해서 결코 수입이 많은편은 아니라고 말한다. 안정된 수입원도 없고 관절염과 위궤양 등직업병만 얻었다고 불평한다.하지만 경제적 육체적 어려움보다 인격적으로 무시당하는 경우가제일 서럽다. Y씨는 『보통 4인1조나 3인1조로 내기시합을 하다가시합이 안되면 캐디들에게 욕설을 하거나 심지어 골프채를 집어 던지는 경우가 있다』며 『특히 일부 고위층이나 졸부들이 권위의식이 강해서인지 캐디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소연한다. 그나마 기업가들이 제일 캐디의 심정을 이해해 주는 편이라고 얘기한다.또한 「스코어를 변조해달라」 「공을 발로 차서 치기 좋은데로 옮겨달라」는 등 양심을 속이는 행위를 요구할 때 『저런 사람들도골프를 치는가』라는 회의를 느낄 때도 많다고 한다.그렇다고 캐디들에게 괴로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손님과 호흡이잘 맞거나 고위인사들의 경기를 도와줄 경우 그 기억은 오래 간다고 말한다. 특히 대통령이나 재벌총수들과 함께 골프장을 돌 경우추억은 오래 남는다. N골프장 캐디중 제일 연장자인 J씨(39)가 들려주는 경기장면 한토막. 박 대통령이 나오는 날이면 서너시간전에수백명의 경호실 요원과 경찰들이 골프장을 물샐틈 없이 경비를 섰다. 그런 분위기에서 대통령과 필드에 나가면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의 실수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니 그런 기분도 잠시. 입술이 바싹 마르고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긴장이 된다. J씨는 당시 대통령을 모시기 위해서는 청와대 관할경찰서골프장의 신원조회를 통과해야 했고 6개월마다 청와대에서 신원조회를 나오곤 했다고 들려준다.프로경기에 나가 좋은 성적을 내는 것도 캐디로서의 긍지를 느끼게한다. 아마추어들과는 달리 캐디경험과 골프이론을 실전에 적용할수 있어 직업적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물론 프로경기인 만큼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된다. J씨는 서울여자오픈, 한국오픈등 N골프장에서 벌어진 시합에 김승학 최윤수 프로들과 짝을 이뤄참가했다. 시합동안 캐디와 프로골퍼는 일심동체가 된다. 선수들의성적이 좋을 때는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고 저조할 때는 자기 때문에 그런것같다는 자책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캐디로서 모든것을 한판 승부에 걸 수 있어 강한 스릴을 느낀다고 말한다. 또한프로경기인 만큼 경제적인 보상도 많다. 캐디피가 많아 지는 것은물론이고 상금도 기대할 수 있다. 통상 등위권에 들면 상금의10%는 캐디한테 주는 것이 골프계의 관행.◆ 음담패설·인격무시 삼가야골퍼들이 홀인원이나 이글을 많이 잡아 좋아할 때도 보람을 느끼는경우다. J씨는 지난해 5월 앞팀이 경기를 포기할 정도로 비가 많이내린날 필드에 나갔다. 「글을 쓰는 분들」로 구성된 이팀은 폭우에도 불구하고 18홀까지 강행하기로 작정했다. 이들 손님중 한명이1백60m 15번홀(파3)에서 티샷한 공이 그대로 홀컵에 빨려 들어갔다. 홀인원시킨 손님은 말할 것도 없고 J씨 역시 캐디생활중 첫홀인원이라 마치 자신이 한 것처럼 기뻤다. 그는 손님이 한턱쓰는 덕에 30만원을 캐디피로 받았다. 오후에도 한번 더 필드에 나가서 모두 37만원을 벌 수 있었다고 한다. 캐디생활 15년만에 하루수입으로 번 최고액수였다.내장객들의 81%가 캐디들을 필요로 하고 거리나 라이를 정확하게봐 주는 노련한 캐디는 더더욱 절실하다(60%)는 한 골프장의 여론조사에도 불구하고 캐디는 점차 3D업종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작업강도와 근무시간에 비해서 대우가 못 따라오기 때문이다. 특히 캐디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불만중 하나가 경력을 인정받지못하는 점. Y씨는 6년 정도 경력을 쌓으면 『경사도나 잔디높이 그리고 바람의 세기 등을 고려해서 몇번 채로 어떻게 치라고 조언할능력이 생긴다』며 『고객들에 대해 차등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이에 걸맞는 대가가 없어 안타깝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신참캐디와 10년 이상의 경력자가 보조할 경우 같은 골퍼라도 18홀에서만 6~7타 정도 차이가 난다고 주장한다.이밖에도 퇴직금이 전혀 없는 것과 매일 7Km 이상을 걸어야 하는부담 등으로 캐디의 매력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젊은 캐디들의 모습은 골프장에서 점점 더 찾아보기 힘들다. 한때 동남아에서 캐디를 수입하자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근무환경이 열악한것도 있지만 인격적 모욕까지 감내하면서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신세대의 생활방식도 크게 작용한다.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결혼 등으로 그만둔 경력자를 다시 채용하기도 한다. J씨도 결혼으로 그만둔지 5년만에 다시 캐디생활을 시작했다. 중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의 교육비라도 벌고자 다시 나왔다고 한다.노골적인 음담패설과 캐디의 인격을 무시하는 손님들을 제일 경멸한다는 Y씨는 『골프를 치는 분들 자체가 공무원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 의사 기업가 등 특정직업에 종사하면서 캐디는 직업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자주 본다』며 하루빨리 이런「속물의식」이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피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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