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책 홍수속 '목마름은 여전'

경남울산에 공장을 두고있는 트리메탈코리아의 조창섭사장(51)은요즘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그간 전량 수입에 의존해오던 트리메탈을 3년여동안 각고의 노력끝에 국산화했지만 판매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아서이다.94년 12월 국내에서 최초로 개발된 컬러TV브라운관의 핵심소재인트리메탈은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은 제품이다.신기술(NT)마크와 우수품질인 EM마크를 획득한데 이어 지난 5월자본재산업육성 3백11개 전략품목으로까지 선정됐다.문제는 외국제 트리메탈에 길들여진 국내대기업들이 국산품구입을꺼리고 있는데서 비롯된다. 외제품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는데도불구, 국내 대기업들의 뿌리깊은 외제선호로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신기술마크나 우수품질마크 등을 획득한 품목에 대해서는 정부공공조달기관에서 우선 구매토록 하거나 수의계약등을 통해 수혜토록하는 내용의 법령이 시행되고 있으나 트리메탈은 이의 혜택을 받을수도 없는 형편이다.◆ 판매난·기술부족난·환경규제등 산재실수요자가 TV세트를 만드는 가전업체이기 때문이다.이로 인해 조사장은 막대한 연구개발자금과 고가의 첨단장비도입자금을 투입하고도 전체생산능력의 절반도 안되는 판매량 때문에 예상외로 고전을 면치못하고 있는 실정이다.『막대한 돈을 들여 성능이 뛰어난 신제품을 애써 개발해봐야 수요자가 써주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기술개발에 마음놓고 전념하겠습니까.』조사장은 『중소기업이 자생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길은정부투자기관이나 대기업 등에서 중소기업의 신개발품을 신속히 채택해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트리메탈코리아의 이같은 예는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처해있는 어려운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올들어 중소기업청이 개청되고 각종 중소기업지원시책이 쏟아지고있지만 「중소기업의 난국」은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있다.게다가 최근의 경기침체 상황이 올하반기에는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돼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사실 중소기업이 어렵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자금난과 경영악화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중소기업사장들이 정부의 지원시책을 비웃듯 속출하고 있다.지난 6월만 해도 발전기부품업체인 대세의 안정호사장, 인천 커튼염색업체의 안삼윤사장, 용접기제조회사의 김금천사장 등이 잇달아자살했다.「앞길이 너무 암담하고 절망적이다」 「노력해도 더이상 버텨나갈힘이 없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이들의 자살은 현재의 중소기업환경이 얼마나 위험수위에 도달했는가를 입증하고 있다. 중소기업사장들의 잇단 자살은 이제 뉴스거리도 되지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판매난 기술부족난 환경규제등에 시달리고 있는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각종 통계수치에서 나타나고 있다.올들어 5월까지 폐업체수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개 증가한 1백6개업체가 발생됐으며 폐업사유는 판매부진 자금난등의 순이었다.기업은행이 지난3월 전국의 2천8백70개 중소제조업체를 대상으로실시한 「중소기업경영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의 40.4%(복수응답)가 내수부진을 경영상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기협중앙회가 지난 5월 전국의 1천2백4개 중소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1/4분기 중소기업경영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전체의 34.6%가 자금난악화의 주요인으로 판매부진을 들었다.중소기업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중소기업동향과 정책과제」에 따르면 지난 5년동안 우리나라 부도업체의 연평균 증가율은 22.8%로미국의 5.7%, 일본의 8.9%에 비해 매우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이 조사는 또 50인 이상 중소기업의 경우 88~94년 연평균 1.8%씩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어 현재 우리 경제는 중규모 제조업체가건실하게 성장을 지속하기는 커녕 현존하는 중소기업조차도 어려운환경이라고 진단하고 있다.지난달 기협중앙회에서 실시한 중기신문고행사에서도 2백여명의 중소기업인들이 몰려 각종 애로사항을 호소했다.원상희 염화비닐관조합이사장(진안대표)은 『중소기업어음할인이나 융자때 여전히 담보가 필요하고 그나마 중소기업은 연리 14%이하의 돈은 만져볼 수 없다는 얘기를 주위에서 많이 듣는다』면서『예를 들어 거래실적등 업체에 대한 객관적인 평점을 바탕으로 부도가능금액만 담보를 잡고 나머지는 신용대출 또는 어음할인을 해준다든지하는등의 보다 성의있는 은행측 배려가 아쉽다』고 밝힌다.그러면 과연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해소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중기청이 신설된 이후 중기공제사업제도개편, 중기규제완화대책수립, 신용대출확대, 기술담보대출 등 각종 중기지원책이 나오고있지만 대다수 중소기업은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근본적인 치유책이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대다수의 중소기업인과 전문가들은 『정부와 대기업, 중소기업, 국민모두 발상의 대전환이 이뤄져야한다』고 입을 모은다.정부는 신설된 중기청이 중소기업의 애로를 단순히 관계부처에 중개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수 있도록 권한을주어야 하며 대기업 역시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이 「시혜」가 아니라 대기업 자신의 경쟁력강화를 위한 것으로 생각해야 된다는 것.또 중소기업도 「의존」에서 벗어나 급변하는 시장환경에 맞춰 끊임없는 기술개발등 자생력을 갖출수 있도록 스스로 최대한의 노력을 해야한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중론이다.권한이 없다보니 건의하면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자주해 「중기청=검토청」이 아니냐는 지적은 중기청의 신설이 선거를 겨냥한 선심성 정책의 산물이 아니었느냐는 의혹을 제기시키고 있다.진정으로 중소기업이 스스로 일어설수 있도록 도와주는 구조적인지원을 할수있는 기관이 되려면 자금 인력등 중소기업의 애로부문을 실질적으로 해결할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소제조업 공동화현상 우려숭실대의 유동길 중소기업대학원장은 『정부에서 신용대출을 아무리 강조해도 담보위주의 대출관행은 여전하고 꺾기 역시 여전해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가중시키는데 한몫을 하고 있다』고 전제하고『중소기업청에 중기지원과 관련된 실질적인 정책수단을 부여, 제기능을 할 수 있게끔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중소기업연구원의 최동규 연구위원은 『수출 금리 인력등 모든 면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경기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도산율은 높아가고 창업률은 주춤한 현실에 비추어볼때 이대로 가다간 중소제조업의 공동화현상이 우려된다』고 현재의 중소기업환경을 진단한다.그는 이어 『중소기업에 대해 일시적인 지원정책보다는 시장경제체제유지및 발전의 원천으로서 중소기업의 역할을 중시하는 정책철학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보다 중장기적인 중소기업육성정책이대기업이 독점하는 경쟁력집중구조를 완화할 수 있고 나아가 우리경제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중소업계는 앞으로 WTO(세계무역기구)체제 출범및 OECD가입 등에따른 수입자유화와 유통시장개방등에 의해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중소업계는 이에 대비키 위해서는 중기청이 명실상부하게 중소업계를 지원할 수 있는 기관이 될 수 있도록 권한이 강화돼야하며 중소기업이 자생력을 갖출 수 있도록 기업의 활동이 공정한 틀속에서자유롭게 보장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있다.★ 인터뷰 / 노태상 노송가구 회장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의 자금지원도 중요하지만 장인정신을 살려주는 정책이 업계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데 필수적이다. 중소기업인들이 사회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도 장인정신에 대한 일반인들의 존경심이 부족한데 따른 것이다. 프랑스등 선진국에서는베르사이유궁전을 설계한 이를 화폐에 등장시킬 정도로 장인정신을소중히 여긴다.장인정신을 지닌 기업가는 기업을 키우는데 주력하지 않는다. 자신의 솜씨(기술)를 발휘해 훌륭한 제품을 만드는데 모든 노력을 쏟는다. 가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장인정신에 투철한 중소기업인만이고급가구를 만들 수 있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기업을 키우는데는성공했지만 지키질 못해 도산하는 업체를 나는 많이 보아왔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지원이 중소기업의 불행으로 나타났다면 무턱대고펼쳐지는 자금지원등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가구의 경우도 대기업이 성공한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우수 중소기업 제품에 관심을…노송가구도 기업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기업규모를 오히려 축소하고있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가구회사를 찾아봐도 그 규모가 노송가구의 절반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따라서 기업가는 기업의 적정규모를 유지하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정부는 자금력과 마케팅능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이대기업과 떳떳하게 경쟁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는데 앞장서야하고 구체적인 정책을 발굴해야할 것으로 본다.중소기업의 물류비용부담도 심각한 상황이다. 가구업은 원목을 수입하는 업종의 특성상 항구 근처에 있어야한다. 전체 원목의 95%를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모여 있으면 기술력을 향상할수 있는 이점까지 있다. 가구업체에 부품을 납품하는 영세기업들간긴밀한 협력체제도 구축할 수 있다. 지난 17, 8년전 당시 상공부에업종별 공단화를 추진해줄 것을 여러 차례에 걸쳐 요구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당시 정책의 오류가 국내가구업체의 경쟁력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쳤는지 상상할 수 없다. 정책은 때를 놓치면 낭패를보게 마련이다. 정부는 이점을 명심하고 백년대계를 마련한다는 차원에서 중소기업육성책을 마련해야한다. 일본의 오가와 가구단지등은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일본뿐 아니라 대만에도 가구전용단지가 있다.가구에 부과되고 있는 특소세도 결과적으로 중소전문업체의 성장을가로막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가구를 사치성소비재로 보는데관련산업이 제대로 발전할 수 있겠는가. 국내가구업체의 제품생산기술은 세계최고수준이다. 그렇지만 경쟁력은 없다. 원자재에 대한부담이 크고 판매에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있어서이다. 대기업에비해 정보도 턱없이 부족하다. 이같은 상황에서 중소기업들이 대량생산보다 고급제품을 부담없이 생산해 외국제품의 무차별적 수입을 막을 방법은 없는지 재고해봐야한다.다시 말하지만 중소기업청은 일시적인 자금지원보다 업종별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모색해야 더많은 중소기업들에게도움을 줄 수 있다. 고기를 주는 것과 고기잡는 법을 가르쳐주는것중 어떤 것이 지원효과가 크겠는가. 지금까지는 중기시책이 뚜렷한 철학없이 이뤄진 감이 없지 않다. 물론 최근들어 중기청이 설립된이후 중소기업의 판매난을 덜어주기 위한 이벤트행사 등이 있었지만 전체 중소기업으로 효과가 확산되는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것으로 예상된다.무슨 정책이든 일관성있게 밀고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다만 정책을 수립하기전에 충분한 현장답사와 업계의 의견을 들어 신중하게정책을 결정하는 지혜가 절실하다. 더욱이 중소기업정책의 경우 장기적인 안목에서 구조적인 문제를 풀 수 있는 방향이 무엇인지업계와 정부가 곰곰이 생각해봐야할 때이다.소비자들의 의식도 변해야한다. 중소기업들이 우수한 품질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하고 정부와 언론은 이를 위해 노력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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