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지원제 종합 '복용' 만년적자 탈출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을 하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어디서나 「죽는」 소리들이다. 대기업들도 쉽지 않다고 하는 터에 중소기업은말할 필요도 없다. 자금난에 인력난에 몇 겹의 짐을 지고 있다. 여기에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경영기법이라든지 기술개발까지 쫓아가려고 하면 중소기업으로서는 「한계」에 도전하는철인경기에 참여하고 있는 듯한 기분까지 느낄 정도다. 그렇다고두 손 놓고 「적당히」할 수도 없다. 「치열하다」는 말을 뼛 속깊이 절감할 정도로 경쟁은 심각하다.정부도 중소기업의 어려움이나 고민을 모르는게 아니다. 그래서 각종 지원제도를 만들어 놓고 중소기업의 「숨통」을 조금이나마 풀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물론 기업이 느끼기에는 「새 발의 피」정도밖에 안된다고 하더라도 없는 것 보다야 낫다. 문제는 어떻게접근해서 효율적으로 이용할 것인가이다.경기도 수원에 자리잡고 있는 필코전자(PILKOR). 중소기업 지원제도를 적절히 활용, 만성적자에서 벗어난 대표적인 기업이다. 필코전자의 전신은 필립스전자. 네덜란드의 필립스사가 74년에 1백% 투자해 설립했다. TV나 VTR, 컴퓨터 모니터에 들어가는 전자부품인필름콘덴서와 저항장치를 주력품으로 생산, 필립스 본사에 수출하고 국내 업체에도 납품했다. 경영은 물론 기술개발과 영업까지도전적으로 필립스 본사가 맡아서 처리, 운영했다. 그러나 20년을 버티다가 필립스는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매년 쌓이는 적자를 감당할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필립스 전자는 94년에 현 필코전자 사장인윤철중사장을 중심으로한 한국인 투자가들에게 회사를 넘기고 철수했다. 완전한 「한국」회사로 바뀌면서 회사명도 필코전자로 변경됐다.◆ 중진공서 필요절차 처리·비용도 저렴막상 필립스가 물러나자 경영과 기술개발이 문제였다. 필립스본사에서 담당하던 일을 갑자기 스스로 처리하려다 보니 「발 등에 불」이 떨어진 양 다급하기만 할뿐 쌓인 노하우는 없었다. 필코전자로 바뀐 94년 첫해에는 「긴축경영」을 외치며 비용절감에 주력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다음해부터는 선진적인 경영기법을 받아들여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기 시작했다. 이때 필코전자가 활용한 지원제도가 중소기업진흥공단의 「경영지도」와 「기술지도」 제도다. 중진공이 운영하는 「지도(컨설턴트: Consultant)」제도는 전문지식과 현장실무 경험을 겸비한 국내외전문가를 중소기업에 파견, 기업이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경영및 기술상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지도하는 제도다.필코전자는 95년에 처음으로 경영지도를 신청했다. 『선진 경영기법을 배워 조직의 효율성을 높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필립스전자가 전신이었던 관계로 유럽의 경영 스타일은 어느 정도 알고있다는 판단 아래 일본과 미국의 경영전문가를 요청했습니다』(김종대 이사). 신청절차는 까다롭지 않았다. 지도를 신청하는 목적과지도 받고 싶은 분야, 원하는 전문가의 경력 등을 기재한 신청서를제출하기만 하면 됐다. 필코전자는 지난해 미국과 일본 전문가에게각각 10일씩 경영지도를 받았는데 미국 전문가는 물류와 제품공정과정에 대해, 일본 전문가는 생산관리에 대해 지도했다.올해는 5월과 6월에 벨기에 기술자 2명을 초청, 각각 10일씩 기술지도를 받았다. 벨기에 기술자를 신청한 이유는 필름콘덴서와 저항장치 부분에서는 유럽 기술이 앞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5월에는 필름콘덴서 분야의 신기술 2가지를 전수받았고 6월에는 필코전자가 현재 진행중인 공장 자동화와 관련한 자동화 기술을 배웠다.『경영지도를 통해 특별한 기법을 배운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경영혁신 노력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받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기술지도는 실질적인 도움이 됐고요. 현대의 첨단기술이라는 것은 결국 종이 한 장 차이로 판가름나는데 외국 전문가를 통해 다양한 기술관련 정보 중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개발의 방향을 어디로 잡아야 하는지에 대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조종대 상무).중소기업이 직접 나서서 외국 전문가를 초청한다는게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중진공이 필요한 절차를 다 알아서 처리해 주니 여간편리한 제도가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지도 제도의 또다른 장점은비용이 저렴하게 든다는 것. 전문가를 초빙해서 지도받는데 드는전체 비용 중 중소기업이 부담하는 부분은 대략 30%. 나머지는 중진공에서 지원한다. 예를 들어 필코전자가 해외 전문가를 한 명 초빙해 10일간 지도를 받을 때 부담한 비용은 약 3백만원이었다. 해외 전문가의 왕복 비행기값과 체재비 등을 감안하면 최소한 1천만원은 들여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절반 이하의 비용으로 지도를받을 수 있다는 것은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조상무는 『기술지도제도는 선진 기술정보에 목말라 하는 중소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을주고 있다』며 『앞으로도 매년 2차례 정도 중진공의 기술지도 제도를 이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필코전자는 중진공의 「중소기업구조개선사업」지원제도 덕도 톡톡히 보고 있다. 중소기업구조개선사업이란 자동화 정보화 기술개발사업화를 추진하는 중소기업에 획기적인 조건으로 자금을 대출해주는 제도. 필코전자는 지난해 자동화를 추진하면서 25억원의 자금을지원받았다. 대출조건은 연 7.0%의 금리에 3년 거치 5년 분할상환이었다.조상무는 『자금을 대출받기 위해서는 추진하는 사업이 경쟁력이있어야 하고 담보능력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중견기업이고 첨단기술 업종이면 신용대출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첨단기술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까다로운 조건을 갖춰야하기 때문에 필코전자는 담보대출을 선택했다. 필코전자는 현재 대출받은 돈으로 공장 자동화를 진행시키고 있다. 조상무는 『사업계획과 매출액, 공장등록증 등을 제출하면 중진공에서 심사, 자금을대출해 줄지 여부를 결정한다』며 『저금리에 장기간 빌릴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소개했다.◆ 3년거치 5년분할상환으로 25억 지원 받아각종 지원제도를 적절히 이용한 결과 필코전자는 지난해에 30%의성장률을 기록하면서 큰 폭의 이익을 냈다. 올해도 30%이상 성장하면서 이익폭도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조상무는 『우리는 일본의 마쓰시타와 유고의 이시카라, 독일의 위마를 경쟁상대로보고 있다』며 『우리의 목표는 세계적인 수준의 필름콘덴서 및저항장치 업체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정부의 지원제도를 적절히 활용, 성공을 거두었지만 정작 필코전자에 가장 필요한 제도는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바로 외국인 인력채용제도이다. 조상무는 『공장에서 일할 기능인력이 부족해 외국인력을 배당받고 싶은데 직원 3백명 이상의 사업체에는 배정할 수없다는 규정 때문에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필코전자의 전체 직원수는 4백명. 그러나 공장에서 일할 기능인력이 부족해 애를 먹고 있다. 조상무는 『인력난은 자금난과 함께 중소기업의 최대 현안이 되고 있다』며 『국민 정서에 반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장기적인 산업발전을 고려할 때 기업이 책임지고 외국 인력을 채용하고 관리하도록 제도가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정부의 지원제도도 세세히 검토해 보면 이용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현실적이지 않다」거나 「명목상일 뿐」이라고 제쳐두지 말고 자기 회사에 필요한 제도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필코전자 역시 여러 가지 제도 중에서 자사에 필요한 가장적절한 「보석」을 찾을 수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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