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밤의 초대 '공포특급'

사람들은 늘 자신은 남들과는 다른, 좀 「고상한」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비열하고 더러운 짓을 하면서 살아간다 하더라도 「그래도 내 속엔 오염되지 않은 무엇인가가 있어」라고 믿고 싶어한다. 스스로 타락하지 않았다고 믿고 싶은 거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온갖 어두운 생각, 윤리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욕망,사회적 규범에 의해 금기된 욕구. 이런 반사회적인 생각은 모두 접어야 한다. 「낮」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오직 인간의 규범에맞춰 윤리적이고 도덕적이라고 「받아들여지는」대로만 행동해야한다. 그것만을 믿는 것처럼 생각하는 듯 보여야 한다. 그래야 배척당하지 않고 소외당하지 않는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은밀한 가슴 깊이 어떤 사악함이 깃들어 있다하더라도 안 그런 척. 그래서세상을 살아가는 어떤 사람에게도 가식은 필요한 거다. 아무리 아름다운 존재라 하더라도 그림자는 갖는 법. 낮이 있으면밤이 있고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다. 하늘이 있으면 땅이 있고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다. 의식이 있으면 무의식이 있고 현실이 있으면 환상이 있다. 마찬가지로 선이 있으면 악이 있고 허용이 있으면금기가 있다. 우리의 사회는 낮 빛 하늘 삶 의식 현실로 지탱된다.그것들이 사회질서의 골격을 유지한다. 그러나 우리의 밤의 세계,무의식의 세계, 악의 세계는 어떻게 할 것인지.흔히 사람들은 공포영화 혹은 호러(Horror)영화를 보면 『아 무서워(혹은 끔찍해). 도대체 저런 영화는 왜 만드는 거야』라고 말한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무시해버리고 싶은 그 공포영화가 우리의무의식에 대한 욕구를 배설한다. 공포영화를 왜 만드느냐가 아니라이미 우리 속에 있기 때문에 단지 「반영」할 뿐이다. 간단한 예로새디즘을 들어보자.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서 성적 만족감을 느끼는새디즘은 프랑스의 문학가 사디백작에 의해 주장됐다. 그렇다면 사디백작이 새디즘을 말하기 전에는 과연 새디즘이 없었을까. 개념화되지 않고 인정되지 않았을 뿐이지 분명 있었을 것이다. 공포영화도 마찬가지다.사람의 사지를 잘라 버리고 전기톱으로 목을 끊어 버리고 살가죽을벗기는 잔인함. 아버지가 자기 가족을 몰살시키고 자식이 부모를찔러 죽이고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여 인육을 먹는 금기에 대한 파괴. 밖으로 튀어나온 사람의 내장, 끈적끈적한 붉은 점액질로 덮인괴물, 사람의 피부를 손톱으로 긁어 드러난 하얀 뼈, 산 사람과 시체의 정사 등과 같은 역겨움. 눈뜨고 보기 힘든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세계가 공포영화의 세계다.인간무의식 연구하는 예술 ‘공포영화’그러나 이 영상들은 「정상」으로 보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의식기저에 깔려 있는 무의식의 모습이다. 인간 정신 속에 숨어있는 환상에 대한 반영일 뿐이다. 인간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은 창조할 수없다.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그런 생각이 인간의 심성에 들어있다는 것이다. 금기를 만든다는 것은 이미 금기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 경험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포영화는 인정되고 눈에보이는 세계에 묻혀버린, 거부당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끄집어내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공포영화는 「인간」 이면을 연구하는 예술장르다.날씨가 무더워지고 땀이 줄줄 흘러서 짜증스러워지는 계절. 여름이오면 통과의례인양 더위를 식히는 공포영화 어쩌고 하는 TV 특집프로나 추천 공포영화 몇 선 하는 문구가 자주 눈에 띈다. 공포영화를 보고 오싹함을 경험함으로써 더위를 잊으려는 사람들을 끌기위한 「전략」들이다. 공포영화는 그래서 유독 여름에 사랑받는다.가 「공포특집」을 마련한 일차적인 목표도 그런 이유에서다. 피서를 떠나지 못하고 도심에서 따분하고 나른한 여름무더위를 견뎌야 하는 독자들에게 「오싹함」을 선사하고자 하는데첫 번째 의도가 있다. 그러나 단순히 무시무시함을 기준으로 공포물을 선정하지는 않았다. 공포 밑에서 「인간과 문명에 대한 탐구」를 찾을 수 있는 걸작을 위주로 추천작을 선정했다.「오싹함」과 「고급 호러」라는 두 가지 조건 외에 입맛에 맞는호러물을 고를 수 있도록 작품들을 주제별로 분류한 것도 특징. 공포물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이라도 관심이 가는 주제는 제각각이다. 정신질환 등으로 인한 인간의 반사회적 행동에 공포를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귀신얘기에 몸을 떠는 사람도 있다. SF호러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고대 밀교나 종교적 신비주의에 관심을쏟는 사람도 있다. 이런 호러물을 정확하게 주제별로 나누기는 어렵고 또 무리가 따르기도 하지만 거칠게나마 선택하기 쉽도록 5가지 주제로 나눴다.사람이 어떤 이유에서건 연속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는 내용을 가진 공포물은 「연쇄살인」이라는 대주제로 묶었다. 사탄의 얘기를다루되 기독교적 정신에 바탕을 둔 작품은 「크리스찬 오컬트 호러」로,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 및 인간의 무의식 세계를 주제로한 영화는 「오컬트 호러」, 시체가 살아움직인다든지 하는 전형적인 귀신얘기는 「귀신 혹은 좀비 영화」로, 현대문명의 폐해나 외계인의공격을 다룬 작품은 「현대과학이나 외계물질로 인한 재난」으로분류했다.추천작들은 비디오대여점에서 쉽게 빌릴 수 있는 작품들로 한정했으나 출시된지 오래된 작품들은 구하기 힘들 수도 있다. 동네 비디오 대여점에서는 못 구했지만 꼭 보고 싶다면 영화마을강남점(563-8599)이나 종로점(765-7024)으로 연락하면 대부분 빌려볼 수 있다.소개하지 못했지만 널리 알려진 몇 작품을 덧붙여 소개한다. 크리스찬 오컬트 호러-장미의 이름(움베르트 에코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백사의 전설(인간의 원죄의식을 다루고 있다). 오컬트호러-악마의 씨(로만 폴란스키 감독. 이단종교에 대한 얘기). 귀신혹은 좀비 영화-이블 데드3(죽은 애인을 되살리지만 애인은 좀비로변해간다). 현대과학이나 외계물질로 인한 재난-플라이(과학자가파리로 변한다) 괴물(남극 연구소에 외계물질이 침입한다. 여름에보면 남극 풍경이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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