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노라마 51년의 시간여행

◆ 소설서 까지시대상황 묘사광복 직후 거친 변혁과 다망의 회오리 속에서는 제대로 소설을 읽을 틈도 없었던지 유행했던 베스트셀러도 꼽을 수 없다. 그리고 다시 민족상잔의 비극이라는 한국전쟁. 소설이 사람들의 삶 속에 파고들어가 위로가 되기위해서는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려야 했다.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정비석의 도 54년이 돼서야 나왔다. 대학교수의 부인이 바람을 피운다는 내용의 은 당시 사회에 파문을 일으키며 그 때까지도 양반의 도리를 운운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아니 이럴수가」를 연발하게 했다. 이 책은 그 다음해까지 8만권이 팔렸는데 당시로는 대단한 베스트셀러였다.60년대는 최인훈의 이 열었다. 한국전쟁후 남한도 북한도 선택하지 않고 제 3국에서 살기를 원했던 한 지식인의 얘기는 전쟁이남긴 정신적인 상처로 아파하던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70년대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황폐해진 고향 사람들을 그린 소설이대유행이었다. 이 틈에 생겨난 것이 호스티스소설. 최인호의 조선작의 등 시골의 순박한 처녀가 호스티스로 전락한다는 내용의 통속소설은 그 시절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80년대는 김홍신의 으로 시작됐다. 잘 싸우는 한 청년이사회악을 통쾌하게 물리친다는 내용은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주기에 충분했다. 김신의 과 강석경의 은 암울했던 80년대를 살아가는 대학생의 절망과 우울을 그려내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다. 이문열의 와 는 흔하디 흔한 사랑얘기는 언제나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 줬다.90년대 들어와서는 등의 역사소설이 베스트셀러를 휩쓸다가 뒤이어 이인화의 김진명의 등 선이 굵은 남성소설들이 크게 인기를 끌었다. 운동권 학생들의 후일담을 그린 공지영의 는지난해에 화제를 모은 작품. 숨막히는 경쟁현실에 적응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현대인의 강박증을 어느 정도 풀어준다는게 의매력이었다.◆ 영화흥행성공 숱한 히트작·월드스타등 양산50년대에는 소설로 히트쳤던 (한형모감독)이 영화로도만들어져 화제를 모았다. 이외에 (이강천감독)(신상옥감독) (이규환감독)이 만들어져 전쟁에 지친 사람들의 심신을 달래줬다.60년대는 영화의 시대였다. 60년대 중반 한국영화 제작편수는 한해2백여편(현재 60∼70여편)에 달했고 국민 1인당 방화 관람횟수도5회(현재 1.1회)를 기록, 가장 대중적인 문화이자 여가형태로 절정기를 구가했다. 한국 리얼리즘영상의 백미인 등 수작이 쏟아졌으며 김지미와 신성일엄앵란을 비롯, 여배우 트로이카인 윤정희 남정임 문희 등이 스크린을 수놓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60년대의 대히트작은 68년에 개봉된 정소영감독의 이었다. 신파극의 전통을고스란히 계승한 이 영화는 서울 개봉관에서만 4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위력을 발휘했다.70년대는 소설에서와 마찬가지로 호스티스 영화가 붐을 이뤘다. 등이 관객들의발길을 끌었다. 호스티스로 나오는 주인공은 대개 남자에게 버림받았거나 병든 부모님과 어린 동생들을 먹여살려야 하는 가련형의 여성들이다. 성을 상품화하되 멜로드라마적 요소를 가미, 「누이좋고매부좋은」식의 영화였다.70년대의 화제작으로 도 빼놓을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마다 모두 죽어 버리는 불행한 여자 장미희의 애수어린 얼굴이 많은 남자들의 가슴을 울렸던 영화였다.80년대에는 토속적인 주제를 다룬 등이 주류를 이뤘다. 80년대의 영화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인물이 강수연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월드스타로 와 로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한 배우. 80년대의 히트작으로는 를 꼽을 수 있다. 이 영화는 정통 멜로물의 형식을 그대로 계승, 많은 사람들의 손수건을 적셨다.장미희와 안성기가 주연한 도 80년대의 화제작.80년대의 또다른 특징은 유부녀의 방황을 그린 작품이 유행했다는점. 시리즈와 등이 대표작이다. 중년의 부인이 무심한 남편에게서 소외감을 느끼다가 연하의 남자를 만나 바람을 피운다는게 공식적인 내용.90년대는 대형 히트작들이 속속들이 선보이기 시작했다. 임권택 감독은 과 로 잇달아 흥행에 성공, 영화도 잘만들고 흥행도 잘 시키는 감독으로 떠올랐다. 이외에 대형 히트작으로 와 를 나열할 수 있다.◆ 가요통기타·대형가수이어댄스뮤직 시대광복과 함께 유행한 노래는 . 이 가요는 광복의 기쁨을 담은 내용으로 46년에 크게 히트쳤다. 그러나 광복의 감격도 잠시.민족사에 비극으로 기록되는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의 영향으로 가요도 이별을 주제로한 와 이 유행했다.60년대는 가요산업이 본격적으로 부흥하기 시작한 시기다. 박시춘손목인 등 트로트의 대가들이 탄생했고 길옥윤 이봉조 등 팝송에영향받은 실력있는 작곡가도 가세했다. 무엇보다 이미자의 가 발매 첫해인 62년에 50만장의 음반판매고를 올린 것은 한국가요사에 남는 「사건」이었다. 우리 가요를 말할 때 이미자라는이름은 빼놓을 수가 없다. 엘레지의 여왕이라는 별칭이 따라붙는이미자는 명실공히 한국 가요계를 대표해왔다. 출반한 앨범만도 수백장에 달하며 수천곡의 노래를 발표했다. 등이 60년대에 발표된 이미자의 노래다. 60년대말부터 70년대초까지 활동한 배호도 가요사에 남는 가수. 배호가 불렀던 등은 아직도 노래방의 인기가요 목록에 들어간다.70년대 초반은 통기타가수들의 시대였다. 송창식 김민기 양희은 등이 7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들. 콧수염과 장발을 특징으로 하는 통기타가수들은 젊은이들의 배출구 노릇을 톡톡히 했다. 등이 유행했으나 모두 금지곡으로 묶이기도 했다.남진과 나훈아 역시 70년대 가요를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이름들이다. 남진은 등을 히트시켰고 나훈아는 등을 불렀다.이외에 록음악을 국내에 선보인 의 가수 신중현도 70년대의가수로 꼽을 수 있다.80년대는 조용필이라는 대형가수의 시대였다. 75년에 를 히트시키며 나타난 조용필은 대마초사건에 연루돼 몇년간 가요계를 떠나 있다가 80년에 로 화려한 재기에성공했다. 이 후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한국의 슈퍼스타 가수로 가요계를 평정했다. 80년대에 유행했던 또다른 노래로는 이용의 을 들 수 있다.90년 초반은 트로트 열풍으로 시작됐다. 주현미의 태진아의 현철의 등이 인기를 끌었다. 트로트 열풍이 시들해지면서 나타난 특징은 가요의 「시각화」.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면서 가수는 노래를 잘 불러서만은 인기를 유지할 수 없게 됐다. 10대가 음반판매를 좌우하는 주소비자층으로등장하면서 댄스실력을 기본적으로 갖춰야 톱가수 대열에 들어갈수 있게 됐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와 김건모의 와 김수희의 신승훈의 룰라의 등이 90년대 히트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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