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나라사람들의 큰 어리석음

오늘날의 세태를 해방 전의 세태에 견주는 일이라면 1947년생인 나는 자격미달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 산골 마을의 50년대를 잘 기억한다. 우리 마을의 50년대 세태는 해방 전의 세태, 심지어는 기미독립 운동 전후의 세태와도 다를 것이 없었다. 그 순후하던 시절의어른들 말씀이 그랬다.어린 시절을 기억할 때마다, 우주도 어린아이들 마음을 가두어 둘만큼은 넓지 못하다는 임어당의 말을 떠올리고는 한다.우리 어릴 때는 오줌 가지고도 못된 장난을 많이 했다. 여름에는개구리를 잡아 오줌을 먹이기도 했고, 겨울에는 오줌발로 눈 위에다 글씨를 쓰기도 했다. 오래 누기를 겨루었는가 하면 높이 쏘아올리기를 겨루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우리에게도 딱 한 가지 금기가 있었다. 흐르는 물에는, 설사 그것이 타관의 시내라고 하더라도절대로 오줌을 누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어른들은 물에다 오줌을누면 고자가 된다고 했다.고자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우리는 고자되는 것을 무서워했다. 그래서 한사코 흐르는 물에만은 오줌을 누지 않으려 했고또 실제로 그렇게 했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은 그 맑은 물 길어다허드렛물로 쓰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식수로도 쓸 수 있었다.흐르는 물에다 오줌을 누면 고자가 된다는 말의 참 뜻, 작은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큰것을 더럽히면 어떻게 되는가를 깨닫기까지는그로부터 긴 세월이 흐른다. 하늘에 죄를 얻으면 빌 데가 없어진다는 뜻이었던 것을.아직도 시냇가에다 자동차를 세워놓고 물 퍼다 자동차 닦는 사람들을 더러 본다. 금지된 짓이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렇게 하면 고자가 되는 줄 아는지 모르는지 제 차 때 씻어 내기에만 열심이다. 작은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큰것 더럽히는데 열심이다. 어쩌다, 그러지 말라고 충고하면 당신이 뭔데 그러느냐고 대든다. 이시대의 「강경」한 어른들이다.◆ 하늘에 죄를 얻으면 빌데가 없다이제 알게 되었다. 고자가 되는 것은 오줌을 누는 어린아이, 자동차를 닦는 차 주인이 아니다. 순후하던 시절의 시냇물과 강물이 강경한 시대의 고자가 되는 것이다.보라. 이 나라에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생산할 수 없게 된 고자 강물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지 않은가? 금기 없는 시대의 비극, 고자가 되어 버린 강경한 시대의 강물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나 어리던 시절인 50년대, 어른들은 이런 말을 하고는 했다.『아지매한테 밉보이면 밥을 못 얻어 먹지만 아제한테 밉보이면 아예 그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아지매는 안주인을, 아제는 바깥주인을 은유하는 말이거니 짐작하면서도 우리는 이게 무슨 뜻인가 했다. 너무 어려서 너무 어리석었던 우리는 아지매와 아제의 차이를 밥과 집의 차이 정도로 이해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페미니스트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해두고 하는 말이거니와, 이 아지매와 아제는 각각 부분의 상징, 전체의 상징이었다. 남자가 하늘일 리 없는 것이지만 말하자면, 역시 하늘에죄를 얻으면 빌 데가 없어지게 된다는 뜻이었다.장자님 말씀 한 마디 들어둘 만하다.이 무리가 돼지 털 사이에 숨어 피빨기를 다투었다. 그러자 돼지는하루가 다르게 여위어갔다. 그러나 이 무리는 돼지 여위어가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피 빨기 다투기를 계속했다. 돼지의 목숨까지도 위태로울 지경에 이르자 한 현명한 이가 무리에게 말했다. 다투기를 하더라도 돼지를 살려놓고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돼지가죽으면 다투기도 아무 소용 없는 짓이 될 것이 아니겠느냐고….이 무리에는 돼지가 하늘이다. 하늘이 죽으면 빌 데는 커녕 살 데도 없어지게 된다. 돼지를 고자로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이다.우유 회사들이 우유에 고름이 들었느니 안 들었느니 머리가 터지게싸웠다. 우유에 대한 사람들의 통념은 돌아보지 않은 채로 머리 터지게 싸웠다. 어찌나 열심을 다해 싸웠는지 이제 많은 사람들은 우유를 보면 피고름을 연상할 수 있을 만큼 유식해졌다. 우유 회사들이 싸운 뒤로 나는 절대로 우유를 마시지 않는다. 싸워서 이긴 우유든 진 회사 우유든 우유 자체를 마시지 않는다. 우유 볼때마다피고름 연상하는 버릇이 닦이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또 걸리겠다.우유를 왜 고자로 만드는가?일반 택시 타고 목적지에 이른 어느 할아버지가 택시 기사에게 미터요금을 주는 대신 버스표 하나를 주더란다. 운전기사가 왜 요금을 내지 않고 버스표 주느냐고 묻자 할아버지가, 『이 사람아, 버스 정거장마다 서서 손님 실으려고 기웃거리니 이게 어디 택신가,버스지.』했다는 얘기가 있다.농부가 땅을 망치듯이 일반 택시가 저희들 사업 환경을 훼손하는일이 늘어가고 있다. 나는 일반 택시는 절대로 타지 않기로 방침을세우고 이번에는 나 혼자라도 택시를 고자로 만들어 버리고 말겠다.출판 사회에서만 통한다는, 「작업」이라는 변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출판사중에는 저희들이 낸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기 위해 「작업」이라는 걸 한단다. 아르바이트 학생들을 고용하여 서점을 돌면서 특정한 책을 사들이도록 한단다. 말하자면 제 물건 사재기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잘 팔리는 책으로 집계되고, 신문에도 나고, 잡지에도 나고, 인터넷에도 오르고…. 그러면 독자들이호기심이 생겨 또 그 책을 사고…. 잘 하면 베스트셀러가 된단다.베스트셀러 사이클이 짧은 것은 그 때문이란다.◆ 도요새와 방합의 싸움에 어부만 득본다이것이 사실이라면 출판사가 출판 풍토를 거덜내고있다. 고자로 만들고 있다. 제 손으로 제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정치판 사람들이여, 고자가 되지 않으려면 당신네들도 조심해야 한다.도요새가 조갯살을 먹으려고 방합 껍데기 사이에다 부리를 밀어넣었다. 방합은 껍데기로 도요새의 부리를 물었다. 도요새는 그렇게부리를 물린 채로 하늘을 날아오를 수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방합이워낙 크고 무거워서 그럴 수가 없었다. 어부가 둘 중의 하나를 잡으려고 달려오는데도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어부는 도요새와 방합을 둘 다 사로잡을 수 있었는데, 「도요새와 방합의 싸움에 어부만 득을 보았다(蚌鷸之爭漁父之利)」 고사는 여기에서 비롯된다.내가 사는 미국의 소도시 랜싱에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동양식품 가게가 세개나 있다. 하나만 있으면 주인이 좀 유복하게 살 수 있겠고, 둘만 있으면 주인들이 그럭저럭 먹고 살만할 텐데 셋이나 있다. 그러니 경쟁이 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경쟁이 아무리 심해봐야 거기에 사는 한국인 수는 수백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럴 경우의 경쟁은 종종 출혈 경쟁이 된다.한국인이 경영하는 세 개의 동양식품 가게 한가운데 중국인이 대형동양식품 가게를 열었다. 큰 나라 사람인 중국인은 작은 나라 사람인 한국인들의 싸움을 정확하게 읽었던 모양이다. 이 중국인의 가게는 물론 한국인의 먹거리 대부분을 갖추고 있다. 대형인만큼 다루는 물량도 다양하고 수량도 많다. 따라서 물건 값이 쌀 수밖에없다. 세 개의 한국인 가게는 이 가게와 경쟁할 수 없다. 경쟁하려면 값을 더 낮추어야 하는데, 그렇게 해서는 밥벌이가 되지 않는다. 불행히도 이 중국인 가게를 들락거리는 한국인이 나날이 늘어간다. 싸고 다양한 물건 앞에서는 애국애족하는 마음도 오래 가지못한다. 나는 세 개의 한국인 가게가 곧 차례로 문을 닫을 것 같아서 늘 조마조마하다. 「방휼지쟁에 어부지리」가 따로 없다.제 바탕을 고자로 만들어 버리는 이 작은 나라 사람들의 이 큰 어리석음을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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