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업원들이 뭉쳐 회사 살렸다

중소기업사장들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가 부도이다. 생각하기조차역겹다. 부도가 풍기는 뉘앙스는 비극적이다. 인생의 파멸을 의미하고 헤어날 수 없는 나락에 빠지는 것을 의미한다. 중소기업사장들이 땀방울을 송송 흘리며 뛰어 다니는 것도 도산의 고통만은 피해보자는 의지가 반영된 것인지 모른다. 지난 95년 한해동안1만4천여업체가 부도를 내는 상황에서 부도의 무풍지대는 없다. 어음이나 수표를 끊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부도의 회오리가 다가올수 있다.부도의 반대편에는 재기라는 단어가 있다. 재기의 방정식은 부도보다 훨씬 복잡한 3차방정식이다. 그만큼 풀기가 어렵다. 그러나 유일한 희망인만큼 풀수 있다.실제로 푼 사람도 적지않다. 아니 못풀고 체념해버런 숫자에 비하면 극소수에 불과하다.◆ 종업원 단결·채권단 권리행사 늦추기 주효부도난 이후 회생한 기업들의 공통점은 종업원들이 회사와 사장을좋아한다는 것이다. 종업원들이 뭉쳐 구사운동을 벌이고 주거래은행등 채권단들이 권리행사를 늦춰주면 일단 회사가 공중분해되는것을 막을수 있다.팔기회회장인 라전모방의 남재우사장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섬유업체인 연세실업을 운용하던 남사장은 지난 83년 라전모방을 인수했다. 애초에 부실투성이인 회사였던만큼 인수후 1년여만인 84년 6월부도를 냈다. 인수전 수출했던 제품의 불량으로 클레임을 당해 억울하게 부도를 낸 케이스이다. 이때 전체종업원의 절반이상인 3백여명의 종업원이 똘똘 뭉쳐 회사에 정상 근무했다.몇달간의 임금체불에도 불구하고 남사장에 대한 신망이 두터웠기 때문이다. 회사가제궤도를 찾아갈때쯤 또다른 시련이 남사장에게 다가왔다. 84년9월의 홍수때 의정부공장이 물에 잠겼다. 설상가상으로 화재까지겹쳤다. 종업원들은 다시 한 번 뭉쳤다. 추석때 귀향을 마다하고회사에 출근해 제품을 만들었다. 채권자들도 도움을 줬다고 남사장은 회상했다. 지성이면 감천이었다. 회사영업실적이 향상되면서 회사가 빠르게 정상을 되찾아갔다. 남사장은 눈물을 흘렸다. 자신도회사를 살려준 종업원에게 무엇인가 줘야했다. 그해말 회사 주식의30%를 종업원에게 줬다. 80년대 후반에는 근로자경영참가제도를 도입해 8년째 운용하고 있다. 회사경영에서 사소한 의사결정에 까지종업원들이 참여하고 있다.지난 93년 4월 법정관리를 자랑스럽게 졸업한 신명전기도 종업원들의 단결로 회사가 살아난 경우이다. 지난 82년 무리한 사업확장에따른 자금경색으로 부도를 낸 신명전기는 83년 회사정리개시명령으로 숨통을 돌린다. 그이후 종업원들의 회사를 살려보자는 노력덕에모터업계의 선두주자로 올라서며 재기에 성공한 것이다. 물론 이과정에서 관리인의 경영능력도 회사회생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김회묵사장은 종업원들의 구사정신이 없었으면 오늘의 신명전기는없을 것으로 여길 정도이다. 이밖에 삼익목재등 크고 작은 중소기업들이 종업원들이 똘똘 뭉쳐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평소의 신용으로 부도후 주거래은행장의 도움으로 재기에 성공한사례도 있다. 단조업체인 (주)천일로는 지난 93년 2월 부도를 냈다. 부도이유는 간단했다. 전체매출의 70%정도를 한양공영에 납품한게 화근이 됐다.한양공업의 모기업인 한양이 좌초하면서 연쇄부도를 당한 것이다. 30세의 젊은 나이에 창업한 정윤언사장은 20년동안 너무 편하게 사장노릇을 해왔다고 자성했다. 재기를 위해서는남을 탓할게 아니란게 정사장의 신조였다. 물고 늘어질 곳이라곤은행밖에 없었다. 딴 주머니 챙기지않고 성실하게 일했다는 것을누가 알아주겠는가. 부도 마지막순간까지 어음을 결제하려고 노력한 정사장이었다. 주거래은행인 국민은행 숭의동지점장인 이웅재부장(현 전산부장)을 찾아갔다. 인천 가좌동에 있는 1공장만은 경매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애걸복걸했다. 요구는 간단했다.공장을 경매에서 낙찰받아 담보로 넣을테니 자금 5억원만 빌려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이지점장은 결단을 내려 한 중소기업자에게 회생의 길을 열어줬다. 물론 회사이름은 주식회사 천일로에서 천일로공업으로 바뀌었다. 사업자등록도 직원의 이름을 빌려냈다. 정사장자신이 적색거래자인만큼 은행거래등에서 불이익을 받지않기 위해서였다. 부도의 아픔이 너무 컸던만큼 회생이후에도 정사장은 어음거래는 하지않는다. 정사장은 『사업은 돈만 있다고 하는게 아니고 신용과 기술을 끊임없이 창출해야한다』고 울먹이며 강조한다.또 사장은 생산현장 영업 관리를 고루 챙겨야하는 팔방미인이어야한다고 귀띔한다. 장영해운 영동조립개발등도 신용을 바탕으로 재기에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자사 유명브랜드 바탕으로 재기의 길 걷기도그런가 하면 자사의 유명브랜드를 바탕으로 재기의 길을 걷고있는기업도 있다. 테니스볼 및 스포츠용품업체인 낫소가 그 회사이다.지난 92년 12월 발생한 낫소의 부도는 경제계에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정부가 지원하는 일류화기업이고 테니스볼에 대한 인지도가 영국의 던롭 미국의 월슨 등과 자웅을 겨룰 정도로 뛰어났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의 부도사유는 과잉투자에 따른 자금압박과 경쟁업체의 덤핑에 따른 판매부진이었다. 구제금융을 지원해서라도 낫소를 살려야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부천시 상공인들도 낫소만은살려야 한다며 정부와 주거래은행 등에 탄원서를 제출하기도했다.현재 낫소는 정상화를 위해 뛰고있지만 부도에 따른 여러 제약으로회사운용에 적지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부도낸 수출주력업체들이 항상 당하는 어려움이다. 부도극복의 과정이 그만큼 길고 험한것이다.★ 팔기회-부도예방, 도산사후관리 등 도움줘부도를 낸 중소기업사장들이 초췌한 모습으로 찾는곳, 부도의 고통으로 삶의 정체성을 잃고 마음의 위안을 찾고자 설레는 마음으로들어서는 곳. 서울 신사동에 있는 팔기회사무실이다. 인생의 종착역이 아니고 희망의 새출발역이기를 간절히 빌면서 말이다. 물론산전수전을 다 겪고 어렵게 찾아온 발길이다.팔기회는 지난 92년 7월에 부도경험이 있는 사장들을 중심으로 설립된 친목모임성격의 단체이다. 처음에는 소모방업체인 라전모방의남재우사장등 동호인 30명이 단체를 만들었다.설립취지는 부도인을 「경제사범」 「적색거래자」 등으로 손가락질하며 사회적 냉대가 적지않은 상황에서 재기를 하는데 서로 도와주자는 뜻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단체이름도 팔기회로 정했다.부도의 설움을 나누고 맺힌 한을 풀어주는데 그쳤던 팔기회가 부도예방 및 도산사후관리등에 관해 도움을 주는 기관으로 변신한 것은지난 94년 하반기부터였다. 중소기업의 도산이 잇따르며 사회문제화되자 발벗고 나선 것. 변호사 회계사 대학교수등도 특별회원으로가입해 조직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부도를 내고 자살하는 중소기업사장들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수수방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중기청설립이전에 중소기업전담관리청설립을 주장하는등 중소기업계전반의 이익도 나름대로 대변했다.「부도예방실무상담」 「재기하는 기업인」 등 참고자료도 발간해부도의 징조 및 부도회피방법 등을 알리는데도 노력했다. 이들 책들은 종업원및 보증인등 채권자 가족에 대한 자세 등에 관한 내용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채권자들의 폭언이나 폭행에대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 것을 권하고 있다. 돈을 떼일 처지에놓인 사람입장에서 그들을 이해할 것을 당부하기도 한다.마마전기 광림기계 파란들 삼익목재 동신전자 등 이름있는 부도기업들의 사장들도 어김없이 팔기회의 문을 두드려 재기의 기틀을 마련했다. 50여업체가 팔기회의 자문을 받으며 재기에 안감힘을 쓰고있다고 윤한기 팔기회사무국장은 설명했다. 회원도 5백명이 넘을정도로 불어났다. 팔기회의 활동이 사회적으로 평가를 받았다고도볼수 있고 역설적으로는 부도기업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얘기도 된다.윤한기 사무국장은 부정수표를 발행한 사람을 무조건 구속시켜 형사책임을 묻는 상황에서는 부도이후 원만한 사태해결을 가로막는만큼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선의와 고의부도 등을 선별해 재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다.팔기회는 앞으로 조직적인 활동을 펼치기위해 공익법인화하는 방안을 마련중이다. 부도를 낸 기업주의 경영노하우를 살리고 부도기업인에 대해 효율적으로 도움을 주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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