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병전ㆍ두더지ㆍ융단폭격 '삼총사'

세계 반도체 대전에서 한국 대표선수로 뛰고 있는 삼성 LG 현대 등은 전투전술엔 서로 다른 특색이 있다. 삼성은 정면대결을 피하지않고 LG는 요란하지 않으나 집요하게 파고드는 구석이 있다.현대는 소소한 전투에는 신경을 쓰지 않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한방 날리는 게 특징이다. 삼성은 백병전, LG는 두더지 작전이 특기인 반면 현대는 융단폭격에 일가견이 있는 셈이다. 특히 3사는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진출에 본격 나서면서 각자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그래서 3사3색의 경영방식은 요즘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 삼성 해외업체 제휴통해 자체브랜드로 판다삼성의 전략은 해외업체와의 제휴를 통해 차세대 제품을 직접 생산하고 자체 브랜드로 판다는 게 핵심이다. 삼성은 최근 두 건의 굵직한 제휴를 맺었다. 프랑스 알카텔사와는 64비트급 MPU(마이크로프로세서)분야에서, 멀티미디어 복합칩분야에선 미국 마이크로 소프트사와 손을 잡았다. 삼성의 이 제휴는 두가지 면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우선 제품이최첨단 비메모리 반도체라는 것을 꼽을 수 있다. 또 하나는 OEM(주문자 상표 부착생산)이 아닌 자체 브랜드로 제품을 팔기로 한것. 그러니까 비록 제휴를 통해 기술을 수혈받은 것이긴 하지만 최첨단 제품을 생산하고 자체 브랜드로 판매해 승부를 걸겠다는 것.사실 64비트급 MPU나 멀티미디어복합칩은 아직 시장도 형성되지 않은 첨단 제품이다. 그러나 잠재 시장규모만큼은 어떤 제품보다도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인텔의 CPU시리즈에 버금갈 것이란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여기에삼성의 승부수가 숨어있다. 『설계기술은 모자라지만 일단 디자인된 제품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만들 수 있는 제조기술력이 있다. 이카드를 활용한다면 단숨에 톱 클라스의 비메모리 업체가 될 수 있다』(삼성전자 K이사)는 생각이다. 「설계기술은 도입, 제조 판매는 자체 해결」이라는 방식을 통해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 강화를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현대의 작전은 훨씬 스케일이 크다. 회사를 통째로 사버리는 융단폭격이 장기다. 현대는 재작년에 비메모리 반도체 전문업체인 AT&T-GIS사(현재 심비오스 로직사)를 통째로 매입했다. 인력 장비 기술 노하우 모든 것을 패키지로 확보한 것.현대가 이 회사에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심비오스 로직사의 기술수준이 세계정상급이기 때문이다. 또 어떤 특정제품에 편중된 것이아니라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도 갖고 있다. 심비오스 로직의 경영혁신이 완성되는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매출을올릴 수 있을 것 (현대전자 김주용사장)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경우 전무하다시피한 비메모리 분야의 사업비중을 총 매출액 대비30%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메모리대 비메모리의 가장 이상적인 사업비율이라는 「6 대 4」 구조에 근접할 수있게 된다는 뜻이다. 삼성과 현대에 비해 LG는 소리안나게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힘은 어느 회사보다도 강하다.LG의 전략은 시장 선점에 있다. 비록 남의 상표건 자체 상표건 일단 시장에 진입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 LG는 인터넷 전용 반도체인자바칩을 곧 양산한다. 또 7가지의 멀티미디어 기능을 수행하는 복합칩도 생산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LG가 당장의 이익에만 집착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LG는 세계 20개 지역에 비메모리 연구개발기지를 세운다는 글로벌R&D전략을 착착 진행중이다. 현지에서 제품을 개발하고 판매한다는것. 시장에 우선 참여해 기반을 닦아 놓은 뒤 자체 생산한 제품으로 시장을 차근차근 점령해 나간다는 치밀한 계산이 담겨 있는 것이다.◆ 현대 스케일 커 인력 기술 등 패키지로 확보투자방식에도 3사는 다른 색깔을 갖고 있다. 삼성은 정확한 계산을바탕으로 투자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해외 공장도 미국 유럽중국등에 하나씩 골고루 짓고 있다. 사실 세계 반도체 업계에는 「삼성식 투자」라는 고유명사가 있다.시장상황을 정확히 예측하고 적기에 투자하는 삼성의 투자기법을지칭하는 말이다. 삼성은 지난 92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8인치 웨이퍼를 가공할 수 있는 공장을 가동했다. 때마침 반도체 시장에 유사이래 최대호황이 찾아 왔다. 삼성이 돛에 바람을 가득 안고 달릴수 있었던 것은 당연하다. 반면 현대는 불도저식이다. 오는 2000년까지 해외에 반도체 공장을5개 짓겠다고 이미 공언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한 공장이 완공되면 곧바로 다음 공장을 착공해 릴레이식 생산라인 구축이라는 평을듣고 있다.현대의 저돌성은 매년 삼성과 생산규모의 격차를 줄여가고 있는데서 엿볼 수 있다. 올연말에는 삼성과 엇비슷한 수준에 올라간다.불과 2년전만 해도 배이상 격차가 났었던 것을 감안하면 겁없는 투자라고 할만하다. LG는 두 회사에 비해 신중한 편이다. 해외공장도 말레이시아와 영국 두곳에 짓겠다고 발표했을 뿐이다. 돌다리도 두들겨 가며 건넌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다.★ 대표선수-반도체3사는 세계적 명성 두뇌집단삼성전자 현대전자 LG반도체는 한국 고급두뇌 집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엔지니어들중에는 세계적명성을 가진 사람들이많다. 삼성의 대표선수는 진대제 부사장. 진부사장은 한국에서 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그가 개발한 반도체 설계공식은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교과서에 「진대제 모델」로 실려있을 정도로 실력을인정받고 있다. 지난 93년 미국 포천지는 그를 「아시아의 떠오르는 별」로 지칭하기도 했다.진부사장이 이만한 명성을 얻은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한국에서처음으로 16메가D램을 개발해 한국 반도체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물꼬를 텄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그가 IBM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삼성에 입사할 때 IBM사장이 파격적인 연봉을 제시하며 만류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진부사장은 그때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한국인으로서 일본을 이겨보고 싶어 간다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삼성에 합류했다.16메가D램을 개발해 국보급 박사라는 명성을 얻었다. 진부사장은현재 삼성 메모리 반도체의 개발과 판매를 총괄 지휘하고 있다. 특히 진부사장은 64메가D램을 개발한 권오현상무, 2백56메가D램을 개발한 황창규상무 등 소위 「삼성-스탠퍼드 학파」의 좌장역할을하고 있기도 하다.LG반도체의 이희국상무도 만만치 않은 존재다. 이상무는 진대제부사장과 경기고(66회)·서울대 전자공학과(70학번)·스탠퍼드대학 동기동창이다. 그는 지난 85년 1메가롬을 개발해 한국 반도체의메가시대를 열었다. 당시64KD램이 세계시장의 주력 상품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두 단계나 뛰어넘은 제품을 만들어 낸 것. 이상무는이 공로로 지난 85년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이상무에 얽힌 일화중 유명한 것은 미LSI사 코리건 회장과의 저녁내기건. 이상무가 당시로서 최첨단 기술인 CMOS(相補性 금속산화막 방식)기술 개발에 나서자 코리건회장은 『당신이 그 기술을6개월내에 개발한다면 세상에서 제일 멋진 저녁을 사겠소』라고 내기를 걸었다. 그래서 이상무는 샌프란시스코의 한 레스토랑에서 「세상에서 제일멋진 식사」를 대접받았다. 삼성 진부사장과는 학창시절부터 라이벌의 관계였다고 한다. 유달리 박사를 많이 배출해 박사기수로 불리는 경기고 66회 동기중에서도 재학시절 전교 1·2등은 항상 두 사람의 차지였다고 한다. 특히이들은 스탠퍼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PC업계의 양대산맥인미 IBM(진부사장)과 미 휴렛 패커드(이상무)에 각각 입사해 첨단 반도체 기술개발 경쟁을 벌였다. 현대전자의 대표선수는 오계환부사장. 오부사장은 반도체 제조공정에 관한한 국내 제1인자로 꼽힌다. 후발주자인 현대가 오늘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오부사장의 공정기술개발에힘입은 바 크다는 게 정설이다.오부사장은 미국 벨연구소 출신. 현대전자에는 벨연구소 출신의 엔지니어가 많은데 이들을 다독거리며 기술개발을 독려하는 사람이바로 오부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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