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ㆍ업무수행 능력 '우선'

지난 9월 중순 서울 태평로의 삼성생명 본사 22층. 이곳에는 일본의 대표적 종합무역상사인 이토추 상사 서울지점이 위치하고 있다.퇴근이 얼마남지 않은 시간에 서울 중위권 대학 영문학과 92학번이라는 K양이 찾아 왔다. 그녀는 국문·영문이력서와 지도교수 추천서를 이 회사 인사연수팀 이영숙 차장에게 건네면서 취업에 필요한정보를 꼬치꼬치 물어봤다.K양은 영문학과생임에도 불구하고 영어회화를 배우기 위해 지난1년간 캐나다 토론토에 어학연수를 다녀왔다고 말했다. 2천만원 가까운 돈을 들여서인지 처음 응시한 토익(TOEIC)시험에서 9백점을획득했다. 하지만 졸업을 1년간 미루면서까지 영어 하나는 「끝내주기」위해 노력했지만 국내대기업체에는 이력서를 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삼성 등 몇몇 기업에서 성과 학력 차별을 없앴다고 하지만 아직도 「어느 대학 무슨 학과」출신이냐가 취업의 관건으로작용한다고 선배나 동료들로부터 수 없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신성과 졸업장 차별이 덜한 외국계 기업을 선택했다. 영어만큼은 자신있고 설사 떨어진다고 해도 선발과정의 객관성을 수용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K양처럼 어학과 전공지식 등 실력을 갖춘 인재들이 성과 학교차별을 피해 응시하는 업체중 하나가 외국계 기업들이다. 지난 수년간국내기업들의 근무조건이 꾸준히 향상돼 격차가 많이 줄어들었지만여전히 급여와 근무조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95년말 현재 국내에서 영업중인 외국인 업체는 대략 3천3백여개. 매년 2천여명의 신입과 경력사원을 채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이들 외국계 기업들이 근무조건 이외에 인기를 끄는 이유중 하나가바로 학벌이나 전공보다는 경력과 적성을 우선시 한다는 점이다.특히 신입사원의 경우 외국어를 채용의 주된 기준으로 삼고 있어어학능력이 뛰어난 여학생들이 선호하는 편이다.이차장은 채용기준에 대해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동료와 팀워크를 이룰 수 있으며 비즈니스 마인드가 확실하고 회사경영방침을 잘따를 수 있는가를 중요하게 본다』며 『한국기업처럼 대학과 전공이 절대적인 선발기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차장은 지난해4명의 기간사원들을 선발했는데 서울대 소위 인기학과 출신이 응시해서 모두 떨어졌다고 밝혔다. 어학능력이 모자라는데도 「이 정도학벌이면 뽑아 주겠지」라는 식으로 응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3월경에 신입사원을 선발하는 한국네슬레도 전산이나 재무 그리고수출입을 제외한 나머지 파트는 전공과 대학을 불문한다. 물론 전산 등의 분야도 전공여부를 절대적인 선발기준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약간의 가산점 정도를 줄 뿐이다. 회사측은 신입사원의 지원태도, 영어능력, 앞으로의 성장가능성 등을 고려해서 선발한다고 밝혔다. 출신대학이나 전공은 중요치 않다. 다만 각 대학에 신입사원추천의뢰서를 보낼 때 대리점과 공장이 위치한 지역의 대학을 우선고려한다고 밝혔다.그렇다고 외국계 기업들이 전부 다 전공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한국필립스같은 가전회사는 업무의 성격상 전공을 중시한다. 필립스측은 신입사원 선발원칙에 대해 『전공을 가장 중시하고 그 다음으로 직무수행능력과 적성을 평가하며 외국어 구사능력과 조직융화능력을 3순위로 고려한다』고 설명했다.서울시내 대부분의 특급호텔도 호텔경영학과 관광학과 등 호텔관련학문 전공자를 우대한다. 이들 학과가 설치돼 있는 전문학교에우선적으로 취업의뢰서를 발송한다. 외국계 H호텔의 경우 지난해50여명의 신입사원을 선발했는데 대부분 이들 학과 출신자들이다.◆ 특정부서 인원 충당위해 ‘경력’ 더중시신입사원 채용 뿐만 아니라 경력사원 선발 때도 동일한 기준이 적용된다. 대학과 전공보다는 경력과 업무수행능력이 채용 잣대다.업무경력이나 출신회사, 누구와 함께 근무했는가를 중시한다. 또한조직융화력 팀워크 등 인성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영어나 일본어등 외국어 한두개는 기본이다. 경력사원 공채때도 학연이나 지연을중시하는 국내기업풍토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는 대부분의 경력사원을 선발하는 외국계 업체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한국네슬레의 최석진 인사부장은 『경력사원을 뽑을 때 영어나 일어 등 어학은 기본이며 담당할 직무에 몇년간 근무했는가 그리고이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가를 가장 중시한다』고 선발원칙을 설명했다.코카콜라 네슬레 등의 광고대행사인 맥켄에릭슨의 카피라이터인 오경미씨는 『국내광고회사에서 3년간 근무한 후 이곳으로 옮겼는데근무실적과 영어가 주된 평가기준이었다』고 경험을 들려줬다.이처럼 신입사원이나 경력사원을 불문하고 외국계 기업들이 학벌보다 업무수행능력(Job Skill)을 중시하는 이유에 대해 한국암웨이인사팀의 한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외국계 기업들은 특정부서의 인원이 필요할 경우에만 충원한다. 채용직후 기존멤버들과 함께 일을 해야 하므로 업무수행능력과 경력 등이 중시되는 것은 당연하다. 학벌보다 당장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가를 판단한다. 물론 학벌도 개인능력의 일부분으로 생각하고 고려한다. 하지만 국내기업만큼 절대적이지는 않다.』이 관계자의 말대로 외국계 기업들은 공채보다는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뽑는 경우가 많다. 언론매체를 통한 공개채용방식은 드물다.연중 우편이나 인편으로 접수받은 이력서중에서 결원이 생기거나인원을 충원할 필요가 있을 경우 수시로 채용한다. 간부사원의 경우에는 헤드헌터 등을 이용하기도 한다. 맥켄 에릭슨의 경우 부장이나 국장급 등은 주로 이같은 방식을 통해 선발한다.물론 신문에 채용공고를 내서 공개채용하는 한국IBM같은 기업도 있다. 한국IBM은 지난해에 영업 및 기술직 사원을 1백10여명 채용했으며 올해도 상반기에만 80여명을, 하반기에 1백여명을 추가로 뽑을 예정이다. 또한 이토추 상사는 반드시 신입사원 공채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지난해 8명을 선발했고 올해도 「약간명」의 신입사원을 선발하기 위해 서울시내 주요대학에 채용의뢰서를 발송한 상태다.이렇게 채용한 한국인 직원들에 대한 외국계 기업들의 평가는 어학분야를 제외하곤 대부분 긍정적인 편이다. 특히 홍콩 싱가포르 중국 등의 현지직원들에 비해서 개인적 자질은 뛰어나다고 평가한다.맥켄 에릭슨 한국지사장인 욥 브로렌씨는 이 회사의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현지직원들과 비교해 볼 때 『굉장히 열심히 배우며 특히간부들이 업무를 추진할 때 개성과 독창력이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또한 국내 대학생들에 대해서는 『어느 일을 하든지 실무적인측면보다 이론적인 것을 중시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필립스측은 『회사에 대한 소속감 충성도 그리고 직무에 대한 책임감과 열정은 매우 높다』고 높이 평가했다. 반면 『공과 사를 철저하게 구별하지 못하고 직무수행시 전문성과 창의성이 부족하다. 그리고 동남아국가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영어구사능력이 많이 떨어진다』고 언급했다.반면 이토추의 이차장은 『다른 지역에 근무하는 사람들보다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다』며 『어학도 뛰어나면 뛰어났지 부족하지않다』고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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