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ㆍ업적따른 임금차등화 바람

우리나라 경제는 4고(高)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고금리 고임금 고지가 고물류비용. 우리 경제를 병들게 하는 4가지 병폐다. 그 병폐중에 임금이 들어 있다. 그만큼 임금문제는 기업의 골칫거리다. 능력이나 업무성과에 관계없이 얼마나 오래 근무했느냐에 따라 똑같이 임금을 주는 제도는 더할수 없이 비효율적이다.게다가 가족수당 직책수당 장려수당 등 각종 수당까지 합쳐져 복잡하기 이를데가 없다. 비효율적이고 복잡한데 함부로 뜯어 고칠 수도 없다. 임금은 노사간에 가장 첨예한 문제다. 뜯어 고치자니 직원들 눈치가 보이고 가만히 놔두자니 비효율적이다. 그야말로 먹자니 뜨거워 함부로 못 집겠고 보고 있자니 배가 고파 못 견디겠고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뜨거운 감자」다.최근 1∼2년새 이 「뜨거운 감자」에 손을 대는 기업이 늘고 있다.경제가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글로벌 경쟁체제로 변하고 있는데다 불황이 심화되면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임금구조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임금구조 개선안은 한마디로 「능력에 따른 임금 차등화」로 모아지고 있다. 「일을 많이 했으면 많이 주고 덜 했으면 덜 준다」가변화의 기본 방향이다. 임금을 동기유발 도구로 사용하겠다는 의도다.지금까지 우리나라 임금제도는 「연공서열」식이었다. 근무기간이나 나이가 많아짐에 따라 지위가 높아지고 봉급이 많아지는 체계다. 매년 입사동기들과 똑같이 한 호봉씩 월급이 올라간다. 근무연수가 같고 지위가 같으면 받는 봉급도 똑같다. 회사에 공로가 있든없든 상관이 없다. 임금에 동기유발 기능이 결여돼 있는 것이다.70∼80년대의 저임금 고도성장기에는 이런 단점이야 「구우일모(九牛一毛)」로 눈에 띄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임금 개별관리·능력급제 도입 전환 추세『고도성장기에는 연공급이 애사심을 북돋우고 직원간의 단결심을키우는 순기능을 했다. 저임금시대였기 때문에 기업은 일을 잘하든못하든 모든 사원을 끌어 안고 굴러갈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이제 본격적인 고임금 저성장시대로 접어들었다. 연공급으로는경쟁력이 떨어져 기업이 굴러갈 수도 없고 전사원을 모두 감당할수도 없게 됐다』(양병무 노동경제연구원 부원장).그래서 기업이 도입하려는 제도가 능력급이다. 능력과 업적에 따른고과평가를 임금 액수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임금관리도 「집단관리」에서 개개인의 능력에 따른 「개별관리」로 전환시키고 있다.이 형태가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제도가 연봉제다. 일년간의업무성과를 평가해 직원 한사람 한사람의 다음해 연봉을 개별적으로 정하는 제도다. 현재 연봉제를 도입한 기업은 두산그룹 미원그룹 거평그룹 금호그룹 제일기획 쌍용양회 등 30여개다. 올들어 선경인더스트리 LG전자 산업연구원 현대그룹 코오롱그룹 바른손 등이연봉제를 실시하겠다고 선언했다. 경총이 94년에 2백29개 기업을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6%의 기업이 조만간 연봉제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대답했고 70.3%는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전혀고려하지 않는다는 대답은 23.1%뿐이었다.연봉제는 직원 한사람 한사람을 평가함으로써 일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고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직원의입장에서는 연봉 액수의 다소 문제를 떠나 연봉 평가로 자신이 회사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는지 가늠하게돼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끼게 되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기업들은 연봉제 시행을 조심스럽게 하고 있다. 대부분 디자이너라든지 영업직 등 업무 결과가쉽게 눈에 띄는 전문직만을 대상으로 하거나 간부만을 대상으로 시행하고 있다.또 연봉제라고는 하지만 평가를 통해 전년보다 연봉을 깎는 경우도아직까지는 없다. 일 못하는 직원의 연봉을 깎아 잘하는 사람에게얹어주는 「제로섬」방식이 아니라 못 하는 사람은 평균으로 주고잘 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조금 더 많이 주는 「플러스섬」방식이다. 직원들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한 한국형 연봉제인 것이다.기업들이 연봉제 실시에 적극적이지 못한 배경에는 「평가의 공정성」 시비에 대한 우려도 있다. 보통 연봉제를 실시하는 기업은 해당 직원에 대한 평가를 직속 팀장과 담당 임원에게 맡기고 있다.한 사람에 대해 2차 평가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두사람의 평가결과를 어떻게 피평가자에게 납득시키느냐에 연봉제의 성공여부가달려 있다. 계량화나 계수화가 어려운 직종의 경우 업적과 능력을어떤 기준으로 차등화할 것인지도 문제다. 제일기획 C차장은 『광고를 따오는 영업부서는 업무 성과가 극명하게 드러나지만 경리나인사 홍보 등 관리부서의 경우 나타나는 결과가 분명하지 않아 평가에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연봉제 문제점때문에 직능급제로 만족키도문제는 또 있다. 직원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을 어떻게 무마시키느냐다. 우리네 정서라는게 자기 받는 월급보다 남 월급에 더관심이 많은 법이다. 자기 한 것은 생각 안하고 옆사람이 더 많이받으면 「내가 뭐를 못해서」라는 박탈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연봉의 다소가 문제가 아니다. 평가결과를 자신이 회사에서 인정받는정도로 받아들이며 소외감을 느끼는게 문제다. 이런 저런 문제때문에 연봉제 대신 직능급제로 만족하는 기업도 많다. 직능급제란 봉급을 기본급과 직능급으로 나눠 기본급은 매년일정하게 호봉을 승급하는 연공급을 따르고 직능급은 고과평가에따라 차등 지급하는 방식이다. 연공급과 능력급을 복합해 평생직장이라는 안도감을 주는 동시에 동기부여 효과도 얻겠다는 제도다.현재 직능급제를 실시하고 있는 기업은 삼성전자와 포스코 제일합섬 등이다.그러나 직능급제의 동기부여 기능은 미미한 실정이다. 예를 들어포스코의 경우 직능급을 주기 위해 1년에 두 번씩 업적평가를 하는데 평가결과에 따라 같은 직급의 직원이 받는 직능급의 액수 차이는 최저와 최고 사이가 평균 1만2천원에 불과하다. 조만간 직능급차등의 폭을 늘릴 계획도 없다. 포스코 노무관리팀의 장원진대리는『아직까지는 같은 직급에 있는 직원들끼리 능력에 따라 봉급을 큰폭으로 차이나게 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밝혔다.제일합섬도 지난해부터 연공서열식의 공통급과 능력급을 복합한 직능급제를 도입했지만 제도만 직능급제지 아직까지는 능력급에 차등을 두지 않고 있다. 김남용 제일합섬 부장은 『말만 능력급이지 능력급도 똑같이 지급하고 있다. 능력급에 대한 직원들의 반응이 어떨지 몰라 아직까지도 시행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결국 대부분의 기업들은 비정한 경쟁을 통한 효율성 제고와 평등주의를 통한 조직구성간의 화합 극대화라는 두 마리 토끼 사이에서갈등하고 있는 셈이다. 결론적으로 저성장시대에 기업이 가야할 임금관리의 핵심은 「고임금 저인건비」전략이다. 우수한 인력에게임금을 많이 주는 대신 주변의 어중이 떠중이는 잘라내 인력을 소수로 정예화함으로써 전체 인건비는 낮추는 전략이다.양병무 노동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최근의 임금구조 변화는 주변인력을 쳐내고 소수 우수 인력을 정예화하는 조직관리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며 그래서 『임금문제는 정리해고제 변형근로제 근로자파견제 등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확보돼야만 해결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노동시장에 나와 있는 한 사람의 노동자로서는 개인간의 경쟁만을부추기는 자본주의의 냉정함이라고 치를 떨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 1.8 싱가포르 0.89 대만 1.2 일본 1.28」이라는 1인당 GNP 대비 임금수준 을 보고 기업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 손을 델 것을 알면서도 「뜨거운 감자」에 손을 대려고 하는 이유가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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