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족도시가 '베드 타운' 전락

이인제 민선경기도지사 취임이후 한때 도청에 신도시에 관한 말이돌았다. 이인제도지사가 기자간담회장에서 신도시는 6공정부 차원의 범죄로 앞으로는 절대로 5대 신도시와 같은 무분별한 신도시를경기도에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는 말이 돌았기 때문이었다.6공정부가 최대치적으로 꼽는 신도시건설을 민선도지사가 실패작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9월 건교부가 수도권신도시신설계획을 밝히자 이인제 경기도지사는 반대의사를 강하게 표시했다. 그만큼 신도시건설의 후유증이 크게 생채기로 남아있는 것이다.「자족기능을 갖춘 꿈의 도시」라는 분홍빛 청사진을 갖고 시작된분당 일산 평촌 중동 산본 등 5개 신도시. 지난 89년 계획발표때부터 일부 원주민들의 죽음을 불사한 반대와 무리한 사업추진에 따른졸속에 대한 우려를 뒤로 한채 모두 마감됐다. 지난 3월말 5개 신도시의 입주현황을 보면 모두 25만1천7백19세대 1백만6백84명이 입주를 마쳤다. 당초 계획인구인 28만6천3백14세대 1백16만8천명의86%가 입주한 것이다. 계획발표로부터 불과 7년만에 1백만명이 대이동을 한 신도시. 「단군이래 최대공사」 「자족도시·꿈의 도시건설」이라는 수식어를 꼬리표처럼 붙이고 다녔던 신도시건설은 이제 입주민들에게 정부에 대한 불신만 키운채 끝손질이 군데군데서이뤄지고 있다.◆ 서울 집값 잡기위해 계획, 제반 시설 태부족자족도시건설이라는 정부의 슬로건과 달리 당초 신도시건설은 서울을 중심으로 미친 듯 뛰어오르던 부동산가격을 안정시키고 수도권의 인구과밀을 억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나온 것이다. 토지공사의한 간부도 『분당과 일산신도시는 자족기능을 갖춘 신도시로 개발키 위한 것이 아니라 폭등하는 서울의 집값을 잡기위해 기획』됐기때문에 『도시기능을 제고하는 각종 시설이 들어서지 못하고 있는것이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부동산폭등으로 「정권위기론」까지 나왔던 6공정부가 주택 2백만호건설이라는 주택공급확대로 부동산가격을 진정시키기 위해 모든 국력을 쏟아부었다.그러나 이제 입주가 거의 끝난 신도시의 오늘은 곳곳에서 나오는불만으로 가득차 있다. 물론 성과도 있다고 정부측에서는 말한다.처음으로 도시설계개념을 도입한 신도시조성, 같은 지역에서 경쟁적으로 분양에 나서 주택품질에 대한 입주자들의 평가를 고려한 건설업체들의 경쟁으로 주택품질에 대한 제고, 미친 듯이 뛰어오르던부동산가격을 「양떼기」식의 공급확대라는 정책으로라도 진정시켜지금까지 부동산시장의 안정을 갖고왔다는 점등이 신도시건설의 효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에서 내세우는 신도시의 효과도 따지고보면 「눈 가리고 아옹」식의 자화자찬이다. 도시설계개념을 도입했다지만 신도시설계에서 교통 의료 치안 교육 상업 상하수도 등기반시설이나 근린생활·공공시설에 대한 사전고려나 준비가 없었다. 무조건 아파트 먼저 분양·건축·입주하는 과정에서 신도시 초기입주자들은 공사장의 소음과 흙먼지, 교통난 등과 힘든 싸움을벌여야 했다. 일의 순서가 뒤바뀐 셈이었다. 주택업체들의 품질제고도 신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쉽게 수긍하기 힘든 부분이다.2백만세대 건설이란 대공사에 따라 바늘가는데 실가듯 건자재부족이 뒤따랐으며 이는 곧 신도시아파트의 부실공사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지난 93년 경기도가 도의회에 제출한 행정사무감사자료에 따르면 92년부터 93년 10월까지 5개 신도시아파트6만9천6백79세대 가운데 5만2천9백29건의 하자보수신청접수가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달 평균 2천4백6건, 매일 평균 80여건의 하자보수요청이 접수된 것이다. 바닷모래 사용과 불량건자재 사용의혹 등으로 이미 신도시가 안전에 관해 한차례 홍역을 앓았으며 지금도 신도시아파트들 가운데 튼튼함의 정도에 따라 집값이 차이가나고 있다. 일산신도시에 거주하는 조모(36, 주부)씨는 『다른 신도시에 비해 일산이 인기가 좋은 것은 바닷모래보다는 임진강의 모래를 사용해 상대적으로 튼튼하다는 말이 나온 점도 크다』며 『그렇지만 어느 아파트가 바닷모래를 많이 사용했다거나 어디가 부실한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불안감은 아직 남아있다』고 말했다.주택가격의 안정도 단순히 공급확대가 아니라 강력한 부동산대책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신도시들이 공통적으로 안고있는 문제는 바로 서울과의 연계 즉 서울진입을 위한 교통문제다. 중동신도시에 거주하는 회사원김모씨(32)는 『인구 15만명이 거주하는 대규모 아파트단지지만 서울로 출근하기 위해서는 새벽부터 차를 몰고 나가거나 조금 늦으면지옥철(지하철 1호선)을 이용해 영등포역까지 간 뒤 다시 버스로갈아타고 마포의 회사로 출근한다』며 『신도시의 교통은 너무 열악하다』고 말한다. 평촌신도시에 사는 회사원 최모씨는 『서울로출근하려면 남태령고갯길과 1번 국도를 타야하는데 보통 2시간이상걸려 새벽부터 집을 나선다』고 말한다. 그래서 최씨는 기회만 생기면 집을 세주고 다시 서울로 전세라도 들어갈 생각도 하고 있다.실제로 최씨처럼 서울로 U턴하는 입주자들도 늘고 있다. 94년말까지 입주민 1백6만명중 16%가 신도시를 떠났으며 입주후 5년 이내에28% 정도가 신도시를 떠나기를 바라는 것이란 조사도 있었다.치안도 문제다. 얼마전까지만해도 일산신도시에는 파출소 파견소각각 1개씩 21명의 인원이 30만명의 치안을 담당했었다. 지금은 파출소가 4개로 늘어났지만 그래도 취약하다는 것이 주민들의 의견이다. 서울 노원구에서 살다 산본신도시로 입주한 김인섭씨(44, 식당운영)는 『입주초기에는 범죄가 많이 생겨 괜히 왔다는 생각도 들었을 정도』라며 『지금도 주변에 도둑이 들었다는 집이 많을 정도로 절도사건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고 말한다.근린생활시설의 부족으로 주부들이 다른 도시로 장을 보러가야 하는 불편함을 겪어야 하는 것도 신도시의 문제다. 군포시청에 근무하는 조승웅씨는 『백화점이나 시장 대형쇼핑센터 등 상업시설이아직 형성되지 않아 군포시의 재래시장이나 안양까지 나가 장을 보는 경우가 많다』고 불편함을 털어놨다. 반면에 일산신도시의 경우지나치게 많은 상업시설로 중소규모의 자영업자들은 불만이다. 대형상업시설이 많이 들어서 소형점포들은 이제 곧 문을 닫아야 할형편이라는 것이다. 일산신도시 입주자대표자협의회권오활회장(64)은 『토지공사가 땅장사를 할 목적으로 값이 비싼상업시설용지를 많이 조성해 업체들에 넘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교통문제 등으로 서울로 U턴하는 입주자 증가의료시설부족은 더욱 절감하는 부분이다. 5개 신도시주부 5백7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서울대 대학원 박준필(31, 도시공학)의 「신도시 도시시설의 공급특성에 관한 연구-주민만족도를 중심으로」라는박사학위논문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으로 가장 많은 주부들이 병원시설이라고 응답하기도 했다. 실제로 일산신도시의 경우 종합병원이 없다. 정발산남쪽에 의료보험공단이 내년 준공을 목표로 공사하고 있을 뿐이다. 병원이 없어 누가 급작스레 아프거나 사고라도나면 서울까지 나가야 한다. 권회장은 『인구 30만명의 도시에 병원하나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말한다.「미래지향적인 정보산업기능의 자족도시」(분당), 「통일거점의자족도시·평화시·예술 관광 국제회의시설을 갖춘 전원도시」(일산), 「경인운하를 낀 문화도시·한국의 베니스」(중동), 「새로운중심업무지역」(평촌·산본). 신도시건설에 나붙었던 화려한 수식어들이다. 그러나 사업이 모두 완료된 지금의 신도시는 신도시(辛都市), 배드타운(bad town)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신도시주민들은아파트부실공사등 불만을 밖으로 크게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바로신도시부실은 신도시아파트값의 하락이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1백여만명이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신도시주민들은 신도시가 당초의 제이름값하기만을 기대하고 있다. 그것은 정부의 몫이다.★ 미니 인터뷰 / 일산신도시 입주자대표자협의회 권오활 회장「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신도시의 문제점들이 하나둘씩불거져 나오면서 입주자들의 단체가 정부를 상대로 조직적으로 문제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개개인이 말해서는 반응이 없기때문이다.입주자들이 스스로 신도시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발벗고 나선것이다.실제로 올해초 신도시문제가 터져나오면서 일산신도시의 각 단지별입주자대표들은 회의를 통해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낸다고 해 선거를 앞둔 정부측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가장 활발한활동을 벌이고 있는 일산신도시 입주자대표자협의회 권오활 회장을만났다.일산신도시에 들어와 살면서 지금 신도시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면.일산신도시는 한수이북의 유일한 신도시로 특수한 성격의 도시다.그래서 입주전에 주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공약으로 외교단지 종합전시장 출판단지 등을 갖춘 통일안보도시로 만든다고 정부측에서말을 했다. 특히 외교단지는 입주자들을 안심시킬 상징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해말 신도시사업이 완료됐지만 외교단지는 물거넌간 사항이 됐다.자족도시도 말뿐이다. 기반시설의 경우 다른 곳에 비해 낫다는 말을 듣는 일산이지만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다. 치안의 경우 현재4개 파출소가 운영중이지만 아직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의료시설은 가장 큰 문제다. 인구 30만명의 도시에 종합병원이 하나도 없어 서울까지 나가야 한다. 교통은 5개 신도시중 가장 좋지만 출퇴근시간대에는 체증이 심하다. 당초 정부측의 계획에서 이뤄진 것이거의 없어 결국 서울의 베드타운으로 전락한 것이 일산신도시다.지난 3월 정부를 상대로 입주민 1명당 1백만원씩 모두1천5백억원에이르는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다고 했는데.현재 소송을 유보한 상태다. 당초 돈과 같은 물질적인 보상을 목적으로 한게 아니었다. 정부가 약속한 자족도시의 기능을 갖춰달라는강한 의사표시였다. 토지공사는 단순히 땅장사를 하면 끝이지만 시설유치는 정부차원의 일인데 예산부족 등의 이유로 잘안되니까 정부에 주민들이 약속이행을 촉구한 것이다. 결국 정부측에서도 외교단지부지에 사법연수원을 짓는 것과 같이 이미 확보된 땅에 다른목적으로라도 사용하겠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고있다. 정부측의 수정계획에 대해서는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수용하자는 분위기로 의견이 모아졌다.정부가 당초 약속했던 신도시를 자족도시로 형성한다는 공약이 실패한 이유를 무엇이라고 보는지.무리한 일정때문이다. 불과 5∼6년 사이에 하나의 도시를 만드는것은 무리다. 또 다른 이유로는 비싼 땅값을 들 수 있다. 토지공사에서 조성한 업무용지와 상업용지는 감정가격으로 매각해 일산의경우 조성원가 90만원에 비해 최고 9배인 8백만원까지 한다. 토지공사에서 비싼 상업용지만을 많이 개발해 공급해 대형상가들만 많이 들어서고 있다. 또 비싼 땅값으로 당초 유치키로 했던 여러 시설들이 일산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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