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미지' 문화활동 협찬 붐

80년대까지만해도 기업들의 문화사업지원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선택사양」이었다. 애오라지 그룹총수의 기분에 따라 즉흥적으로 결정되는게 고작이었다. 문화사업지원에 대한 올바른 철학을지닌 경영자를 좀체 찾아보기 힘들었다. 문화활동에 대한 지원효과가 무엇인지 그저 막연하기만 했다. 「이윤추구」라는 기업논리와「인간의식함양」이라는 문화예술의 가치가 전혀 별개인 것처럼 비쳐졌다.그러나 이제 시대가 변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생각도 바뀌고 새로운 경영관이 자리잡게 된다.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로 선진국 문턱에 성큼 다가서면서 기업과 문화의 관계가 밀접해졌다. 웬만큼먹고살만해졌으니 대중들의 문화활동에 대한 참여요구가 급격히 늘어났다. 삶의 질과 문화적 권리에 많은 관심을 갖게되는 시기이다.이제 그 수요를 무시하고 제품이나 서비스를 팔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센스없는 경영자는 아무도 없다. 따라서 대중의 문화수요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채워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다. 기업의 메세나활동이 제품의 품질과 가격 못지않게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광고를 통한 판촉활동만으로 기업과 제품의 이미지를 전달하는데 한계가 있다. 문화활동에 대한 지원이나스포츠단을 운용하는 것은 기업의 독특한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경영전략으로 풀이할 수 있다.기업들이 해외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는데도 메세나활동은 필수적이다. 간판과 제품만 갖고 나갔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잦다. 일본의 소니사가 미국 현지에 진출하면서 보스턴필하모니를 꾸준히 지원한 것은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지난 94년과 95년 재미일본계기업중 대부분이 미국내의 자선활동에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의 예술지원기업위원회(BCA)에 따르면 미국에서 활동하고있는 1천3백개의 일본기업중 22%가 비영리 예술단체를 후원했으며이중 95%가 기부금액을 전년과 동일한 수준으로 유지했거나 증액했다. 특히 회사직원들이 비영리단체에 기부를 한 경우 회사도 일정비율의 기부금을 지원하는 매칭그랜트제도가 문화지원을 활성화시킨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기업과 예술단체의 가교 단체도 생겨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 95년 한해동안 기업들이 메세나 활동으로 문화예술부문에 지원한 금액은9백26억3천7백52만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도의지원규모(5백99억9천2백만원)에 비해 54% 증가한 것이다. 지원횟수도 9백88건으로 전년도(2백84건)보다 크게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알려지지 않은 지원사례까지 포함할 경우 그 규모는 훨씬 커질 것이다. 지난해 기업메세나 활동이 활기를 띤 것은 광주비엔날레개최와 광복 50주년 기념행사가 많았던 점과 무관치 않다.또 경기호황으로 높은 수익을 거둔 기업들이 넉넉한 마음으로 거금을 쾌척한 것도 한몫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룹별로는 삼성그룹의지원이 가장 활발했다. 삼성계열사의 지원건수가 1백46건으로 전체지원액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이다. 다음으로 포항제철 LG그룹 현대그룹 금호그룹 동아그룹 대우그룹 쌍용그룹 대한항공 등이었다.올들어서도 기업들의 메세나활동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상반기중기업들의 메세나활동은 4백69건에 걸쳐 총 4백2억7천6백88만원이지원된 것으로 나타났다.현대전자의 매트 하이모비츠첼로독주회협찬, 한보그룹의 돌담길 추억이 있는 음악회협찬, 한국마사회의 서울연극제 자유참가작 협찬, 종근당의 재해기금마련을 위한 자선음악회협찬, LG전자의 국립도서관내 전자도서관재단장지원, 아시아나항공 미추홀예술진흥회 창립 10주년기념음악회협찬, 삼성생명의 라스칼라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내한공연협찬등 각 부문에서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대부분의 메세나활동은 「협찬」형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다시말해기획단계에서 행사의 성격이 결정된 상태에서 후원기업을 물색하는공연기획사들에 지원여부를 통보해 주는게 일반적이다. 문화예술단체가 기업에 후원이나 협찬을 요구해오면 기업들이 이를 검토해 일정한 자금을 지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공연예술인 경우 지원금에해당하는 티켓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사례도 있다. 그러나 예술단체나 공연에 지원금을 주는 것이 메세나운동의 전부라고 할 수 없다.70년대초 미국 엑슨사가 40개 예술단체에 상당량의 사무실집기를제공한 적이 있다. 낙후되어 있는 예술단체나 공연장 사무실에 첨단 사무환경을 제공하는 것도 메세나활동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또 미국의 보잉사와 시애틀오페라단이 자매결연을 맺었듯이 공연단체에 경영컨설팅을 제공하는 것도 문화지원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물론 일부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적절한 문화행사를 지원하기 위해팔걷고 나서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나 문예진흥단체 등을 통해 자사의 이미지에 맞는 예술단체나 행사를 발굴해 지원하기도 한다. 이 경우 지속적인 지원이 이뤄지는게 특징이다. 쌍용그룹의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에 대한 지원이 대표적인경우이다. 지난 89년 쌍용그룹의 김석원회장(현 고문)은 기업이익의 사회환원차원에서 문화사업에 대한 지원을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처음에는 오케스트라창단등을 검토했으나 여러가지 어려움이뒤따랐다. 결국 당시 재정난을 겪고있는 국내 유일의 민간오케스트라인 코리안심포니를 지원키로 결정했다. 쌍용그룹 김훈대과장은지원초에는 매년 3억원씩 지원하다가 최근 연간 5억5천만원씩 8년째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코리안심포니의 위상을 높이기위해 매년 용평뮤직캠프를 개최하는등 입체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쌍용그룹 관계자는 코리안심포니가 국제적인 오케스트라로 성장할 때까지 계속 후원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일부 기업들은 음악단체나 미술관 등을 직접 운용하는 경우도 늘고있다. 동아백화점은 올들어 어린이들만을 위한 아동토털서비스공간인 파랑새극장을 개관했다. 대기업등이 운용하는 미술관이 40개를넘어섰고 음악단체는 4개, 아트홀도 10여개 된다. 이는 새로 사옥을 짓는 기업들이 문화공간을 확보하려는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음악단체를 운용하는 기업은 금호 (현악4중주단) 신원등이 있다.◆ 메세나활동 대부분 ‘협찬’ 형식지원분야도 점차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음악 미술 등에 편중됐던 메세나활동이 문화시설의 건립과 같은 문화적 사회간접자본에대한 투자에도 활발해지고 있다. 삼성그룹은 올해 운니동 현대미술관을 완공하는데 뭉칫돈을 투자했다. 삼성전자의 수원야외음악당시설, 대우그룹의 거제박물관, 포항제철의 포항문화예술회관건립과광주비엔날레시설지원등이 대표적 예이다. 대기업외에 중견기업들도 문화예술지원에 관심을 쏟고 있다. 백양은 지난해부터 예술의 전당 공식후원사로 활약중이고 이랜드는 매년 가을마다 중국미술전을 개최하고 있다. 또 인켈 계몽사는 아트센터를 운용하고 있다.메세나활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업과 예술단체의 가교역할을 할 수 있는 민간단체(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도 생겼다. 이 협의회는 김영삼대통령이 기업인들의 문화예술활동지원을 당부하면서실체화됐다. 88년 올림픽을 전후해 체육계를 지원해왔던 기업들이상대적으로 뒤처진 문화예술분야를 지원해야 한다는 인식과 맞물려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5단체가 주축이 돼 기구를 발족했다.이 협의회는 음악 미술 무용 연극 전통예술등 분야별로 예술단체를추천하고 메세나활동을 펼치려는 기업에 대해 자문역할을 하고 있다. 협의회회장을 맡고있는 최원석 동아그룹회장은 기업과 문화가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돼 공공이익을 증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니 인터뷰 / 김치곤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 사무처장기업의 메세나활동은 적선을 하듯 시혜적으로 베풀어지는게 아니다. 예술문화단체와 기업간 상호보완적인 입장에서 양자간의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 문화예술에 대한 대중의 갈증을 풀어주자는 의도를 깔고 긴밀하게 협조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한다.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는 기업메세나가 올바르게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유도하자는 취지에서 94년초 발족됐다. 이 단체가 어떤 활동을 하고있는지김치곤 사무처장으로부터 들어봤다.▶ 기업메세나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한마디로 기업 자체의 문화화를 뜻한다. 쉬운 예로 백화점에서 물건을 고를 때 기능과 가격으로 구매를 결정하는 시대는 지났다. 오히려 감성으로 제품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기업이 독특한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이를 위해 펼치는 활동을기업메세나라고 정의할 수 있다. 기업내부에서 벌어지는 기업문화활동과 다른 의미이다.▶ 선진국에 비해 국내기업의 메세나활동은 어느 수준인가.21세기를 앞두고 보편화되고 있어 다행스럽다. 그러나 아직은 자리를 잡았다고 말할 수 없다. 미국은 1960년대부터 기업메세나활동이꽃을 피웠다. 특히 아쉬운 것은 기업의 메세나활동이 일회성행사로그치는 경우가 적지않다. 나름의 철학을 갖고 소신있는 지원활동을기대한다.▶ 협의회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대기업 중소기업 문화재단 등 1백71개회원사들이 문화활동을 적극지원토록 유도하고 예술계가 기업과 상호보완적인 협조체제를 구축토록 노력하고 있다. 격월간으로 「메세나」를 발행하는 것도 이를위해서이다. 물론 지원의 폭과 범위는 전적으로 개별기업이 판단해결정한다. 또 기업인들의 인식제고를 위해 예술현장프로그램을 마련해 왔다. 내년에는 선진국의 메세나활동을 배우기 위해 국제세미나 등도 개최할 방침이다.▶ 기업메세나활동이 활성화되기 위한 전제조건은.한국적인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최고경영자의 굳은 의지이다.사실 남이 하니까 따라서 하는 경우도 없지않다. 획일적인 일회성지원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장기적인 지원활동을 소신껏 펼쳐야한다. 다음으로 대학에 예술경영을 전공할 수 있는 별도의 과가 생겨이 분야 전문가가 배출돼야 한다. 그래야 문화예술활동을 위한 과학적인 자금모금담당자(Fundraiser)가 육성될 수 있다.▶ 제도적으로 미비한 점은 없는가.세제혜택을 위해 메세나활동을 펼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문화예술에 대한 스폰서링과 문화예술진흥기금에 내는 조건부기금등은 모두 손비로 인정받을 수 있다. 제도적인 문제를 제기하는경우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