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방' 선의경쟁 통해 황무지 개간

한국조사업계의 역사는 19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실험적인시장조사회사와 사회과학분야의 연구소가 많은 인재들을 배출함으로써 태동기를 맞게 되는 것이다.유한시장조사기획회사는 현재 한국닐슨사장으로 있는 김용한사장이세웠다. 서울의 휘문고등학교를 나와 미국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김사장은 당시 유한양행에 출자하도록해 회사를 설립했다. 그러나「먹고살기도 바쁜 시절」에 영업이 잘 되기는 어려웠고 2년만에문을 닫고 만다. 1년 뒤에 세워진 한국행동과학연구소는 서울대 정범모교수가 이끌던 사단법인이다.이 연구소출신인 한국리서치의 노익상사장은 『정교수는 수완이 매우 뛰어난 분으로 유엔에서 자금을 받아내 한국인들의 가족이나 의식 등에 대한 다양한 조사활동을 할 수 있었다』고 기억하고 있다.1년에 수만달러라는, 당시로서는 아주 큰 자금을 끌어댄 것이다.연구소에서는 정부와 손잡고 초등학생들의 학습지를 만들어 전국의학교에 배포하기도 했고 신입사원의 적성검사샘플을 국내최초로 고안해 내기도 했다.현재는 10여명안팎으로 규모가 줄어 명맥만 유지하고 있으나 당시정교수는 주요대학 사회·심리학과출신들을 모두 수하로 끌어들여연구원이 1백50명 정도에 달했다고 한다. 이곳 출신들은 후에 유학을 거쳐 대학교수가 되기도 하고 조사업계로 흘러들기도 했다. 「정범모사단」으로까지 불리는 세를 과시한다.◆ 87년 대통령선거후 조사업체 할거70년대 초반에는 오리콤 제일기획 등 광고회사에서 조사업무가 시작되고 ASI 한국갤럽(당시는 KSP)등 조사회사가 세워진다. 행동과학연구소출신의 김태환, 이종목씨는 각각 오리콤과 제일기획에 들어가 조사분야를 키워 나간다. 그 바통을 이어받은 사람이 최동만이사(오리콤)와 유광준이사(제일기획)다. 최이사는 김태환씨가 총애하는 서울대 심리학과후배였다.앞서 조사회사의 문을 닫아야했던 김용한사장은 73년에 다시 국내진출한 ASI란 조사회사를 이끈다. 연구소를 나온 노익상사장도 이곳에 합류한다. 노사장은 3년을 근무한 후 한국리서치를 세워 독립하게 된다.한편 서울대에서 철학, 경영학을 전공한 박무익사장은 71년 마케팅연구소를 세워 경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국갤럽이 들어온74년 소장으로 취임한다. 또 김영한사장은 ASI가 철수한 후 81년A.C.닐슨이 국내에 진출하자 부지점장으로 들어가게 된다. 70년대를 거쳐 80년대초 한국닐슨이 생겨나게 되면서 현재 조사업계의 빅3으로 알려진 한국닐슨 한국갤럽 한국리서치가 서로 경합을 벌이는구도가 갖춰졌다.행동과학연구소가 큰 영향을 미쳤고 학문적으로는 사회학 심리학경영학의 뒷배경을 가진 인물들이 이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김용한 박무익 노익상사장과 최동만이사는 현재 국내조사업계의4인방으로 부를 만하다.한국갤럽등 3개사는 중간규모의 조사회사를 파생시킨 조사업계의「텃밭」이라고 할 수있다. 87년 대통령선거를 전후해서 생겨난 많은 조사업체를 3개사에서 배출한 것이다.코리아리서치의 박영준 사장은 서울법대출신으로 한국갤럽에서 일하다 88년 독립했다. 동아리서치의 이창모 사장도 대홍기획과 한국갤럽을 거쳐 비슷한 시기에 별도로 살림을 차린 경우이며 M&C의 한기룡사장도 한때 갤럽에 근무했었다.고려대 사회학과출신의 변동만 사장은 한국리서치에서 실무경험을쌓은 후 동서리서치를 차렸다. 한국리서치는 TV시청률조사로 유명한 MSK에 50%를 출자해 놓고 있다. MSK의 정구호사장은 서울대문리대를 나와 기자로 짠뼈가 굵은 사람이다. 신문사 편집국장과 KBS사장을 거쳐 91년부터 MSK의 공동대표로 있는, 조사업계에서는 특이한 경력이다.또 리서치 앤드 리서치 노규형사장은 서울대 심리학과와 미국에서정치학을 전공한 후 89년 회사를 설립했으며 이화여대출신의 이상경사장은 여성으로는 드물게 현대리서치를 키워왔다. 외국계회사로는 호주세가 강하다. 프랭크스몰도 그중의 하나로 업계에서 상당히인정받는 활동상황을 보이고 있다.◆ 교수집단도 연간 1백억대 시장 잠식이렇게 만들어진 연간매출10억원 이상 정도의 조사회사들은 92년한국마케팅여론조사협회(KOSOMAR)를 조직했다. 회원들 상호간의 권익을 옹호함은 물론 공정한 조사를 위해 노력하고 불필요한 가격경쟁을 지양하기 위한 것이다. 유럽마케팅여론조사협회(ESOMAR)가 설립이후 50차례이상의 총회를 거친 유서깊은 단체임을 감안할 때 우리의 조사시장은 이제 걸음마단계를 겨우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이들 외에 군소업체로 20여개사가 활동하고 있으나 대부분 매출규모가 아주 작으며 실사전문업체도 다수 포함돼 있다.국내조사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교수집단이 있다. 업계관계자는 『현재도 인맥을 통해 교수들에게 할당되는 조사건수가상당량이며 유명한 마케팅교수의 경우 연간 10억원이상의 매출을올리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이렇게 교수들에 의해 형성된 조사시장만도 연간 1백억원대에 다다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교수들은 이론적인 측면에 강한 것을 무기로 해서 보통 조사와 함께 마케팅관련 컨설팅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대로 실무적인 전문성이 떨어지고대학원생 등을 실사인력으로 활용하고 있어 조사 결과에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상품이 있어야 - 마케팅모델에 의한 정보판매 '주목'국내조사업체들은 대개 특정기업의 요구에 따라 질문서를 만들고결과를 작성, 보고하는 애드혹(ad hoc)리서치를 많이 한다. 그러나최근에는 조사회사가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정보를 만든후 이를 필요로 하는 기업들에 판매하는 신디케이티드 리서치(프로그램 리서치)도 고개를 내밀고 있다. 한편 검증된 마케팅모델을 활용, 신제품의 수요예측 등을 통해 전체적인 기업의 마케팅활동을컨설팅하는 마케팅모델에 의한 정보판매도 주목받는다.물론 신디케이티드 리서치나 마케팅모델에 의한 정보판매는 부가가치가 높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조사회사가 장기간에 걸친 데이터베이스로 축적함으로써 업계의 동향이나 추세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한국닐슨 한국갤럽 등 외국계기업이나한국리서치같이 꽤 긴 업력을 가진 회사만이 정보를 독창적으로 가공해 수요기업에 판매한다. 또 신디케이티드 리서치의 일종인 TV시청률조사에서 보듯 이같은 정보가공에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따라서 업체들이 영세성을 벗어나야 한다는 선결과제가 따라붙는다.한국닐슨의 소매점조사(Retail Index)는 신디케이티드 리서치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모기업(A.C. Nielsen)의 노하우를 전수받아64개회사의 95개 품목(94년말 현재)에 대해 정기적인 소매점조사를하고 있다. 한국닐슨은 그동안 4년에 한 번씩 전국규모의 센서스를실시, 소매점수와 매출액증감 등을 추계해서 모집단을 조정해왔다.이를 기반으로 지역별 도시형태별 소매점형태별로 표본소매점을 만들어낸다. 1백80명 정도의 조사요원들이 2개월에 한 번씩 소매점포를 돌아 조사품목의 판매 구입 재고상태 등을 파악한다. 이를 통해나온 데이터들은 제품의 시장점유율과 그 추이, 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 유통경로에 대한 효율성 등을 판단하는 기초자료로 충분한 가치를 갖게 된다.한국닐슨은 또 최근 베이시스란 판매예측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는 마케팅모델에 의한 정보판매다. 소비자의 반응이나 광고 유통판촉등 마케팅계획을 15개항목에 걸쳐 조사해 판매량을 예측하는마케팅 시뮬레이션 조사기법이다. 이 프로그램은 신제품개발에 앞서 성공가능성을 타진하는 프리베이시스, 가상의 신제품에 대해 소비자들의 구매의사를 조사하는 베이시스, 신제품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는 베이시스Ⅱ등 6단계로 구성돼 있다. 한국닐슨은 7백개 이상의 적용사례를 추적조사한 결과 전체샘플의 96%가 예측량과 실제판매량에서 25% 이내의 오차를 보이는 상당한 정확도를 나타냈다고설명하고 있다.일반적으로 사회여론조사를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진 한국갤럽조사연구소는 마케팅조사에서도 일가견을 가지고 있다. 한국갤럽의 옴니버스조사프로그램은 적은 비용으로 전국대상의 조사결과를 얻을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애드혹 리서치와는 달리 여러 고객의 다양한 조사수요를 모아 매월 정기적으로 개별면접에 의한 전국적인 조사가 실시되기 때문이다. 또 신제품의 개발에서 시장관리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별로 마케팅조사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시장참여여부를 결정하는데 필요한 시장세분화조사, 제품개발을 위한 컨셉수요예측 브랜드조사, 마케팅효율을 높이기 위한 광고효과조사 등일관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한국리서치는 지난 5년동안 서울시의 동별구매력조사를 실시해 보고서를 판매하고 있다. 인구 및 가구관련동향, 구매력크기 및 지수, 소매점수 및 관련정보를 정기적으로 수집한 것이다. 동별 구매력크기는 각동의 인구수에 1백26개의 폼목별 구매빈도를 곱한 것을서울시의 총구매빈도수로 나눈 것을 천분율로 나타내게 된다. 이같은 조사자료는 물론 기업들의 효율적인 마케팅을 위한 것이다. 어느 지역을 집중공략하고 어느 곳에 지점을 둘 것인지를 판단하는기초자료로 쓰이게 된다.조사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주먹구구식의 마케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신디케이티드 리서치들이 더욱 활성화되고 그 가치를 인정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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