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무용 장르 열며 대중화 선도

때론 은은한 호수에서 떠오르는 고아한 학이 되고 어느땐 정염에 휩싸인불덩어리가 되어 몸동작을 펼친다. 서은하 MBC무용단장(40)에겐 춤의울타리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발레는 물론 재즈에서 마카레나까지 능통하다. 그녀의 기예는 또한 전통무용이나 현대무용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리듬체조나 레크리에이션댄스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게 방송무용이다.서단장의 또다른 장기는 본능을 뛰어넘어 길들여진 「순발력」이다. 두세달씩 차근차근 준비해 무대에 올리는 순수무용과 달리 하루전에라도PD의 요청이 있으면 프로그램에 맞는 춤세계를 연출해야 한다. 짧지만긴 시간과의 싸움을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 안무는 물론 의상선택에까지만능해결사가 돼야 방송국 무용단을 이끌수 있다.자율적 연습분위기로 단원 기량 최대한 발휘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인기가수 베스트 50」에서 갑자기 백무용수들에게 형광의상을 입히기로 결정됐다. 블랙라이트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미술소품실에 형광의상은 없고 도료만 있었다. 막막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단원들이리허설하는 동안 스스로 붓을 들고 단원들이 입을 옷을 직접 페인팅했다. 그리고 단원들은 채 마르지 않은 옷을 착용하고 무대에 섰다. 침이바짝바짝 마르는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마음졸인 순간들과는 대조적으로 서단장의 표정은 언제나 밝고 부드럽다. 언제나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 댄스교습중에는 더욱 그렇다. 단원들이 기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자율적인 연습분위기를 만들어가기위해서다. 강압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뻗고 휘어돌리기를 시연하며단원들의 부족함을 자연스럽게 일깨워준다. 이마에는 이내 땀방울이 송송 맺히고 춤에 쏟는 열정이 마룻장을 뒤흔든다. 그러는 사이 단원들은음악을 끈삼아 하나로 뭉친다. 흥이 돋는다. 격정적인 호흡과 과감한 스텝이 공간을 가득 메운다. 스크린에서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짧은 순간에펼쳐지는 백무용수들의 화려하고 정교한 몸동작은 이런 과정을 통해 다듬어진다. 굳고 곧은 직업의식이 없으면 견뎌내기 힘든 지난한 과정이화면에 묻혀 있다.◆ 방송무용수 직업의식 인정받지 못할때 서글퍼서단장은 무용의 형태와 수준이 쇼의 수준을 가름한다고 거침없이 말한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쇼걸」이상의 역할이 있다. 그 역할을 제대로수행하기 위해선 방송무용에 대한 철학과 탁월한 예술적 소질을 갖추고있어야한다. 단순한 재능이상의 자질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86년 안무가로 MBC무용단과 인연을 맺은 그녀는 89년부터 단장을 맡아왔다. 현재는 20명의 여자무용수와 10명의 남자무용수를 이끌며 일주일에 서너건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클래식 프로그램에는 발레나 현대무용이 주로 사용된다. 단원들의 기량을 훨씬 많이 필요로 한다는게서단장의 설명이다. 작품의도에 맞는 적절한 안무를 위해선 담당PD 안무가 등과 진지한 대화를 나눠야한다. 안무에 맞는 단원을 선정하고 음악을 고르는 것도 가볍게 볼 수 없는 업무이다.물론 가장 돋보이는 프로는 쇼프로그램이다. 현란한 조명과 경쾌한 음악에 맞춰 다수의 무용단원이 참여하기 때문이다. 이때는 가수들과 호흡을맞추기 위해 별도의 연습을 해야한다. 단원들의 평균 방송무용경력은 6년정도. 어떤 응용동작도 일사불란하게 펼쳐보일 수 있다. 어제 공연했던동작과 전혀 다른 리듬을 선보일 때도 적지않다.그렇다고 그들의 무용에 깊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94, 95년에는 단원들이 스크린이 아닌 무대(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 서서 자신들의 작품(춤추는 세상)을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방송무용을 쉽게 생각했던 무용평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기도 했다.서단장은 『불특정다수(시청자)가 우리를 조금 본다해도 무용의 대중화를 가져왔다는게 만족스럽다』고 말한다. 소수의 인원이 나만을 봐주길기대하는게 순수무용이라면 소비자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반영해 새로운 형태의 장르를 여는게 방송무용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취향만을 고집하는 법이 없다. 언제나 대중의 수요에 부응해야 한다. 재즈댄스의 원천지는 바로 자신들이라고 여기고 있다. 서단장은 PD의 의뢰가 있으면 그프로그램의 시청자가 누구인가를 먼저 생각한다. 청소년들이 주시청자면자신도 그들의 시각과 감각으로 무대를 준비한다.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맞춰 춤을 췄기에 그런 상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서단장이 처음 춤을 시작한 것은 국민학교 시절부터다. 어렸을 때 무용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들여다보면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춤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서단장은 말한다. 춤과 운명적으로 맺어진인연이라고나 해야할까. 중학교 때부터 각종 무용대회에서 기량을 인정받았다. 이화여대 무용과와 대학원을 마친 서단장은 한때는 국립발레단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타고난 소질이 있었기에 순탄한 춤인생을 열어갈수 있었다.물론 방송국 무용단장으로서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불안한 세트에 단원들을 올려보낼 땐 뼈를 깎는 아픔이 있다. 또 방송무용수의 직업의식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때는 서글프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단원들이철저한 직업의식을 갖고있어 방송프로그램을 더욱 빛나게 할 수 있을 것으로 서단장은 자신한다.『자연스러움 속에서 질서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늦가을 철새떼가높고 광활한 하늘공간을 질서있게 수놓는 것처럼 우리도 스크린에서 멋과 질서를 시청자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땀 흘리고 있다.』 그것이 프로의식이고 직업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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