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개구리식 행보로 가전 가속

대우전자의 세계경영 전략은 약간 특이하다. 다른 전자업체가 가는길과 「반대 방향」이라고 봐서 크게 틀리지 않는다. 현 시점에서만 보면 질보다는 양의 전략에 가깝다. 대우전자가 연 20∼30%씩성장하고 있는 것은 물론 장사가 잘 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의도적인 몸집 부풀리기 측면도 있다.대부분의 전자회사들은 가전 부문을 사양산업이라고 보고 정보통신등 이른바 첨단 분야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고 있다. 그러나 대우는 정반대로 가전 부문 확장전략을 취하고 있다. 웬만한 기업이면 아무도 하지 않는 OEM(주문자 상표부착 생산방식)도 대우는 반대로 늘려가고 있다. 브랜드와 OEM 판매를 병행하고 있는 것이다.대우는 또 이익이 크지 않더라도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다면 과감히 뛰어든다. 가전은 극히 미성숙 경제권을 제외하고는 전세계적으로 거의 포화상태다. 장사꾼 눈으로 볼 때는 즐거움이 없다. 둔화되거나 감소추세인 성장률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도 대우전자는가전 확장 전략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왜 그럴까. 한마디로 시장가치를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우측의 생각은 이렇다. 『아무리 기술수준이 낮고 이익이 박하더라도 시장 장악력이 생기면뭔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대우전자의 세계경영은 이 확장전략에서 출발한다.오늘날 TV를 안 갖고 있는 가정은 거의 없다. 성장률만 갖고 보면「0」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TV 시장에서는 매년 1억2천만대의 대체수요가 발생한다. 신규는 별도로 하더라도 교체하는데만 이정도의 수요가 있다면 그것은 결코 포기해야 할 시장이 아니라는게대우측 판단이다. 통상 서방기업들은 이익이 30% 이하면 『사업할가치가 없다』고 보고 거의 손을 뗀다고 한다. 그러나 대우는 여유마진율이 5% 아니라 그 이하라도 손을 댄다.대우가 프랑스의 톰슨 가전부문을 인수한 이유도 이러한 확장전략과 깊은 관계가 있다. 톰슨 가전부문은 경영을 하면 할수록 적자가심화되는 지경에 와 있다. 좌파 정부하에서 오래 운영돼왔던 탓에「회사」라기보다는 「공공 서비스」 기관의 성격이 지배적인 기업이다. 심지어 프랑스 상류층에서는 『왜 그 골치 덩어리를 인수하려고 하느냐』며 대우를 만류했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을 정도다.그렇기 때문에 프랑스 정부 입장에서 볼 때 ▲적자기업을 인수하면서 ▲누적 적자는 그대로 안고 ▲고용도 줄이지 않겠다고 제안한대우 외에는 사실상 달리 대안도 없었다는 후문이다. 대우측에서는자신들이 「유일한 톰슨 해법」이었다고 자신하고 있다.◆ 톰슨인수로 광고투자효과·인지도 ‘기대’반면 대우가 이런 제안을 해가면서까지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바로 톰슨이 갖고 있는 시장이다. 톰슨은 미국 TV 시장 점유율 1위인 RCA 브랜드를 비롯, GE(TV와 VCR 종류만 톰슨서 납품), 최고가브랜드 프로스캔 등을 내놓고 있다. 유럽에서는 텔레풍켄, 사바 등의 브랜드로 12%의 시장 점유율을 갖고 있다.대우가 톰슨을 인수할경우 미국 및 유럽의 톰슨 시장이 손안에 들어옴은 물론이다.OEM 생산을 증대하는 이유도 전체적으로는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수 있다. 일본에서 팔리는 NEC 브랜드 TV는 전량대우제품이다(NEC는 가전라인 없음). 대우는 국내보다 일본에서 파는 양이 더 많다. 유럽은 필립스, 지멘스 등이 고가품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중저가 시장은 상대적으로 비어 있다. 이 틈새를 임포터라고 하는 도매상들이 자기 브랜드로 뚫고 있다. 대우는 이 임포터에게 OEM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물론 자체 브랜드도 있다. 예컨대 유럽에서 최고의 시장점유율(21%)을 갖고 있는 전자레인지의 경우 고가는 대우브랜드, 그 아래 중저가는 「마이크로로직」이라는서브 브랜드로 판매하고 있다.그러나 대우전자 전체로는 95년 현재 자체 브랜드와 OEM 생산 비율이 42대 58로 브랜드가 더 적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OEM을 늘려 가겠다는 것은 아니다. 한시적으로 채택되는 전략으로서 오는 2000년에는 브랜드 비율을 75%까지 끌어올린다는 생각이다. 대우의 생산 전략은 비교적 교과서적이다. ▲가장 생산비가 적게드는 곳을 권역별로 선정해서 ▲핵심기술과 기본 기술은 한국에서개발, 공급 ▲디자인과 부가기능은 현지 특성에 맞게 수정한다는게 골자다. 요컨대 경쟁력과 직접 연관되는 핵심부품은 자가화하고공용부품은 세계에서 가장 싼 곳에서 구입, 생산한다는 계획. 이를위해 대우전자는 서울 목동에 핵심기술 개발센터인 「테크 타워」를 세울 계획이다. 또한 공용부품은 어차피 해당 지역에서 조달할수밖에 없다. 이른바 「로컬 컨텐트(local contents)」라는 현지부품비율을 충족시켜야만 블록내 수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대우전자 확장 전략의 2000년대 목표는 전 세계 가전 시장점유율10%다. 그래서 TV의 경우 1억2천만대의 10%인 1천2백만대가 생산목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대우측은 각 권역별 시장 특성에 따른별도의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먼저 미국은 「합리적」 소비를 특성으로 봤다. 예산에 맞춰 구매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브랜드 판매가 별로 의미가 없다. 브랜드세일은 광고 효과가 기대하는만큼 안 나올 가능성이 있는데다 비용도 많이 든다. 그래서 판매점에 리베이트를 더 줘서 눈에 띄는 위치에 전시를 한다든가 하는 방식의 판매전략을 쓰고 있다. 유럽은 미국과 달리 브랜드 판매가 유리한 측면도 있다. 먼저 진출한 국내 업체들이 인지도는 높으나 중저가 이미지로 굳어져 있다.오히려 대우는 신규진출이나 다름없으므로 상대적으로 고가의 브랜드 판매가 가능하다. 유럽 지역에서 전자레인지가 20%대의 시장점유율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비롯해 영국과 이탈리아에서VCR(각 15%, 17%), 스웨덴에서 컬러TV(18%), 폴란드 체코 헝가리에서 PC모니터(각 35%, 25%, 30%) 등이 모두 1위를 점유하고 있다.최근에 개방된 구 소련지역은 일제 SONY나 대우나 큰 차이가 없고동남아시아는 배타적 국산품애용 의식이 있어 베트남의 오리온(대우)-하넬과 같은 합작 형식으로 진출하고 있다. 대만 파키스탄 미얀마 베트남 방글라데시 아랍에미리트연합 등 아시아 지역에서는냉장고, 컬러TV 등이 시장점유 1위를 기록중이다.◆ 브랜드사들이기 세계경영 성공 비결일본에서는 올해 세탁기를 시발로 브랜드 판매에 들어간다. 대우측은 공기방울 세탁기가 일본제보다 성능이 낫다고 보고 있는데 여기에 건조기능까지 겸비했다. 브랜드 명은 「DACUS」. 세탁과 건조기능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세탁기는 아직 일본에 없는데 대우가 이제품에 착안한 것은 일본의 가옥구조가 대체로 좁아 빨래대를 별도설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우는 독특한 차별성이 있다고보고 상당히 기대를 걸고 있는 눈치며 가격도 고가화할 계획이다. 대우의 마케팅 전략은 현단계에서는 「중가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제품」이다. 소니나 필립스는 고급품이기 때문에 중가시장에 접근할 수 없다. 중급 제품이 고가 시장에 갈수 없듯 고급품도 중저가 시장을 넘볼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대우는 소니같은 제한은없다. 전세계 시장의 7할 가량을 차지하는 중저가 시장, 특히 중가시장을 대우 브랜드로 평정하겠다는 복안이다.대우전자의 한 관계자는 아프리카의 신발 시장을 보는 눈에 빗대어말한다. 아프리카인이 신발을 안신는 것을 보고 한 업자는 『여기사람은 신발을 안신는구나』하고 철수했고 다른 업자는 『보이는게 전부 고객이네』했다. 그는 대우의 전략이 바로 이같은 발상의전환에서 출발한다고 강조한다. 기술에는 남들이 못만드는 독점적고급 기술이 있는가하면 설렁탕같은 범용기술이라도 싸고 맛있게만들면 손님을 오게 만드는 기술이 있다, 그 가운데 대우는 후자의길을 선택한 것이라는 설명이다.대우는 톰슨의 인수에 대해서도 대단한 기대를 걸고 있다. 톰슨 브랜드가 갖고 있는 시장의 인수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RCA는 TV와VCR의 원천 기술을 갖고 있어 지금도 연간 수억달러에 이르는 로열티 수입을 얻고 있다. 톰슨의 경영진은 내년도에는 로열티 수입만으로도 흑자를 내겠다고 공언할 정도다. 또 대우가 신기술을 개발할 경우 대우 브랜드로 파는 것과 세계적으로 알려진 RCA 브랜드로파는 것과는 초기 광고 투자비용이나 인지도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브랜드 사들이기, 이것은 대우전자의 세계경영을 성공으로이끄는 가장 값싸고 신속한 방안인 것이다. 최근 프랑스나 멕시코등지에서는 『RCA를 인수한다는 그 회사 제품이냐』며 판매하기가훨씬 수월해졌다는 얘기도 들려오고 있다. 대우측은 톰슨사 인수를계기로 가전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들겠다는 포부에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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