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시장은 양파?

미술품은 여러 가지 문화 분야 중에서도 가장 투자성이 높은 상품으로 꼽힌다. 부동산이나 금융 등과 같은 투자 요령까지 있을 정도다. 잘 보고 고른 미술품이 엄청난 작품으로 판명날 경우에는 일확천금까지 바라볼 수 있다. 음악이나 영화 등의 다른 문화 분야와는달리 구입해서 보전하면 재산가치를 갖는 것이다. 그래서 「미술시장」이란 말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미술시장이 활황인지 불황인지가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도 그래서다.미술시장에서 유통 채널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화랑가는 요즘 시장이 「불황」이라고 일제히 합창이다. 경기 불황의 영향으로 그림값이 이전보다 1/3 수준으로 떨어지기까지 했다고 비명이다. 게다가내년 1월1일로 다가온 미술시장 전면개방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몰라 혼란스러운 모습이다.우선 화랑들은 『미술시장은 이미 몇 년전에 개방됐다』(이현숙 국제화랑 사장)고 말한다. 외국 화가들이 국내에서 전시회도 갖고 작품도 팔 수 있어서 시장은 이미 열려 있었다고 하는 편이 옳다는말이다. 정부는 89년 수입자유화 계획을 발표하면서 골동품을 개방했고 90년부터는 조각과 조상 등의 작품을, 91년부터는 회화 데생판화류 등을 개방했다. 그 이전에도 화랑이나 화상이 외국 미술품을 들여오는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문화부 장관의 추천을 받아야해좀 까다로웠다. 수입자유화 조치는 이 추천 조항을 없앰으로써 수입을 간소화한 것이다.내년을 다시 미술 시장 전면 개방의 해라고 하는 이유는 내년부터는 외국의 미술품 소매상이나 화랑 등 투자법인이 국내에 들어와경제활동을 펼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정부는 경제활동의 세계화를 위해 93년에 「외국인 투자개방 5개년 계획」을 마련, 외국인투자가 제한됐던 81개 업종중 47개 업종을 97년부터 단계적으로 개방하기로 했다. 내년에는 28개 업종이 개방되는데 그중에 예술품및 골동품 소매업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내년 미술시장 전면 개방의 해아직까지는 개방을 앞두고 외국 화랑이 지점을 개설한다든가 하는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는 않다. 극소수의 외국 화랑 또는외국인이 시장을 조사하고 있는 정도여서 당분간 큰 지각변동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세계적으로 경기침체가 계속됨에 따라 외국 화랑들은 경영을 축소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무리하게 직접 진출을 시도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홍송원 서미화랑 사장은 『국내는 임대료도 비싸고 인건비 등 제반 비용 부담이 커 외국 화랑이 직접적으로 진출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외국 화랑이 불황이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시장에 눈독을 들일것이란 예측도 있다. 한국인의 외제 선호 경향이나 작품보다는 작가를 중요시하는 습성 때문에 예술성이나 작품의 질과는 상관없이작가의 명성만 있으면 잘 팔릴 것이라고 예상, 시장 침투를 노릴것이란 관측이다.외국 화랑이 어떤 형식으로든 국내에서 경제활동을 펼칠 때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은 화랑이다. 외국 화랑은 자본력이나 정보,국제적인 네트워크, 미술품 매매 경험 등에서 우리보다 앞서 있다.마케팅이나 전문가 확보 측면에서도 비교할 수가 없다. 이현숙 국제화랑 사장은 『미국이나 유럽에는 수백만 달러짜리 그림을 보유한 화랑이 수두룩하다』며 『우리 화랑은 거기에 비해 구멍가게식으로 운영돼 너무 영세하다』고 말한다.어떤 형식으로든 개방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는 국내화랑들은 다양한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특히 외국 화랑과 제휴하는 방안은 외국 작품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한편 외국 화랑의 직접 진출을 막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국내 화랑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내 시장 정보에 어두운 외국 화랑들에도 구미가 당기는 진출 방안으로 꼽힌다. 미술품 중개 업무에서 벗어나 미술관 건립이나 전시 기획, 한국 작가의 해외 진출에 대해컨설팅을 해주는 아트 컨설팅 분야로 영역을 넓히는 화랑도 늘고있다. 학고재화랑이나 금산갤러리 박여숙화랑 등이 아트 컨설팅에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화랑들이다.◆ 중소화랑, 전문화에 사활 걸어야전문가들은 시장 개방에 맞물려 국내 화랑이 가야할 길은 대형화와전문화라고 지적한다. 대형화란 전시장이나 매장을 확장하는 것이아니라 자본력을 강화, 확대시키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몇가지유형이 있다.우선 화랑 경영을 개인 사업에서 기업 형태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동안 국내 화랑은 출판 영화 공연 등 다른 문화예술 분야에 비해기업적 성격이 가장 희박한 분야였다. 마치 화상 개인의 사랑방 모임같은 사업에 머물렀던게 현실이다. 그러나 개방을 앞두고 주식회사 형태로 전환하고 있는 화랑도 등장하고 있다. 현재 주식회사 형태로 등록된 화랑은 6개인데 자금 도입이나 세제, 경영 면에서 유리해 주식회사형 화랑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영화산업처럼 기업이 직접 화랑 경영에 참여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수 있다. 또는 화랑간의 합병이 일어날 가능성도 크다. 화랑끼리합병을 시도한다면 건물 임대료나 관리비 등 고정비용이 줄어들고인건비나 시설 투자비도 줄어든다는 이점이 있다.공동 기획 혹은 기획력과 자본력의 제휴, 인력 교류 등 다각적인협력 방안도 가능하다. 이런 가운데 자연스럽게 외국 화랑과 합작하는 화랑도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대형화하기 힘든 중소 화랑들은 전문화에 사활을 걸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정한 장르나 경향의 작품을 취급, 전문성을 쌓아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것이다. 현재 국내 화랑들은 잘 팔리는 소수의 작가들을 놓고 경쟁하는 나눠먹기식이다. 앞으로는 외국처럼 화랑들이 각자의 특성에 맞는 개성있는 작가를 육성, 전속으로 두는 전속작가제 도입이 각광받을 것이란 예상이다.개방은 우리나라 시장이 우물 안에서 벗어나 세계화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외국 작품의 국내 유입뿐만이 아니라 국내 작가와 화랑의 세계 진출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이현숙 국제화랑 사장은 『지금까지는 국내 작가의 해외 전시를 시혜 차원에서 해주는식이었는데 앞으로는 국내 화랑이 앞장서서 해외 시장을 개척해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으로는 세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작가는 국내에서도 명성을 얻기가 힘들어진다. 국내 작가에 대한 세계적인 평가가 떨어진다면 국내 화랑에도 손해다. 화랑이 적극적으로국내 작가를 해외에 내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활발한 해외 시장진출과 함께 홍송원 서미화랑 사장은 국내 화랑끼리의 단결을 강조한다. 『일본은 미술 시장이 개방됐어도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일본 화랑끼리 단결, 일본 화랑을 통하지 않고서는 외국 화랑이 영업활동을 펼칠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다. 일본 콜렉터들도 외국 작가 작품을 살 때 꼭 일본 화랑을 통해 구입, 자국 화랑의 경쟁력을키워줬다. 우리에게도 그런 단결과 협동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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