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미술시장 '외화내빈' 극심

지난 10월 31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 17세기초조선시대 백자철화용문항아리가 7백65만달러(63억5천만원)에 팔려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경매회사에 지불하는 수수료까지 포함하면8백41만7천5백달러(69억8천만원)에 달한다. 아시아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이자 세계 도자기 경매사상 최고 가격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도자기인 셈이다.그러나 이 소식을 접하고 우리 도자기의 예술적 가치와 우수성을세계에 과시한 계기가 됐다고 마냥 좋아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한국은 세계 미술품 경매시장에서도 돈 씀씀이가 헤픈 「봉」이 되고있다. 세계 경매시장에서 비싼 가격에 팔리는 한국 고미술들은 대부분 일본이 약탈해간 문화재다. 일본인이 내놓은 한국 고미술을한국 사람끼리 경합이 붙어 가격을 올려놓는 것이다.도자기 경매 사상 가장 비싸게 팔렸다는 조선 백자철화용문항아리의 가격은 크리스티 측이 애초에 예상했던 가격을 훨씬 웃도는 것이다. 크리스티측의 예상 가격은 50만∼1백만달러 사이였다고 한다. 그런게 10배나 올랐다. 이 항아리에 관심을 보이고 적극적으로경합에 나선 딜러들은 대부분 한국인이었다. 응찰자 90명 가운데30여명이 한국에서 온 딜러였고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자 한국인들만 남았다는 것이다. 가격이 이렇게까지 뛴데는 한국 수집상들의동향을 손바닥보듯 파악한 크리스티 경매회사의 「작전」이라는 설도 인사동 일대에 무성하게 나돌고 있다.◆ 다른 한국문화재 값까지 올려 반입 어렵다외국에서 한국인들끼리의 값올리기 경쟁은 소더비나 크리스티에서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11월16일 독일 슈투트가르트 프리츠 나겔 예술품 경매장에서 벌어진 한국 중국 일본산 골동품 경매에서도한국인들의 골동품 사재기 현상이 나타났다.중국과 일본 골동품은 대부분 유럽 애호가들이 비교적 낮은 가격에사간 반면 35점이 출품된 한국 골동품은 10여명의 한국인 수집상들이 거의 매점하다시피 했다. 서울 인사동 화랑가와 뉴욕 파리 등에서 몰려든 한국인 수집상들이 자기들끼리 경쟁을 벌이는 바람에 예정가가 7천마르크(3백75만원)였던 조선백자 철사 작품이 60배가 넘는 44만마르크(2억4천만원)에 팔렸다. 이 가격은 이 날 경매된 상품 중 가장 비싼 것이었다.일각에서는 비싼 돈을 들여서라도 해외에 반출된 문화재를 들여와야 한다고 말한다. 또 한국 고미술 가격이 올라야 한국 고미술을소장하고 있는 일본인들이 물건을 내놓을 것이라고 지적한다.물론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가격을 올림으로써 해외에 나가는엄청난 외화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고미술의 가격이란게원래 절대가치란 있을 수가 없고 국가나 개인의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런 것을 굳이 우리끼리 경쟁해 가격을 올려놓아 외국 경매회사와 물건을 내놓은 일본인에게 떼돈을 안겨줄필요가 있느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해외에 흩어져 있는다른 한국 문화재들의 값까지 올려놓아 문화재 반입을 더욱 어렵게하고 해외 수집상들에게 한국은 「봉」이란 이미지만 심어놓은게아니냐는 시각도 있다.우리끼리 경합이 붙어 가격을 올리는 것은 한국 고미술을 국내에반입해야 하는 문화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욕심만을 생각,투자가치 높은 상품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가격을 올리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인사동 고미술상인 K씨는 『이번에 비싸게 팔린 항아리는 이미 지난해에 일본 소장가가 한국에공개해 한국 콜렉터에게 팔려고 했던 것』이라며 『당시 한국 고미술상들이 접근, 판매를 시도했을 때는 가격이 10억원이었어도 아무도 사려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는 그런 물건이 와도 아무도 큰 돈 주고 사려 하지 않는데 크리스티나 소더비에만 내놓으면 가격이 뛴다는 지적이다. 기본적으로 국내 수집가들이 한국 고미술 상인들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 고미술 시장이 해외에서는 활황이지만 국내에서는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말 그대로 「외화내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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