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활동 활발한가?

지난 94년의 일화.김영삼 대통령은 박세일 서울대교수를 청와대로 불렀다. 대통령은일단 김옥균이 주축이 된 1백여년전의 개화정책을 짚었다. 개화의실패는 식민지지배와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면서 민족사에 얼룩을 남겼다는 취지의 얘기를 했다. 김대통령이 이어 박교수에게 이렇게말했다고 한다. 『몇십년 뒤의 시점에서 봤을 때 「20세기말 그때이런 것은 반드시 했어야 했는데….」라는 회한의 소리를 들어선곤란하지 않겠소. 적어도 20∼30년뒤의 시점에서 돌이켜봤을 때 지금 반드시 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될 일들이 어떤 것인지 연구해주시오.』 박 교수는 이 자리에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비서관 임명통보를 받았고 얼마후 「개혁과 세계화」란 보고서를 설명했다고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세계화를 목표로 한 각종 개혁정책들이다.삶의 질 향상(복지), 교육·노사개혁과 환경정책, 사법개혁 등이다.박 수석은 혼자만의 구상으로 개혁과 세계화를 건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박 수석의 활동이 두뇌집단으로 해석되는 싱크탱크(Think Tank)의 역할이라고 봤을 때 사람들은 과연 YS의 싱크탱크가 어느 집단인지 그 실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싱크탱크는 어떤 조직내의 정책 기술개발 및 그 대안 발전방향 등을 제시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곳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같은 두뇌집단들은 도처에 산재해 있다. 이들은 어디까지나 조직내의 싱크탱크일 뿐이다. 자신들을 지원하는 조직에 필요한 논리를 제공하는데는 나름대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가 나아가야할 정책의 방향이나 과학기술의 진보를 가져올 만한 기초적인 지식체계를 제공하는 싱크탱크를 찾는 데 이르면 일이 간단치 않다. 너무 많기 때문인가, 없기 때문인가, 아니면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인가. 어느 기관을 꼬집어 「우리사회의 싱크탱크」라고 대답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렇다. 경제계나과학기술계의 대다수 두뇌집단이라고 일컬어지는 곳은 「나홀로 싱크탱크」인 경우가 많다. 과연 진정한 「우리사회의 싱크탱크」는어디일까.◆ 객관성·실용성 지닌 논리 제공해야국내에는 전국적으로 수천개에 달하는 기관이 연구소란 간판을 달고 활동하고 있다. 수십개의 국책연구기관들, 유수의 민간경제연구소들, 여기에 주로 산업기술개발을 담당하는 2천개가 넘는 기업부설연구소가 있다. 물론 각 대학들도 많게는 수십개, 적게는 대여섯개씩의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이들이 얼마나 명실상부한 우리사회의 싱크탱크인가를 점검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상당히 애매모호한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여러사람들의 공통적인 지적을 바탕으로 하면 한 사회의 싱크탱크란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객관성과 실용성을 지닌 논리의 제공」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해당 분야에서는 「정책적인 대안 혹은 진보적인 지식·기술의 생산기능」도 갖춰야 한다.이런 기능을 보유하지 못한 연구기관이라면 단순한조사(Research)기관일 뿐이다. 한 기업의 조사부와 별반 다름이 없다는 얘기다.국책연구소를 대변하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나 산업연구원(KIET)그리고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등은 국가경제와 관련된 많은 정책대안이나 발전전략을 제시해왔다. 특히 70, 80년대의 고도경제성장기에는 우수한 맨파워를 바탕으로 경제발전계획들을 제공하면서정부의 싱크탱크로 그 역량을 발휘했다.최근 베트남정부는 개발전략연구원이란 곳을 개설했다. 태국정부도태국개발연구원을 설립하고 있으며 라오스 파키스탄 등에서도 국책연구기관을 세우려 하고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공공연히 KDI를모델로 내세우면서 자문을 구하고 있다. 우리경제발전에서 KDI가충분한 역할을 수행한 기관이었음은 이런 식으로 증명되고 있다.그러나 KDI를 필두로 한 국책연구소들이 우리사회의 싱크탱크라고얘기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연구보고서가 객관성이란 측면에서 「흠집」이 없는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 결과는 과히 긍정적이지않다. 단적으로 경제성장률 하나를 예상, 발표하는데도 KDI등은 웃기관의 눈치를 살핀다는 지적을 많이 받아왔다. 국가백년지대계라는 교육개혁플랜을 짜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서도 교육개발원같은 국책기관이 아닌 새로운 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이같은 사실들은 정부 스스로 운영하는 국책연구소가 어디까지나 정부의 싱크탱크일 뿐이며 사회적인 관점에서 객관성이란 잣대를 댈 경우 흠집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그나마 KDI등은 아직도 명실공히 싱크탱크라 할만한 기관에 가장근접해 있다. 과거 박정희 전대통령시절 한국원자력연구소는 우리나라의 원자력정책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힘을 가졌었다. 원자력발전소나 핵개발사업 등 국책업무에 깊숙한 관여가 있었다. 그러나최근에는 「밑빠진 독 물붓기」라 해서 한국전력으로의 귀속이 추진되고 있다. 국가의 원자력정책과 관련된 싱크탱크라고 보기에는너무도 미력한 존재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여러 그룹사들이 운영하고 있는 민간경제연구소들은 그룹의 싱크탱크들이다. 10여년 남짓의 연혁을 가진 이들 민간연구소들은 1백여명 정도의 연구원을 두고 확실한 민간싱크탱크로의 성장을 다짐하고 있다. 삼성 대우 LG등 큰 경제연구소들이 국책프로젝트를 위탁받아 수행하고 있으나 그룹내에서 주어지는 내부업무에 비해 극히미미한 것으로, 전체 프로젝트의 평균 10%를 넘지 않는다. 그룹내의 업무에만 국한된 활동은 싱크탱크로서는 한계라고 할 수 있다.특정의 수요자와 연구소간에만 왔다갔다하는 보고서는 「그들만의잔치」에 해당되는 것이다. 연구소로서는 사회적인 검증을 얻을 수없어 스스로 수준향상을 시킬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결국 민간의 경제연구소들도 한 단계 뛰어넘어 우리사회의 싱크탱크란 지위를 얻기에는 크게 부족하다. 상대적으로 좋은 처우, 능력위주의 평가등으로 인해 국책연구소에 못지않은 우수한 인재들이모여들고 있지만 아직까지 사회적 파장을 불러올 만한 「알맹이 있는 정책방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민간경제연구소의 한 책임연구원의 고백을 들어보면 상황은 보다 심각함을 알 수 있다. 그는국책연구소에서 근무하다 1년전 자리를 옮겼다.『국책은 굉장히 폐쇄적이었다. 단지 「국내박사」라는 이유만으로푸대접을 받는 사례도 허다하다. 그래서 민간으로 옮겼는데 결국은「도토리키재기」였다. 심하게 얘기하면 어느날 갑자기 「시멘트산업의 발전방향」을 보고하라는 식이다. 그것도 한두달 안에. 베끼기 외에 다른 재간이 없었다. 충분한 시간을 거쳐 연구결과를 내놓는 일은 아예 생각할 수도 없다』. 그는 민간이건 국책이건 연구소에서 나오는 보고서들의 70∼80%는 외국의 것을 베끼는 것이라고추정했다.◆ 대기업경제연구소 국책 위탁 10%미만기업부설연구소나 대학부설연구소들의 실상은 더욱 참담하다. 정부의 연구개발(R&D)중시 때문에 연구소들은 많이 늘어났다(도표와 인터뷰기사 참조). 그러나 기초연구는 거의 없는 수준이고 응용연구도 내실있는 연구를 하는 곳은 소수에 불과하다. 간판만 연구소일뿐 병역특례 등의 혜택을 받기 위해 한두명의 석사가 품질관리업무를 수행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과학기술과 관련된 지식을 공급하는기능을 한다고 평가할 만한 싱크탱크는 없다.대학조교들 일자리겸해서 존재하는 곳이 많은 대학부설연구소가 우리사회의 싱크탱크라고 할수는 더 더욱 없다. 과학기술에서는 한마디로 「60년대 건물」과 「70년대 실험기자재」를 가지고 2천년대를 살아갈 학생들을 가르치는 실정(조성락 산기연 부회장)이라는설명이다.그렇다고 국책이나 민간연구기관들의 맨파워가 싱크탱크로서 활동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연구소를 지원하고 운영하는 주체들에게 문제가 많다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그런 측면에서 일개 증권사의 조사부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민간의 싱크탱크로 발전한 노무라종합연구소의 발전사례(36쪽 참조)는 많은시사점을 준다. 중요한 것은 「돈을 대지만 입은 열지 않는다」는지원하는 쪽의 원칙이다. 재정적인 측면에서 자율성을 얻어 다년간사회를 향한 제언과 기초적인 기술개발을 통해 축적된 데이터베이스를 갖춰야 싱크탱크로서의 기능수행이 가능해진다는 주장이다.따라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책연구소가 왜 반드시 정부의싱크탱크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충분히 검토될만한 가치가 있다.아무튼 현상황에서 한 사회의 싱크탱크라는 의미에 부합되는 두뇌집단을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S연구소관계자의 다음지적에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과거처럼 어떤 기관이 주도적으로 책임을 져 정책을짜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여러 조직의 두뇌집단들이 보다 사회적인 테마들에 대한 의견을 제시해야 하고 이를 공적인 기관에서 취합, 필요한 정책으로 수립해나가야 한다.그것은 다양한 이익집단을 대변할 수 있는 위원회같은 형태면 된다』. 그는 이어 재정적인 지원자로부터의 자율성 못지않게 실용적인연구로 풍토가 변해야 한다는 것도 강조한다. 『말로는 싱크탱크라고 하면서 실제로 하는 일은 두뇌적인 일이 아니라 손발이 할 일인경우가 많다. 보고서의 내용보다도 겉모양을 내는데 바쁘고 그나마하루이틀 사이에 해치워야 하는 식의 단기적인 사안들이 너무 많다』고 푸념한다. 싱크탱크가 제대로 두뇌집단으로 이용되지 않고 「수족집단」처럼 운영되는 상황이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다.이제 연구소들은 객관적이고 실용적인 연구로 한단계 수준향상이필요한 시점이다.★ 미니인터뷰/조성락 한국산업기술진흥협 상근 부회장기업부설연구소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국제교역환경이 해를거듭할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연구개발(R&D)투자만이 경쟁력을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는 91년 과학기술처로부터 「기업부설연구소신고·수리 및 관리업무」를 수탁받는 등 민간기업의 기술개발 활동을 이끌어가는 중추기관이다. 조성락 상근부회장은 전 경제기획원 투자심사국장 등을 거쳐 90년이후 협회에 몸담고 있다.▶ 최근 연구소가 크게 늘고있는데.기업부설연구소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그 역사는 일천합니다. 특히 민간기업이 국가전체 연구개발투자의 80%를차지하고 있는 현실인데도 고급 연구인력인 박사급 연구원은 전체의 8.7%만 기업에 종사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선진외국과 비교하면더욱 열악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국가전체의 연구개발(R&D)투자규모는 미국의 17분의 1정도입니다.과거 20년간의 투자규모를 합치면 그 격차는 40분의 1로 커집니다.연구원도 한국이 9만8천명인데 반해 일본은 54만명, 프랑스 영국이14만명을 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질적인 성장이 시급하다고 지적할 수 있습니다.▶ 기업연구소를 설립하면 어떤 혜택이 돌아가는지.다양한 지원책이 있습니다. 조세면에서는 기술인력개발비의 일정률을 법인세나 소득세에서 공제해주고 부동산에 대해서는 지방세면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정부가 고시한 품목과 재료의 경우 관세의80%를 경감시켜줍니다. 또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제도로 석사이상연구원에 대해 5년간 근무하는 것을 조건으로 병역의무를 면제하는전문연구요원(병역특례)제도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외국에서도 시행중인 것으로 특정연구사업에 대해서는 기금을 둬 자금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해외연구소를 차릴 경우 어떤 득실이 있는지.해외연구소는 사무소나 해외법인형태로 60여개 있습니다. 대부분은90년이후 설립된 것입니다. 세계무역기구(WTO)출범이후 경제의 세계화 개방화가 급격히 진전돼 선진국의 R&D동향을 따라잡는 일은어느때보다 중요합니다.해외거점연구소는 첨단분야에 대한 정보취득과 기술의 조기확보 및이전이 원활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미국내 6백개가 넘는외국기업연구소중 일본기업이 2백24개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연구소의 해외진출을 가속화해야 합니다. 실보다는 득이 훨씬많습니다.▶ 국내에서 연구개발력이나 경쟁력을 갖춘 연구소를 든다면.전자저울이란 단일상품으로 세계60여개국에 수출하는 카스, 공작기계 제어용 소프트웨어(SW)를 개발한 터보테크, 반도체 검사장치 제조업체인 미래산업, 가상현실 게임SW를 개발하는 가산전자 등의 부설연구소가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연구소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기술역량은 물론 소비자취향중시, 연구개발의 속도같은 다양한 요소를 갖춰야 합니다.▶ 산학협력의 R&D도 아주 중요한 문제인데.현재까지 정부의 의지는 컸으나 활발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기초학문을 하는 대학과 연구의 목적이 제품개발로 곧장 이어지기를바라는 기업간의 상호 불신이 깊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서울대의연구공원이나 고려대의 테크노 컴플렉스(Techno Complex) 등 새로운 형태의 산학협동이 이뤄지고 있어 본격적인 공동연구의 결과들을 기대해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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