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자 요구와 객관성 다 갖춘 결론 내야"

▶ 대우경제연구소는 설립된지 10년이 넘었습니다. 대우그룹의 싱크탱크로서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십니까.물론 충분한 역할을 한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한국의 그룹들은 이제 전략적인 사업접근을 필요로 하는 단계에 있습니다. 단지 부지런하기만 하면 되는 시절은 지났습니다. 내부의 조직구성이나 운용방식, 참여자들의 의식 등을 변화시켜야 할 필요를 그룹내에서도느끼는 이들이 많고 그만큼 연구소의 업무는 늘어나고 있습니다.이렇다보니 그룹내의 수요에 비해 공급능력이 떨어진다는 인식은충분히 하고 있습니다. 다만 대우그룹안에도 많은 기술연구소들이있지만 저희는 이들과는 분명히 다른 싱크탱크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주로 기획 전략부문이나 직접 해외에서활동하고 영업하는 사람들을 연구의 수요자로 삼고 있습니다. 전문성을 가지고 중장기적인 문제들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사장이나 임원들과 반대되는 의견들을 자유롭게개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싱크탱크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물론 질적 양적인 수요의 충족을 위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을해야겠지요.▶ 싱크탱크라면 단순히 수요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장기발전전략같은 것을 독자적으로 제시하는 기능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대우는 세계경영을 기치로 내세운 기업입니다. 이것은 다방면에서생각할 수 있습니다. 해외시장의 체계적인 개척은 물론이고 해외의부품이나 소재 등 생산자원을 잘 이용해서 국내생산활동을 유리하게 할 수도 있고 중장기적인 투자계획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떤식으로 활동해야 하고 어떤 식으로 해외기지를 연결시켜야 하느냐도 중요합니다. 같은 섬유산업이라도 과거의 섬유와 앞으로의 섬유는 그 내용이 크게 변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변화의 방향이나유망산업이 있다고 할 때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를 제시하는 역할에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환율이나 금리 등의 변동전망같은 것은부수적인 일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모델로 삼았던 외국의 싱크탱크나 나름대로 세운 원칙이 있을 것같은데요.초기에 설립하면서 모델로 삼은 외국의 연구기관은 노무라종합연구소와 스탠퍼드연구소(SRI:Stanford Research Institute)였습니다.이들 연구소를 참고로 해서 우리현실에 맞는 실천가능한 역할들을뽑아낸다는 방침이었습니다. 구체적인 부문에서는 달라질 수밖에없겠지만 여전히 큰틀에서는 두 연구소가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이들을 모델로 삼은 이유나 연구소의 원칙이 결국은 같은 얘긴데우선은 수요자가 있는 연구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중립적인 연구를 해야하고요. 이는 수요자가 원하는 결론이든 아니든 우리들의 생각이 있으면 그에 따른 결론을 내놓는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적절한 대가가 주어지는 연구를 하겠다는 점입니다.봉사차원에서 하는 연구는 그것 나름대로 확실하게 선을 긋고 수탁업무에 대해서는 싸구려로 정보를 팔지는 않겠다는 것입니다. 실용적이며 장기적인 연구도 해야겠고, 참 지킬 게 많습니다.▶ 국책과 민간연구소란 구분에서 봤을 때 최근 민간쪽으로의 이동이많다고 하는데.사람들마다 이동하는 이유는 모두 다르겠지요. 우선은 학교로 가는것을 가장 선호하고 있고, 아무래도 학교로 가는 것이 편하고 사회적으로 대접받고 금전적으로도 부수적인 수입들이 있으니까요. 민간연구소로도 많이 오는데 여기에는 몇가지 유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결론을 정해놓고 연구를 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아 의욕을떨어지게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국책연구소들의 운영상의 문제겠지요. 현실적으로 월급을 많이 주니까 옮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 민간으로 오면 조직내에서 중요한 일, 보다 핵심적인 일을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책연구소에서는상대적으로 시니어리티(Seniority)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잖습니까.이런 것들이 종합돼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KDI(한국개발연구원)의 경제성장률 전망 등이 나오면 간혹 「소신없는」 발표라는 곱지않은 시각도 있습니다. 자율성이 너무 제한적인 것은 아닐까요.구체적인 케이스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은 민간에서도 역시 그같은 행태가 나타납니다. 돈을 대주고 있는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원하는, 자신들에게 편리한 결과가 나와주기를 원하게 됩니다. 한편 정보를 생산하는 쪽에서는 상당한 기초연구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바깥 전문가들의 협조를 구해가며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서로간에 한쪽은 연구결과가 부실하다는 불만이고 다른쪽에서는 너무 조급하고 편향된 결과를 요구한다고 불만에 차있습니다.상호간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입니다.과거에는 KDI가 경제발전전략을 제시하고 원자력연구소가 관련정책의 깊숙한 부분에까지 의견을 제시하는 등 국책연구소들이 말 그대로 싱크탱크로서의 역할을 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회각계의 중심이 민간으로 넘어오면서 국책연구소들의 위상이 상당히낮아진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렇다고 어떤 민간연구소도 국책부문에까지 「뼈있는 의견」을 제시하지는 못하는 것 같고요.일부 일리는 있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국책연구소들은 지금도 여전히 정부조직에 대해서는 싱크탱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능력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봅니다. 물론 능력이 있는 것과 그것을발휘하도록 하고 있는가는 다른 문제겠지요. 문제는 국책연구소가아니라 그것을 운용하는 기관에 있기 때문에 운용의 묘를 살리는게 중요하리라고 봅니다. 민간에서라도 사회적으로 방향을 제시해주는 제안들을 내주면 보완이 될 텐데 민간은 민간 나름대로 수요자의 요구라는 게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그 요구는 상당히 단기적이고 결과를 혼자만이 갖고 싶어합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싱크탱크 하나 없다는 의견이 나올 법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발전전략은 어디에서 나오고 있다고 봐야 합니까. 다양한 분야의 포괄적인 연구들이 필요한 것이라서 한 두기관에서 만들고 있다고 얘기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어떤 정책결정의 메카니즘같은 것이 보여야 할텐데.이제까지는 정부주도로 모든 일을 해 왔습니다. 정부가 주도하다보니 국책연구소들이 많은 플랜을 작성해야 했고 그것이 효율적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민간주도의 시대고 민간연구소들도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시점입니다. 민간연구소들은 나름대로 국가나 정부의 정책향방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그런 것들이 모아지면결국은 국가가 가야하는 길을 제시하게 된다고 봅니다. 그같은 플랜이나 전략도 과거처럼 강제성을 띠는 것이 아니고 상호작용에 의해서 나온다고 봐야겠지요. 최종적으로 모아주는 역할에 있어서도반드시 국책연구소가 아니라 한 사회의 전문가집단이라고 정의내릴수 있는 곳에서 결정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부부처의각종 위원회같은 것을 보면 멤버에 민간출신도 많이 참여하고 있고이곳을 통해서 하나의 의견수렴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역할이 감소된 국책연구소들이 많은 국가의 재원을 지원받아 큰 규모로 운영되는 정당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합니까.공기업과 비슷한 맥락에서 보면 된다고 봅니다. 공기업은 산업기반이 전무한 시절에 해당 산업을 키우는데 절대적인 공헌들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뭔가를 만드는 것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판매하는 것이 중요하다보니 세계적으로 공기업을 민영화시키는 것이 전세계적인 추세로 자리잡았습니다. 국책연구소들은 공기업처럼 연구기반이 없을 때 충실히 역할을 수행해왔습니다. 이제는 국책연구소도 사회의 수요자를 찾아서 변화를 모색해야 합니다.▶ 민간연구소들의 역량은 어떻습니까. 그룹을 뛰어넘어 국책에 버금가는 사안에까지 견해를 제시할 정도가 된다고 보십니까.물론 분야별로는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민간의 경우는 아무래도국책연구소들처럼 큰 규모는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연히 전문화가 필요하고 그런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대개국책연구과제들을 민간연구소들이 위탁받아 합니다. 국책연구소라는 것이 아주 미미한 존재입니다.▶ 정보는 나눠갖는 셰어웨어(Shareware)라는 특징이 있는데, 우리의연구풍토는 각 연구소들이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다고 할 때 그것을 나누는 문화는 아니라고 보는데요.그렇지만 연구결과가 얼마나 공통성을 갖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봅니다. 민간연구소의 경우 특수한 용도의 연구용역을 맡게 되고원래 정보자체가 다른 쪽에서 공유할 만한 내용이 아닌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특히 돈을 대는 쪽에서는 아무래도 싫어하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전문적인 연구라해도 토대가 되는 부분에서는 공유할수 있는 공통의 정보가 필요한 게 사실이고 연구원들도 여기에서갈등을 느끼곤 합니다. 최근에는 주고받거나 사고파는 정보도 많습니다. 조금 더 민간연구소들이 자율적으로 운영된다면 지식체계나정보의 「셰어」란 문제는 해소될 것으로 보입니다. 기술개발도 마찬가집니다. 일정한 대가를 지불해야겠지만 기술의 공유가 없다면더 발전돼 나가는 「나중연구」가 원활하지 못할 수밖에 없습니다.▶ 원자력연구소는 과거 국가에서 충실한 싱크탱크가 될 수 있도록 지원했는데 최근 한전으로 업무를 이관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원자력같은 경우는 국가가 해줘야 할 부분이 아니냐는 여론도있는데.정부가 계속 갖고 있기가 어려우니까 넘긴다는 식의 접근은 옳지않겠지요. 국가가 정말 담당해야 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결정해야할 부분입니다. 정말 국가가 할 필요가 없는 것에 대해서만 폐쇄하거나 민간으로 넘겨야 하는데 아직까지도 적당히 유지만 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한정된 재원을 「적당히 분배」하게 되고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기능과 효율성을 확보하는 문제를 심각히 고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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