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기술 신속 개발에 사활 건다

경북 경주시에 위치한 자동차 부품생산업체 광진상공은 올 5월 9천만달러 어치의 자동차 창문개폐장치(윈도 레귤레이터)를 2000년까지 수출하기로 GM과 계약을 맺었다. 금액상으로 본다면 자동차 부품업계에서 단일업체가 수주한 최대규모다.이 회사는 이보다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유럽의품질관리인증서인 QS9000을 취득했다. 물론 국내에서도 기아자동차를 제외하고 현대 대우 쌍용 아세아 등이 사용하는 자동차 창문개폐장치의 75%를 납품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같은 기술력으로 광진은 GM이 실시한 신차장착 테스트에서 세계유수의 자동차부품업체들을 물리치고 납품권을 따냈던 것이다.광진의 이같은 성공은 지난 90년 7월에 설립한 기술연구소에 힘입은 바 크다. 정기범 상무를 책임자로 30여명의 연구인력이 있으며경주와 미국 디트로이트시 두곳에 연구소를 두고 있다.광진의 사례에서 보듯이 국내외 시장을 성공적으로 공략한 중소기업들은 거의 예외없이 경쟁력 있는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물론공세적인 영업활동이나 경쟁업체보다 싼 가격, 꾸준한 A/S 등도 성공에 기여한다. 하지만 탄탄한 기술력이야말로 중소기업의 성패를좌우하는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중소기업 평균 연구개발비 5억원 불과이들 중소기업의 기술력은 상당수 자체연구소에서 나오고 있다. 이들 연구소가 「작은 고추를 맵게 하는」 비결이다. 특히 정보통신이나 기계 화학공업 분야에서 급성장하는 업체들은 대기업 못지 않은 연구소 운영능력을 보여준다. 스탠더드 텔레콤, 우리기술, 건아기전, 재형금형정공, 텔슨전자, 터보테크, 오영산업 등의 연구소는첨단 기술력과 우수인력을 자랑한다. 대기업체가 운영하는 연구소처럼 번듯한 연구동은 없지만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만은 대단하다.지난 92년 설립된 스탠더드 텔레콤은 무선호출기와 무선전화기로올해 5백여억원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주력 상품은 수신율 1위의 무선호출기 「컴팩」과 문자표시호출기「닉소알파」, 광역호출기 「닉소 에어플라이」등으로 4백50억원의 매출이 기대된다.9백MHz고주파 무선전화기도 5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이 회사가 단기간에 고속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석사급 4명을 포함해 22명의 연구원으로 구성된 기술연구소에서 나온다. 미국 실리콘 밸리에도 연구원을 파견해서 첨단 정보수집과 우수인력 스카웃을 담당하고 있다.이 회사의 연구소는 호출기의 핵심부품인 Decoder-IC(복조기 집적회로)와 MPU(메인프로세서)를 개발하여 기술우위를 마련하는데 기여했다. 이들 부품의 개발로 일본과 미국산 범용칩을 사용하는 경쟁업체에 대해 무선 호출기 시장에서 기술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실제로 무선호출사업자가 공동으로 실시한 수신율 현장시험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현재 이 회사는 연구소를 운영하는데 총 매출액의 20%인 1백억원을지출하고 있다. 중소기업치곤 부담스런 액수지만 외부차입금이 거의 없이 가능하다고 윤영한 기술본부장은 설명한다. 근무조건도 대기업 수준으로 맞춰 연구인력의 사기 진작에 노력하고 있다.이같은 물질적 지원 이외에 최고경영자를 비롯한 임원들이 엔지니어 출신이라는 것도 연구소 운영에 힘이 된다. 김영식 사장을 비롯, 윤 본부장 등이 삼성전자 기흥연구소에서 무선호출기 연구를담당했던 엔지니어출신이다. 그런만큼 기술력이 최상의 경쟁무기임을 잘 알고 있어 가급적 지원을 하려는 분위기다.전체 40여 직원중 20여명이 엔지니어인 (주)우리기술도 기술 하나로 승부를 걸고 있는 업체다. 91년 1월 설립된 이 회사는 원자력발전소 디지털 경보시스템의 국산화에 독보적인 존재다. 원자력 발전소의 가동 상황을 한눈에 감시할 수 있는 디지털 경보시스템은 우리기술이 국산화하기 전까지는 미국의 로난(RONAN)사와베타(BETA)사에 전적으로 의존해 왔다. (주)우리기술이 독자기술개발에 성공함으로써 지난해 4월과 9월 영광원전 1호기 및 2호기에디지털 경보시스템을 설치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로써 연간 40여억원의 수입대체효과가 발생했다. 안정성과 성능면에서도 외국업체에비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이들 업체가 한정된 예산과 우수인력 확보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비교적 성공적으로 기술연구소를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대기업들이 진입하기 어려운 틈새기술을 개발했기 때문이다.(주)우리기술만 하더라도 전화국의 통신설비에 필요한 VMEbus 보드를 설치할 때마다 조금씩 변형해야 한다. 매번 일일이 수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대기업들의 장점이 작용할 여지가 거의 없는 셈이다.또한 한정된 자원을 응용기술 개발에 집중함으로써, 소비자기호를제품에 반영하는 기간을 단축한 것도 유리한 요소로 작용했다. 고속도로 제한속도 위반차량이나 버스전용선 위반차량을 감시하는 차량번호판독장치와 도주차량촬영장치를 생산하는 건아기전은 전체60여명의 직원중 40여명의 연구인력을 이들 제품의 연구개발에 투입하고 있다. 컴퓨터 인식장치계열의 제품연구에 집중함으로써 기술축적을 높이겠다는 취지다.하지만 이들 몇몇 업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중소기업부설 연구소는 거의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부족한 예산과 연구인력, 그리고연구원의 잦은 이동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지난해말을 기준으로 대기업을 포함한 기업부설기술연구소는 모두2천2백70여개. 이중 중소기업체가 운영하는 연구소는 1천6백여개로추산된다. 이들 연구소에 근무하는 연구인력은 9만 3천여명으로 이중 2만 3천여명이 중소기업에 소속돼 있다. 중소기업은 평균 14명의 연구인력을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연구소 활성화가 선순환의 출발기업부설 연구소가 지난해 지출한 R&D금액은 7조 3천4백억원으로이중 중소기업체가 투자한 금액은 8천3백억원이다. 업체당 평균5억원을 연구개발비로 지출하고 있다. 구체적인 연구를 진행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라는게 연구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연구인력의 잦은 이동도 중소기업부설 연구소의 운영을 어렵게 만든다. 8백여개에 달하는 병역특례업체중 중소기업은 3백80여개에달한다. 이들 업체에 근무하는 연구인력의 상당수가 의무복무기간을 채우고 대기업체로 전직하는경우가 다반사다. 건아기전의 박종엽 과장은 『아무래도 급여나 근무조건 면에서 대기업보다 못하기때문에 이직을 막을 방안이 없다』면서 『이같은 이직으로 핵심기술을 축적하는데 많은 문제가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중소기업체들은 이같은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모색하고있다. 우선 시장에 나와 있는 상품의 성능향상과 직결되는 분야의연구에 치중한다. 응용기술 개발에 한정된 자원과 인력을 투입한다는 전략이다. 또한 대기업으로의 인력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스톡옵션제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스탠더드 텔레콤은 내년4월 회사 상장을 앞두고 내년초부터 연구인력을 대상으로 실시한다는 방침을 확정한 상태다.다양한 자구책 모색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 부설 연구소가 처해 있는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중소기업 자체가 내일을 기약하기힘든 상황이다 보니 연구소 운영도 불안정하기만 하다. 그럼에도중소기업부설 기술연구소의 활성화가 제품경쟁력 강화, 업체의 성장발전, 연구소 기능의 활성화라는 선순환의 출발점임을 명시하고지속적인 관심과 투자가 요청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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