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은 무슨 운동, 일이 운동이지'

김우중 회장은 일을 벌이기를 좋아한다. 한시도 한가롭게 지내는법이 없다. 일년 열두달 변변한 휴가도 없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라고 고백할 정도다.지난 89년 펴낸 란 책에서도 그는 자신은 도대체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성격이라고 적고 있다. 김회장의24시. 기자가 추적 취재해본 그의 하루는 한국에서 가장 바쁜 재벌총수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김 회장의 하루 일과는 수행비서가 6시30분 방배동 집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보통 5~6시 사이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김 회장은수행비서가 오면 본격적으로 출근을 준비한다. 아침운동이나 식사는 따로 하지 않는다. 출근하기 직전 집에서는 배달된 조간신문을읽는 정도다. 옷은 주로 짙은 감색이나 검정색의 비즈니스정장을입는다. 셔츠는 단정하게 보이기 위해 버튼이 있는 것을 즐겨 입는다. 넥타이 역시 화려한 것보다는 단정한 무늬가 들어간 것을 자주맨다. 옷을 차려입고 수행비서와 함께 집을 나서는 시간은 대략7시. 아카디아 승용차 뒷자리에 앉아 수행비서와 함께 사무실을 향한다. 출근에 소요되는 시간은 보통 15~20분. 이른 시간이라 거의막히지 않는다. 회사에는 7시 20분쯤이면 닿는다. 그러나 시간에쫓길 때는 출근하는 차안에서 면도하고 물수건으로 세수를 대신하기도 한다.◆ 넥타이는 단정한 무늬 더좋아해출근은 보통 힐튼호텔에 있는 사무실로 한다. 서울역 앞의 대우센터에도 사무실은 있으나 거의 매일 조찬약속이 잡혀있는 까닭에 힐튼호텔로 나간다. 이 약속은 대략 8시30~9시 사이에 끝난다. 따라서 특별한 일이 없는한 사무실에는 9시 이전에 올라온다. 역시 대우센터 대신 힐튼호텔 사무실을 주로 이용한다. 본격적인 업무는9시부터 시작된다. 이때부터 국내외의 손님들이 그야말로 물밀듯밀려든다. 또 계열사 임원들도 9시가 지나면서 보고를 하기 위해줄을 선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김 회장은 결재를 하지 않는다는점이다. 모든 계열사 결재서류에 김 회장 결재란은 없다. 외부 손님은 대개 30분 단위로 한팀씩 만난다. 과거에는 1시간 단위였으나요즘은 만나달라는 사람이 많아 절반인 30분으로 줄였다. 하루 평균 15~20개팀의 외부인사들을 만나고 내부 보고도 30여 차례나 받는다. 요즘은 자동차 사업에 주력하는 까닭에 관련 분야 인사들을주로 만난다. 계열사 임원들의 보고는 외부손님을 만나는 사이사이3~5분씩 시간을 내 받는다. 보고를 받을 때는 짧고 간단명료하게해야지 그렇지 않을 경우 불호령이 떨어진다. 대우센터에서 일을볼 때는 힐튼호텔 후문과 대우센터 사이에 난 길을 이용한다. 점심식사도 조찬 때와 마찬가지로 찾아온 손님들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역시 주로 힐튼호텔을 이용한다.오후 업무도 오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략 1시30분부터 오후일을시작하는데 밀려드는 손님들 때문에 개인적으로 쉴 시간이 거의 없다. 좋아하는 바둑을 둘 여유도 없다. 그래서 가끔 비서팀이 쉴 시간을 주기 위해 일부러 잠깐씩 일정을 비워두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것마저도 여의치 않아 비서팀이 애를 먹고 있다. 또 하나비서팀이 곤혹스러운 것은 약속도 않고 수시로 찾아오는 사람들 문제다. 이런저런 개인사정을 늘어놓으며 김 회장을 한 번 만나게 해달라고 막무가내로 떼를 쓴다. 특히 대우센터는 통제가 가능해 덜하지만 출입이 자유로운 힐튼호텔에는 처리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사람들이 찾아와 급습(?)을 하곤 한다.김회장에게는 퇴근시간이 따로 없다. 집에 들어가는 시간이 바로퇴근시간이다. 당연히 저녁시간에도 김회장을 만나러 오는 사람들이 즐비하다. 저녁식사 시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업무시간이다. 어떤 때는 하루에 저녁을 두 번 먹기도 한다. 6시쯤 저녁약속을 하고 두시간 간격으로 또 다른 사람과 저녁을 함께할 약속을한다. 그러다보면 한 9시쯤 돼서 저녁을 먹는 경우도 적잖다. 밥을먹을 때는 가리지 않고 맛있게 먹는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김회장은 한끼에 식사를 두 번 하는데도 음식을 아주 맛있게 먹는다. 선천적으로 음식을 가리지 않는데다 식성이 좋기 때문이다. 메뉴선정도 자신보다는 주로 상대방의 의견을 들어 결정한다. 퇴근은 보통11~12시는 돼야 한다. 그러나 새벽 2시까지 사무실을 지키는 경우도 있다. 얼마전에도 일주일 내내 새벽 2시에 퇴근을 했던 일이 있다. 중요한 현안이 있을 경우 그룹 수뇌부들과 대책을 논의하다보면 시간이 후딱 흘러간다.◆ 한국기원 총재할 정도로 바둑 끔찍이 아껴김회장은 주말도 변변히 즐기지 못한다. 아예 요일 개념이 없는 것같다는 것이 측근들의 설명이다. 토요일에도 밤 12시는 돼야 퇴근하고 일요일에도 회사에 나온다. 비서팀에서는 가급적 일요일만큼은 일정을 잡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그게 그리 쉽지 않다. 본인이일을 하겠다는데 막을 장사가 없는 것이다. 다만 일요일에는 아침식사 정도는 집에서 하고 출근도 오후에 한다는 것이 약간 구별되는 점이라 할 수 있다. 김회장은 국내에 머무르는 동안은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에 간다. 아침 일찍 출발해 저녁 늦게 돌아온다. 부평공장에 하루 종일 머무르며 자동차 관련 일을 본다. 자동차에 대한김회장의 관심과 애정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이때만큼은 식사도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 줄을 서 기다렸다가 먹는다. 저녁 11시나 12시쯤 불시에 현장에 들러 야근을 하는 직원들을 격려하고 애로사항을 청취하기도 한다. 부평에도 숙소는 있으나 잠은자지 않고 12시쯤 서울로 돌아온다.김회장은 1년 가운데 3분의 2 이상을 해외에서 보낸다. 올해의 경우도 지난 10월말까지 총 3백5일 가운데 2백12일을 해외에서 보냈다. 해외 출장때도 바쁘기는 마찬가지다. 유럽의 어느 나라에 있다가 저녁 비행기를 이용, 다음날 아침 아프리카로 가기도 한다.그런 까닭에 그는 해외 여행 도중에 길에 뿌리는 시간을 절약하기위해 비행기와 비행기의 연결 시간에 무척 신경을 쓴다. 잘못되면하루나 이틀 정도를 헛되이 보내야 하는 일이 생길 수 있기 까닭이다. 그래서 수행비서는 항상 휴대품으로 OAG(Official AirlineGuide)를 갖고 다닌다. 언제 어디서나 비행기 시간표를 체크해야하기 때문이다. 또 김회장은 가능한 한 저녁비행기를 이용한다. 비행기 안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곧바로 관계자들을 만나 일을 볼 수있는 이유에서다.◆ 만나는 사람 많아 힐튼호텔서 업무김회장에게 자동차나 비행기 안은 훌륭한 이동사무실이다. 워낙 철저하게 시간을 아껴쓰는 스타일이라 시간만 나면 일거리를 만들어몸을 움직인다. 그래서 비서팀에서는 항상 웬만한 일은 이동하면서처리하도록 준비한다. 특히 직접보고가 아닌 서류로 올라오는 보고는 거의 대부분 움직일 때를 이용해 본다. 그래서 김회장이 출장을떠나거나 이동할 때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으레 서류 꾸러미가수북이 쌓이기 마련이다. 김회장의 취미는 바둑과 비디오시청이다. 특히 바둑은 지난 83년부터 한국기원 총재를 맡고 있을 정도로 끔찍이 아낀다. 또 실력도만만치 않아 「짠1급」의 기량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주변사람들의설명이다. 그러나 평상시에는 좋아하는 바둑이지만 둘 엄두를 못낸다. 워낙 바쁜 까닭에 시간을 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주로해외에 나갈 때를 이용해 대국을 갖는다. 파트너는 주로 그룹 임원가운데 비슷한 수준의 실력을 갖춘 사람이다. 비디오도 마찬가지다. 이동할 때를 이용해 한꺼번에 몰아서 본다. 즐기는 프로그램은본인 특유의 성격에 맞게 화끈한 액션물이다. 독서 역시 시간이 날때마다 즐기는데 특별히 소설을 좋아한다. 최근에는 일본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를 읽었다.김회장의 왕성한 활동력은 강인한 체력에서 비롯된다. 나이(1936년생)가 믿기지 않을 만큼 강한 체력을 자랑한다. 그는 학창 시절 권투와 축구를 아주 즐겨했던 까닭에 기초 체력이 단단하다. 또 술과담배도 안한다. 특히 술은 한모금도 안마신다. 중요한 행사가 있을때도 건배는 하지만 잔을 입술에 가볍에 댔다가 떼는 정도다. 운동은 그 흔한 맨손체조도 하는 법이 없다. 재벌총수들이 즐기는 골프도 안친다. 주변에서 골프를 권하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따분한 운동을 하느냐며 오히려 핀잔을 준다. 구태여 시간을 허비해가며 운동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논리다. 그보다는 일하는 즐거움, 일을통해 얻는 성취감이 훨씬 즐겁다고 강조한다. 또 건강을 위해서도골프를 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골프보다 건강에 훨씬 이로운 운동이 많은데 무엇 때문에 시간이 많이 드는 골프장에 가느냐는 얘기다. 그의 지론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는 따로 운동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항상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김회장. 한 30~40시간쯤 됐으면 좋겠다고 얘기한다. 특히 그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은 시간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세상에는 아직도 가보지 않은 길이 있고, 아무도 해내지 못한 일도 많다고 강조한다.세계경영으로 지구촌을 누비는 그의 다음 행보가 기다려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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