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률 양호하나 산업경쟁력 약화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 93년2월은 경기가 바닥권에 이른 시점이었다. 경기가 상승세로 돌아서려는 시점에서 정권을 인수한 것이 처음 닻을 올린 문민정부로서는 다행한 일이었다.경기종합지수가 작성된 지난 70년 이후 5번째 순환기는 91년1월을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해 93년1월께 바닥에 도달했다. 경기가 침체국면을 막 벗어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제6순환기가시작될 즈음에 문민정부가 출범한 것이다. 이번 순환기는 지난해3/4분기를 정점으로 다시 후퇴기로 들어섰다.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한 경제성장률을 보면 92년 5.1%까지 떨어졌던 성장률이 93년 5.8%로 회복되기 시작해 94년엔 8.6%, 95년엔 9.0%를 기록했다. 최근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이6.9%로 낮아지고 내년엔 6.4%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경제성장률로만 보면 첫 문민정부의 성적표는 크게 나무랄데가 없다. 단지 경기가 바닥권에 다가가고 있는 시점에서 차기 대통령선거를 치러 집권초기의 치적보다는 과실이 더 부각되는 점이 부담스럽다는 정도다.신경제 5개년계획과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신정부가 93년6월에 발표한 이 계획에는 국민총생산(GNP)을 기준으로 △93년 6.0%△94년 7.1% △95년 7.2% △96년 7.1% △97년 7.0% △98년7.0%의 성장률을 이룰 것으로 전망했었다. 94년과 95년에는 실제GNP증가율이 각각 8.4%와 8.7%를 기록해 신경제계획의 전망치를웃돌았다. GDP 기준으로는 성장률이 8.6%와 9.0%에 이른다.93년부터 98년까지의 GNP 평균증가율은 6.9%에 이르리라는게 신경제 5개년계획에 그려진 계획이었다. 기준과 기간이 달라 직접 비교하는 것이 다소 무리일수 있지만 한은이 예상한 GDP 기준 성장률로보면 93년부터 97년까지 평균성장률은 7.2%에 달한다. GNP와GDP간에 0.2`~0.3%포인트 정도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양호한 실적이다.이같은 우등생의 성적표를 앞에 놓고도 경제전문가들의 평가는 딴판이다. 당초 계획보다 빠르게 경제를 키웠다고 YS정부를 칭찬하는이는 찾기가 어렵다. 오히려 비판의 소리가 높다.불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놓은 단기부양책들을 촉매로 삼아 93년이후 높은 성장률을 실현했으나 이때문에 경제구조조정작업이 지연됐다는 것이 경제전문가들이 비판하는 초점이다. 경제체질약화라는최근의 경제난국도 이때 씨앗이 뿌려졌다는 것이다.앞에서도 밝힌 것처럼 YS취임초기는 경기가 바닥권에 이르렀을 때자신감에 가득찬 첫 문민정부가 경기활성화가 필요하다며 내놓은대책이 바로 「신경제100일계획」. 기업들의 요구를 거의 다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 대책에는 자금공급을 확대하고 정부투자사업을 조기에 시행하는 등 단기부양책을 비롯해서 기업활동에 방해가 되는 행정규제를 완화하고 기업 원가부담 축소를 위해 임금과금리를 억제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올해 6.9%…내년 6.4% 성장 그칠것이 계획은 「침체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음으로써 향후 본격화될제도개혁작업을 무리없이 추진하기 위한 기반마련」을 위한 것으로「시간이 더 늦기전에 수출과 제조업부문이 성장을 주도해 나갈 수있도록 관련된 재정 금융상의 수요진작 시책을 강구했다」는 설명이었다.이에대해 당시 경제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업계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단기부양책에 의존함으로써 회복단계에 들어서려던 경기를 무리하게 끌어올렸다는게 훗날의 평가다.신경제100일계획이 약발을 발휘한데다 94년과 95년 들어서는「신3저」라는 호기가 경기순환사이클과 맞아떨어져 반도체가 초호황을 누리는 등 경제는 날개 돋친듯이 뻗어나갔으나 지금은 산업공동화 국제수지적자확대를 비롯해서 경쟁력약화라는 난제에 직면해있다.결국 성장률이라는 명목지표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겠지만 경제구조와 산업경쟁력등을 감안한 질적인 면에서는 그다지 좋은 점수를받기 어려울 것같다. 결국 경제체질을 구조적으로 개선해 새로운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남은 임기의 숙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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