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만 야적장 포화 제구실 못한다

지난 3일 오후 2시 30분 부산항 제4부두. 중국 상해에서 잡화를 싣고 들어온 중국국적 「WELCOME」호가 짐을 내리느라 분주하다. 대한통운 소유의 4백50t 짜리 초대형 하바크레인이 2백TEU급의 이 선박에서 20피트 40피트 컨테이너를 끌어내리고 있다. 하바크레인은한시간에 평균 15개의 컨테이너를 처리할 수 있다.이 작업은 「1크레인=1갱(gang)」원칙에 따라 해운노조원 18명이3교대로 지원하고 있다. 하바크레인으로 컨테이너를 내려놓지만 특별히 이를 쌓아놓을 전용공간은 없다. 부두하역장 옆에다 내려놓기만 한다. 이미 하역장에는 20피트 40피트 컨테이너가 4단, 5단으로쌓인채 1백m 이상 늘어져 있다. 대한통운 세방 조양상선 삼익 소속의 트레일러가 와서 컨테이너를 싣고 간다. 트레일러에 싣는 시간은 평균 10분정도. 한대가 나가면 다음 차량이 와서 싣고 가는식이다. 20m나 되는 트레일러가 드나들기에는 부두하역장이 비좁아 보인다. 제4부 출입구에는 신호등을 기다리는 트레일러가 1백여m 이상 늘어서 있다.「WELCOME」호가 해운항만청에서 허가받은 시간은 오후 1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격심한 선박정체 현상을 빚고 있기 때문에 가급적 빨리 처리해야 한다. 작업도중 크레인이 고장나거나 트레일러가 교통체증으로 제때 도착하지 못하면 다음 선박은 부산외항에서무작정 대기해야 한다.「WELCOME」호 바로 1백m 옆에는 4백t급 벌크선 「장영 로터스호」가 일본에서 수입해 온 물건을 하역하고 있었다. 천양항운 소유의 1백20t급 크레인이 삼주해운이 수입해 온 30t짜리 대형선박엔진을 힘겹게 내리는 중이었다. 8겹의 로프에 동여매인 엔진은 부두하역장에 내려진지 20분만에 대형 지게차에 의해 18t짜리 대형트럭에옮겨졌다.「WELCOME」호와 「장영 로터스」호의 하역작업은 세계 5위 부산항과 국내물류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컨테이너 전용부두의 부족과 부두야적장의 절대적 협소, 선박의 장기체선 등의 문제가 집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수입물량 95% 부산항에서 처리지난해 부산항이 처리한 컨테이너 물량은 4백50만 TEU. 전체 수출입 물량의 95%이상이 부산항에서 처리된다. 이중 컨테이너 전용부두인 자성대부두와 신선대부두에서 각각 1백50만 TEU와 1백20만TEU가 처리됐다. 4부두를 포함한 재래식부두가 1백70여만 TEU를 담당했다. 전체 컨테이너 물동량의 37% 이상이 재래식부두에서 처리된 셈이다. 자성대와 신선대부두가 그렇다고 자기임무를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다. 고베항의 가동률 40~50%에 비해서 1백% 이상 풀가동되고 있다. 이러고도 처리용량이 부족한 것이다. 자연 재래식 부두의 처리비율이 증가한다. 93년 31%에서 지난해 37%까지 늘어났다.이들 재래식 부두는 컨테이너 전용 장비인 갠트리크레인이 설치돼있지않다. 이 장비는 시간당 30여개의 컨테이너를 처리할 수 있는반면 일반크레인은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작업능률의 저하와물류비의 증가가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전용부두와 재래식부두 모두 심각한 야적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전용부두만 하더라도 싱가포르나 홍콩의 3분의 1 수준인 40여만평이 확보돼 있을 뿐이다.야적장 부족에 재래식 부두가 컨테이너화물을 처리하면서 기형적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ODCY(항구밖 컨테이너 야적장, Off DockContainer Yard). 싱가포르 홍콩 가오슝 등 세계 유수의 물류항만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한국적 피조물」이다.지난 3일 「WELCOME」호에서 하역된 컨테이너중 3분의 1은 이곳에서 1km정도 떨어진 동구 좌천동의 대한통운 ODCY로 운송됐다. 이미대한통운의 3만여평에 달하는 ODCY에는 20피트 40피트 컨테이너가빽빽히 들어차 있다.4부두 부근에는 대한통운 이외에도 한진 조양 세방 흥아 등의ODCY가 산재돼 있다. 이곳 말고도 수영만과 해운대 해수욕장 인근의 감만동에 ODCY가 밀집해 있다. 6월말 현재 부산항에는 17개 업체에서 운영하는 총면적 1백여만평 31개 ODCY가 있다.허만섭 대한통운 부산컨테이너지사 부지점장은 『전용부두나 재래식부두의 야적장이 협소하기 때문에 수출업체로부터 가져온 컨테이너를 이곳에서 평균 3일정도 보관한다』며 『수출회사도 미리 수출품을 내보냄으로써 며칠분의 보관료를 부담해야 하고 운송회사도ODCY를 자체 경비로 운영하기 때문에 이에 따른 비용도 적지않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부두안 야적장 확보 선결돼야허이사는 부두안 야적장만 제대로 확보된다면 수출입품의 물류비는절반수준으로 줄어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곧바로 항만에 들어가면ODCY에서 며칠간 대기하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싱가포르와 홍콩 등이 국제물류항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고 덧붙였다.ODCY에 보관됐던 컨테이너가 실려 나가는 것도 결코 순탄하지만은않다. 수영만이나 감만동의 ODCY에서 재래식부두나 전용부두까지는교통체증이 없을 경우 30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 하지만컨테이너를 싣고 부두로 가다보면 보통 2시간에서 최악의 경우 4시간 정도 걸린다. 부산시내 도로사정이 별로 좋지 않고 컨테이너차량의 시내진입을 제한하는 교통법규 때문이다. 이로 인해 특히 수영만이나 감만동 일대에 ODCY를 두고 있는 업체들이 수출물량을 선적하는데 곤란을 겪기도 한다. 트레일러 지입차주들이 시간정체에따른 수입감소를 우려해서 운행을 기피하기 때문이다.동우국제운송에 근무하고 있는 트레일러 기사 전정규씨(37)는 운전경력 17년의 베테랑. 부산98사 6610 컨테이너를 지입차량으로 몰고있다. 감만동의 회사 ODCY에서 4부두까지 컨테이너 한개를 운반하는데 평균 4만원을 받는다.하지만 교통체증으로 3시간 이상 소요되면 기름값도 되지 않는다고불평한다. 그래서 장거리 노선을 자주 뛴다. 광주 금호타이어 공장이나 서울 부곡컨테이너터미널 등에 컨테이너를 싣고 간다.전씨는 남해고속도로는 아직까지 정체현상이 발생하지 않고 있으나경부고속도로는 이미 화물운송기능을 상실했다고 말했다. 토요일같은 경우 새벽에 출발하더라도 20시간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들려준다. 각종 보험료와 기름값, 고속도로통행료 등을 제외하면수중에 떨어지는 돈이 거의 없다고 한다. 국내물류시설의 낙후와여객위주의 정부정책에 비애를 느끼고 승용차를 처분했다는 그의말에서 한국 물류의 현주소를 느낄 수 있다.『엑셀을 몰고 회사에 출퇴근 했다. 하지만 장거리를 뛰면서 승용차 운전자의 비협조와 국내 물류시설의 낙후를 절실히 깨닫고 다른화물차량운전자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이를 처분했다.지난해 6월이후 오토바이를 타고 회사에 다닌다.』◆ 물류비 71조, 수출경쟁력 약화삼성전자 수원공장에서 부산 광복동 대리점까지 냉장고를 운반하기위해 8t트럭을 한대 임대하려면 22만원이 필요하다. 인건비에다 고속도로 통행료 등을 합하면 대당 소요비용은 1만7천원에 달한다.반면 부산항에서 LA까지 운반하는 비용은 대당 3만5천원. 부산항에서 LA까지의 거리와 수원 부산간의 거리를 감안하면 국내운반비가10배에 달하는 셈이다. 거리를 평면비교한다는 한계를 고려하더라도 국내업체가 지불하고 있는 물류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국내업체가 직면한 물류난은 비단 대기업에 한정된 현상은 아니다.미국이나 유럽에서 주문을 받고도 물류비 때문에 채산성을 못맞춰수출을 포기하는 중소업체가 한두개가 아니다.이처럼 국내업체들의 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물류비는 지난해에만 71조원. 고속도로와 항만에 뿌려진 돈이다. 설상가상으로 고금리 고지가 고임금 고행정규제비 등도 큰 부담으로 와 닿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업들은 「 하이 파이브」를 낮추라고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마치 이들 고비용 때문에 당장 망해버릴 것같이 호들갑을 떤다. 지난 4일 최종현 전경련 회장이 국회 경쟁력강화 특위에서 현 경제상황을 「 국가위기」로 규정하면서 『앞으로 5년간회장에서부터 사원까지 임금을 동결하자』는 극단적인 제안을 내놓은 것도 이같은 인식의 자연스런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사실 기업들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우선 금리가 선진국에 비해턱없이 높다. 지난해말을 기준으로 명목금리가 12.6%로 일본(1.2%)독일(4.5%) 미국(5.8%)보다 최고 10배에서 최저 3배 정도 높다. 선진국은 차치하고라도 동남아 경쟁국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싱가포르와 대만은 각각 2.6%와 5.4%에 불과하다. 명목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실질금리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지난해말을 기준으로8.1%인데 반해서 일본(1.3%) 싱가포르(0.8%) 미국(3.0%) 등이다.공장을 지으려고 땅을 매입할 때도 국내기업은 외국기업에 비해 많은 돈을 지출해야 한다. 국내기업들이 인천 남동공단에 1만평의 공장부지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55억9천만원이 필요한 반면 대만 민웅공단에선 22억5천만원, 미국 일리노이주에선 10억6천만원, 필리핀에서는 15억3천만원이면 족하다.물류비도 마찬가지다. 국내기업들은 전체 매출액의 14.3%를 물품의운반 보관 포장 등의 명목으로 지출했다. 미국(7%) 일본(8%)에 비해서 거의 갑절이 되는 액수다.이처럼 고비용구조에 시달리고 있는 기업들은 이를 타개하기 위한지원책을 정부에 요구했다. 고금리 고지가 고물류비에 시달림에도불구하고 경제생산성이 떨어져 부담이 된다고 주장한다. 특히OECD가입에 따른 외국업체들과의 경쟁을 위해서라도 고비용구조를개선하길 원한다.◆ 외국업체와 경쟁위해 고비용구조 개선돼야문민정부도 취임초부터 이같은 요구에 화답하고 나섰다. 문민정부출범과 동시에 「 신경제 5개년 계획」의 4대 제도개혁과제중 하나로 경제규제완화를 추진해 왔다. 1천1백28건의 개선과제를 선정,올 9월말 현재 1천98건의 완화조치를 취했다. 또한 내년도 예산에10조원 이상을 도로 철도 항만 등의 건설에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연 12%의 금리를 낮추기 위해서 은행지불준비율을 낮추거나 은행간수신경쟁을 자제토록 유도했다. 고금리의 원흉으로 주목받던 신탁계정의 예금도 축소시켰다. 일시나마 이같은 조치로 회사채수익률이 한때 10.4%대로 떨어지기도 했다이같은 정부의 노력에 대해 재계는 아직 불만족스런 반응을 보이고있다. 전경련은 정부의 규제완화가 여전히 미흡하다고 주장한다.정부의 규제완화 약속에도 불구하고 공장하나 짓는데 평균 9백25일걸린다고 비판했다. 말레이시아의 35일에 비해 최대 26배가 넘게소요된다고 주장했다.금리도 여전히 높다고 불만이다. 동부그룹 경영조정본부의 한 간부는 『5고중에서 기업에 제일 부담스러운 것은 금리이기 때문에 상업차관도입이나 해외사채 발행에 따른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주장했다.하지만 기업들의 고비용구조에 대한 불만에 대해 자승자박이라는비판적 시각도 있다. 고비용 저효율구조가 정부주도로 단기간에 경제개발을 추진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정부에 또다른 해결책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이다.신한경제연구소의 권석언 연구원은 『고금리 고임금 고물류비 구조는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압축경제성장의 불가피한 잉태물』이라면서 『가장 부담으로 와 닿는 금리를 낮추기 위해서 기업도 외부차입금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 만성적 자금초과수요 상황을개선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또한 정부가 현재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기적으로 개입하는 것 자체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건설교통부의 한 사무관은 『현단계에서는 정치적 이해관계나 인기를의식한 정부정책을 가급적 삼가는 것이 필요하다』며 『사회간접시설 투자에 치중하면서 기업간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수 있게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현단계에서 요구되는 정부의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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