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로봇 개발 외길 걷겠다"

우리나라 로봇산업은 걸음마단계이다. 80년대 후반이후 고임금 등으로 기업들이 공장자동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로봇산업은 성장업종으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기술수준은 일본등 선진국과 커다란 격차를 보이고 있다. 몸체 정도가 국산이고 핵심이라할수 있는 컨트롤러등 센서분야는 일본등 선진국 제품이다. 한마디로우리나라 로봇산업은 밑그림단계에 불과하다.로봇산업의 현주소는 이렇게 열악하지만 이 벽을 넘기위한 노력은대학 및 기업연구실에서 꾸준히 펼쳐지고 있다. LG산전 로봇연구실고경철실장도 그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이 회사에 몸담은 이후정밀전자제품 조립로봇인 스카라로봇, 부품을 조립라인에 자동으로옮겨주는 수평다관절로봇등 10여종의 산업용로봇을 개발, 이중 4개를 실용화했다. 그의 이런 업적은 로봇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도 부족한 상태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크다.로봇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지난 84년.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생산공학분야 석사과정을 마친 뒤 곧바로 금성사 로봇팀(현 LG산전소속)에 입사, 미지의 분야에 도전장을내밀었다. 한국과학기술원 재학중 그는 이 회사로부터 산학연계장학금을 받고 공부했다. 이런 의미에서 금성사입사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일본 절반가격의 ‘스카라 로봇’ 개발『대학에 다닐때 인간의 노동을 로봇이 대신, 생산성을 높일수 있는 방안에 상당한 흥미를 느꼈습니다. 전공도 물론 관련이 있었지만 이런 호기심이 로봇연구에 매달리게 한 요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의욕만큼 출발은 그리 순탄치를 못했다. 7명의 연구원과 팀을 이뤄로봇개발에 들어갔지만 연구환경은 열악하기 그지 없었다. 그가 입사할 당시 우리나라 산업용로봇 개발수준은 기업체 연구소에서 일본의 로봇을 들여와 분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로봇은 그저 신비의 대상일 뿐이었고 금성사도 예외는아니었다. 마땅한 아이템선정은 엄두도 내지못하고 연구원들끼리대학에서 배운 교과서를 토대로 세미나를 열어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2년여를 허송세월하고 있자 회사측으로부터 달갑잖은 반응이 왔다.회사측은 이렇다할 연구성과가 없자 로봇팀을 해체하는 극약처방을단행했던 것. 금성사내 다른 연구프로젝트팀의 경우 신제품을 시장에 내놓는등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으나 로봇연구팀은 그렇지 못했던 것. 단기적인 성과에 매달리는 회사측의 조치에 대해 섭섭함도없지 않았지만 그는 VTR사업부로 자리를 옮겼다. 이 과정에서 로봇팀 연구원 일부는 회사를 떠나기도 했다.위기뒤에 찬스가 생기듯 그에게도 기회는 왔다. 이희종금성사부사장(현 LG산전부회장)이 로봇산업분야는 앞으로 성장가능성이 크다며 그를 다시 불러들였던 것.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연구원들을 불러 모으고 창고에 넣어 두었던 샘플과 장비도 꺼내 먼지를 털어냈다. 개발아이템은 회전관절부위가 5군데로 전자부품 용접과 조립에폭넓게 활용할 수 있는 「오축 로봇」으로 정했다. 비록 해체는 됐지만 초기 연구팀에서 어느정도 성과가 축적돼 있었던데다 다양한용도로 활용될 수 있어 이 로봇을 주 아이템으로 선정했다.『자료가 부족해 한국과학기술원등 관련연구소에 가서 연구원들이살다시피 했습니다. 개발비도 넉넉지를 못해 일부 부품은 다른 개발팀에 가서 몰래 빼내 쓰기도 했습니다.』오축로봇은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개발착수 1년만인 86년말첫선을 보였다. 그는 『과연 제대로 움직일까 걱정이 앞서더군요.그러나 컨트롤러를 작동하는 순간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그때의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어요.』 실용화는 뒷전에 밀렸지만 이 로봇은 고실장을 중심으로한 연구팀에 큰 힘을 실어주었다. 이듬해초 구자경그룹회장(현명예회장)은 연구소를 방문,「오축로봇」을 보고 관심을 표명했던 것. 외국기술제휴가 아닌 자체 연구팀에 의해 이 로봇이 개발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구회장은 앞으로이 분야 연구개발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라고 지시했다. 이로부터로봇연구실에 대한 회사측의 인식도 달라졌고 프로젝트추진 또한순항했다.◆ 로봇 개발위해 산업스파이 노릇하기도힘을 얻어 추진된 프로젝트는 「스카라 로봇」. 전자부품 고속조립용인 이 로봇은 일본 히라타사가 국내시장을 거의 독식하고 있었다. 대당 가격만도 3천만원인 고가제품으로 이를 자체개발할 경우시장성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이 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룹 계열사 통폐합작업이 이뤄졌다.그가 소속된 금성사 FA부문, 금성계전, 금성기전 등은 금성산전(현LG산전)으로 통합됐다. 금성기전에서 직교로봇을 개발하던 5명의연구원이 합류, 연구원은 모두 11명으로 늘어났다. 사실 LG의 로봇개발은 이때부터 본격화됐다.하드웨어개발 등은 별문제없이 진행됐으나 소프트웨어가 막바지에걸림돌로 작용했다. 연구원들과 토론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했지만실마리는 풀리지 않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87년말 일본행을 단행했다. 일본 히라타사는 한국판매증진을 위해 LG산전 영업사원 4명을 2주 예정으로 초청했는데 그는 이 팀에 합류했다. 산업스파이로 나선 것이다.『공장라인을 둘러보면서 그곳 연구원에게 로봇의 조립과정, 컨트롤러생산방식, 로봇작동법 등을 상세히 물어보았습니다. 영업이 아닌 기술분야에 관한 질문을 꼬치꼬치하자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더군요.』결국 연구분야에 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는 그는 다행히 히라타사연구원이 스카라로봇운용 노하우를 가르쳐줘 개발에 많은 도움이됐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스카라로봇은 탄생했고 그는 그룹에서 시상하는 연구개발금상을 수상했다. 이 로봇은 대당 가격이일본제품의 절반인 1천5백만원 수준으로 LG전자등 상당수 전자회사의 조립라인에 설치돼 생산성향상에 일조를 하고 있다.스카라로봇개발을 성공리에 마무리한 그는 회사에 휴직계를 내고한국과학기술원 박사과정에 등록,향학열을 불태웠다. 5년여의 연구끝에 「이동로봇을 위한 자동항법시스템 연구」로 학위를 받고서바로 회사에 복직,올해 아크스카라로봇 수평다관절로봇 등을 잇따라 개발했다. 『프로이기 보다는 외길을 걷는 과학도로서 기억되면 좋겠다』. 그는 이같은 소박한 기대를 밝힌뒤 로봇 시험실로 총총히 발걸음을옮겼다. 따뜻한 「가슴」은 없지만 인간의 요구대로 자유롭게 기능할 수 있는 「휴먼로봇」 개발이 그의 21세기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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