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에 그친 '작은 정부' 구현

「정부의 효율성 제고」 또는 「작은 정부의 실현」은 전세계 거의모든 정부가 직면하고 있는 최대 현안이다. 기업은 각종 경영혁신등을 통해 무한경쟁시대에서의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데 제도라든가법령 관행 등에서 기업을 지원하고 경쟁력 극대화의 여건을 마련해줘야 할 정부부문이 언제까지 팔짱만 끼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을절감했기 때문이다.기업은 유연성을 늘리기 위해 슬림화에 나서고 있는데 정부는 거대한 조직을 방만하게 운영하고 있고 한술 더떠 정부가 오히려 총체적 국가 생산성을 저해한다는 비판마저 제기되는 상황에서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선진국 정부, 특히 영연방 국가들의 정부조직은 기업과 흡사한 측면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영원히 「독점」일 수밖에 없는 듯한 정부부문에 「경쟁」이라는 개념이 도입됐다. 평생 신분이 보장되었던 공무원이라도 이제 고객(국민)만족에 게으르면 자리는 보전되지 않는다. 같은 직위면 일률적으로 동일한 봉급을 받았던 것도 옛날 얘기로 통한다.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 제도가 있어 급여를더 받거나 그 반대면 좌천 내지 보따리를 싸야 한다. 영국과 뉴질랜드 캐나다 호주 등에서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이러한 정부개혁운동은 그 뒤 미국과 유럽 대륙 각국에서도 채택돼 이제는 OECD 국가 대부분이 이 대열에 참여하고 있다. OECD 각국은 「퍼블릭 매니지먼트(PUMA)」라 해서 정부혁신 사례의 정보를 교환하는 회의도갖고 있을 정도다.◆ OECD 각국 정부혁신사례 정보 교환도한국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김영삼 정부는 출범 직후 이러한 시대적 추세를 반영, 「작지만 강력한 정부」의 실현 의지를 분명히했으며 이에 따라 조직과 인력측면에서 3차례에 걸친 크고 작은 수술을 단행했다.조직 뿐 아니라 인력 운용 측면에서도 정부는 몇가지 획기적 변화를 추진중에 있다. 즉 공무원의 업무 생산성 제고를 위해 내부 경쟁을 유도한다든가 공무원의 교육 방식을 종래의 소양 및 자질배양중심에서 실제 문제 해결 중심으로 변화시킨다는 계획이다.내부 경쟁은 가령 특정직이 비었을 경우 △해당부서의 내부 승진대상자 △전체 공무원 △민간인 등을 대상으로 경합을 벌여 적임자를 선임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관련, 직무분석기획단이 지난 1년간 외부 채용이 가능한 직위를 파악하는 작업을 벌여왔으며 오는연말까지 결과가 나오면 관계 법령을 개정, 시행에 들어갈 것으로보인다. 공무원의 교육방식 변경과 관련해서는 예컨대 교통문제 해결방안에 대해 직접 현장에 나가 현황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게 한다든가 혹은 모의감사 모의예산 편성작업을 하는 등 철저히실무 훈련에 중점을 두는 것을 말한다.아울러 재임 기간이 짧아 지속성과 전문성을 갖추는데 문제가 있었던 점을 중시, 사무관 초기에는 여러부처를 다 돌아보고 임용 4년차 이후부터는 부처별 범주내에서만 전보를 할수 있도록 하는 「전문직렬제도」도 도입될 계획이다. 이 역시 관계 부처간 의견 조정이 끝나 법령 개정작업에 들어간 상태다.하지만 「작고 효율성 있는 정부」를 실현하기 위한 의지는 이 이상 더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인력 감축의 문제는 임기를 1년가량 남긴, 다시 말해 선거를 1년 앞둔 지금 시점에서는 사실상 물건너 갔다고 봐야 한다. 공무원 사회의 동요를 감당해낼 수 없기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10월 초 경쟁력 10% 높이기를 제창했지만 작은 정부를향한 의지는 거의 담겨 있지 않다. 앞으로 4년간 1만명을 감축하겠다는 계획이 있으나 이는 전산화 등으로 일거리가 줄어든 타자요원비서인력 등 전 부처의 사무보조원과 「자연 감소분」이 전부다.프랑스의 87년 이후 10만명 감축, 독일의 92년 이후 6만명 감축,미국의 99년까지 27만명(12%) 감축에 비하면 김영삼 정권의 정부생산성 향상 노력은 극히 미흡하다는게 중론이다.◆ 영국 권한하부이양해도 결과 철저히 따져효율성 제고에 있어서도 현 정부는 아직 선진국에 비해 많이 뒤처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영국 같은 경우 권한의 하부 이양을 통해재량권을 최대한 부여해주되 결과를 철저히 따진다는 원칙이 명확히 확립되어 있다. 말하자면 부처를 하나의 공장 개념으로 파악해투입 비용·인원/시간 대 산출물을 비교, 해당부서의 실적을 평가하는 것이다. 서비스 기관은 구체적인 산출물이 없으므로 그 대신고객만족 여부, 민원해결 건수, 부서 운영경비 조달 정도 등을 측정기준으로 사용한다.또한 정부 업무도 △반드시 필요한 업무인가 △반드시 정부가 해야하나 △정부가 할 경우 효율 증대 방안은 무엇인가 등의 기준을 설정해 계약제 전환, 기업화·민영화 및 구조조정 여부를 결정한다.철저한 「상업성」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정부의 효율성 제고 노력이 이 수준에 못미치고 있음은 물론이다.임기말 레임덕 현상에 직면한 현정부에 이와 같은 역할 수행을 기대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인력 감축을 비롯한 「작지만강력한 정부」 실현은 새정권이 초창기에 의욕 있게 실행해 나갈수밖에 없는 성격의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다음 정부도 분명히 명심할 사항은 「할일은 안해서 작고, 규제는 많아서 강력한」 정부라는 비난은 듣지 않는 일일 것이다.★ 선진국 사례작지만 강한 뉴질랜드 정부한국 교민들의 눈에 비친 뉴질랜드의 「높으신 분」들은 도무지 권위가 없다. 몇개월전 한국의 고위 공직자가 이 나라 장관과 양국간경제협력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산업시찰에 나섰다. 차에서 내려길을 걸으려는 순간 비가 부슬부슬내리는데 한국에서 오신 「귀한분」을 수행하던 비서관은 재빨리 우산을 펼쳐 들고 뒤를 쫓으며그 분을 모시고 있었고 이 나라 장관은 평소 그랬던 것처럼 혼자서비를 맞고 걸어 가며 뉴질랜드의 자랑거리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어느 초등학교에서 컴퓨터 교실을 개장하는 날. 뉴질랜드의 과학기술부장관이 이 학교 졸업생의 자격으로 테이프커팅에 참가했다. 장관은 행사를 마친 후 학부모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직접 노트북을켜 대형스크린에 비치면서 인터넷의 중요성과 사용법을 소개했다.오클랜드시청 앞에서 휴지를 줍고 주변을 청소하는 사람을 시장이라고, 한국인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산업시찰단을 태운 대형버스에 함께 타고 가면서 직접 마이크를 잡고 관광안내와 산업현황을소개하는 가이드를 이 나라의 사업개발성 장관이라고, 교민들이 운영하는 한국학교 이전기념식에 참가하기 위해 낡아 빠진 미니버스를 직접 몰고 오는 사람을 뉴질랜드국회의원이라고 쉽게 알아차리는 한국인들은 많지 않다.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뉴질랜드를 세계적인 경제단체들은 한결같이 국가경쟁력이 가장 뛰어난 나라, 제일 청렴한 나라로손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리고 매년 세계 여러나라에서 소위 한수 배우러 이 나라를 찾는다.뉴질랜드가 작은 정부의 모델 국가로 발전한 그 근간은 일단은 국민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국민이나 공직사회에서는 겉치레비용이 들지 않는다. 자기 맡은 임무에 충실할 뿐 의례적이거나 형식적인 일에 힘을 낭비하지 않는다. 그리고 실무 담당자에게 최대한의 권한을 위임해 일을 소신껏 신속하게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고위직이라는 것은 정책적인 일에만 매달릴 뿐 실무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는 것이 관례이다.그래서 이 나라에서는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큰일이 터졌을 때한국처럼 상급자가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반면 「인플레를 잡겠다」고 공언한 중앙은행장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공인으로서 책임을 지고 자리를 떠난다. 정치적 상황이나 여론에 떼밀려 정책이 우왕좌왕하는 일도 거의 없다.또한 뉴질랜드국민들의 철저한 고발 정신도 「맑고 깨끗한 사회」를 구성해 나가는데 일조하고 있다. 그들은 정부에 시정사항이 있거나 잘 못 된 점이 있으면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도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시하고 또 그 기관은 국민들의 고충을 바로 조사해 시정 조치해 준다. 이를 보장하기위해 국가는 옴부즈맨(Ombuds-man)제도를 만들어 실시하고 있다.그리고 이 나라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들이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들로 국민과 호흡을 잘 맞추어 가고 있는 점도 꼽을 수 있다. 현재국회의원들의 전직을 살펴보면 농부 교사 세일즈맨 모텔경영자 노동조합원 수의사 PR컨설턴트 부동산중개사 도축업자 여행사 직원들로 무척 다양하다.이런 이웃 사람들이 돈이 별로 안드는 선거에서 능력을 인정받아국회에 들어가고 내각을 구성해 각 분야의 정책을 만들고 행정을감독하고 있다. 현직 수상인 볼저도 농부출신이고 부수상이면서 외무성 장관을 겸임하고 있는 매키넌은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했었다. 이처럼 보통사람들중에서 이 나라를 짊어지고 나가도록 가려내는 현명한 국민들이 뉴질랜드를 작지만 강한 정부로 만들어 가고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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