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발상 대기업병 타파로 고객 밀착

세계일류기업들은 90년대 초반에 불어닥친 범세계적인 경기불황을인원삭감이나 조직개편 재고경감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대처해왔다. 90년대 초반 다운사이징 리스트럭처링 리엔지니어링 JIT(Justin Time, 적기생산공급)같은 경영혁신방안들이 각국에서 각광을 받은 것은 이같은 기업들의 노력과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지고 있다.인원삭감은 일류기업들이 불황대처를 위해 손쉽게 선택하는 방안의하나였다. 국내기업들이 최근 불황을 맞이하면서 명예퇴직제등 인원을 줄이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도 이것이 불황에 가장 손쉽게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황을 타개하는데 있어 인원삭감은 충분한 것이 아니다. 실업인력은 곧 구매력의 감소를 의미하며 이는 결국 기업의 영업실적을 떨어뜨려 불황의 악순환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한 나라의 경제가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나 개별기업의 차원에서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전국적으로 해고된 인원을 모두 포용하고도 남는 창업에 따른 인력수요의 열기가 있었으며 일본은 가능한 한 계열기업이나 하청기업으로 인력을 재배치하는 방식을 통해 고용불안을 해소하고자 했다. 또 독일기업들도 전체적으로 워크셰어링(Worksharing, 한 사람의 업무를 단축, 2인이상이 분담하는 방식 등)을 통해 실업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특히미국의 경우는 정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한다.◆ 인원 삭감은 불황 악순환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 80년대이후 10년간 미국의 5백대기업이 자른 직원수는 3백만명을 헤아린다. 그러나 같은 기간 2천1백만개의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 대기업에서 실직한 인력을 충분히 흡수하고도 남았다. 92년 2월의 경기침체이후 최근까지도 미국에서는 1천2백만개의 일자리가 생겼다. 지난 10월현재 실업률은 7년만에 최저치인 5.1%에 머물고 있다. 물론 이같은 창업열기의 주역은 중소기업과 미국에 투자하는 외국기업들이다. 나아가 미국정부가 기업가정신을 불어넣으면서 풍부한 벤처자금, 세제등의 혜택, 도로 항만이나 직업훈련과 같은 기초적인 인프라의 완비, 활발한 유동성을갖는 자금시장의 구축등 창업을 위한 좋은 여건을 마련해주고 있기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여기에 세계일류기업들이 개별적으로 실시한 불황타개의 노력도 다양하게 나타났다. 일본에서 기린맥주의 적수가 되지 못했던 아사히맥주는 오히려 불황기를 거치면서 상대를 위협할만큼 기린맥주와의간격(시장점유율)을 좁혀놓고 있다. 86년 아사히맥주는 히구치 신임사장을 맞이한다. 히구치는 맥주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스미토모은행출신. 그러나 관련업계에 경험이 전무하다는 사실은 히구치가오히려 과감한 경영혁신을 하게 하는 긍정적인 작용을 했다. 그는「전례가 없으므로 할 수 없다」는 그전까지의 원칙을 뒤엎고 「전례가 없으므로 하겠다」는 역발상을 경영에 내세웠다. 예를 들면타사의 경영노하우를 존중하지 않고 경비절감의 일환으로 원재료비의 삭감에 주력하던 원칙은 업계의 충고를 귀담아 듣고 원재료는아무리 비싸도 아까워하지 않는다는 역발상으로 전환됐다. 최고의원재료를 구입하는 것은 최고의 상품을 만드는데 있어서 가장 기초적인 원칙이라는 생각이었다. 일정 이익이 확보된 후 생기는 영업이익은 모두 광고 선전에 사용하고 노조의 요구를 미리 알아내 처우개선에 나섰다. 87년 출시된 슈퍼드라이는 공전의 히트상품이 되고 현재 아사히맥주 매출액의 85%까지를 점하게 됐다. 1위인 기린맥주와의 점유율차이는 85년의 51.8%(아사히 9.6%, 기린 61.8%)포인트에서 96년 10월현재 16.1%(아사히 30.4%, 기린 46.5%)포인트로급격히 좁혀졌다.세계적인 컴퓨터업체인 IBM은 최근들어 완전히 되살아나 흑자폭을늘려가고 있다. 70년대 세계컴퓨터업계를 이끌었던 IBM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 등에 밀려 90년대 들어서면서 창업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92, 93년에는 각각 49억, 81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그러나 이후 흑자로 돌아서 올해는 매출 7백70억달러 순익 60억달러를 예상하기에 이르렀다. 93년4월 경영권을 넘겨받은 루이스 거스너는 컴퓨터문외한이었지만 IBM몰락의 원인을 지적하는 고객의목소리에 귀를 열었다. 이른바 「대기업병」. 91년부터 93년까지3년간 1백60억원의 누적적자가 쌓인 것은 「공룡」이 돼버린 자신의 귀를 꽉 닫아놓고 업계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데 있었다. 컴퓨터의 PC화라는 전세계적인 추세를 거역하며 메인프레임등중대형시스템만 고집해온 결과였다.거스너는 93, 94년 전세계 IBM직원(약31만명)중 8만5천명을 줄이는대량 감원을 실시했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물류 구매 재고 인사관리를 네트워크상에서 처리하는 업무효율화로 지난해에는관련비용을 70억달러나 줄일 수있었다. 94년들어 인터넷과 인트라넷이라는 새로운 환경을 놓치지 않고 네트워크컴퓨팅사업에 뛰어들어 경영회복에 불을 댕겼다. 이는 올해의 매출액 7백70억달러중60%인 5백83억달러가 과거에는 부진했던 PC 워크스테이션 정보서비스분야의 매출이라는 점에서 결실을 맺고 있다. 거스너가 마지막으로 심혈을 기울인 것은 철저한 고객밀착의 판매전략이다. 스스로가앞서서 실천한 「5명의 고객과 상담하면 4명과는 반드시 사인을 하라」는 거스너식의 판매원칙이 IBM의 신뢰를 회복시킨 것이다. 업무시간의 40%이상을 고객과의 대화시간으로 돌리고 고객이 복잡한컴퓨터망 운용에 애를 먹는다는 소리에 시스템운영업체(디볼리시스템)를 인수, 대처하는 구체적인 노력이 뒤따랐던 것은 물론이다.◆ IBM 최근 흑자폭 늘리며 되살아나IBM이 미국의 공룡이라면 독일의 공룡은 세계적 전자업체인 지멘스였다. 내년이면 창사1백50주년을 맞이하게 되는 역사와 전통의 기업. 그러나 지멘스도 지난 4년여동안 추진해온 TOP(Time OptimiseProcess, 시간효율최적화과정)라는 경영혁신작업의 결실을 보면서고질적인 저효율문화를 청산하고 있다. 지멘스는 전체매출의8∼9%가 연구개발에 들어가고 전체종업원의 10%이상이 연구개발부문에 종사할만큼 신제품개발능력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문제는 「공룡의 느린 걸음걸이」에 있었다. TOP는 기업활동의 모든분야에서 소요시간을 최적화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세계에 걸쳐 수백개의 사업장을 거느리고 있는 지멘스로서는 생산성배가운동을 전사업장으로 확산시키는 일이 쉽지 않았다. 93년 TOP라는 구호를 내걸었고 전사원들의 작업시간을 최대한 줄이도록 독려해 나갔다. 일단 각 사업단위별로 자율적인 TOP혁신방안이 만들어지면 이를 생산성센터라는 그룹지휘부에서 수렴, 다시 수정 보완된 실행프로그램을 각 사업단위로 하달하는 방식으로 TOP운동의 내실을 다져갔다.지멘스가 IBM으로부터 인수한 로럼커뮤니케이션은 인수초기에는 하루 1백만달러의 손실을 기록하던 「골치덩어리」였다. 그러나TOP운동의 실시로 3년만에 제품주문에서 납품까지 소요되는 시간을60% 단축시켰고 매년 평균 5백만달러씩 적자를 줄여나가는 경이적인 성과를 올리게 됐다. TOP운동은 신제품개발을 통한 시장석권으로도 이어져 자동수송시스템사업부의 경우 전체제품의 90%가 최근2년사이에 개발된 제품들로 일신했다.최근 삼성경제연구소는 세계일류기업들이 어떤 방법으로 불황을 이겨내는가를 연구한 결과, 감량경영등과 함께 경쟁회사와의 전략적제휴가 불황타개의 유효한 방안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IBM은 애플 모토롤라 지멘스 도시바 등과 제휴에 나섰으며 특히 도시바와 공동개발한 디스플레이는 노트북PC(싱크패드)가 크게 히트하는데 큰 힘이 됐다. 이스트만 코닥은 80년대에만 5차례나 실시한사업재구축이 모두 실패하자 제약 가정소비재 의료기기사업을 매각하는 한편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스프린트등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제품의 고부가가치화를 추진해 효과를 보고 있다. 도요타자동차는미국에서 제너럴 모터즈와, 유럽에서 폴크스바겐과 전략적 제휴를통해 투자위험을 최소화했다. 세계적인 일류기업들의 불황극복은인원삭감이상으로 자신들만의 고질적인 단점을 찾아내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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