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의 경제사회학

「정월 송악에 백학이 울고 이월 매조에 꾀꼬리 운다/삼월 사쿠라북치는 소리 천지백파에 다 날아든다/사월 흑싸리 못믿어서 오월난초가 만발했네/유월 목단에 나비청해 칠월 홍싸리 멧돼지 뛰고/팔월 공산에 달이 밝아 구월 국진에 국화주요/시월 단풍에 사슴이 놀고 오동복판 거문고는 줄만 골라도 빙글뱅글/우중에 햇님이 양산을받고 동네방네 유람갈까/다 돌았네 다 돌았네 이백사십으로 다 돌았네」.전북 고창지방에 전해오는 달거리식(월령체)의 민요인 「화투타령」이다. 민요가 만들어져 구전될 정도로 화투는 이미 오래 전부터우리네 일상에 파고 들어와 있었다.그러나 시간 돈 체력의 낭비라는 비생산성으로 인해 망국병이라는소리마저 나온지 오래다. 수시로 보도되는 도박사건 등으로 해서「화투=도박」이라는 인식도 사회저변에 깔려있다. 그러나 부정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화투는 휴식·놀이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돌잔치 집들이 명절이면 화투판이 벌어진다. 특히 병원영안실등 상가에서 화투는 대량 소비된다.인생의 축소판이자 인간의 잠재된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마술사라는 48장의 화투.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씩은 잡아본 경험이 있는 화투지만 정작 화투전반에 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현재 국내에서 화투의 시장규모나 제조업체 유통업체 등에 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다만 업계에서는 연간 화투생산량을 1천만목 정도로 추산하고 있을 뿐이다. 5인 가족을 1가구로 했을 때 한가구당1년에 화투 한목씩을 구입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화투시장 3백억원 규모90년대 들어 홍콩영화의 영향으로 젊은 층에 포커바람이 불면서 일부업체는 카드제작으로 업종변경을 시도하는 등 일순간 화투생산시장에 찬바람이 돌았으나 곧 자리를 잡았다. 그만큼 화투가 우리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엄청나다. 다른 한편으로는 화투시장의 규모가 그만큼 만만찮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부 유통업체에서자체 PB상표를 단 화투제작을 한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굳이 비싼 돈을 들여 새로운 장비를 구입해 카드를 제작하는 것보다는 화투제작이 「남는 장사」라는 생각도 한몫 했다. 화투 한목의 가격은 소매가기준으로 1천원에서 3천원까지 다양하다. 연간 생산량을따져보면 시장규모가 최소 1백억원에서 3백억원에 이른다는 계산이나온다. 적잖은 액수다.그러나 3백억원대에 이르는 시장규모와 달리 생산시장은 빈약하기그지없다. 현재 화투를 만들려면 일단 화투상표를 특허청에 등록하고 관할 세무서에 신고를 하면 생산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런 절차를 밟은 업체는 극히 드물다.대부분 영세업자들로 집이나 소규모의 공장에서 가내수공업으로 화투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들을 업계에서는 숨어서 화투를 만든다고해 「베트콩」이라고도 부른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화투가 시중에유통되는 화투의 대부분이다. 베트콩이라는 비밀제조업체나 그들이만들어내는 실적 등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공공연하게 거래되는화투지만 철저히 지하경제에 속하는 셈이다. 영세업체라 휴폐업도많다. 직원도 기껏해야 5명을 넘는 곳이 거의 없다는 것이 업계에서 나오는 말이다. 삼원화학사 정두홍사장(52)은 『현재 서울에서만 약 40여개 업체가 난립했지만 정식으로 화투업으로 신고돼 세금을 내고 인지(검필증)를 붙여 화투를 만드는 업체는 한두곳정도』라고 말한다. 아울러 『전국적인 화투제조업자의 숫자는 파악이 불가능하다』고 덧붙인다. 몰래 제작하는 업체들을 무슨 수로 알 수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만큼 파악이 힘들다는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장 대중적인 오락기구로 자리잡은 화투제작에 관해 정부에서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화투제작업체가 난립하는 데에는 화투제작절차가 간단한 점도 한몫을 하고 있다. 화투는 재료공급업체로부터 화투의 가장 윗면인 투명지, 화투무늬가 인쇄된 무늬지(백색), 화투를 딱딱하게 만들어주는 속지, 손에 잡히기 쉽게 요철무늬가 박힌 적색지를 차례로 포갠다. 여기에 적지뒷면에는 요철무늬를 만들기 위해 업자들이 「곰보」라고 부르는 강판을, 백색투명지 위에는 평평한 강판을 얹은 다음 프레스기에 넣고 약 15분정도 열과 압력을 가하면 화투판이 만들어진다. 이 판을 절단기로 자른 뒤 화투패에 맞춰 케이스에 담으면 완제품이 된다. 인원도 많이 필요하지 않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약 50년의 역사를 가진 다이아몬드표화투를 만들어내는 삼원화학의 경우 직원수는 사장을 포함해 모두 4명이다. 사장밑으로 프레스공 1명과 절단과 포장을 담당하는 직원 2명이 전부다. 영업등생산이외의 일은 모두 사장 차지이며 나머지 3명의 직원이 하루에약 1천2백∼1천5백목의 화투를 만들어내고 있다.화투의 유통단계도 복잡하다. 세금과 비용을 포함한 화투의 공장단가는 약 6백원정도. 화투제작업체는 여기에 약 2백원정도의 이익을남기고 도매상에게 넘긴다. 도매상은 대개 잡화나 식음료품 등을취급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약 50원정도의 이익을 남기고 다시「나카마」라는 중간상에게 넘긴다. 나카마는 오토바이 차량 등을이용해 소매상들에게 화투를 공급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나카마는도매상과 소매상 사이에서 약 1백50∼2백원정도의 이익을 남기고화투를 넘긴다. 그러나 이는 A급품질의, 세무서에 신고된 업체의화투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이렇게 해서 정해지는 A급 화투의 최종소매값은 약 2천∼3천원정도. 소매상들은 약 2배 가까운 이익을 보는 셈이다.그러나 1천원의 가격폭이 말해주듯 그 안에서 부르는 게 값이다.이익폭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품질이 떨어지는 화투의 경우 생산단가가 2백원정도라는 것이 업자들의 말이다. 소매값도 업소에따라 1천∼1천5백원 정도에 판매되고 있다. 물론 세금도 없다. 제작업체나 판매상이나 모두 앉아서 고스란히 큰 이익을 남길 수 있다. 그러나 소매상으로서는 무조건 이익이 많은 화투만을 팔지는못한다. 화투를 찾는 소비자들이 고급품질의 화투를 먼저 알아보기때문이다. 세븐일레븐 인사점의 강영걸씨는 『연말을 맞아20∼30대의 회사원들이 화투를 많이 찾는 편』이라며 『고급품질의화투를 먼저 찾으며 조커가 많은 화투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서대문구 대현동 우리식품의 백병엽(60)씨도 『(화투제작업체)4군데에서 화투를 받고 있지만 품질이 좋은 화투의 이름을 골라대며 화투를달라는 손님들이 많다』고 말했다.◆ 대부분 영세업체, 은밀히 제작「집안에 화투 한목 안 가진 집 없다」는 말을 하는 화투제작업자들이지만 나름대로 고충이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가장 큰 고충은 화투업체들은 국내에서 사행심과 도박분위기를 조장한다는 따가운 시선. 『명함 내밀기가 어려울 정도』라는 것이 업자들의 말이다. 일할 사람을 구하기는 그래서 더더욱 어렵다. 그러나 버젓이수출도 하는 업체들도 있다고 업자들은 항변하고 있다. 『올해만도일본으로 약 5만목정도를 수출했으며 미국으로도 보따리상을 통해화투를 수출하고 있다』는 정사장은 『그러나 사회의 시각이 따갑다』고 말한다. 또 다른 어려움은 세금이 너무 무겁다는 것. 화투제작업체에 부과되는 특별소비세 농특세 부가가치세 교육세 등을모두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고 업자들은 말한다. 그래서 세금을피해 무허가로 화투를 만드는 등 자꾸 음지로 들어가게 되고 화투와 화투제작업체들에 대한 나쁜 인식이 덩달아 확대되는 악순환이계속된다는 것이 업자들의 주장이다. 그래서 일부 업자들은 협동조합결성을 추진하기도 했다. 화투제작업체들이 양지로 나와 동일상표로 제품을 만들어내되 세금 등을 꼬박꼬박 내고 정당하게 기업으로 대우받자는 계산에서다. 그러나 이른바 「베트콩」들 때문에 역시 조합결성은 무산됐다. 그렇지만 지금도 몇몇 업체에서는 조합결성을 추진하고 있다. 사회의 따가운 시선이란 「쓰리고」에 무거운세금이란 「피박」을 한번에 고스란히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다는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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