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 영화·서적등 '시장 섰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 호이징거(JohanHuizinga)가 제창한 인간관이다.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다.인간의 문화는 놀이 속에서, 놀이로부터 발달된다는 주장을 하면서내세운 것이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놀이를 통해 문화를 발전시켜왔다는 말이다. 그만큼 놀이가 차지하는 의미는 단순한 유희의 차원을 넘어섰다고 본 것이다.「호모 루덴스」로서 현재 우리에게 가장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놀이는 단연 화투다. 그러나 단순히 화투는 놀이의 대상이나 객체만은 아니다. 화투는 제작업체-도매상-중간상-소매상-소비자로 이어지는 단순한 제품순환의 통로 외에도 그 언저리에 걸치는 부분까지 생산-유통-소비의 논리와 이데올로기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48+1」. 만화가 허영만씨의 작품제목이다. 대본소라고 불리는만화가게(만화방)에서 꾸준한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은 책이다. 서울서대문구 신촌에 있는 한 만화체인점의 주인은 『나온지 조금 오래됐지만 손님들로부터 꾸준하게 읽히는 작품』이라고 「48+1」을설명했다. 여기서 48은 화투패의 숫자이며 1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요행수에 대한 기대감을 한장의 화투패로 묘사한 숫자다.◆ 「삼팔광땡」 디자인한 크리스마스 카드 나와화투전문가(타짜 또는 기사라고 함)인 「정수」와 자해공갈단을 이끌던 뒷골목 건달인 「강토」가 주인공으로 정수가 강토에게 화투기술을 전수하고 함께 도박장을 운영하는 창고(화투도박을 전문적으로 하는 장소)주인인 「홍성」에게 당한 배신과 린치에 대해 복수를 한 뒤 손을 씻지만 화투판에서 승승장구하면서 사기화투에 맛을 들인 강토는 결국 도박판에서 홍성의 덫에 빠져 죽음을 맞는다는 내용이다. 화투도박판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상황이나 용어 등을리얼하게 나타내서 인기가 높았으며 나중에 같은 이름의 영화와 비디오로 제작됐다.영화에서는 주인공 정수에 김명곤, 강토에 박상민, 홍성에 전무송씨 등이 역을 맡았으며 「최초의 화투영화」라는 점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비록 영화에서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비디오로 출시해오히려 재미를 봤다는 것이 비디오업자들의 판단이다.영화 「48+1」의 비디오판매를 담당했던 세음미디어의 박혁상씨는『비디오로 흥행작이라고 할 수 있는 5만장정도가 팔려나갔다』며『출연배우나 액션 등이 좋았지만 화투도박에 대한 관심이 높은 점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의 도박영화에 식상한 비디오팬들이 한국적인 화투도박을 그린 영화라는 점에서 관심을 갖고보는 것 같다』는 것은 비디오대여업자들의 분석이다.비단 「48+1」만이 아니다.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화투패는 영화뿐만 아니라 출판가 대학가 역술업계 등 가릴 곳 없이 등장하고 있다.「한국사람 있는 곳에 화투 있다」는 말처럼 곳곳에 감초처럼 화투는 얼굴을 내밀고 있다.지난 95년말에는 화투패의 「삼팔광땡」을 디자인소재로 삼은 크리스마스카드가 선보이기도 했다. 물론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식의 비난이 나오기도 했다.최근에는 대학가에 부적으로 화투패가 등장했다. 이 화투부적은 일부 대학생들 사이에서 화투가 불행을 막고 행운을 가져온다는 부적처럼 좋을 일을 가져다준다는 말이 돌면서 서서히 대학생들에게 귀에서 귀로 전해져 많은 학생들이 화투부적을 지니고 있다. 부적처럼 그냥 갖고다녀도 부담이 없는 데다 「왠지」 좋은 일이 진짜로생길 것 같은 기대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화투부적이 대학가에등장한 것이다.K대 유모군(27)은 『신세대 대학생들의 튀고싶은 마음, 현재에 대한 불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화투부적이등장한 것 같다』고 나름대로 화투부적을 분석했다. 그러나 모든화투패가 다 부적처럼 애용되는 것은 아니다. 대학생들이 찾는 화투부적의 대상은 「삼팔광땡」 「고도리」 「오광」 「청단」 「홍단」「초단」 등 이른바 「끗발 좋은 화투패」만이 부적으로서의효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화투패에 따른 효능도 다르다. 홍단은애정, 초단은 시험, 고도리는 가족건강, 오광은 사회적인 성공 등에 효험이 있다는 것. 그래서 바라는 내용이 바뀌면 화투부적의 패도 따라서 바뀐다.D대에 다닌다는 한 여학생은 『효능은 들리는 말마다 모두 다르다』며 『수첩 안에 있는 남자친구의 사진과 함께 홍단패 3장을 갖고다닌다』고 말했다.◆ 「고스톱백과」 초판부터 매진, 10판까지 찍어화투를 소재로 삼은 서적들도 간간이 출판되고 있다. 종이의 질이떨어지는 갱지로 만들어져 길거리에서 팔리는 5백∼1천원짜리의 「비법 고스톱」에서부터 번듯한 출판사의 「고스톱백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가장 먼저 번듯한 모습을 갖고 출판된 화투관련서적은 지난 90년보성출판사에서 초판을 발간한 이호광씨의 「고스톱백과」. 고스톱에 관련된 잡다한 사항들을 사전식으로 모아 나열했으며 고스톱에관한 다양한 내용들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초판발간때부터 매진이 됐으며 현재 10판까지 찍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는 것이 보성출판사 편집부 이성숙씨의 말이다.『「화투점의 대가」 「화투사상연구가」 「화투연구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지지만 「화투박사」로 불려지길 원한다』는 정영모씨도 화투서적으로 일약 유명인사가 됐다. 화투를 『메신저역할을 하는 정교한 역술화이자 퍼즐』이라고 정의하는 정씨는 화투를역술에 응용한 「신선이 남긴 동양화」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서정씨는 화투가 한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하며 지난해 4월총선에서 각 정당별 의석수를 예언해 시중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현재 3권까지 발행했으며 유명세를 타고 모일간신문에도 글을 기고하고 있다.「신선이 남긴 동양화」를 발간한 한솔미디어의 유부용과장은『1·2권의 경우 현재까지 약 10만부정도가 판매됐다』며 『최근발간된 3권의 경우 아직 홍보가 안돼 판매는 저조하지만 곧 1·2권수준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신선이 남긴 동양화는 모두 12권으로 계획돼있다』고 밝힌 작가 정씨는 『현재4권인 대권편을 준비하고 있으며 2월안으로 출간할 예정』이라고밝혔다.화투가 오락실에 진출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 청소년들이 가장많이 찾는 놀이시설인 전자오락실에는 고스톱을 게임으로 만든 전자고스톱이나 고스톱을 응용한 계급장게임 등이 한구석을 차지하고있다.지난해 12월 17일 오후 6시경 서대문구 대현동에 자리잡은 Y오락실. 10여대가 넘는 고스톱게임기 앞에는 자욱한 담배연기속에서1백원짜리 동전을 수북히 담은 컵을 앞에 놓은 손님이 부지런히 게임기에 돈을 넣고 버튼을 누르는 반복적인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Y오락실의 한 관계자는 『고스톱게임은 영등포역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가장 성행하고 있다』며 『(여기는)심심풀이로 하는 고스톱』이라고 말했지만 놓여진 돈이나 환전을 위해 담아놓은 동전은 최소가 5천원단위인 것으로 보였다.전자오락실의 고스톱은 일정액을 내면 업자가 기본점수를 「찍어주고」 그 점수를 재산으로 게임을 하는 방법과 동전을 일일이 넣으며 게임을 하는 방법으로 나뉜다. 성인용 오락실의 대부분은 일정액을 내고 업자가 점수를 찍어주는 방법을 쓰고 있다. 청소년오락실의 경우 도박용이 아닌 게임용으로 돼있어 동전을 넣는 방식이다.그러나 동전을 넣든 점수를 찍든 성인용 오락실의 환불방법은 똑같아 1만점등 업소측에서 정한 지불점수가 돼야 돈으로 환불받을 수있다.동대문에 있는 한 성인용 전자오락실에서 만난 김정한(40)씨는 『대개 기계를 만져 승률을 조작하므로 전자고스톱으로 돈을 땄다는사람이 있으면 거짓말』이라며 『하지만 시간 때우기에는 최고』라고 말했다. 김씨가 잃은 돈은 4시간동안 7만원. 『예전보다 점수가잘 나왔다』는 것이 김씨의 말이다.그러나 돈을 번 사람은 기계를 들여놓고 영업을 하는 오락실주인이다. 불법영업을 통한 이익과 관청의 단속이라는 두가지 선택을 놓은 도박에서 오락실주인은 불법영업에 베팅을 하고 금전적 이익을챙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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