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과 관계없이 올 경기 나쁘다

대통령선거가 치러지는 올해 경기를 바라보는 정부와 민간의 시각은 그 어느 때보다 어둡다. 모두 일치된 목소리로 「지난해보다 더나빠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성장은 지난해보다 더욱 꺾이고물가불안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경상적자도 지난해에 비해별반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경제에는 그다지도움이 안 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대선까지 치러진다. 한마디로 올해는 대선과 경기바닥이 동시에 겹치는 해다. 경기가 침체를 벗어나느냐 아니냐가 결정되는 중요한 시기에 최대 정치행사인 대통령선거까지 실시된다는 말이다. 그만큼 올 한해는 어려운 한편 우리나라의 21세기 향방이 결정지어지는 전환점으로서 중요하다.◆ 선거, 경기의 큰 흐름 바꾸지 않는다경기 저점에서 치러지는 선거니만큼 선거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하는 문제는 큰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행여 대통령선거가 안 그래도 바닥을 기고 있는 경제에 더 큰 짐을 더하지 않을까 걱정들이다. 특히 유권자의 표를 의식한 근시안적인 선심성공약이나 대규모 선거자금 유포로 인한 물가불안 등 선거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크다.80년대 이후에 국민들의 직접 선거로 치러진 총선과 대선을 통해내릴 수 있는 결론은 선거가 국내 경기의 흐름을 좌우할 정도로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선거 전후 한두달 사이에 단기적으로 선거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장기적으로 흐름 자체를 바꿀 정도는 아니었다. 선거가 치러지는 시점이 호황이냐 불황이냐에 따라 선거의 영향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점도 선거 자체가 경기의 큰 흐름을 바꾸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80년대 이후 직접 선거로 치러진 87년 92년 대선은선거가 어떤 경제 여건에서 실시되느냐에 따라 선거의 영향이 다른양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87년 대선은 전형적인 호황국면에서 치러졌다. 3저 효과에 의한 최대의 호황국면으로 85년 9월이후의 경기확장이 계속되고 있었고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면서 설비 투자도 늘어나고 있었다. 이런 호황국면에서 치러진 대선은 눈에 띄게 총통화증가율을 높여놨다. 선거 3개월 전인 9월에 17.7%였던 총통화증가율이 선거 당월인 12월에는 22.5%까지 올랐다. 금리는 시중 유동성 증가에 따라 선거 분기까지 하락했다가 선거 후에는 통화 환수 영향으로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선거전에 일시적으로 떨어졌던 종합주가지수도 선거후 급격히 오르기 시작했으며 땅값도 뛰기 시작했다.그러나 경기수축국면에서 치러진 92년 대선의 경우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였다. 선거 바로 전달인 11월에 총통화증가율이 일시적으로높아졌던 것은 사실이지만 금리는 경기부진과 공금리 인하조치에따라 하향 추세를 지속했다. 주가의 경우 92년초부터 계속 떨어지다가 8월 바닥을 형성하고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지만 선거의 영향이라기 보다는 8·24 증시부양책의 영향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지가의 경우 87년과 반대 양상을 보였는데 경기위축에 따라 선거에 관계없이 계속 떨어졌다. 경제성장률은 92년초부터 계속 하락세를 보이다가 93년 3/4분기부터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선거가 경기 흐름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민간인이 느끼는 선거의 영향이 결코 미미하지는 않다. 최소한 민간인들에게는 피부에 느껴질정도로 일정한 영향력을 미쳐왔던게 사실이다. 일단 선거 때가 되면 소비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물가 상승 문제가 있다. 실제로 80년이후 각 선거 시점을 전후로 월별 소비자물가 상승률 추이를 보면선거 전에는 물가가 하락했다가도 선거 후에는 최소 3개월동안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는 통화량 증가때문이라기 보다는 선거 기간동안 정부의 가격관리가 느슨해진 틈을 타서 각종공공요금과 서비스 요금이 슬그머니 인상되고 후보자들의 각종 개발 공약이 인플레를 부추겼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선거가 미치는영향은 투자와 생산에서 보다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호황기든 불황기든 시중 유동성이 선거자금으로 동원되고 미래의 불확실성이커지는 선거는 투자 부진을 가중시킨다. 특히 불황기때는 선거로인한 투자 급락 문제가 심각하다. 불황기에 치러진 92년 대선의 경우 설비투자 증가율이 선거 전분기와 당분기에 각각 마이너스3.1%, 마이너스 10.2%로 떨어졌다. 경기 하강기에 치러진 선거는투자를 급속도로 침체시키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최고 경영자 50.6%, 대선 기업경영에 큰 부담그렇다면 이번 대선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일단 정부와 민간연구소들은 약간의 수치 차이는 있지만 올 경기를 일치되게 「저성장, 고물가, 큰 폭의 경상수지 적자」라고 보고있다. 한마디로대선에 관계없이 올 경기는 지난해보다 더 나빠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런 경제 여건에서 올 대선이 경제에 특별히 더 많은 영향을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우선 선거 시점인 연말에는 선거자금 방출로 인한 물가상승 압력이커질 것으로 보이지만 선거가 올해 전반적으로 물가에 큰 영향을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불황기에 치러졌던 92년 대선의경우를 볼 때 금리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할 것으로 예상된다. 선거때마다 제기되는 인력난 문제도 올해는 심각하지 않을 전망이다.경기 불황에 의해 실업자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생산 인력유출에 의한 생산 둔화 현상도 크지 않을 것이다.다만 걱정되는 점은 경제논리가 정치논리에 종속되는 경우다. 대선자체가 경제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하지만 자칫 정치논리를앞세울 경우 우리 경제는 심한 혼수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재원조달이 불가능한 투자 개발 계획이나 중소기업 및 농어촌 지원대책같은 선심성 정책은 국민들의 기대 심리를 부풀려 물가나 금리를상승시키면서 거시 경제 지표를 교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무책임한 인기성 공약이 남발되고 대선으로 인해 사회분위기가 불안정해질 경우 기업활동은 더욱 위축되고 경제는 곤두박질칠 우려가크다. 공기업 민영화나 규제 완화와 같은 문제들이 정치논리에 좌우된다면 구조개선 작업은 더욱 힘들어지면서 장기적으로 경제를더욱 어렵게 할 것이 분명하다. 결국 일관성있고 현실성있는 정책으로 기업활동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길만이 선거가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다.한국능률협회가 국내 기업 및 금융기관 최고 경영자 1백6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0.6%가 대선이 기업경영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활력을 불어넣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대답은 12.1%에 불과했다. 절반 이상의 최고 경영자들이 벌써부터 대선의 영향을 불안해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는 선거 자체가 경제에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라기 보다는 경제정책 여건 변화에 의한심리적 불안감을 나타낸다. 선거가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느냐는 정치 사회의 성숙도와 선거제도, 유권자의 의식수준 문제와 직결된다. 선거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실시되는 제도와 관행이 문제인 것이다. 경제에 부담이 되지 않고 오히려 경제에 활력을주는 대선을 기대하는 소리가 크다. 그만큼 우리 경제가 어렵다는반증이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