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노피아 시대 앞당긴다

서울 신림동에서 컴퓨터 관련 사업을 하는 김진우씨(38)는 요즘 미국 LA에 사는 가족들과 수시로 연락을 한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형제들 모두 미국에 사는 까닭에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안부를 전한다. 언뜻 보면 엄청난 전화요금이 나올 것 같다. 하지만 김씨의 전화요금청구서를 보면 국제전화를 쓴 흔적이 없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미국의 가족들과 안부를 주고받으면서 값비싼국제전화를 전혀 쓰지 않는다. 대신 수시로 비용이 아주 싼 전자우편을 이용한다. 전하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PC를 켜고 전자우편에글을 띄운다. 그는 처음에는 다소 어색했으나 이젠 숙달이 돼 아주편하다고 말한다. 그는 또 보내고 싶은 사진 등이 있으면 인터넷을이용한다. 굳이 요금이 비싸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국제우편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미국에 있는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전자우편을 이용해 메시지를보내온다.디지털기술이 우리의 생활을 강타하고 있다. 이른바 생활 속의 디지털혁명이다. 특히 디지털혁명의 한가운데에 서있는 컴퓨터의 보급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생활 자체에 커다란 변화의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컴퓨터가 디지털정보를 순식간에 계산해내는능력을 급속도로 신장시키며 네트워크와 결합하여 새로운 세계를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가전 컴퓨터 통신기기 하나로 통합된다흔히 일반인들은 디지털하면 상당히 어렵게 생각한다. 무슨 특별한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만이 활용하는 첨단기술쯤으로 인식한다.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의 생활 주변에도 디지털기술은얼마든지 들어와 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 사무실이나 가정을 중심으로 디지털을 이용한 첨단제품이 속속 파고들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이 만드는 이상향은 웬만한 것은 모두 한데로 융합되는 세상이다. TV와 같은 가전제품을 비롯해 컴퓨터, 통신기기 등이 하나로 융합된다.다시 말해 예전에는 자기 고유의 기능만을 소화했지만 디지털 기술이 도입되면서 전공 외에 다른 일도 추가로 수행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로 바뀌는 것이다. 여기에다 화상이나 음성이 아날로그 기술로만들어진 제품보다 훨씬 뛰어나다. 화상이 몇배 뛰어나고 음성도현장에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또렷또렷하다. 예를 들어디지털TV의 경우 지금처럼 드라마를 볼 수 있는 것은 기본이고 앞으로는 쇼핑도 하고 화상회의도 할 수 있게 된다. 기존의 TV에다디지털기술을 활용해 카메라를 설치하고 다시 이를 PC네트워크에연결시켜 다기능 첨단제품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디지털시대를 맞아 일부 가전사가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는디지털TV를 선보이고 있다.꿈의 정보창고로 불리는 DVD(Digital Video Disk)를 비롯하여 디지털복사기, 디지털카메라,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 휴대형PC, 디지털전화기 등도 마찬가지다. 디지털기술을 활용해 기존의제품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기능을 선보이며 사무실과 안방을 공략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이 가운데 상당수 제품은 이미 시장에등장, 소비자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물론 아직은 가격이 비싸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는 초기단계의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기존제품과의 가격차는 극히미미할 것으로 보여 자연스럽게 지금의 자리를 대체할 것으로 전망된다.비디오테이프를 대신할 차세대 기억매체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DVD는 엄청난 기억용량이 가장 큰 무기다. 기존의 CD롬보다 7배 이상의 정보를 더 저장할 수 있다. 가히 슈퍼맨급 정보창고라고 할만하다. 또 하나 DVD는 디지털 제품의 특성상 입력과 삭제를 반복해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 기존의 비디오테이프는 이런 경우 음성이나 화질이 크게 떨어지는 단점을 갖고 있다. DVD는 장차 레이저디스크의 수요도 대체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복사기는 현대인에게 있어 필수품이다. 만약 복사기가 없다면 하고상상만 해도 아찔할 정도다. 하지만 이용하다보면 짜증나는 일이한두가지가 아니다. 종이가 툭하면 걸리고 하면 사이즈를 맞추느라진땀을 빼기도 한다. 그러나 디지털복사기의 등장으로 이런 고충은사라지고 있다. 특히 이 복사기는 원고에 투사된 빛의 반사광을 정밀한 디지털신호로 바꾼 후 메모리칩에 저장해 출력하기 때문에 종이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종이가 없으면 일단 저장해 놓았다가 나중에 종이를 끼운 후 출력하면 되는 것이다.또 이 복사기는 팩스에 연결하면 곧바로 자료를 전송할 수 있는데다 종이사이즈도 자동으로 판단해 복사해준다. 속도가 빠르고 기계자체의 고장률이 적으며 축소나 확대복사가 자유로운 점도 큰 이점이다. 국내에서도 지난해부터 일부 업체가 생산 판매하고 있는데아직은 가격이 비싸 일부에서만 사용되는 실정이다.디지털카메라의 등장도 획기적이다. 필름도 필요없고 따로 시간을들여가며 사진현상소에 갈 필요도 없다. 필름 대신 조그만 메모리칩에 영상을 담는 발상의 전환으로 탄생한 까닭이다. 사진을 뽑을때는 PC에 연결해 영상을 띄운 다음 그대로 프린트 명령만 내리면된다. 그러면 프린터기에서 생생한 사진이 뚝뚝 떨어진다. 여기에쓰이는 메모리칩의 경우 16~1백27장의 사진을 담을 수 있는데 얼마든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다.생활 속의 디지털혁명은 가전 부문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인터넷시대가 열리면서 마음만 먹으면 웬만한 것은 이제 집에 앉아서 해결할 수 있게 됐다. PC 한 대만 있으면 잠자고 밥먹는 것 빼고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정도다. 물론 이는 선진국만의 이야기는아니다. 국내에서도 얼마든 할 수 있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관심을 두지 않고 이용하지 않을 뿐이다.인터넷상으로 신문이나 잡지를 보는 것은 이제 네티즌들(PC통신이용자들)의 기본이다. 각 신문사들이 인터넷신문을 띄우고 있고 몇몇 잡지사들도 인터넷잡지를 발행하고 있다. 독자들의 입장에서는신문이나 책을 펼쳐보는 대신 통신망에 들어가 자기가 필요한 부분만 골라 보면 된다. 물론 이들 매체는 따로 인쇄매체로 만들어지지않는다. 전자상거래 시스템이 가동중이라 물건도 얼마든지 살 수있다. 통신망의 쇼핑몰에 들어가 백화점에서 물건을 고르듯 살 수있다. 대금은 통장에서 자동이체된다. 은행에서의 볼일도 마찬가지다. 웬만한 업무는 굳이 점포까지 갈 필요없이 집이나 가까운 사이버은행에 가 일을 보면 된다.◆ ‘비인간적 사회 조성’ 우려 목소리도이젠 책을 빌리거나 자료를 찾을 때도 직접 도서관까지 가는 수고를 덜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국내의 일부 도서관을 중심으로 전자도서관 체제가 갖추어지고 있다. 전자도서관은 단행본 필름오디오테이프 비디오테이프 등 모든 정보를 온라인으로 제공하기때문에 꿈의 공간으로 불린다.국내에서는 LG그룹이 운영하는 상남도서관이 효시로 전기 전자 화학분야 국내외 논문을 온라인으로 제공하고 있다. 1분당 2백페이지를 처리할 수 있는 스캐너로 자료를 컴퓨터하드디스크에 저장해놓고 활용하고 있다. 자료가 필요한 사람은 도서관 컴퓨터에 접속한다음 열람하고 자신의 프린트로 인쇄하면 된다. 대학 가운데는 서울대 도서관이 1백50억원의 예산을 확보하고 구체적인 준비에 착수했다.디지털혁명은 우리의 생활을 근본적으로 바꿔놓고 있다. 모든 것이손끝 하나로 처리되는 테크노피아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그러나이런 변화의 조짐에 크게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디지털기술이 인간생활을 완전히 지배하는 극히 비인간적인 사회가 도래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한다. 특히 많은 사회학자들은 인간의 정체성을 염려한다. 디지털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곱씹어볼 얘기다.
상단 바로가기